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람 부모 뭐하는 사람인데?"... 순간 멍해졌다

당신에게 '시어머니'는 어떤 사람인가요?

등록 2019.02.06 12:13수정 2019.02.06 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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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에서 자신의 시어머니를 자랑하는 글을 봤다. 자신의 시부모는 명절 때도 꼭 며느리의 선물과 용돈을 챙겨주는 깨인 분들이란다. 자신이 결혼 후 시어머니께 여태 받은 목걸이, 팔찌, 발찌를 쭉 진열한 사진을 올리고 너무 감사하고 행복하다면서 우리 시어머니는 자신에게 명절 때도 물 한 방울 묻히게 하지 않는다고 했다. 자신도 나중에 꼭 이런 시어머님을 본받아 며느리를 아끼고 사랑해줘야겠다는 글이었다. 계속해서 시어머니 자랑을 이어갔다.


얼마 전, 친구가 놀러 와서 해줬던 이야기가 생각났다. 자신의 지인 중에 꽤 괜찮은 사람이 있어 동료에게 소개를 시켜주려 했단다. 그 지인은 서울대를 졸업했고 인성도 괜찮고 30대 후반에 대학교수가 된 인재였다. 그를 함께 일하는 동료에게 소개해주려는데 다른 동료가 만류했다. 이렇게 말했단다.

"그 사람 부모님 뭐하는 사람인지 알아? 슈퍼마켓이라도 하고 있음 어떡하려고? 사람을 소개해주려면 그 부모가 뭐. 하. 는. 사람인지 정도는 정확히 알고 소개해줘야죠."

순간 엥? 이게 무슨 소리지? 나는 갑자기 머리가 멍해졌다. '슈퍼마켓이 왜?'라는 생각 말하고는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 동료는 시댁을 '알바 간다'고 표현하는 사람이다. 주말에 뭐했냐는 질문에 "알바 갔다 왔다"며 김장한 시간을 시급으로 쳐 10만 원을 주셨다고 하고, 명절에는 그만큼 시간이 길어지니 아르바이트비가 두둑해졌다고 자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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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가족'이란 어떤 의미일까. ⓒ unsplash

 
우리 시댁이 슈퍼마켓이라도 한다면...

이런 사정을 들으니 그 동료가 의미하는 '슈퍼마켓이라도 하면 어떡하냐!'라는 것이 무엇인지 대충 알아들었고 고통스러운 감정이 올라왔다. 나는 시댁이 슈퍼마켓이라도 하면 좋아서 팔짝 뛸 것 같다. 나의 시댁은 서울에서 우리 식구가 놀러 가면 함께 둘어앉아 밥 한 끼 먹기 어려운 단칸방 월세에 보증금도 없이 산다.

시아버지는 몸이 아파서 거의 아무 일도 못하시고 시어머니는 설거지를 하러 다니느라 새벽 4시에 집을 나선다. 결혼하기 전 시댁에 대한 아무런 정보가 없는 상태에서 인사를 드리면서 처음 이런 상황을 눈으로 보고 나는 한동안 밥알이 넘어가지 않았고 눈물만 흘렸다.


우리는 결혼을 해서 어찌어찌 살아갔고 시댁은 점점 더 가난해졌다. 살고 있던 집에서 더 작고 허름한 집으로 이사했고 시어머니는 새벽 찬 공기를 마시며 만차 버스(놀랍게도 첫차는 50~60대 여성노동자로 발 디딜 틈이 없는 만차라고 한다)에 오르시며 감기와 관절염을 달고 손가락이 퉁퉁 부으며 설거지를 하고 시아버지는 여전히 아프다. 

그런데 시어머니는 오후 4시쯤 퇴근하시면 늘 우리집에 오셔서 손녀딸을 밥 먹이고 목욕시켜주고 업고 재워준다. 자기가 있는 시간만이라도 쉬라며 나를 방에 들어가라 하거나 일을 보라고 한다. 시어머니랑 둘이 있는 것이 어색해 가능하면 나갔다 들어온다. 한두 시간 있다가 집으로 들어가면 손녀딸이랑 자지러지듯 웃으며 소꿉놀이, 술래잡기를 하고 아기가 낮잠이라고 자면 반찬과 욕실 청소, 세탁 등 안 하셔도 되는 일들을 찾아가며 해놓는다.

새벽에 일어나 일하고 힘드실 어머님께 미안해 하면 본인이 손녀가 너무 보고싶고 좋아서 하는 것라며 신경 쓰지 말라며 손사래를 친다. 시아버지는 평일 동안에는 어느 지방 산속의 지인의 컨테이너에서 지내며 하루 종일 텃밭을 가꾼다. 폐가 안 좋아 고생했던 지병이 그렇게 1년을 지내고 나니 많이 건강해지셨고 우리집에는 늘 직접 수확한 가지, 오이, 강낭콩. 고추 등이 넘쳐나고 밤을 잘 먹는 손녀딸을 보고 가을 내내 산속에서 밤을 주어 일일이 모두 손질해 보내준다.

시어머니도 주말에는 시아버지가 계신 산속 컨테이너에 가서 지내시고 오시는데 그곳만 가면 숨통이 트인단다. 밤에 종종 멧돼지가 출몰하고 아침이면 뻐꾸기 우는 소리로 잠이 깨는 깊은 산이라 밤하늘에 별도 또렷한 그런 곳이다.

한 번씩 모두 우리 집에 모이면 시어머니는 채식하는 우리 가족을 지구 반대편 기아인들을 보는 심정으로 온갖 고기 요리들을 만들어 우리를 챙겨 먹이려 하고 산속 공기 때문인지 혈색이 좋아지시는 시아버지는 오랜만에 보는 손녀 손에 이리저리 끌려다니며 놀아주기 바쁘다. 

"일하러 다니시느라 힘드시죠?"... 시어머니의 답은

시어머니와 단둘이 있을 때 "어머님 일하러 다닌다고 많이 힘드시죠? 얼핏 들었는데 아버님이 주식만 하지 않았더라도 집이라도 한 채 있을 텐데... 원망도 되시죠?"라고 넌지시 물었더니 "여태 일 한 번 안 하고 남편 덕에 편하게 살았는데 나도 이제 돈 한번 벌어봐야지, 이제 내 차례라고 생각한다"며 괜찮다고 말하는 시어머니가 정말 괜찮을까 하는 안쓰러움이 밀려온다. 

나는 여전히 저 나이에 집 한 채 없이 살면서 노동하고 아픈 그들을 생각하면 속이 상하다. 그런데 그들은 아무런 근심 걱정 없는 사람처럼 늘 웃고 떠들고 먹고 논다. 가끔 과거의 시간을 후회하기고 돈이 없어 힘들어하기도 하지만 가볍게 지나가고 다시 가식 없이 웃고 떠들고 논다.

내가 아는 사람 중에 가장 궁핍해 보이는 사람들이 나의 시댁이다. 하지만 가장 행복해 보이는 사람도 우리 시댁이다. 시어머니는 앞으로 평생 나에게 목걸이도 줄 수 없고 (누군가는 걱정하지만 나는 너무 부러운) 슈퍼마켓을 운영하지도 않지만 자신의 자리에서 일상을 꿋꿋하게 그렇지만 웃음과 생기를 가지고 삶을 살아가는 존재로 존경스럽다.

시어머니가 목걸이를 더 이상 주지 않는다면, 시댁에서 머무는 시간을 시급으로 계산해서 받던 아르바이트비를 이제 받을 수 없게 된다면 그들에게 시어머니는 어떤 존재일까? 문득 궁금해진다.
#시어머니 #시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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