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원공사만 수십년째... 평양의 모티프가 된 슬픈 도시

[독일에서 숨은그림찾기 3] 다크 투어리즘의 전형, 드레스덴

등록 2019.02.19 20:07수정 2019.02.19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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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레스덴 전경 프라우엔 교회 전망대에서 내려다 본 드레스덴의 모습으로, 도시를 관통하는 엘베강 위에 아우구스트 다리가 보인다. ⓒ 서부원

 
프랑크푸르트에서 고속열차(ICE)로 네 시간 남짓 달려 독일의 동쪽 끝 드레스덴에 닿았다. 시내에서 자동차로 한 시간 남짓이면 동유럽의 체코나 폴란드에 닿을 수 있는 국경 도시다. 지금이야 독일의 변방이지만, 한때 이 근방을 호령했던 작센 왕국의 수도로서 수많은 문화유산이 산재해 있는 유서 깊은 곳이다.

사실 이번 독일 여행에서 드레스덴은 애초 계획에 없었다. 프라이부르크와 프랑크푸르트, 쾰른 등 라인강 주변 도시를 보름 남짓 둘러본 뒤 베를린에서 일주일 정도 머물다 귀국하는 일정이었다. 경험상, 계획에 없던 곳을 조금 더 보겠다고 욕심 부리는 건 '독'이라고 생각해온 터다.


그런데, 떠나기 며칠 전 여행사를 운영하는 지인은 한사코 드레스덴을 추천했다. 수도인 베를린을 포기하는 한이 있어도 독일에 갔다면 반드시 들러야 할 도시라며 입이 마르도록 자랑했다. 아름다운 야경 등 도시의 풍광도 빼어나지만, 여느 역사도시와는 다른 묘한 매력이 있다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독일 여행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지만, 드레스덴을 가볼 생각은 지금껏 한번도 해 본 적이 없다. 관성인지 편견인지, 독일이라고 하면 수도인 베를린을 제외하곤 옛 서독 지역만을 상정하고 있었다. 소련이 해체되고 통일이 된 지 30년이 다 되어 가는데도 폐쇄적인 사회주의의 텃밭이라는 인식이 여전히 강하게 남아 있다.

아무튼 옛 동독 지역에 발을 디딘 건 처음이었다. 기차가 두 시간쯤 달려 옛 동서독 국경 부근을 지나자 경관은 물론 공기마저 다르게 와 닿았다. 풍경이랄 것도 없는 낮고 뭉툭한 구릉이 단조로웠고, 겨울 들판의 색바랜 초록빛은 쟂빛에 가까웠다. 잠시 정차했던 라이프치히 기차역은 마치 낡은 전투기의 격납고처럼 느껴졌다. 고정관념이란 그만큼 무섭다.

더욱이, 적어도 내게 드레스덴 하면 반사적으로 떠오르는 단어가 '폭격'이었다. '드레스덴 폭격'이란 제2차 세계대전 말기인 1945년 2월 중순 영국과 미국의 연합군이 며칠간 드레스덴을 융단 폭격한 사건을 말한다. 이는 '스탈린그라드 전투', '노르망디 상륙작전', '미드웨이 해전' 등과 함께 제2차 세계대전을 상징하는 단어다.

이로 인해 도시 기반 시설의 90% 이상이 파괴됐고, 수만 명의 시민이 그 자리에서 목숨을 잃었다. 당시 폭격을 명령했던 영국군 사령관 해리스는 '적의 민간인도 적이다. 군인이든 민간인이든 그들을 위해 눈물을 흘릴 필요는 없다'는 극악한 말을 남기기도 했다. 스스로 '사람을 죽이기 위해 왔다'고 밝힌 그는, 전쟁을 벌인 히틀러와 적이었을 뿐 '드레스덴의 학살자'로 역사에 남았다.


