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생 되기 얼매나 어려웠는데..." 그 호들갑이 그립습니다

군산의 마지막 예기, 김난주와 장금도를 떠나보내며

등록 2019.02.10 20:13수정 2019.02.10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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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에는 일제강점기 권번(券番)에서 소리(唱)와 춤을 익힌 '생짜 기생' 두 분이 있었다. 국내 유일의 민살풀이춤 전승자 장금도(1928년생)와 구음(口音) 구사가 뛰어났던 김난주(1927년생) 할머니다. 두 할머니는 군산 소화권번 출신으로 70년 지기 친구이자 예기 선후배 사이다. 권번 밥그릇 수로 따지면 장금도가 7~8년 위다(관련 기사 : "기생 되기 얼매나 어려웠다고, 그런디도 천시허고..."
 

군산의 마지막 예기(藝妓) 김난주, 장금도 두 할머니를 떠나보내고 ⓒ 조종안

   

장례식장에서 치러진 남해안 별신굿(중요무형문화재 제82호) ⓒ 조종안

 
기자는 지난달 초 장금도 명인이 영면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그 순간 '이승에서도 눈물과 한으로 점철된 삶을 살았는데, 저승길마저 쓸쓸하고 초라하면 어쩌나?' 하는 우려가 밀려왔다.


그러나 괜한 기우였다. 문화재청, 한국문화재재단 등 문화·예술 단체에서 보낸 조화가 장례식장을 가득 메웠고, 전국의 젊은 예인 20여 명이 영정 앞에서 전통 가무로 고인을 추모했다.

다시는 못 올 저 세상으로 떠나다

귓불이 시리도록 추웠던 섣달 그믐날(4일) 오후. 김난주 할머니댁을 찾았다. 몇 년 전부터 요양병원에 입원 중이던 장금도 명인의 별세(2019년 1월 9일) 소식을 늦게나마 전해드리기 위해서였다. 장 명인의 장례를 치르고 이런저런 후유증으로 지인들과 한동안 연락을 끊고 지내다가 설 지나기 전에는 알려드려야겠기에 찾아갔던 것.

그러나 대문에 다가서지도 못하고 발길을 돌려야 했다. 김 할머니댁은 앞에서 오는 사람과 비켜가기 어려울 정도로 좁은 골목집인데 통행을 못 할 정도로 입구가 막혀 있었던 것. 불안감이 밀려왔다. 마음을 다잡으며 두리번거리다가 "그 기생 할머니는 지난해 여름에 돌아가셨고, 살림도 집도 다 정리했다"는 동네 아저씨의 말을 듣고 얼마나 황망했는지 모른다.

일찍 찾아뵙지 못한 죄책감이 가슴을 짓눌렀다. 죄인이 된 심정이었다. 선물하려고 가져간 과일바구니가 비웃는 것 같았다. 당기듯 튕기듯 하면서도 애틋한 가락이 묻어나는 남도 사투리, 판소리 <춘향가>에서 월매가 야밤에 찾아온 이몽룡을 반기는 대목을 떠오르게 하는 호들갑스러운 모습 등 김 할머니 잔영이 눈앞에 그려졌다.
 

장금도 김난주 할머니 모습(2017년 2월) ⓒ 조종안

 
두 할머니는 공통점이 몇 개 있다. 김난주(金蘭珠), 장금도(張錦桃) 모두 어렸을 때 친부모가 지어준 이름이라는 것이다. 산골 마을에서 태어나 스스로 기생이 되고자 원했던 것도 그렇다. 장 할머니는 권번 동기들 춤 연습 구경 다니다가 춤사위가 좋아 권번에 들어갔다. 김 할머니는 여남은 살 때부터 전통 가락에 빠져 소리를 배웠고, 결국 기생이 됐다.


기생 팔자는 다 그런 것인지, 첫 결혼을 실패한 것도 쌍둥이 자매처럼 닮았다. 어려서부터 어머니, 동생, 조카들까지 생계를 책임지는 가장 노릇을 해온 것도 짬짜미다. '기생은 한 푼짜리 웃음을 팔고 서푼짜리 한숨을 산다'는 말이 전해진다. 그래서일까. 두 할머니는 노래와 춤으로 대중을 즐겁게 했으면서도 정작 자신들은 희생과 고통을 감내하는 지난한 삶을 살아왔다.

"허리는 아프지만 춤 출 때가 젤 행복혀"

기자는 최근 3~4년 동안 두 할머니를 30여 차례 만나 짜장면도 사 먹고, 커피도 마시고, 이곳저곳 드라이브도 했다. 봄이면 벚꽃놀이도 즐겼고, 장 할머니 '쌈터(태어난 곳이라는 뜻의 전라도 방언)'인 전북 남원에도 다녀왔다. 여든이 넘어서도 서로의 근황을 휴대폰으로 주고받다가 장 할머니가 요양병원에 입원하면서 소식이 끊겼다는 김 할머니 말을 듣고 두 분이 재회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기도 했다.

