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과 아이들만 시댁으로... 12년 차 며느리의 반란

[며느라기, 그후] 나는 며느리가 되기 위해 결혼한 게 아니다

등록 2019.02.03 11:34수정 2019.02.03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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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에게 희생과 침묵을 요구하는 명절문화에 반기를 드는 며느리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며느라기'를 지나 자기만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이들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소개합니다.[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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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툰 <며느라기> 6_4.제사편 중 한 컷 (작가의 동의를 얻어 싣습니다) ⓒ 며느라기


지난 추석, 나는 시가에 가지 않았다. 반란의 시작은 부부 싸움이었으나, 오래 전부터 하기 싫었던 일을 하지 않았을 뿐이었다.

결혼한 지 12년, 추석과 설날 전날에는 같은 지역에 사는 시어머니, 형님, 나 셋이 모여 항상 전을 부치고 음식을 준비했다. 간혹 시부모님이 나서서 '이번 명절에는 쉬라'는 집들도 있다는데, 나의 시부모님은 전혀 그럴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나 스스로 안식년을 가지고 싶었다. 그래서 남편과 아이들만 시가로 갔다.

눈치 싸움

그동안 여러 번의 명절을 겪을 때마다 형님과 나, 어머님이 서로 장 보는 일을 미루기 위해 보이지 않는 눈치 싸움을 벌였다. 여러 신경전이 오가면서 서로 감정이 상하는 건 기본이었다.

게다가 음식을 준비해야 하는 명절 전날에는 최대한 늦게 시가에 가려고 눈치를 봤다. 시부모님과 가까이 사는 덕에 저녁에는 집에 돌아갈 수 있었지만, 도리어 가깝기 때문에 명절 당일에는 남편과 아이들을 놔두고 새벽 일찍 시가에 가 오전 6시부터 명절 음식을 차려야 했다. 형님은 차례를 지내기 10분 전에 도착하시곤 했다.

이 모든 것이 명절 때마다 되풀이되는 신경전이었다. 어머님, 형님, 나, 이 집안의 여자들 누구 하나 달갑게 명절 음식을 준비하지 않았다. 그런데, 왜 매번 명절 음식을 차려야 하고, 차례를 지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형님, 즉 남편의 형수님은 나보다 나이가 한 살 어리다. 하지만, 결혼하고 나니 남편의 형과 결혼했다는 이유로 나는 '형님'이라는 호칭과 함께 존댓말을 써야 했고, 형님은 나에게 자연스럽게 말을 놓았다. 결혼을 하고 나니, '나'란 존재는 없어졌다. 시가에서 나는 전통의 역할을 부여받은 둘째 며느리일 뿐이었다. 모두에게 당연한 이 상황이 나는 내내 불편했다. 

누군가는 이틀만 참으면 된다고 했고, 아이들 생각해서 그냥 참으라고도 했고, 조상에게 차례를 지내야 후손들이 잘되는 것이라고 또 참으라고 했다. 이 조언들의 기본 사상은 엄마는 희생하고 참는 존재, 그래야 아이들이 잘되고, 가정이 평화롭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궁금했다. 아이와 모성을 볼모로 여성들의 희생을 강요하는 건 아닐까?

추석 때 시가에 가지 않았다는 말을 하자 주변 반응은 대체로 비슷했다. '대단하다', '용기 있다'가 첫 번째였고, '마음이 불편하지는 않았냐', '그 이후가 궁금하다'는 질문이 두 번째였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마음이 불편했다. 추석 이후 어머님과 꽤 오랜 시간 냉랭한 관계를 유지해야 했다. 워킹맘인 나는 어머님의 도움을 받으며 아이들을 키우고 있다. 아이들 하원 후부터 내가 회사에서 돌아올 때까지 어머님이 아이들을 봐주시는데, 어머님은 추석 이후 나와 눈도 마주치지 않으셨다. 왜 오지 않았느냐고 묻지도 않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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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툰 <며느라기>의 한 장면(작가의 동의를 얻어 싣습니다). ⓒ <며느라기>

 
나름대로는 '추석의 반란(?)' 이후를 고민하기도 했다. 어머님께서 아이들을 봐주지 않으시겠다고 하면 아이 돌보미를 구하는 것까지도 고려했다. 그만큼 나에게는 힘든 결정이었다. 다행히 아이들은 계속 돌봐주셨지만, 한동안 불편함은 감수해야 했다.

그런 불편함을 감수하면서까지 명절에 가기 싫냐고 묻는다면, 나는 '그렇다'고 답할 것이다. 결혼하고 12년이라는 시간 동안 명절을 참고 지낸 이유는 앞서 이야기했듯이 아이들의 양육 문제 때문이었고, '응당 명절은 이래야 한다'는 선입견이 나에게도 있었기 때문이다. 가족들과 같이 둘러앉아 즐겁게 지내야 한다는 것.

평균의 이미지에서 벗어난 삶에 관대하지 않은 대한민국 사회에서, 평균에 뒤처지지 않으려고 노력하던 시간이었음을 고백한다. 그런데 나는 왜 갑자기 평균에서 벗어나고 싶었을까?

