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 없는 나라될 것" 일본 사상가의 경고

[서평] 우치다 타츠루의 <어른 없는 사회>

등록 2019.02.11 15:40수정 2019.02.11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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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엄마한테 뭐 사달라는 말 하지마!!"

부쩍 "사달라"는 말이 입에 붙은 아들 녀석에게 급기야 버럭 소리를 질렀다. 지금 이 시간부터 필요한 학용품을 제외한 물건은 구입 금지. 사달라고 아무리 떼써도 절대 들어줄 수 없으니 조를 생각일랑 하지 말라고 엄포를 놓았다.


"아~~ 왜요? 왜 안 돼요? 갖고 싶은데..."
"갖고 싶은 모든 것을 다 가질 수는 없어. 그게 정말 너에게 필요한 것인지 잘 생각해 봐."
"어~~~엄~~마, 제발요. 사 주세요. 네?"
"글쎄, 한 번 안된다고 하면 안되는 줄 알아야지. 계속 떼 쓸거야?"
"어~~~엄~~마~~~~~~!!"
"안돼~! 더 이상 보채면 혼날 줄 알아라."


결국은 아이에게 버럭 소리를 지르고 나서야 상황이 종료되었다. 이런 대화는 늘 끝이 뻔하다. 아이의 성화에 항복해버리거나, 부모의 권위로 일방적으로 제압해버리거나. 결국은 끝까지 버티는 쪽이 승자가 되는 이 유치한 싸움이 하루를 멀다하고 발생한다.

넘쳐서 더 문제인 육아

아이들과 이렇게 한바탕 하고 나면 옛날 생각이 난다. 내가 어렸을 때는 풍족하지 못했다. 그나마 밥은 거르지 않고 살 만한 딱 그 정도 살림살이에서 아이들에게 장난감은 호사였다. 장난감은 생일이나 크리스마스처럼 특별한 날 받는 대단히 특별한 선물이어서, 몇 개 안되는 인형이 너무나 소중했고 친구처럼 오랫동안 곁에 두었었다.

굳이 장난감이 많이 없어도, 그럴싸하게 지어진 놀이터가 없어도 아이들이 노는 데는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아이들은 그냥 아이들이니까 어떤 공간에서도 놀 줄 알았고, 빈터에서도 귀신같이 놀이감을 찾아냈다. 게다가 무척 재미가 있었다. 해가 저무는 줄 몰랐고 헤어짐이 아쉬울 정도로 맘껏 놀았다. 장난감이 없어도 함께 있다는 것만으로도 놀이는 충분히 가능했다.


우리집 거실 한켠에는 대형 장난감 상자 네 개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상자안에는 각종 장난감들이 가득 들어있다. 그런데도 아이들은 끊임없이 새로운 장난감을 사 달라고 야단이다. 태어나면서부터 특별히 부족함을 모르고 커 왔으니 아끼는 법도 잘 모른다. 아이들이 장난감들 속에서 뒤엉커 놀고 있는 너머로 TV에서는 방학기간 배를 곯는 아이들, 엄동설한에 난방도 안되는 방에서 힘겹게 겨울을 나는 아이들의 사연이 흘러나온다.

이 극단적인 풍경 앞에서 "내가 과연 아이들을 올바로 키우고 있는걸까?" 자책감이 밀려든다. 아이들에게 새로운 무언가를 사줄 때는 무척 신중하고 때로는 단호하게 거절도 해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쉽지 않다. 소비는 신중하게, 돈은 가치있고 어렵게 써야 한다는 것을 어렸을 때부터 배워줄 필요가 있다. 모든 것이 부족했던 나의 어린 시절에는 따로 배우지 않아도 삶으로 체득할 수 있었지만 요즘 세태는 그렇지 않으니까.   

"공생능력을 기르는 데 게을렀다"

일본의 사상가 우치다 타츠루는 책 <어른 없는 사회>에서 이렇게 경고한다. 
 
"소비자 마인드와 시장 원리를 깊숙이 내면화 한 탓에 최소한의 학습 노력, 노동 노력으로 성과를 올리는 것을 목표로 삼고, 경쟁을 위해서는 주위 사람의 발목을 붙잡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하는 아이들이 그대로 자라 나이를 먹고 늙어서 노인이 될 것입니다. 그 때 일본은 정말 '어른이 없는 나라'가 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그때는 더 이상 안전하지도 풍요롭지도 않은 나라가 될 것입니다." (47쪽)

경쟁적인 소비로 자신의 정체성과 존재감을 증명하는 사회에서 교육받고 자라난 아이들은 자라도 '덜 자란' 어른이 될 공산이 크다. 어른답지 않은 어른들이 정책을 만들고 국가를 경영하며 경제를 움직이고 아이들을 교육하는 세상은 불행할 것이다. 인간이 인간다우려면 돈을 숭배해서도 안되고, 돈에게 삶을 지배할 절대권력을 주어서도 안된다. 법정스님의 말씀처럼 진짜 문제는 이것이다. '필요한 것을 얼마나 갖고 있는가가 아니라, 불필요한 것에서 얼마나 자유로워져 있는가.' 진정한 교육은 이런 지혜를 길러 주어야 한다.

저자는 "일본인은 타인과 공생하는 능력을 기르는 노력을 게을리했다"고(49쪽) 개탄한다. 한국도 별반 다르지 않다. 그는 "다른 사람과 같이 살 수 없거나 다른 사람과 물건을 공유할 수 없는, 뭐든지 전적으로 사유하지 않으면 안되는 사람은 상당한 재력이 없는 한 보통 수준의 생활도 유지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반면 다른 사람과 편하게 공생할 수 있는, 서로 집이든 물건을 공유할 수 있는 사회적 능력을 갖춘 사람은 그다지 많은 것을 소유하지 않아도 꽤 쾌적한 생활을 누릴 수 있을 것"아라고(121쪽) 본다.

소비능력이 아니라 공존공생의 네트워크에 소속되어 있느냐 아니냐가 생활 수준의 차이로 귀결된다는 것이다. 미래 교육의 화두도 마찬가지다. 소통의 능력은 경쟁관계보다는 협력관계 속에서 더 크게 발현되고 발전하는 법이다. 관계하고 소통하는 능력, 연대하고 협동하는 능력을 기를 수 있도록 교육 시스템과 내용을 만들어야 한다. 무한 경쟁 사회속에서 남보다 더 많이 가질 수 있는 방법과 남을 밟고 일어서는 법을 가르치는 교육은 아이들의 미래를 망치고 결국 공동체의 운명을 위태롭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어른 없는 사회>(우치다 타츠루 지음 / 민들레 펴냄 / 2016.11 /13,000원)

어른 없는 사회 - 사회수선론자가 말하는 각자도생 시대의 생존법

우치다 타츠루 지음, 김경옥 옮김,
민들레, 2016


#우치다타츠루 #어른없는사회 #공동체 #네트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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