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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막 사회에 나온 이들에게 추천하는 책

[서평] <어른이 되어 더 큰 혼란이 시작되었다>, 이다혜 지음, 현암사(2017)

등록 2019.02.08 17:21수정 2019.02.08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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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어른이 되어 더 큰 혼란이 시작되었다』, 이다혜, 현암사(2017), 13000원 ⓒ 박효정


   
얼마 전 이다혜 작가의 책 <처음부터 잘 쓰는 사람은 없습니다>를 읽고 작가의 글을 더 읽어보고 싶어졌다. 그래서 찾아 읽게 된 책이 <어른이 되어 더 큰 혼란이 시작되었다>이다. 이 책에서 작가는 예전에 좋아했던 문학 작품들을 작품 속의 '여성'에 초점을 맞춰 다시 읽으며 혼란스러워한다. 나아가 우리 사회에서 여성과 소외된 계층의 삶을 들여다보며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해 고민한다.
 
작가가 좋아했던 책들을 '다시 읽기' 시작한 계기가 있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담임선생님은 수업 시간 중에 종종 자신이 좋아하는 소설 책을 읽어주셨는데, 그중 작가의 마음을 사로잡은 셀마 라겔뢰프의 <늪텃집 처녀>를 훗날 다시 들춰보면서 작가의 '문학작품 다시 읽기'가 시작된다.  
 
옮긴이 홍경호의 '이 책을 읽는 분에게'는 이 단편을 이렇게 설명한다.
'이 작품에서 버림받은 한 처녀의 순애는 소박한 젊은이로 하여금 그 영혼을 정화시키게 했으며 애정의 신비에 대해 새삼스럽게 눈을 뜨게 해주었고 그녀가 쓴 모든 작품의 기조를 이루고 있는 헌신적인 애정이라는 것이 차원 높게 숨겨져 다른 어느 작가도 감히 흉내 낼 수가 없었다.' (11~12쪽)

지금은 작가에 대한 저런 식의 평가가 어이없게 느껴지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뛰어난 성취를 이루었던 많은 여성을 설명하는" 흔한 방식이었고, "그땐 그런 표현이 최상의 수식어였다." 셀마 라겔뢰프의 <늪텃집 처녀>로 시작해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지나 작가의 '최애 장르'인 미스터리와 공포, 스릴러 장르에 도달하면 문제가 심각해진다.
 
여성으로서 이 장르의 팬이 된다는 것은 시련이라고 밖에 말할 수 없다. 운명을 함께할 여성 캐릭터를 찾는 것은 여성혐오에서 자유로운 한국 언론 기사를 읽는 것만큼이나 어렵다. 신원 미상의 시체 또는 언제 죽거나 구출될지 알 수 없는 감금된 여자 대신, 그저 남성 캐릭터의 연인이나 아내 역할에 감정이입을 해도 죽기는 매한가지다. 여성이 탐정(형사)으로 중요한 역할을 맡은 경우는 다를까? 그녀에게 다행히 죽음은 찾아 오지 않더라도 납치되거나 강간당할 확률이 높아진다. 매력적인 연인이 알고 보니 범인이거나 범인의 사주를 받은 인물이라는 설정도 드물지 않다. (29쪽)

스릴러 장르를 다시 보며 느낀 씁쓸함은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들과 김승옥의 <무진기행>, 샬럿 브론테의 <제인 에어>를 다시 보면서도 이어진다. 그리고 작가의 시선은 책의 바깥, 우리가 사는 세상을 향한다. 대학 시절 주유소 알바를 하면서 같이 일하는 십대들과 고졸인 알바생과 달리, 단지 대학생이라는 이유만으로 남몰래 받았던 혜택에 마냥 좋아할 수 없었던 기억을 떠올린다. 그리고 다시 가난한 사람들, 엄마, 혼자 사는 여성, 결혼한 여성, 일하는 여성, 대도시보다 현저히 적은 선택지를 갖고 살아가는 지방의 학생들을 바라본다.

작가의 시선과 함께 나의 개인적인 경험들도 하나둘 떠올라 책장을 넘기는 손이 무거웠다. 특히 가난에 대한 부분에서는 더 그랬다. 글자들이 가시가 되어 아프게 찔렀다.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부모님은 가난했고, 그 찢어지게 가난한 날들은 초등학교에 다니는 내내 이어졌다. 그때 친구들에게 받았던 상처, 부모님의 다툼, 눈물, 지친 얼굴들을 생각하면 말로 다 할 수 없이 마음이 괴롭다. 지금도 언제 다시 그때처럼 가난해질지 모른다는 불안이 내 마음속에 그늘처럼 존재한다.
 
