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첫 매화, 떨리는 마음으로 영접하다

경남 거제 구조라초등학교 교정에서 만난 춘당매

등록 2019.01.31 18:05수정 2019.01.31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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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짝 피어난 춘당매가 바닷가 폐교의 운동장을 환하게 밝히고 있다. ⓒ 김숙귀

 
한겨울 찬바람에 잔뜩 웅크린 나목(裸木)이 빈 가지를 떨 때면 바라보는 내마음도 서글프고 황량하기만 했다. 그런데 남쪽 끝 바닷가에서 매화가 꽃잎을 열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얼마나 기다렸던가. 지체없이 경남 거제로 향했다. 

1999년 2월 제 50회 졸업생을 배출하고 일운초등학교에 통합되며 문을 닫은 거제 구조라초등학교 교정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꽃을 피우는 매화나무가 있다. '춘당매'라 이름붙은 수령 150년의 매화나무는 해마다 정월 10일께 꽃을 피우기 시작하여 입춘 전후에 만개한다. 그야말로 한겨울 눈속에 피는 꽃이다.


구조라해수욕장 가는 길로 달려 마을 입구에 들어서자 하얗게 꽃을 피운 매화나무
한 그루가 서있었다. 백매다. 반갑고 떨리는 마음으로 조심스럽게 매화를 눈에, 가슴에 담았다. 교정에 들어서자 봄바람 한 자락이 스치는 듯 따사로운 기운이 흘렀고 네 그루의 매화나무는 봄이 머지않았음을 온몸으로 말하고 있었다.

 

나무아래에 춘당매를 알리는 표지가 붙어 있다. 백년 이상 추위속에서도 해마다 꽃을 피운 춘당매! ⓒ 김숙귀

 
 

모처럼 푸른 색깔을 되찾은 하늘아래 아름다운 매화의 자태가 더욱 돋보인다. ⓒ 김숙귀

 
 

한껏 봄기운을 품고 있는 춘당매 ⓒ 김숙귀

 
 

은은하게 매향이 흐르는 교정 ⓒ 김숙귀

 나는 은은하게 매향이 퍼지는 나무 아래에 서서 마냥 기쁘고 행복했다. 바다를 앞에 두고 텅빈 교정에 고즈넉하게 피어있는 매화의 모습이 더욱 고절(孤節)한 아름다움을 느끼게 한다. 화창한 봄날, 한 마을을 뒤덮을 만큼 무리지어 피어나 추운 겨울을 보낸 사람들을 들뜨게 만드는 그런 매화가 아니다. 그것은 매화의 본령이 아니다.

남명의 수제자였던 수우당 최영경(1529~1590)이 한강 정구(1543~1620)의 백매원을 방문했을 때 마침 매화가 만발하였다. 봄은 중춘이라 복숭아꽃이 만발한 시기였다. 수우당은 노복을 불러 도끼를 가져오게 하고 정원에 있는 매화나무를 베어 버리라고 명했다. 

"매화를 귀하게 여기는 까닭은 백설이 가득한 깊은 골짜기에 처하 절조(節操)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 복숭아꽃과 더불어 봄을 다투니 너의 죄는 참벌하여야 마땅할 것이나 사람들의 만류로 그만두니 너는 이후로 마땅히 경계함을 알아야 할 것이다."

이렇게 수우당이 늦게 피어난 매화를 꾸짖은 일화가 있다고 한다.


예로부터 4군자의 처음으로 꼽히던 매화는 지조와 충절의 상징이었다. 단아하고
동양적인 자태는 함부로 범접할 수 없는 기품을 느끼게 한다. 꽃받침이 붉은 백매와 꽃송이가 온통 붉은 홍매, 그리고 꽃받침이 푸른 청매, 그 중에서도 올곧고 추상같은 위엄이 풍겨나오는 청매를 사랑한다.

옛 선비들의 유별난 매화 사랑은 매화의 단아하고 기품있는 자태 때문이기도 하지만 매화의 속성에 기인한 바 크다. 겨울이 채 다 가지도 않은 눈속에 꽃을 피워 추위를 이겨내는 매화의 지조와 고결함에 자신을 투영하고 닮아가려 한 것이리라.

아직 추위는 남아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연하게 꽃을 피운 매화를 보며 그
의미를 새겨보고 아울러 따사로운 봄기운을 느껴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초등학교가 구조라 바닷가에 있기 때문에 투명한 겨울바다를 걸어보는 즐거움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학교 바로 곁에 있는 찻집 '외도널서리'에 들러보기를 권한다.
바닷가 앞에 마치 식물관처럼 지어놓은 건물인데 초록색 식물이 가득하고 이국적인 분위기가 돋보이는 찻집이다.

 

아이들의 천진한 웃음소리가 사라진 텅빈 교정. 먼지 앉은 석상이 아이들을 떠올리게 한다. ⓒ 김숙귀

 
#거제도 #구조라초등학교 #춘당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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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마치 숨을 쉬는 것처럼 나를 살아있게 한다. 그리고 아름다운 풍광과 객창감을 글로 풀어낼 때 나는 행복하다. 꽃잎에 매달린 이슬 한 방울, 삽상한 가을바람 한 자락, 허리를 굽혀야 보이는 한 송이 들꽃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기를 날마다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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