그래서, 이민이 답일까?

책 <그래서 나는 한국을 떠났다>... 이민자 11팀이 전하는 생생 이민기

등록 2019.01.29 16:50수정 2019.01.29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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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헬조선 탈출이 답이야.'

힘들면 자동으로 튀어나오는 외마디 비명이다. 요즘 한국을 떠나는 사람들도 이러한 생각을 하지 않을까 싶다. 그렇지만, 실제로 행동에 옮겨 정착에 성공해 새로운 둥지를 틀게 된 사람들은 어떻게 살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생각해본 적이 없다.
 

김병철, 안선희. 위즈덤 하우스. ⓒ 위즈덤하우스

  
<그래서 나는 한국을 떠났다>는 '이민 성공자' 들을 인터뷰하기 위해  31개국을 돌아다닌 김병철, 안선희 부부가 펴낸 책이다. 어떻게 살 것인가, 라는 답을 찾기 위해 3년 동안 돈을 모아 직장을 퇴사하고 한인 이민자 인터뷰를 위해 세계여행을 한다니. 정말 신기한 부부다.


책을 살펴보면, 막연히 이민을 꿈꾸라는 행복한 내용은 없다. 대신, 이민의 선택과정, 이민 이후에 일어날 법한 특별한 에피소드 들이 많다. 이민의 현실, 한국과는 확연히 다른 문화와 인식, 관점. 수많은 이민자들을 만났음에도 불구하고 서울에서 다시 삶을 이어가는 저자 부부의 선택이 주려고 하는 메시지는 뭘까.       

이민의 이유
 
"이민을 가겠다는 거창한 다짐은 아니고요. 내 의지와 상관없이 대한민국에서 태어나 30년을 살았으니, 남은 인생은 내가 원하는 나라에서 살고 싶다. 였어요."

슬로바키아에 거주하는 동섭씨

"캐나다에 여행 후 한국으로 돌아와 일하면서 이주에 대한 마음을 항상 갖고 있었는데, 어느날 문득 내가 지금 안가면 10년후에 늦은걸 후회하며 살 것 같은 마음이 생기더라구요."

 미국 버지니아에서 거주하는 임지혜씨
  
이민의 시작과 동기는 그리 거창하지 않았다. 임지혜씨처럼 평소의 생각이 우연한 여행의 계기와 만나 결정과 행동의 순간으로 찾아오기도 했다. 동섭씨는 인생 시작 버튼을 새롭게 눌러보기 위해 슬로바키아로 떠났다. 이들을 움직인 특별한 '가치'는 무엇일지 궁금해지기 시작한다.
 

"저의 가치관이 획일적인 잣대 안에서 평가받는게 불편했어요. ... 우리 아빠부터 성형 안하냐 고 물어봐요. 나이 먹을수록 더 할거 아니에요. 여기선 그런 스트레스는 안받아요... '수단과 방법 가리지 않고 이루기만 하면 돼' 하는 나라에서 '내 아이를 키울 수 있을까' 생각하니까 아찔하더라구요."

프랑스 그로노블에서 '지금의 행복'을 찾아 떠난 부부  
  
한국에서도 안정적인 삶을 살고 있었지만, 곽원철 류리 부부는 획일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국내에서의 삶에 염증을 느껴 떠났다고 한다. 보이지 않는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것을 피해서 새로운 언덕을 넘어보려고 먼 여행을 시작한 이들의 스토리에 가슴이 뜨끔하기도 하다. 행복하기 위해 다른 국가를 선택한 이들 또한 이민에서 특별한 가치를 찾으려는 듯하다.


이민, 행복을 가져다 준 특별한 가치
 "호주는 돈 외의 가치를 더 많이 봐요. 그걸 많이 느껴요. 한국은 개발해서 집값 올리자고 하잖아요. 여기는 정반대예요. 집값 오르면 좋지 않으니까, 개발하지 말라고 동내에 붙여놔요. 난개발이 되면 사람도 많아지고 복잡해지는 게 싫은 거죠. 그게 신기했어요."

호주 멜버른의 청소노동자 이재호씨

한국에서는 청소 노동이 집과 넉넉한 생활을 보장해 주진 않는다. 그러나, 호주에서는 청소를 해도 꽤 괜찮은 소득이 보장되는 나라다. 청소로 시작해 지금은 건물주가 된 이민자들도 꽤 있다고 한다. 단순이 시급이 센 것이 아니라 돈만큼 사람이 흘린 땀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호주의 문화는 이재호씨가 '청소해볼 만한데?'라는 생각에 길을 터주었다.     
 
 "정치권이 시민과 거리감이 없어요. 예를 들어 세금이 너무 많다고 민원을 내면 국회의원을 쉽게 만날 수 있어요. 한국에서 이런 이유로 국회를 찾아가는 것이 쉽겠어요? "

캐나다의 이장헌씨 

진정한 민주주의 국가에서 살고 있어서 좋다고 하는 이장헌씨의 한마디는, 특별하지도 않은데 너무나도 크게 다가온다. 심지어, 캐나다에서 공무원을 하고 있는 그가 부럽기도 하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민자가 공무원을 할 수 있을까? 다양성 존중을 넘어 인정을 위한 단단한 초석이 마련되어 있는 캐나다는 나를 매혹시킨다.
 