사위는 백년손님... 며느리는?

가끔 남편에게 묻는다. 왜 나와 결혼했는지. 사랑하는 사람과 같이 살고 싶어서라는 대답이 나왔다. 나도 같은 이유였다. 나를 존중해주고, 내가 하려는 것들에 대해 지지해줄 것 같아서 결혼을 했다.

그런데 왜 같이 살 수 없는 조건들이 우리 관계에 따라다니는 것인지 이해되지 않았다. 나는 며느리가 되기 위해서 결혼한 것이 아니었다. 남편의 능력을 바라거나, 남편에게 의지하기 위해서 한 결혼이 아니었다. 남편이라는 존재를 보고 선택했는데, 결혼이라는 제도에 붙어오는 의무들이 너무 많았다. 서로 대등한 부부 사이를 유지하고 싶은데, 자꾸 가사노동이, 명절이라는 문화가, 며느리라는 역할이 내게 따라 붙었다. 불편했다. 그 불편함을 벗어버리고 싶었다. 

남편도 내가 명절 때 시가에 가지 않는 것에 동의하기는 했지만, 나름 불편했던 모양이다. 추석을 지내고 와서 나에게 말했다.

"너도 아들 둘 키우잖아."
"내가 시어머니 된 다음에 누가 차례 지낸대? 그리고 특별한 날엔 내 아들들만 보면 되지, 굳이 며느리까지 애타게 보고 싶을 것 같진 않은데?"


며느리를 보고 싶어 하는 이유가 노동을 위해서만은 아닐 테다. 하지만 사위는 '백년손님'이고, 며느리는 음식 준비라는 노동을 대물림해야 할 대상이라는 것. 그게 대한민국 명절의 현실이다.

아는 지인 A는 남자친구와 결혼을 하지 않고 십 년째 동거 중이다. 남자친구가 장남이라는 게 이유다. 그와 결혼하면 각종 제사와 차례 등 맏며느리의 의무가 자신의 몫이 될 게 뻔하기 때문이란다.

A는 남자친구의 가족 행사에도 대부분 참여한다. 남자친구 부모님 생신 때도 손님으로서 함께한다. 그러나 명절에는 가지 않는다. 남자친구는 남자 형제만 3명인데, 둘째 며느리가 제사 및 차례를 전담하고 있다고 한다.

또 다른 지인 B는 맏며느리인데, 어느 날 시어머니가 은근히 제사를 가져갈 것을 권유했다고 한다. 제사를 가져가라는 이야기는 제사 준비와 지내는 것 모두 지인 B의 집에서 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며, B가 모든 것을 주도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했다. B는 그 뒤로 은근히 시어머니를 피하고 있다고 했다.

지인 A와 B의 사례, 나의 추석의 사례가 모두 가사노동의 대물림 때문에 일어난 일이다. 며느리는 손님처럼 시가에 가면 안 되는 것일까? 남편이 백년손님인 것처럼.

그건 반쪽짜리 평화다
 

가족의 평화를 위해서는 부처의 얼굴을 하고 참아야 하는 걸까? ⓒ unsplash

 
이번 명절에도 나는 반란을 꿈꾸고 있다. 물론 불편하고 두렵다. 여전히 어머님께서 아이들 등하원을 도와주시기 때문이다. 직장을 그만둘 수도 없다. 내가 가정 경제를 책임지고 있으니까. 아이들 양육을 독립하겠다고 가정 경제를 내려놓을 수는 없지 않은가? 내가 온전히 전통적인 며느리 역할을 벗어 던질 수 없는 이유다.

추석이 지나고 한동안 냉랭한 관계를 유지하던 어머님과 내가 다시 화해를 하게 된 건 어머님 덕분이었다. 어머님은 다시 예전처럼 말을 걸어오시고, 이전처럼 아이들을 돌봐주시고, 파김치가 되어 퇴근한 나에게 수고했다고 말씀해주신다.

가끔, 어머님과 형님을 시가라는 관계가 아닌 일상 속 타인으로 만났다면 어떠했을까 상상해본다. 명절이라는 노동과 며느리라는 의무를 제외한 그들과의 관계를 생각해본다. 어머니는 아들 둘을 훌륭하게 키워내신 존경스러운 여성이었을 것이고, 형님은 편하게 수다 떨 수 있는 동네 친구 엄마였을지도 모른다. 

가족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서는 하기 싫은 일도 해야 하고, 참을 줄도 알아야 한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가족의 평화를 위해 누군가 일방적으로 희생해야 하고, 그 희생으로 인해 불행하다면, 그건 반쪽짜리 평화다. 며느리도 가족의 일원이다. 그림자가 아니다. 모두의 기대를 충족하기 위해 그림자처럼 부엌에 숨어들어 고된 노동을 감수해야 하는 존재에 머물러선 안 된다. 

설 연휴를 앞둔 지금, 나는 또다시 치열하게 고민한다. 나는 무엇을 지키고 싶은 것인지, 어떻게 해야 나와 가족의 행복을 지킬 수 있을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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