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준표의 '음모론', 이렇게 구태의연하다니

[역사로 보는 오늘의 이슈] 정보의 편차로 대중 흔들었던 '음모론', 이젠 안 통한다

등록 2019.02.08 20:03수정 2019.02.08 2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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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권 출사표 낸 홍준표자유한국당 홍준표 전 대표가 지난 1월 30일 오후 서울 여의도 더케이타워에서열린 출판기념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가 '음모론'을 제기했다. 북한이 2월 27일에 제2차 북미정상회담을 열기로 정한 것은 그날 예정된 자유한국당 전당대회의 흥행을 막기 위해서라는 주장이다. 지난 2018년 지방선거 하루 전에 제1차 회담이 열린 것 역시 정권을 도우려는 북한의 음모 때문이었다는 설명이다. 2월 6일자 <페이스북>에 이렇게 적혀 있다.
 
"2019. 2. 27~28 베트남에서 미북회담이 개최되는 것은 지난 지방선거 하루 전에 싱가포르에서 미북회담이 개최된 것과 똑같은 모습입니다. 그날 (열릴) 자유한국당 전당대회의 효과를 감쇄하려는 북측이 문 정권을 생각해서 한 술책에 불과하다는 것을 이번에는 국민들이 알았으면 합니다. 5000만 국민의 생명과 재산이 걸린 북핵문제조차도 문 정권의 홍보 수단으로 삼으려는 저들의 책략에 분노합니다."
  

홍준표 전 대표의 페이스북 글. ⓒ 홍준표

  
그는 이렇게 글을 마무리했다. 
 
"그래서 한 달 이상 전대를 연기하자는 것입니다."
  
북한 정권은 미국과의 협상에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세계 최강과의 국운을 건 협상에 정신력을 집중하고 있는 그들을 놓고 홍 전 대표가 너무 여유로운 음모론을 제기한 것은 아닐까.

실제 정치권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더불어민주당 이해식 대변인은 7일 브리핑을 통해 "(홍준표 전 대표가) 또 황당한 주장을 내놓았다"며 "주요 이슈를 가짜 뉴스로 가공하고 음모론으로 각색하는 솜씨는 탄복스러운 수준"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스머프부터 에펠탑까지... 온갖 음모론 살펴보니

이러한 수준을 뛰어넘는 음모론들은 역사적으로 매우 많았다. <개구쟁이 스머프>와 관련된 공산주의 음모론도 그중 하나다. 1981년부터 8년간 미국 NBC 방송에서 방영된 이 만화 드라마가 공산주의 이념을 확산시키기 위한 기획물이었다는 내용이다. 모르몬교가 미국 유타주에서 발행하는 2013년 8월 5일자 <디저트 뉴스>에 실린 '스머프에 관한 20가지 알려지지 않은 진실(20 little-known facts about the Smurfs)'은 그 의혹에 관해 이렇게 말한다.
 
"'개구쟁이 스머프'는 스머프 마을을 무신론적이고 마르크시스트(Marxist)적인 유토피아로 그려냄으로써 젊은이들에게 공산주의 이념을 주입하기 위한 시도였다는 비판이 종종 제기됐다."
 

스머프 시리즈를 개작한 2011년 미국 영화 <스머프>. ⓒ 위키백과


스머프 만화에서, 대장인 파파 스머프는 '빨간' 모자를 쓰고 있다. 이 마을에서는 외부와의 무역이 허용되지 않으며 모든 스머프가 평등한 삶을 영위한다. 벨기에 만화가 피에르 퀼리포르(1928~1992년)가 공산주의를 유포할 목적으로 이런 설정을 만들었다는 게 스머프 음모론의 내용이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관련해서도 음모론이 많았다. '오바마 케어'로 불리는 건강보험 개혁을 추진하는 그를 사회주의와 연결하는 시각도 있었다. 유대인 재력가들과 연관된 사회주의자들이 그를 대통령으로 만들기 위한 음모를 꾸몄다는 이야기다. 또 미국 내 이슬람 세력이 그의 당선에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영국인 제이미 킹이 정리하고 번역가 이미숙이 옮긴 <세기의 음모론>에 이런 대목이 있다.
 
"또 다른 유력한 미국 집단, 즉 '이슬람 국가 운동'이 (오바마 당선에) 영향력을 발휘했을 것이라는 추측도 있다. 어떤 사람들은 오바마가 이 조직의 리더였던 말콤 X의 사생아이고 따라서 이슬람 국가 운동의 지지자들이 흑인으로는 최초로 백악관에 입성할 수 있도록 (그를) 도왔다고 믿는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 위키백과(퍼블릭 도메인)


황당한 음모론도 있었다. 에펠탑이 파리 시내에 군대를 투입하기 위한 친(親)독일 건축가의 음모에 의해 설계됐다는 내용이다. 독일군이 마치 천군(天軍)처럼 파리 시내에 하강할 수 있도록 하고자 에펠탑을 설계했다는 것이다. 위 책에 나오는 또 다른 대목이다.
 
