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꽉 막힌 개수대 사정에 대하여

해야 하는 일들로 숨막히게 차오른 일상... 도저히 다 할 수 없을 때도 있기 마련이니까

등록 2019.02.01 15:57수정 2019.02.01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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닦는 것들 아름다운 상상 ⓒ 권순지


오늘도 개수대 앞에서 머뭇거렸다. 설거지가 싫다. 반복되는 일상 속 꼭 해야만 하는 지겨운 과제라고쯤 여긴다. 여전히 산다는 것에 있어서 먹는 문제만큼이나 중요한 건 없다고 여기는 편이지만 그와 별개로 한결같이 주방에서의 꼬리가 길다. 식구가 늘면서부터 그 상태로 거의 굳어졌다.     

대학 입학을 하면서부터는 가족을 떠나 혼자 살았다. 5년을 혼자 살다 이듬해 결혼을 해서 식구가 한 명 늘었고, 이후 두 아이가 태어나 지금 곁에서 함께하는 중이다. 집밥을 먹는 식구가 넷. 주거 공간의 변화를 겪으며 주방은 조금 더 넓어졌고 식탁의자가 늘어났고 주방도구와 식기류도 함께 늘었다.

서랍의 가공식품은 줄고 냉장고 채소칸에 빛깔 고운 채소와 과일이 자리를 채웠다. 할 줄 아는 국 요리는 된장국뿐이었던 역사에 미역국, 김칫국, 호박국, 콩나물국, 소고기 뭇국, 조갯국, 황탯국, 감잣국, 오징어국 등의 역사가 자꾸만 늘었다.

나는 스스로를 괴롭히는 오류에 빠졌다. 혼자일 때도, 부부라는 관계를 맺었을 때도 갖지 않았던 관념에 사로잡혀 버린 것이다. 잘해내고 싶었다. 인터넷을 뒤져 보고 SNS를 훑어보면 모든 엄마들이 다 그렇게 하고 있었다. 5대 영양소가 골고루 배합된 식사와 하루 두 번의 간식까지.

다른 엄마들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하고 싶었다. 달라서는 안 될 것 같았다. 남편이 만들어낸 음식이 성에 차지 않았다. 4인 가족의 밥해주는 사람이 됐다. 그로 인해 사회의 보편적인 삶, 이른바 '보통'·'평범'·'일반'이라는 범주를 벗어나지 않았다. 내 몸에 있다 세상 밖으로 나온 아이들을 위한 일이라고 나 자신을 위로하면서.    

물론 남편도 간단한 요리를 할 줄 알아서, 요즘은 주로 아침식사를 그가 책임지는 날도 많고, 설거지까지 해결하기도 한다. 5대 영양소를 매끼 챙겨야 한다는 강박에서도 얼만큼은 벗어난 편이라 남편의 음식도 감사하게 여기는 마음이 생겼다. 또 아이들이 어린이집에 가기 때문에 평일과 주말 경계 없이 세끼 식사와 간식을 챙겼던 매일의 상황도 달라졌다. 문제는 다른 데 남아 있었다.      

어제 저녁에 못한 설거지를 다음 날 아침에도 못했고, 일과가 끝나고 다시 돌아온 저녁이 돼서야 하루 묵은 설거지를 시작했다. 아이들 저녁을 먹여야 하는 것만 아니라면 주저앉고 싶을 정도로 온몸에 힘이 빠지기 시작한 저녁시간. 40여 분 동안 설거지를 했다. 밥을 했고 꾸역꾸역 설거지를 했다. 아이들의 성난 감정을 받아주었다.

주방 마룻바닥 속으로 아스라이 사라져 버릴 것 같은 두 다리를 간신히 지탱하고 서 있는 저녁 시간. 우리 집 꽉 막힌 개수대 사정과 내 마음은 다를 것이 없었다. 정체를 분간할 수 없는 음식 흔적들이 아무렇게나 묻어있는 그릇 무더기를 보는 것도 고역이고, 타인의 날 선 감정을 수시로 마주해야 하는 것도 힘들었다.

그 사이 아이들은 신나게 놀다가 싸우기를 반복했고, 배가 고파 주방을 기웃거리기도 했다. 조미료 없는 내 음식과 전혀 관계없이 화 돋우는 조미료를 팍팍 뿌리는 것 같은 아이들 싸우는 소리, 배고프다는 성화. 개수대에 음식 찌꺼기 묻은 그릇이 숨 막히게 차올라 있는 것을 바라보면서 가슴에도 울화가 찼다.      

숟가락과 젓가락이 그릇과 음식에 부딪히며 리듬을 만드는 저녁식사 시간,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켰다. 내가 만든 따뜻한 음식이 아닌 코끝부터 다가오는 차가운 겨울바람이 위안이 됐다.

정신을 차리고 또다시 쌓인 식기류 앞에 섰다. 순식간에 방어태세를 갖추었다. 빛나게 치우지 못한 개수대를 뒤로했다. 처음부터 무리였던 거야. 해야만 하는 것들을 눈앞에 두고도 도저히 다할 수 없는 때가 있는 거라고. 어쩌면 결혼을 한 것도, 아이들을 낳은 것도, 자처해서 밥해주는 사람이 된 것도 모두 내 인생에서 무리였는지도 몰라. 천천히 생각을 배열하다 멈추었다.     

아, 드디어 오늘에서야 설거지가 싫은 이유를 만들어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개인 브런치(https://brunch.co.kr/@punk3405)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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