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제 손과 다리를 잘라 보관... 이 교회는 왜 그랬을까

[발칸반도 기행 14] 몬테네그로(Montenegro) 페라스트(Perast) 기행

등록 2019.02.12 20:08수정 2019.02.12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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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라스트. 이반 산이 아드리아해 코토르 만에 닿아 들어선 아름다운 마을이다. ⓒ 노시경

 
나와 아내는 아드리아해 코토르(kotor) 만에 떠 있는 바위의 성모 섬(Our Lady of the rocks)을 나와 다시 작은 배를 탔다. 배를 타고 돌아오며 보이는 페라스트(Perast) 마을의 해안가 풍경은 아름답고 평화롭기만 했다. 서서히 전진하는 배에서 보는 마을의 모습이 너무나 포근하게 다가온다.  

페라스트의 바다는 육지 속으로 3번이나 꺾어 들어온 만(灣) 안에 자리잡고 있다. 페라스트의 바다는 이곳이 바다인지, 호수인지 헷갈릴 정도로 파도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페라스트 앞의 바다에는 거대한 방파제가 필요 없게 되었고, 이로 인해 해안의 풍경은 다른 나라들보다 빼어나게 아름답다.


코토르 만은 마치 2마리의 나비가 날개 짓하는 모양으로 생겼는데, 나비처럼 생긴 만의 한가운데 몸통 부분에 페라스트 마을이 안겨 있었다. 그리고 햇살에 반짝이는 푸른 바다 너머로 보이는 이 마을의 붉은색 지붕들은 금세 페라스트의 매력에 빠져들게 한다.

잿빛으로 거칠어 보이는 이반 산(Mt. Ivan)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페라스트에는 전형적인 베네치아 고딕양식의 건축물들이 눈에 많이 띈다. 바닷가를 따라 마을의 저택과 교회, 레스토랑, 작은 주택들이 오밀조밀 모여 있다. 작은 마을에 다양한 건축물들이 어우러져 단아하면서 조용한 이 마을의 멋을 뽐내고 있다.

흥정하지 않는 사람들
 

식탁보를 파는 여인. 흥정을 하거나 물건 구매를 조르지 않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 노시경


우리가 배에서 내리자 몇 명의 마을 여인들이 다가온다. 그녀들이 들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 보니 수제 레이스 식탁보였다. 하지만 이 여인들은 식탁보의 가격을 제시하거나 흥정을 하거나 귀찮게 물건을 사라고 재촉하지 않는다.

살아온 세월의 대부분을 사회주의 국가 안에서 살아온 이들은 흥정을 하는 일에 전혀 익숙하지 않은 것이다. 그녀들이 손수 만든 식탁보는 공장에서 찍어낸 식탁보와는 달리 개성 있고 예쁘게 장식되어 있었다. 쇼핑에 적극적이지 않은 나는 이 식탁보를 사지는 않았지만 햇빛 아래에서 무언의 눈길을 보내는 아주머니들의 모습이 왠지 안타까웠다.

우리의 배가 도착해 멈춘 선착장 앞은 성 니콜라스 교회(St. Nikola Church) 앞의 작은 광장이었다. 성 니콜라스 교회를 보니 해변 가에 세워진 높은 종탑이 눈길을 끈다. 나는 페라스트 마을의 대표적 명소인 이 교회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성 니콜라스 교회 내부. 작은 예수의 성화와 은제 촛대만이 소박하게 장식되어 있다. ⓒ 노시경


16세기에 처음 지어진 성 니콜라스 교회는 1624년에 오늘날의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완성 되었다. 이 진기한 천주교 교회의 입구 쪽에는 아담한 파이프 오르간이 자리하고 있고, 좌우의 백색 벽면에는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오르는 예수의 성화, 어린 예수를 안고 있는 마리아의 성화가 장식되어 있다. 주제단에는 예수의 작은 성화 아래에 은빛 촛대 몇 개만이 소박하게 장식되어 있다.


나는 아내와 함께 교회의 유물실에도 함께 들어갔다. 그곳에는 놀랍게도 사제들 시신의 손과 다리를 잘라 은제 손가락 모형 안에 모셔둔 유물들도 있다. 은제 손가락 모형의 손바닥과 손목 부분은 밖에서도 볼 수 있도록 절개되어 있는데, 자세히 보면 그 안에 시신의 뼈가 드러나 있다.
 