"뉴질랜드에서는 야근할 일이 생기면 팀장이 돌면서 "오늘 혹시 시간 있어" 라고 물어봐요. 한국은 지시지만 여기는 부탁이거든요."

"한국 직장에서 어떤 문제가 발생했을 때 책임자를 가려내는게 우선이라면 여기는 어떻게 수습을 할 것인가? 어떻게 하면 재발 방지를 할것인가? 를 먼저 생각해요."

뉴질랜드의 보트빌더 최재영씨.

이 책에 담긴 인터뷰이들은, 한국의 직장문화에 회의적인 시각을 지니고 있다. 최재영씨도 그중 한명이다. 그는 한국에서는 가정을 꾸리는 게 힘들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뉴질랜드에 와서는 아이들과 저녁을 먹고, 공놀이를 하고, 낚시를 하는 꿈이 현실이 될 것 같다고 생각이 바뀌었다. 
  
마냥 행복할 것 같은 이민, 그렇지만...
 
 "독일로 오려면 무조건 언어를 해야 해요. 여기 와서 근 2년 동안 만난 한국사람 일곱 팀 중 한 팀을 빼고는 모두 한국으로 돌아갔어요... 정말 쉽지 않아요."

독일 에센의 김성길, 정보경 부부.

 "연애라든지 문화, 언어의 장벽은 여전해요.외국인. 그것도 소수의 한국인으로 사는 건 여전히 쉽지 않아요. "

영국 런던의 안승현씨.
 
독일 에센의 이민스토리. 김성길 정보경 부부의 막연한 동경이 현실로 되기까지는 눈물과 콧물을 쏙 빼도 부족할 정도의 어려움이 있었다. 매번 언어, 제도의 장벽에 부딪히다가 이제 막 안정적으로 정착한 그들의 이야기는 한국의 삶과 크게 달라 보이진 않기도 했다.

문화를 창조하는 영국의 '오리지널리티'에 매료된 안승현씨는 보다 진취적인 안트러프러너( 새로운 일에 도전해 문제를 해결함을 뜻하는 기업가 정신)가 되기 위해 견고한 문화-언어적 벽을 뚫으며 영국에서 꿈을 키우고 있다. 하지만 오히려 그는, 한국이라는 안전장치가 있기에 안심이 된다고 말한다.
 
"사람 사는 데는 어디나 다 똑같아요. 내가 노력하지 않으면 어디든 살기는 힘들어요. 한국도 똑같고요. 내가 노력을 안 하는데 나한테 무슨 기회가 있겠어요. 여기도 마찬가지거든요."
"한국을 탈출하고 싶다는 마음보다 프랑스를 꼭 가고 싶다가 훨씬 더 성공확률이 높아요."
"제 경험상 이민이나 유학 와서 가장 실패하는 사람들은 '내가 한국에선 어땠다' 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사람들이에요. 다 버리고 다시 시작해야 하는 현실을 인정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버티기 힘들어 하는 것 같더라구요."

노력 없이 행복의 열매가 입 안으로 떨어지길 바라지 말라는 것은 모든 인터뷰이들이 한입으로 하는 이야기다. 그들은 새롭게 시작한다는 생각으로, 최대한 구체적인 목표를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한다. 

특히, 이민자들에게는 언어 능력과 영주권의 획득이 중요하다. 더불어 어딜 가든 쉽게 녹아들 수 있는 수용성 있는 마인드가 있다면 도중에 위기에 맞닥뜨리더라도 슬기롭게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 

다시 서울로 돌아온 김병철 안선희 부부

수많은 인터뷰를 통해 저자 부부가 내린 결론은, 책을 쓰고 서울에서 살아가는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한국에 남아 있는 이유를 한국이 좋다, 싫다가 아니라고 한다. 그저 각자가 원하는 삶을 살 수 있는 장소가 다를 뿐이라는 것.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대답은, "내가 행복하기 위한 가치를 찾을 것"이다. 

나를 살아있게 해줄 가치를 찾아 떠난 이들의 흥미진진한 모험기는 여행지침서보다 재미있었다. 인생도 여행인데, 뭐 떠나는 것을 장려하진 않겠다만 말리지도 않겠다는 것이 이 책의 묘미다.

언젠가 새로운 방식의 삶을 위해 리셋 버튼을 눌러야 할 때가 올지도 모르겠다. 특히 오늘 같이 추운 겨울이면 지구 반대편으로 멀리 이사 간 한국인이 뿜어내는 따뜻한 이야기로 마음을 데우는 것도 좋겠다.

그래서 나는 한국을 떠났다 - 다르게 살아보고 싶어서, 좀 더 행복해지고 싶어서

김병철.안선희 지음,
위즈덤하우스, 2018


#이민 #에세이 #헬조선 #청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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