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수입할 수 없어... 스위스도 공교육선 IB 안한다"

핀란드 교육 전문가 정도상 박사, "국내 공교육에 국제학교용 교육과정을 왜 도입하나" 문제제기

등록 2019.01.30 15:52수정 2019.01.30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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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바칼로레아(IB) 도입을 추진하는 취지에는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하지만 공교육의 IB 도입엔 반대합니다. IB는 태생부터 외교관, 상사원 자녀들이 모인 국제학교에서 사용하는 교육 제도거든요."

핀란드 교육 전문가로 유명한 정도상 박사(언어과학, 60)는 제주도교육청과 대구시교육청, 서울시교육청, 충남도교육청 등이 관심을 두고 있는 IB를 국내 공교육에 들여오는 데 반대한다고 밝혔다.

정 박사는 "2018년 12월 7일 기준으로 전 세계 153개국, 4964개 학교에서 6453개의 프로그램이 활용되고 있다고 IBO에서 밝혔다"면서 "외국 유학을 하려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공교육에서 IB를 도입한 학교들도 있지만, 이 학교들은 미국을 제외하면 대부분 국제학교"라고 지적했다.

정 박사는 IB 도입을 반대하는 가장 큰 이유로 '교육은 수입할 수 없다'는 점을 들었다. 한국 공교육이 왜 수입한 교육과정으로 교육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교육은 한 국가의 문화와 정체성이 반영되어야 합니다. IB를 만든 스위스에서도 공교육에서 이것을 사용하지 않아요. 50년이 넘는 역사와 그 우수성이 국제적으로 인증된 IB라고 하지만 이것을 공교육에 활용하는 국가는 미국을 제외하면 전 세계에 없지요."
 

국내에 '핀란드 교육 배우기 열풍'을 주도한 정도상 언어학 박사(60)를 30일 전자우편으로 인터뷰했다. 정 박사는 헬싱키대학교 석사, 서울대학교 박사 출신으로, 핀란드연구소 대표이자 서울대 핀란드어 담당강사로 활약 중이다. 다음은 정 박사와 나눈 일문일답.

- 현재의 한국 공교육을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통계와 외형으로 보면 세계 최상급이죠. 중학교까지 의무교육, 99%에 이르는 졸업률, 80%에 육박하는 대학생 비율, 최고 수준의 교사. 시설도 외국에 비해서 크게 뒤지지 않다고 봅니다. 그런데 교육의 주체인 교사와 학생들의 상황은 거의 최악이죠. 교사들은 점점 지쳐가고, 학생들의 학습 시간은 전 세계 1위로 찌들어있는데 그 수준은 참담하죠. 대학생 비율이 80%라고 세계가 부러워하는데 세계 수준의 경쟁력을 가진 대학생이 몇 퍼센트나 될까요?"

- 완전히 잘못되었다는 진단인가요? 
"지금까지 우리가 해 온 우리 교육이 잘못되었다고 단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어떤 교육을 했든 우리 방식으로 교육해서 성장했으니까요. 그 바탕에는 국민들이 피나는 노력과 그것을 지탱하는 교육이 있었습니다. 다만 이제 그 교육의 한계를 알게 되었고, 점점 더 어려운 상황으로 치닫고 있으니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나야 합니다. 그 시작은 대학입학자격고사의 보편적이고 상식적인 시험으로의 전환이지요."

- 대학입학자격고사 혁신이 중요하다는 뜻이군요. 
"물론 대학입학자격고사의 혁신이 모든 교육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어요. 인문계와 실업계 학교의 비율, 대학의 변화, 교사 양성 프로그램의 혁신, 교실 붕괴, 사교육, 교사 권위의 추락, 교사의 전문성과 수업 혁신 등 풀어야 할 문제가 100가지가 넘지요. 이 문제들을 풀어나가는 첫 단추가 대입자격시험의 전환이라고 봅니다."
   