교회 사제의 손 유물. 성인으로 추앙 받는 사제 시신의 손이 은제 모형 안에 보존되어 있다. ⓒ 노시경


"몬테네그로인들의 이러한 문화에 익숙하지 않아서인지 너무 당혹스러운데?"
"몬테네그로인들은 성인으로 추앙 받는 사제들의 손과 다리를 보존해서, 성스러운 기운이 그들에게 계속 이어지기를 바랐던 거지. 이제 와서 보면, 이해되지 않는 부분들이 많지만 과학의 발달 없이 종교만이 사람들의 의식을 지배하던 시기에 남은 이 유물들은 당시의 종교적 시각으로 보아야 될 것 같아."


아내는 종교가 없지만 예배당 안에서 사색의 시간을 좋아한다. 아내는 명상을 하듯이 조용히 앉아 있다. 나는 페라스트에서 가장 큰 관광명소라고 할 수 있는 이 교회의 높고 날씬한 종탑에 올라가 보기로 했다.
 

성 니콜라스 교회 종탑. 길고 단아한 종탑은 페라스트 마을의 대표 관광지이다. ⓒ 노시경

 
종탑의 1층 입구에서 종탑을 관리하는 아주머니에게 간단하게 인사를 하고 먼지 쌓인 돌계단을 올라가기 시작했다. 나선형으로 빙빙 돌아가는 계단은 상당히 비좁고 55m 높이까지 꽤 길게 이어져 있었다. 종탑에 오르기 전 많이 걸은 여행자라면 종탑을 쉬지 않고 올라가는 게 조금 버거울 수도 있는 곳이다.

종탑 꼭대기에는 푸른 청동 종 3개가 나란히 걸려 있었다. 그 아래에는 이 종탑의 주인인 듯한 비둘기들의 배설물이 가득 쌓여 있다. 아드리아 해의 코토르 만이 내려다 보이는 주변 풍광은 너무나도 빛이 나고 있었다. 진회색 산맥 아래 코발트 빛 바다, 붉은 지붕의 집들이 숨이 멎을 듯 찬란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종탑의 종. 이 교회에서 울리는 종소리는 마을을 넘어 바다까지 널리 퍼져 나간다. ⓒ 노시경

 
언제 올라왔는지, 오늘 우리 여행 팀으로 같이 다녔던 싱가포르 여인이 나보다 먼저 종탑에 올라와 있었다. 약간 당돌해 보였던 그녀는 갑자기 줄을 잡아당겨 종탑의 종을 울리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그녀는 자신의 소원을 빌었다. 내가 교회 종을 이렇게 울려도 되느냐고 하였더니 그녀는 괜찮다고 했다.

그래서 그녀가 인사를 하고 내려간 뒤에 나도 종탑의 종을 울려 보았다. 나의 희망이 종소리가 되어 페라스트 마을로 퍼져 나가는 듯했다. 매번 느끼는 바이지만 유럽 교회들의 은은한 종소리는 어쩌면 이리도 마을의 정경과 잘 어울리는지 모르겠다. 1층에 내려올 때까지 그 종소리가 계속 귓가에 맴도는 듯 했다. 다행히 종탑의 관리인은 내가 종을 울린 것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관광객을 보는 눈빛마저 편안한 도시
 

페라스트 박물관 앞. 중세의 저택과 교회의 붉은 지붕이 푸른 하늘과 잘 어울린다. ⓒ 노시경

 
나는 다시 아내와 함께 느리게 천천히 마을을 둘러보았다. 페라스트에는 세상의 온갖 여유로움이 담겨 있는 것 같았다. 해안가에 연이은 집들의 짙은 아이보리 벽은 따뜻해 보이고, 마을 사람들의 일상도 평범하고 단순해 보인다. 페라스트 사람들의 관광객들을 보는 눈빛도 편안하기만 하다.

