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범대를 대학원에 설치하자

교사가 쓰는 한 주간의 퍼포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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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기철(akshdtoa)등록 2019.02.07 18:59
 캐나다의 학부체제를 살펴보면, 사범대는 대학원에 있다. 일반 학부 과정에는 없다. 때문에 교사가 되고자 하는 자는 학부 과정을 마치고 다시 대학원에 입학해야 한다. 그것도 단순히 필기시험으로 합격 여부를 결정하지 않는다. 봉사활동이 있어야 하고, 그 외 학부과정에서 행한 스펙을 제출해야 한다. 그렇다면 현재 우리나라의 교사 학벌은 어떤 수준에 있을까? 내가 근무하는 주변의 이야기만 들어 보아도 쉽게 알 수 있다. 신입 교사가 임용되면 혹 '대학원 마치고 왔어요, 아니면 언제 대학원 마칠 거요, 젊었을 때 빨리 마쳐 놓아야지' 하는 것이 농담처럼 흐르는 일반적인 화제가 되고 있다. 왜 대학원을 가야 하는가에 대한 문제는 승진에 석사 학위 점수가 있기 때문이다. 석사 과정을 마치면 연구점수로 대치될 수 있다. 그러기에 연구점수 3점 만점을 얻기 위해 대학원을 두 곳에나 다니는 교사도 있었다. 그래서 그런 폐단을 없애고자 대학원은 한 곳만 인정하도록 예전에 바뀌었다. 이처럼 대학원은 교사에게 마치 필수 코스로 여겨질 정도로 당연히 다녀야 하는 인식이 뇌리에 박혀 있다. 이런 상황이라면 제대로 된 과정을 밟아서 학습에도 도움이 되고 가르침에도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정책을 모색해야 할 것이 아닌가 싶다. 대학원이 교사에게 점수를 따는 과정으로 인식되어 있는 현실에서 졸업을 위한 수단으로 이수하는 과정이다 보니 석사 논문 없이 수료증을 발행하는 대학도 있다.

 대학원의 진정한 의도가 교사 자신의 자율연수라면 좋겠지만 단순히 승진을 위해서 다녀야 하고, 연구점수를 위해서 마쳐야 하는 대상이라면 교사들에게 무의미한 사교육비만 증가시킬 뿐이다. 

 현재 내가 근무하는 지역에서는 교사들의 대학원 진학률이 거의 80%에 가깝다는 소문이 알게 모르게 퍼지고 있다. 그런데 교장으로 승진하는 확률은 3%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 대학원 진학이 궁극적으로 교사들에게 자율연수란 명목만 제공될 뿐 교사 자신의 자아성취에는 도움을 주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결론이 될 수 있다. 이런 사실을 보면 우리나라 사범대의 설치를 대학원에 두는 것이 타당하다고 본다. 그렇게 되면 교사들이 굳이 대학원에 진학할 필요도 없고 또 교사들의 자기장학도 높아질 것이고, 자주 오르내리는 매스컴에 교사들의 불미스러움도 줄어들 것이 아닌가? 이런 결과는 학생들이나 학부모들의 교사에 대한 새로운 시각으로 나타날 수도 있다는 생각도 조심스럽게 해 본다. 게다가 지금 남아도는 교사 수급도 조정할 수 있는 계제가 될 수는 없는 지 되새겨 보게 된다. 현장에서 교사는 느낀다. 교사가 대학원에 진학하여 현재 학생들을 가르치는데 얼마나 도움이 될까? 박사 과정을 마쳐도 학업에 도움이 되는 비율이 높다고 할 수 없지만 그래도 꽤 도움이 되는 것은 무시할 수 없다. 그렇지만 석사 과정은 교사 스스로가 자발적으로 다니면 모르겠지만 어떠한 이득을 위한 수단으로 다니는 것에는 반대의 목소리가 높은 것은 사실이다. 만약 교사들에게 석사 과정에 플러스 점수를 폐지하게 되면 과연 스스로 석사 과정 이수를 위해 다니는 교사의 수가 얼마나 될까? 의심에 의심을 더하게 된다. 끝임 없이 배우면서 자신을 도야해 가는 정신은 칭찬해야 마땅하다. 그러나 그것이 수단을 위해서 다니는 결과물이었을 경우 자신이 그 목표를 달성하지 못 하였을 경우 비난과 불만이 차가운 겨울 추위처럼 다가올 수 있다. 교사에게 승진의 대상으로 사용되는 연구점수도 마찬가지다. 지금 흥미 중심 실학수업이 대세를 이루고 있는 상황에 수업과 무관한 분야에 연구 점수를 더 강화시킨다면 교사들의 수업연구가 더 강화되기보다는 승진을 위한 곳에 더 관심을 쏟게 되어 수업은 뒷전이 될 수 있다. 이런 불합리한 면을 바로 잡게 되면 교사의 업무도 줄어들고 신바람 나는 교실수업도 실학수업으로 거듭날 수 있지 않을까? 장학이란 단어가 자연히 살아나는 계기도 될 수 있다. 교사를 신나게 하는 방안은 찾아내면 얼마든지 있다. 그러나 제도적 장치를 바꾸지 않고 교사들에게 이것저것 요구만 한다면 보이지 않는 속에서 희생되어 가는 대상은 학생들이다. 

 학생들의 지적 욕구 향상, 학부모의 학벌 향상, 교과 수준 더욱 전문화돼 

학생들의 사교육 증가, 가정의 경제적인 수준 향상으로 학부모의 학벌 상승, 해외여행으로 가족의 다양한 해외탐방 등이 확대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교사들의 폭넓은 인문학 지식 기반 확대와 수요자의 다양한 요구를 충족시켜줄 수 있는 여러 방면의 배경지식기반 확충이 더욱 요구되고 있는 시점이다. 그리고 교과 수준도 예전의 수준이 아니다. 더욱 전문화되면서 폭넓은 인문학에 관한 상식과 정보를 필요로 하고 있다. 학생들의 비교과 수업에서 소논문 쓰기 대회를 지도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현상만 보아도 알 수 있다. 비록 하찮은 내용이라고는 하나 학생 개개인이 지니고 있는 수준은 그냥 막연히 조립해서 만든 졸작의 소논문이 아닌 경우도 있다. 가정에서 부모의 지도, 학원에서 강사의 지도, 개인적으로는 전문가의 도움 등등으로 작성하는 경우도 있다. 교사 양성 과정을 대학원에 두어야 한다는 것은 그냥 듣고 넘겨야 할 일이 아니다. 다변화되어 가는 현실에서 지적 욕구만으로 학생을 지도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더 폭넓은 지적 욕구도 충족시켜야겠지만 교사들이 지닌 인격의 드높임도 필요한 시대로 접어들었다. 복잡해지고 있는 현대 물질 시회에서 학생들에게 다가오는 ADHD, 틱, 정서장애 등 아노미 현상이 확산되고 있지만 사범대학에서 교육학에 임상지도에 대한 개요조차도 배우지 않고 있다. 일선 학교에 위 클래스라고 하여 상담실에 상담 교사가 있지만 전 학생들에게 보편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이런 현상을 한 교사에게 맡기기에는 한계가 있는 듯하다. 해를 거듭될수록 더욱 간교해지고 사악해져가는 학생들의 증가를 시대상의 변화의 한 측면으로만 인식하고 넘겨 버리는 것이 여백의 미로 인식되지 못함은 왜 그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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