- 일부 교육청이 국제 바칼로레아 도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만. 
"한국 교육이 제대로 방향을 잡지 못하고 수렁으로 빠져들고 있지요. 국가에서 그 해법을 찾아야 하는데 좀처럼 앞이 보이지 않으니 시도 교육청에서 국제적으로 인증된 교육과정을 도입해서라도 교육을 바꾸고 싶은 열망이 반영된 시도라고 봅니다. 오죽하면 교육청과 교육 전문가들이 국제학교에서 사용하는 제도를 도입하려고 하겠습니까. 안타깝습니다."


- 한국 교육에 문제가 많다고 보시는군요. 
"우리 교육, 특히 인문계 고등학교의 교육은 국제 수준과 비교하면 많이 떨어지고, 그 방향도 맞지 않습니다. 근본 원인이 대학수학능력시험 또는 대학입시의 평가 방식에 있지요. 한 국가의 교육 수준은 12년간 학생들이 학습한 내용을 평가하는 시험을 보면 알 수 있지요. 나라마다 명칭은 다르지만 우리처럼 수험생에게 문제 유형을 파악해서 최단 시간에 정답을 찾는 문제풀이 기계가 되도록 강요하도록 구성된 시험은 없다고 봐야죠."

- 시험 대비 방식이 다른 나라 고교생들과 다르군요. 
"같은 또래의 외국 고등학생들이 더 많은 지식을 습득합니다. 그 지식을 활용하여 구조적인 사고를 형성하고 자기 성장을 위해 공부합니다. 반면에 우리 학생들은 정해진 틀 안에서 정답 찾기나 하고 있잖아요. 학생들은 마치 시지프스처럼 원점으로 되돌아가는 바위를 산꼭대기까지 밀어 올리고 있는 거죠. 저는 국제 바칼로레아를 공교육에 도입 추진하는 움직임을 이런 관점에서 보고 있습니다. 교육을 통째로 바꿔보자는 처절한 움직임으로."

- IB를 도입하면 어떠한 문제가 발생할 것이라 보시는지요. 
"몇몇 교육청에서 IB 도입을 결정했고, 그 외의 교육청에서도 준비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초등학교와 중학교에서 우리 아이들이 왜 IB로 학습해야 되는지 그 이유가 궁금합니다. 문제 발생이 아니라, 우리 교육에 대한 자존심과 철학을 먼저 논해야 하겠지요."

-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신다면. 
"학생들이 중학교까지 교육을 받아본 적이 없는 새로운 방식의 교육에 적응할 수 있을지 걱정입니다. 경기외고에 그 사례가 있고, 긍정적인 면을 강조하지만, 현실적으로 이들은 일정 수준에 도달한 선발된 학생들이라는 점을 고려해야겠지요. 대학에 가지 않는 읍면 단위의 학생들에게도 훌륭한 교육의 기회를 제공한다고 하는데, IB도 그렇고, 다른 외국 인문계 고등학교 시스템도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그 수준이 매우 높지요. IB 도입 검토 단계에서 논의가 필요합니다."

- IB 도입 검토 시 어떠한 사전 논의가 필요하다고 보시는지. 
"문제가 될 수 있는 모든 경우의 수를 고려해야겠지요. 만약 모든 학생이 중도에 포기하면 어떻게 할지? IB에 포함되어 있는 경영학, 라틴어 등 모든 과목의 수업을 제공할 수 있는지? 대학 입시는 지금의 입시제도에서는 걱정할 필요가 없어 보입니다. 우리는 학생부종합전형이 있어서 그것으로 가능하지요. 다만 IB가 확대된다면 최종 외부평가(자격고사) 결과를 받지 않고 입시에서 경쟁할 텐데 형평성 문제를 해결할 방안이 마련되어야겠지요."
  