그런 까닭에 지금 드레스덴은 아무리 오래된 건물이라도 60년 남짓에 불과한 '신도시'다. 구도심을 중심으로 작센 왕조의 화려했던 영화를 보여주는 문화유산이 즐비하지만, 대부분은 다시 지은 것들이고 지금까지도 복원 공사가 이어지고 있다. 복원 공사가 수십 년간 계속되고 있다는 건 그만큼 도시 전체가 혹심한 파괴를 입었다는 사실을 반증한다.
 

프라거 거리의 문화센터 건물 기차역에서 구도심의 츠빙거 궁전 가는 길에 세워진 문화센터에는 옛 사회주의 시절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벽화가 그려져 있다. ⓒ 서부원

 
기차역에서 작센 왕가의 거처였던 츠빙거(Zwinger) 궁전에 이르는 길은 드레스덴의 과거와 현재, 미래가 공존하는 장이다. 어차피 두 곳 모두 '새 것'이지만, 궁전 주변이 과거의 드레스덴을 보여주는 공간이라면, 궁전을 향해 도열하듯 최신 건물이 서 있는 프라거(Prager) 스트리트는 도시의 현재와 미래를 상징한다. 드레스덴이 치밀한 설계를 통해 재생된 계획도시임을 잘 보여준다.

기실 드레스덴의 전후 도시 복구 사업은 우리에게도 나름 밀접하게 관련돼 있다. 한국전쟁 당시 미군의 융단 폭격으로 초토화된 북한이 평양을 재건할 때 모티프를 제공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회주의의 이념을 도시에 구현하기 위해 애쓴 흔적이 역력한데, 공공기관이 집약돼 있는 광장과 녹지가 바둑판 모양으로 질서정연하고, 그 위로는 시민의 발인 트램이 오간다.

드레스덴 공대 도서관을 견학했을 때, 서가에서 우연히 꺼내 본 건축학 관련 서적에서 드레스덴과 평양의 친밀한 관계를 보여주는 사진 자료가 수록돼 있어 놀랍고도 반가웠다. 몇 쪽에 걸쳐 두 도시를 비교하는 사진이 실려 있었는데, 폭격으로 파괴된 도시가 전화위복이 된 사례로 소개돼 있었다. 지구 반대편의 낯선 도시 드레스덴에서 평양을 만나게 될 줄은 미처 몰랐다.

제2차 세계대전 직전의 사진이 남아 있긴 하지만, 과거의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 만큼 도시는 완전히 탈바꿈되었다. 융단 폭격의 흔적은 오로지 복원된 츠빙거 궁전 안팎의 옛 문화유산에만 생채기처럼 남아 있을 뿐이다. 건물마다의 그을린 듯한 검은색 외벽은 폭격의 잔해를 그대로 사용한 것이고, 하얀 빛이 도드라지는 외벽과 장식은 새로 이어 붙인 것이다.
 

츠빙거 궁전 전경 베르사유 궁전을 모방한 츠빙거 궁전은 '여전히' 공사중이다. 제2차 세계대전 중 폭격으로 대부분 파괴되었지만, 복원은 더디기만 하다. 결코 서두르는 법이 없는 독일 사회의 이면을 볼 수 있다. ⓒ 서부원

 
츠빙거 궁전의 화려함과 아름다움에 감탄할 수만은 없는 이유다. 국내의 여러 여행사에서 판매하는 관광 상품 소개 책자에서는 '중세 도시의 빼어난 경관'을 얼굴로 내세우고 있지만, 따지고 보면 드레스덴 여행은 '다크 투어리즘(Dark Tourism)'의 전형이라 할 수 있다. 도시가 품고 있는 전쟁의 쓰라린 상처에 눈 감는다면, 그건 드레스덴을 제대로 본 게 아니다.

수많은 시민들이 폭사하고 건물들이 내려앉은 마당에 츠빙거 궁전이 소장하고 있던 미술품들이 멀쩡했을 리 없다. 숱한 미술품들이 전란 통에 불타거나 파손됐고, 더러는 도난 당하기도 하고, 연합군이 전리품 삼기도 했다. 나아가 동독이라는 사회주의 국가가 수립된 후 종주국이었던 소련과의 외교 수단으로 전락한 경우도 적지 않았다.