"혹자는 그 구조물이 사실 친독일 성향의 건축가의 작품이며, 결국 프랑스를 정복하려는 장기적인 음모의 일부라고 주장한다. (중략) 프랑스 수도의 한복판은 그런 목적을 성취하기에 이상적인 장소였다. 파리 중심부에 군대가 하강함으로써 적절한 시기가 오면 쉽고 신속하게 점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에펠탑. ⓒ 위키백과


유럽에 대재앙을 초래한 흑사병을 인도인들과 연결시키는 음모론도 있었다. 14세기에 유럽 인구의 30~60%인 2500만~5000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흑사병을 퍼트린 장본인이 바로 인도인들이라는 이야기다. 그때까지만 해도 세계 무역의 비주류권이던 서유럽에서 무역이 융성해지는 것을 견제하고 성장에 제동을 걸고자 인도인들이 병원균을 유포시켰다는 주장이다. 위 책에 소개된 음모론의 내용은 이렇다.
 
"마침내 인도의 지배자들이 결단을 내리고 유럽 국가를 전멸시킬 계획을 실행에 옮겼다. 그 지방의 전염병에 감염된 쥐를 유럽 무역국의 배에 투입했다. 이후 쥐들은 지중해의 항구도시 전역에 퍼졌으며, 그 질병에 면역력이 전혀 없던 유럽 사람들에게 끔찍한 재난이 일어났다.

인도는 일단 유럽에 생물학적인 공격을 개시한 다음 군대를 파견할 예정이었다. (중략) 계획이 순조롭게 진행된다면 질병으로 약화된 유럽을 쉽게 정복하고 이로써 자신들의 왕국에 새로운 방대한 영토를 추가할 수 있을 터였다."
 
섬뜩한 음모론도 많았다. 1923년 관동대지진 때였다. 민심이반을 두려워한 일본 정부는 조선인에 관한 음모론을 유포해 대중의 분노를 조선인들 쪽으로 돌렸다. 대지진을 틈 타 조선인들이 음모를 꾸미고 악행을 저지르고 있다는 유언비어를 퍼트린 것이다. 청암대학교 재일코리안연구소 연구실장인 역사학자 김인덕은 <극우에서 분단을 넘은 박애주의자 박열>에서 이렇게 말한다.
 
"적어도 6000명 이상의 조선인이 학살당한 관동대지진은 유언비어가 발단이 되었다. (중략) 조선인을 학살한 유언비어는 9월 1일 오후 1시경부터 일본 정부에 의해 조직적으로 유포되기 시작하여, 2일과 3일에는 완전히 관동 지방에 나돌았다.

(중략) 유언비어의 내용은 이렇다. 조선 사람들이 지진의 혼란을 이용하여 폭행, 약탈, 방화, 여성 능욕, 폭탄 투척, 집단 습격, 우물에 독극물 투약 등의 만행을 자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진이 일어나고 1시간 밖에 되지 않아 조선인이 악질적인 짓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스마트폰 하나로 '팩트체크' 하는 세상에 음모론이라니
 

아돌프 히틀러. ⓒ 위키백과


비이성적인 음모론은 아돌프 히틀러의 <나의 투쟁>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쿠데타 실패로 감옥에 갇혀 있을 때인 1923년과 1924년에 집필된 이 책에서 히틀러는, 유대인은 영토가 없어 독자적 산업생산 능력이 없으므로 "타민족의 생존권을 해치는 기생충적 존재가" 될 수밖에 없다면서 "유대인 생존 투쟁의 최종 목표는 생산적 활동을 하고 있는 여러 민족을 노예로 삼는 데 있다"고 주장했다. 유대인들이 남의 나라에 들어가 평등권 투쟁을 벌이는 한편, 국가 간을 이간질해 전쟁을 유발하는 방법으로 생존 유지를 도모하고 있다는 게 그의 주장이었다.

음모론이 확산되는 조건 중 하나는 정보의 편차다. 한쪽의 정보력이 열악해야 이를 이용해 다른 쪽이 음모론을 퍼트릴 수 있다. 과거의 정치 집단들은 대중의 정보력이 취약하다는 점을 이용해 말도 안 되는 음모론들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대중의 정보력이 만만치 않다. 국회의원이나 정부 관료 못지않게, 혹은 그 이상으로 외국 정보를 빨리 습득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세계 각국의 언론 보도를 실시간으로 제공해주는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이나 중국·일본·미국·영국 등의 뉴스를 내보내는 케이블 TV로도 얼마든지 세계 소식을 접할 수 있는 세상이다.

이렇게 대중의 정보력이 향상된 점을 감안할 때, 홍준표 전 대표의 음모론은 '좀 낡았다'는 인상을 지우기 힘들다. 대중이 정치인들 못지않게 혹은 그 이상으로 북미정상회담 정보를 입수할 수 있는 이런 시대에 '김정은이 한국당 전당대회에 찬물을 끼얹고자 2월 27일 북미회담 개최를 결정했다'는 식의 구태의연한 음모론을 퍼트리려 하는 것은 21세기 대중의 정보 수준을 고려하지 않은 결과라고 생각한다.

세기의 음모론 - 우리가 믿는 모든 것은 조작되었다!

제이미 킹 지음, 이미숙 옮김,
시그마북스,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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