"인문계 고교 교육, 국제 수준에 많이 떨어져" 정도상 박사는 "우리 교육, 특히 인문계 고등학교의 교육은 국제 수준과 비교하면 많이 떨어지고 그 방향도 맞지 않다"고 지적했다. ⓒ 정도상

 
- IB 도입에 따른 비용 문제를 많이 걱정하시던데. 
"IB 학교로 인증되면 학생 수와 상관없이 학교당 연간 1100만 원, 최종 평가(Diploma)에 100만 원이 들어가죠. 인증 과정, 교사 양성, 한국어 번역 등에 들어가는 비용도 있다는데 교육청이 담당할 수 있을지 판단이 서지 않습니다. 저는 교육청에서 책정한 3~4억 원의 비용을 우리 교육 변화에 쓰면 좋겠습니다. "

- IB 도입 전에 어떠한 변화가 선행되어야 한다고 보십니까. 
"저는 특수한 목적(유학생 교육)을 제외하고 공교육에 IB 도입을 반대합니다. 따라서 IB 도입에 선행해야 할 어떠한 문제도 고민하지 않습니다."

- IB로 인해 사교육이 늘 것이라는 우려도 하시는지요? 
"IB 도입으로 사교육이 증가한다거나, IB 학교를 귀족학교로 간주하는 주장에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IB 유형의 교육은 사교육을 획기적으로 줄일 것입니다. 이것은 유럽에서는 보편적인 교육방식입니다. IB를 귀족학교로 간주하면 비슷한 교육을 하는 유럽의 모든 학교들이 귀족학교라는 의미인데 사실에 부합하지 않습니다. 유사한 교육과정을 운영하는 유럽에는 사교육도 없습니다. 이 학교들은 그냥 평범한 학교입니다."

- 교육은 수입할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우리 역사를 봤을 때, 헌법에서부터 심지어 대학에서 배우는 학문 분야에서도 수입해온 학문이 대부분인 현실입니다.
"하하, 교육과 물건이나 제품의 수입을 동등하게 볼 수 있을까요? 우리에게 없으면 수입해야지요. 원유도 수입하고, 천연가스도 수입해야 합니다. 그런데 교육은 우리에게도 있습니다. 미국산 소고기를 수입하지 않는 나라는 거의 없어요. 그런데 다른 나라의 교육을 수입하는 나라는 거의 없어요. 교육 틀을 전환해야 할 시점이지만 그 방법이 수입은 아니라고 봅니다."

- IB를 도입하지 않는 게 좋겠다면, 서술논술형 평가방식을 어떻게 적용하면 좋을까요?
"국가마다 대학입학자격시험에 약간의 차이가 있을 뿐, 평가 내용과 방식에는 거의 차이가 없어요. 독일의 아비투어, 프랑스의 바칼로레아, 핀란드의 윌리오삘라스뚜뜨낀또 등 대부분의 시험은 에세이와 논술형, 서술형입니다. 학생들이 스스로 학습하고, 교사들이 평가합니다. 이러한 가르침과 배움 그리고 평가는 아주 보편적이고, 평범한 방식이지요. IB도 그중의 하나라고 보면 됩니다. 한국만 특이하고, 이상한 방식을 택하고 있는 것입니다."

- 그렇다면 한국은 평가방식을 어떻게 전환해야 할까요?
"우리도 이 방식으로 전환해야 하는데, 저는 10년 정도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수능은 반교육적이니, 그 명칭을 '대학입학자격시험'으로 정해서 2029년부터 에세이와 논술형, 서술형으로 바꾸는 거죠. 그러면 지금 초등학교 3학년 아이들부터 미래의 시험을 염두에 두고 학습할 것이고, 수업도 바뀔 수밖에 없겠지요. 스스로 학습하는 아이, 스스로 생각해서 글 쓰는 아이들로 성장하는 거죠. 교사들은 아이들이 쓴 글과 과제에 첨삭을 해 주어야겠지요.

실제로 일선 학교에서 제대로 된 수업을 할 수 없다고 하소연하는 가장 큰 이유가 대학입시잖아요. 그러니까 대학입시를 진짜 교육을 할 수 있는 바꾸면 간단하게 해결되는 거죠. 교사들의 교육 목표와 철학이 대학입시와 일치하면 신나서 열심히 가르치지 않겠습니까?"
  