페라스트는 원래 선장과 선원들의 마을이었고, 선장들이 살던 16개의 보존된 저택이 현재까지도 잘 보존되어 있다. 길을 걷다 보니 3층의 발코니를 가진 해안가의 한 건물이 눈에 들어 왔다. 이 작은 마을에 자리한 페라스트 박물관(Muzej grada Perasta)이었다. 17세기의 저택이었던 곳을 다시 꾸며서 페라스트의 역사와 문화를 전시하고 있는 박물관이다.

이 건물 3층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페라스트가 코토르 만 입구의 정면에 위치하고 있다는 사실을 한눈에 알 수 있다. 군사적으로 이렇듯 중요한 지리적 위치에 자리한 페라스트는 무역으로 번성한 도시였다. 그래서 많은 주변 열강들이 페라스트를 가지려고 하였고, 베네치아, 터키, 오스트리아 등 주변국가들의 침략이 이어졌다.

아기자기한 박물관 내부에는 유독 물의 도시, 베네치아를 그린 그림들이 많다. 페라스트가 약 4백년(1420년~1798년) 동안이나 베네치아 공화국령 자치 도시국가였기 때문이다. 그림을 보고 있으면, 현재의 마을 풍경이 베네치아 공화국령 시절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 그림을 보니, 여러 가문이 십자가를 쥐고 있는 장면이 그려져 있다. 열강의 침략 당시 페라스트의 유력했던 가문들이 페라스트를 지키기 위해 나선 그림이다. 페라스트의 12개 가문이 양손으로 십자가를 쥐고 형제로서 단결하며, 페라스트를 지켜내기 위해 맹세를 하고 있는 것이다. 지속적으로 침략을 당하는 역사 속에서 귀족들은 십자가라는 상징을 통해 결속하였고, 지금과 같은 한가로운 평화를 페라스트에 가져올 수 있었던 것이다.

박물관에서 나온 우리는 가이드 루카가 추천해 준 레스토랑 콘테(Conte)로 향했다. 오늘 일정을 여유 있게 잡은 우리는 이곳에서 아드리아 해의 낭만을 만끽하기로 했다. 이 식당의 바닷가 전망은 전세계 어느 곳에 견주어도 뒤지지 않을 정도로 압도적인 아름다움을 자랑하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레스토랑 콘테. 이토록 아름다운 전망을 가진 식당을 또 만나기는 어려울 것이다. ⓒ 노시경

 
고급스러움에 비해 음식 가격은 싼 편이었다. 우리는 생강과 그레이프 프루트가 들어간 주스와 함께 파인애플과 사과가 들어간 주스 2잔을 주문해서 마셨다. 식당의 종업원들은 손님들과 함께 이 지역의 와인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며 한낮의 여유로움을 즐기고 있었다. 한낮의 햇살은 바다를 넘어와 우리 테이블을 따뜻하게 비추고 있었다.

우리는 다시 페라스트를 걸었다. 창가에 기르는 푸른 풀잎들이 하늘거리고 있었다. 하늘은 왜 이리 찬란하게 예쁜지 모르겠다.
 

트라몬타나 비치 바. 아드리아 해를 바라보며 마시는 커피 한잔의 느낌은 어디에도 비할 바 없다. ⓒ 노시경

 
우리는 차를 타고 코토르 만을 계속 달리다가 트라몬타나 비치 바(Tramontana Beach Bar)에 들어가 커피를 마시기로 했다. 이 아름다운 해변을 그냥 떠나기가 너무나 싫었기 때문이다. 아드리아 해를 바라보며 마시는 커피는 몬테네그로에 대한 나의 사랑을 더욱 불붙게 하였다.
덧붙이는 글 오마이뉴스에만 기사를 올리고 있습니다. 앞으로 크로아티아, 몬테네그로, 슬로베니아, 체코, 슬로바키아 여행기를 게재하고자 합니다.
#몬테네그로 #몬네네그로여행 #페라스트 #페라스트여행 #코토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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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와 외국을 여행하면서 생기는 한 지역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는 지식을 공유하고자 하며, 한 지역에 나타난 사회/문화 현상의 이면을 파헤쳐보고자 기자회원으로 가입합니다. 저는 세계 50개국의 문화유산을 답사하였고, '우리는 지금 베트남/캄보디아/라오스로 간다(민서출판사)'를 출간하였으며, 근무 중인 회사의 사보에 10년 동안 세계기행을 연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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