린다 티라도의 <핸드 투 마우스>는 미국에서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빈민 여성 생존기다. 빈곤이 삶의 모든 면모에 영향을 미친다고 할 때 그 정확한 뜻이 무엇일까. (122쪽)

린다 티라도는 "일자리 없이 가난한 것보다 일하며 가난한 것이 훨씬 비참하다"며 "죽도록 일하고 노동시간을 늘려 달라 애걸하고 동전 한 푼도 헛되게 쓰지 않는데도 정기적으로 전기세를 낼 수 없다면, 그것은 영혼이 죽는 경험이다"라고 말한다. (123쪽)

교육을 통해 더 나은 기회에 도전할 수 없을까? 대학 교육을 선택하려면 "현금을 내야 하고, 일터에서는 노동시간을 많이 할당 받을 수 없게 되며, 스케줄이 경직되어 일자리를 찾기가 더 힘들어"진다. (124쪽)

생존의 요구에 시달리느라 자신의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사라져버리고 말기에, 누굴 만나 이야기할 화제라는 게 없는 사람이 되고 만다.(125쪽)  

간신히 마음을 다잡고 책을 읽어나가지만, 이어지는 내용도 어느 하나 편하게 읽을 수가 없다. 돌아가신 엄마의 삶에 대해 생각하고, 혼자 자취할 방을 찾으며 느꼈던 어려움과 직장에서 겪은 당혹스러운 경험들은 모두 나의 경험이기도 하며, '혼자 사는 직장인 여성', 그리고 결혼한 여성들을 포함한 모든 여성의 공통된 경험이기도 할 것이다. 그 중 여성이 집을 구할 때 겪는 어려움에 대한 부분은 모든 여자가 공감하리라 생각한다. 
 
나는 종종 여성이 혼자 사는 집의 월세를 들은 남성들이 "비싸다"고 타박하거나 (좋게 말해) 조언하는 말을 듣곤 한다. 방 몇 갠데요? 원룸인데 그 가격이라고요? 동네는? 아니 지하철역에서 조금만 들어가면 더 넓고 싼 집이 있는데 왜 굳이 그렇게 돈을 써요?  월 5만 원, 10만 원 더 지불하는 월세라는 것이 낭비나 허영으로 보일지 모르겠지만 세상에는, 여자에게는 안전비용이라는 게 있다. 안전을 위해 추가 비용을 부담하는 것이다.

혼자 사는 여성이라면, 혹은 여성이 혼자 있는 시간이 많은 가족이라면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 바로 안전 비용이다. 몇만 원 아끼려다 매일 귀갓길에 두리번거리고 밤잠 설쳐가며 고생하는 수가 있다. 그 모든 것이 걱정이나 근심에 머물지 않고 범죄 사건으로 이어질 수 있다. 더 싼 집이 있는 걸 몰라서 돈을 더 쓰는 게 아니다. 돈을 더 내고라도 안전을 확보해야 한다. 당신의 안전보다 귀한 것은 없다. (149~150쪽)

이어서 작가의 경험에서 길어 올린 '여성을 위한 집 구하기 팁'도 친절하게 소개되어 있다. 읽다 보면 '웃프(웃기면서 슬픈)'지만 혼자 살 집을 구하는 여성들에게는 깨알 같은 정보가 될 것이다. 그 밖에도 작가가 고등학교에 학생들을 대상으로 강연을 다니면서 느꼈던 점, 강연에 참여하지 못한 모든 십대 여학생들에게 전하는 말에는 작가의 진심이 뚝뚝 묻어난다. 내가 고등학생 때에도 저런 말을 해주는 사람이 주변에 있었으면 좋았을 걸, 아쉬운 마음도 든다. 사회에 나올 준비를 하는 십대들에게, 그리고 사회 초년생들에게 권해주고 싶은 책이다.
 
글을 마치며, 작가가 바라는 세상을 나도 함께 소망해본다.
 
더 많은 사람이 더 행복할 수 있는 물질적인 조건들이 갖춰지기를 바란다. 전쟁터에서처럼 우선순위를 나누어 생존 확률이 높은 사람부터 먼저 기회를 얻지 않았으면 한다. 부유해서, 외모가 빼어나서, 건강해서, 남성이어서 더 나은 조건으로 살 수 있는 게 아니면 좋겠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이동하기 더 편해지면 좋겠다. (270~271쪽)

그런 세상을 만들기 위해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뭘 어떻게 생각하고 말하고 쓰면 좋을지'(229쪽) 고민이 많아진다. 아마 평생 공부하고 고민해야 할 주제가 될 것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을 기자의 개인 블로그에도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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