"한국 교육 참담하다" 정도상 박사는 "통계와 외형으로 보면 한국 교육은 세계 최상급이지만 교육의 주체인 교사와 학생들의 상황은 거의 최악"이라며 "교사들은 점점 지쳐가고, 학생들의 학습 시간은 전 세계 1위로 찌들어있는데 그 수준은 참담하다"고 지적했다. ⓒ 정도상

 
- IB를 도입할 거면 영어로 해야 국제수준이 된다고 하셨습니다. IB를 도입하면 모든 공교육을 영어로 진행하자는 건가요? 
"국제학교의 수업은 일반적으로 영어가 진행됩니다. 우리 공교육에 IB를 도입한다면 외국 유학을 목표로 하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자는 것입니다. 일반 공교육에 IB를 도입할 이유도 없고, 도입해서도 안 된다는 견해지요. 유학을 목표로 한다면 당연히 영어로 해야겠지요. 공교육은 우리말로 해야지요."

- IB의 한국어 번역 방안은 어떻게 보시는지요.
"대부분 IB 학교는 영어로 수업을 합니다. IB를 모국어로 수업하고 학습하는 나라는 일본밖에 없습니다. IBO에서 IB 스페인어와 프랑스어 번역판이 있는데 프랑스의 IB 학교 중에서 프랑스어로 수업하는 학교는 한 곳도 없고, 모두 영어로 수업합니다.

스페인에도 20개의 초등과정(PYP) 학교 중에서 3개 학교만 스페인어로 하고, 나머지 학교는 대부분 주 수업 언어는 영어, 보조 언어로 스페인어를 사용합니다. 스페인의 IBDP 학교 중에는 스페인어로 하는 학교들이 더 많은 편입니다. 종합해 보면 남미나 아프리카를 제외하면 결국 IB는 내국인을 위한 교육이 아니라, 외국인 또는 유학을 목표로 하는 학생들을 위한 교육과정으로 봐야하죠. 그러면 영어로 해야겠지요. 이런 이유로 저는 IB 한국어 번역에 부정적입니다. 일본이 좀 특이한 거죠."

- 프랑스어로 하는 IB 학교가 전 세계에 254개, 스페인어 IB 학교가 전 세계에 802교라고 알고 있습니다. 물론 초중고를 1개교로 계산한 사례니까 우리처럼 초중고 학교급별로 계산하면 더 늘어나겠지요. 
"IB 본부 홈페이지에 그렇게 나와 있습니다. 그런데 스페인어는 주로 남미에서, 프랑스어는 아프리카 지역에 편중된 것으로 보입니다. 예를 들면 남미 에콰도르에만 스페인어 사용하는 학교가 264개입니다. 그 외 몇 개 국가가 있겠지요. 도저히 영어로 교육할 수 없는 국가들로 보입니다. 남미나 아프리카에서 번역한 언어로 교육을 하고 있으니 우리도 한국어로 번역해서 교육을 해야 할 이유가 있을까요? 지금 우리가 남미나 아프리카 교육을 본보기로 삼아서 학생들을 가르쳐야 할까요?"

- 추가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국가가 나서야 합니다. 10년을 내다보고 대학입학자격시험의 근본적 변화를 선언해야 합니다. 그 시기는 2029년이 좋습니다. 그 정도의 시간이면 우리가 IB보다 우리 교육에 더 적합한 제도를 만들 수 있고, 학교와 학생들도 충분히 대비할 수 있습니다. 이 변화는 특별하지 않습니다. 교육에서 매우 보편적이고, 상식적인 전환입니다. 정부가 5년 내에 어떤 성과를 기대하거나, 표를 의식하면 교육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 바칼로레아 #IB #핀란드 #정도상 #국제 바칼로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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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출신 글쓰기 전문가. 스포츠조선에서 체육부 기자 역임. 월간조선, 주간조선, 경향신문 등에 글을 씀. 경희대, 경인교대, 한성대, 서울시립대, 인덕대 등서 강의. 연세대 석사 졸업 때 우수논문상 받은 '신문 글의 구성과 단락전개 연구'가 서울대 국어교재 ‘대학국어’에 모범예문 게재. ‘미국처럼 쓰고 일본처럼 읽어라’ ‘논술신공’ 등 저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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