다행히도 도시가 재생되는 과정에서 수난 당한 미술품들이 하나둘씩 '고향'을 찾아왔다. 누가 뭐래도 빼앗아간 게 분명한데 궁전 복원을 축하한다고 생색내며 되돌려준 작품도 있고, 이탈리아와 프랑스 골동품상들을 전전한 뒤 재구입해 돌아온 것도 있다. 그런가 하면, 통일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옛 서독 정부가 옛 동독 정부에 건넨 경우도 있다.

아직도 갈 길은 멀지만, 정부와 시민들의 관심은 높아 보인다. 츠빙거 궁전을 비롯한 건축물들이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복원 공사가 계속되고 있는 것처럼 미술품 반환을 위한 노력 또한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미술품들의 '귀향'이 마무리될 그날을 기다리고 있다는 듯 궁전 내 일부 전시 공간은 비어 있는 상태로 관리되고 있다.
 

츠빙거 궁전 내부 전시실 전시된 미술품 중엔 옆에 별도의 설명을 덧붙인 것들이 많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외부로 반출되었다가 다시 돌아온 작품들로, 사연마다 기구하다. ⓒ 서부원

 
전문가나 예술에 조예가 깊은 여행자들 중엔 츠빙거 궁전과 인근의 알베르티눔 미술관에 전시된 작품들의 수준을 문제 삼아 은근히 폄훼하기도 한다. 루벤스와 렘브란트, 베르메르부터 고갱과 고흐, 마네, 모네, 피카소 등 내로라하는 화가들의 이름이 보이지만, 기껏해야 그들의 'B급 작품'들이라는 거다. 드레스덴을 어찌 파리나 바르셀로나, 피렌체 등에 견주겠느냐며 고개를 가로젓는다.

그들은 화려하기 이를 데 없는 츠빙거 궁전 역시 '열등감이 창조해낸 모방의 걸작'이라고 얕보기 일쑤다. 작센의 문화군주 아우구스트 2세가 이탈리아와 프랑스 곳곳을 주유한 뒤 베르사유 궁전을 모방해 세웠다는 사실을 꼬집은 것이다. 궁전과 내부를 장식한 미술품들을 한데 묶어 '이미테이션들끼리의 만남'이라고 조롱하는 경우도 봤다.

하지만 섣부른 주관적 견해일 뿐이다. 현대사에 있어서 드레스덴이 어떤 도시인 줄 안다면, 그런 평가를 내릴 순 없다. 이곳의 미술품들은 전문가들이 품평하는 '수준'이 중요한 게 아니다. 세계 유수의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것들에 견준다면 작품성이 떨어질지는 몰라도, 남다른 '역사'를 품고 있기 때문이다.

이산의 고통을 겪은 뒤 천신만고 끝에 돌아온 작품들 옆에 나란히 붙어 있는 안내판에 먼저 눈이 가는 것도 그래서다. 사연을 알고 나서 만나는 그림은 이전과 아예 다른 그림처럼 느껴지는 법이다. 완벽하리만큼 아름다운 츠빙거 궁전이 폐허처럼 쓸쓸하게 느껴지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프라우엔 교회 가톨릭 교회로 세워졌으나 종교개혁 이후 개신교 교회로 사용된 건물이다. 이를 상징하듯 마르틴 루터의 동상이 정면에 세워져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파괴되었다가 복원된 것인데, 바로 옆에 당시의 잔해가 그대로 남아있다. ⓒ 서부원

 
떠나기 전 드레스덴을 추천한 지인의 말뜻을 이제야 알 것 같다. 그가 말한 '묘한 매력'이란 결국 제2차 세계대전의 와중에 도시가 겪어야 했던 참혹한 사연에 기인한 것이었다. 요컨대, 드레스덴은 오랜 식민지배와 숱한 전쟁을 겪은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한번쯤 교훈을 얻을 만한 여행지다.
#독일 여행 #드레스덴 폭격 #작센 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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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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