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앙마이 트레킹중에 만난 비, 그때 포기했어야 했다

때론 포기는 빠를수록 좋다

등록 2019.02.08 17:28수정 2019.02.08 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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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앙마이 트레킹을 시작하기 직전.

하늘을 올려다보니 먹구름이 잔뜩 낀 것이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것 같았다. 트레킹을 하지 말까라는 고민을 하다가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라는 생각에 발걸음을 뗀 지 5분도 되지 않아 '후두둑'하고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때라도 포기했어야 했다.   
    

출발 전 어두웠던 하늘 ⓒ 김원규

   
길이 질척거리기 시작했다. 이러면 곤란한데. 그래도 좀 걷다 보면 비가 그치겠지, 동남아는 스콜로 유명하니까. 말라카에서 스콜 아닌 장대비를 경험하고서도 나도 모르게 또 편하게 생각했다. 그런데 이게 웬걸, 비가 그치기는커녕 점점 더 굵어지더니 이내 폭우 수준으로 변했다. 

어디나 마찬가지로 트레킹 코스는 흙 길이라 비가 오고 나면 질척거리고 미끄럽게 변하기 때문에 위험해진다. 그래서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지팡이로 쓸만한 길고 튼튼한 옥수수대를 발견하고는 쉬엄쉬엄 일행을 쫓아간다. 위험한 길을 빨리 간다고 좋을 것 없는데 일행들은 벌써 저만치 앞서 간다.
 

치앙마이 트레킹 ⓒ 김원규

 
그런데 갑자기 일행을 인솔하던 가이드가 돌아 내려오더니 나에게 묻는다.

"괜찮아? 계속할 수 있겠어?"

아마 내 속도가 느린 것이 걱정이 된 모양이다.

"물론이지. 빗길에 빨리 걸을 필요가 없을 뿐이야. 그러니 걱정하지 마."

내 말에 안심했는지 가이드는 다시 일행들을 인솔하러 앞쪽으로 뛰어갔다. 그 위험한 빗속의 흙 길을. 역시 전문가답네.

중간에 비를 피하며 잠시 쉬는 시간, 가이드가 또다시 묻는다.

"정말 트레킹 계속할 수 있겠어? 여기서 쉬고 있는 게 어때?"

일행 중 내가 가장 늦게 도착했기 때문에 묻는 것이었다.

"근데 여기서 목표지점까지 얼마나 더 가야 돼?"

난 대답 대신 질문을 한다.

"한 20분 정도?"
"그 정도면 괜찮아. 아직 충분하다고."

 

증간 쉼터 ⓒ 김원규

 
하지만 그 때라도 포기했어야 했다. 

비는 좀처럼 그칠 기미는 보이지 않았고 오히려 더 쏟아붓고 있었기 때문에 우비를 입었을 망정 옷은 이미 젖었고, 방수포를 씌웠을망정 카메라 가방도 이미 축축해졌으며 신발은 제 아무리 등산화라도 진흙과 빗물로 축축해져 완전히 엉망이 되어 있었다.

그래, 그 때라도 그만뒀어야 했는데.

가다가 그만두면 아니 간만 못한 게 아니라 안 간만큼 덜 힘들다는 사실을 이때 깨달았다.

결국 비는 목표지점까지 가는 동안에도 계속 퍼붓다가 출발지점으로 돌아서는 순간 거짓말처럼 그쳤다. 그래, 빗 속의 트레킹은 하는 것이 아니다.
때론, 포기는 빠를수록 좋다.

그리고 이때의 경험은 라오스의 루앙남타에서 므앙씽이라는 도시를 오토바이로 왕복했을 때 많은 도움이 되었다.

태어나서 오토바이를 처음 운전해 본 까닭에 50km 정도 되는 거리를 5시간이나 걸려서 도착한 므앙씽. 도시의 입구에서 만난 넓은 들판을 보며 신세계를 만난 것처럼 그 아름다움에 '이래서 므앙씽을 꼭 가보라고 했구나'라는 생각에 감탄한 것도 잠시. 
 

라오스 므앙씽 ⓒ 김원규

 
아카족 마을을 가기 위해 계속 오토바이를 몰로 가다 시계를 보니 벌써 2시 반. 동남아시아도 겨울에는 해가 일찍 떨어지기 때문에 5시만 지나면 어두워진다. 거기다 올 때 걸린 시간을 감안하면 지금 다시 루앙남타로 돌아가야 하는지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다. 

혹시 모르니까 조금만 더 가볼까? 아니면 오토바이를 처음 운전해 보는데 밤길 운전은 위험하니 여기서 그냥 돌아갈까? 그렇게 잠시 고민하다 여기서 돌아가기로 했다. 

가다가 그만두면 간만큼은 본 거니까. 이 아름다운 므앙씽의 풍경을.

그렇게 짧았지만 너무나 아름다웠던 므앙씽을 가슴에 묻고 또다시 세 시간을 달려 무사히 루앙남타로 돌아왔다. 예상했던 대로 돌아오는 길에 해가 져서 40분 정도는 헤드라이트 하나에 의지해서 운전했지만 안전운전을 한 덕분에 무사히 올 수 있었다. 

그렇다. 세상 모든 일은 반드시 끝까지 가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가다가 그만둔다 해도 실패한 것도 아니며 따라서 좌절할 필요도 없다. 그 순간까지 최선을 다하면 되는 거니까. 내가 만족하면 되는 거니까.
 

라오스 므앙씽 ⓒ 김원규

덧붙이는 글 개인 브런치에 동시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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