장금도 명인의 춤을 재조명하는 공연과 사진 전시회를 신명숙(장금도 제자) 대진대학교 교수와 함께 열었으며 장 명인이 군산향토문화유산 제20호로 지정된 후에는 구술집도 만들고, 다큐멘터리 영화 <기생: 꽃의 고백>에도 출연했다. 작년 봄에는 일제강점기 군산 기생들의 활동과 두 분의 생애를 정리한 책 <군산 해어화 100년>도 펴냈다.
 

잔칫집에서 춤사위 펼치는 장금도(1987년) ⓒ 조종안

   

시골 잔칫집에서 소리하는 김난주(1970년대) ⓒ 차인영

 
"허리는 아프지만 춤출 때가 젤 행복혀"라고 말하던 장 할머니. 병원에 가면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반가워했고, 외출증을 끊어 밖으로 나오면 "오늘이 꼭 설날 같네"라며 외갓집에 세배하러 가는 아이처럼 좋아했다. 달리는 차에서도 <흥타령>, <육자배기> 등을 유창하게 구사했으며 헤어질 때는 판소리 가락으로 "만날 때는 반가~웠는디~ 이별이 웬~말이여~"라며 아쉬워하던 그였다.

주름진 얼굴에는 풍자와 해학이 넘쳐났다. 친구(김난주) '얼굴'을 '간판'으로 표현하고, 말이 통하지 않으면 "꼭 머슴하고 얘기허는 것 같네"라고 투덜댔다. 녹취할 때 곤란한 질문을 받으면 "호구조사 나왔어?"라고 맞받아쳤다. 소리 시범을 요청받으면 "애기 깨, 그만 혀" "근본 다 나오네"라며 너스레를 떠는가 하면, 단가나 시조 한 대목만 해달라고 하면 허허 웃으며 "나 오늘 시험보네" 하고는 청을 가다듬었다.

"공도라니 백발이요. 못 면할 손 죽음이라..."

장 할머니는 기분이 좋을 때마다 열두서너 살 때 권번에서 배운 단가 <공도난리>를 곁들였다. 잔뜩 흥에 겨운 표정임에도 애잔하고 구슬프게 다가왔다. 아름다운 것치고 슬프지 않은 것은 없다고 했던가. 춤집과 춤사위가 세상 그 무엇보다 아름다워 애틋하게 다가오고, 감미로운 가락에 처연함이 스며있어 빛을 더 발했는지도 모른다.

장 할머니가 잊지 못했던 '성님'들

장 할머니는 진즉 고인이 된 '성님(형님)' 몇 분을 기억했다. '쌀집 성님', '복지관 성님', '차약방 성님', '포목점 성님', '유기점 성님', '오칠팔 성님' 등이다. 모두 그 옛날 친목계원이다. 기생이란 이유 하나로 질시와 냉대를 받을 때 친자매처럼 격의 없이 대해준 고마운 분들이다. 판이 짜이면 '네가 기생이냐, 내가 기생이냐' 겨루기하듯 놀던 성님들이었다.

계원들이 있었기에 하소연도 하고, 노래도 하고 춤도 출 수 있는 공간이 만들어졌다. 그들은 장 할머니가 외로울 때 동무가 되어주고, 경제적으로 어려울 때 도움을 주기도 했다. 잔칫집 외출(공연), 상가(喪家), 문중 행사(재각 준공식, 묘비 제막식 등) 소개도 해줬으며 국립극장 <명무전>(1983년), <한국 명무전>(1985년) 등 중앙무대 공연 때는 단체로 상경하여 응원을 아끼지 않았다.
 

‘차약방 성님’ 남편 상여행렬(1979년 여름) ⓒ 차인영

 
'차약방 성님' 남편이 돌아가셨을 때(1979년)는 출상하는 날 김난주, 박옥주, 김성희 등 동료기생 네댓이 하얀 소복으로 갈아입고 상여 메기를 자청했다. 그들은 교대로 상여에 올라 요령잡이도 하고, 애잔한 상엿소리로 망자의 친구가 되어줬다. 당시 장금도가 요령잡이 하면서 불렀던 상엿소리 <곽씨부인출상> 한 대목을 소개한다.

"어~~어~노, 어~~어 어~~농~차, 어~가리 농차 어~허야. 황천길이 머~~다는~디 그리~~쉽게 가자~는가. 어~~노~, 어~~노~ 어가~리 농차 어~허~~노..."

* 위에 소개한 <곽씨부인출상>은 판소리 <심청가> 중 곽씨 부인이 심청을 낳고 산후조리를 못 하고 죽었을 때 심봉사의 통곡과 마을 사람들이 뒷산에 매장하여 주는 상엿소리 대목으로 장금도 구술집에서 인용했다. 무척 슬프고 애절한 가락으로 장 명인이 젊었을 때 <사랑가>와 함께 즐겨 불렀으며 그때마다 주위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다고 한다. 
#장금도 #김난주 #군산소화권번 #기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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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8월부터 '후광김대중 마을'(다움카페)을 운영해오고 있습니다. 정치와 언론, 예술에 관심이 많으며 올리는 글이 따뜻한 사회가 조성되는 데 미력이나마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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