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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행 당하고 훈련장 잃기도... 추락한 한국 동계스포츠의 현실

[평창 그 후 1년①] 평창으로 장밋빛 활로 기대한 선수들, 박탈감만 커져

19.02.08 17:24최종업데이트19.02.08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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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말] 지난해 2월, 대한민국은 30년 만에 올림픽을 개최하는 경사를 맞았다. 2018 평창 동계올림픽을 통해 얼어붙었던 남북관계가 다시 활력을 되찾았고, 동계스포츠는 역대 동계올림픽 가운데 가장 풍성한 결과를 낳으며 밝은 미래가 이어질 것으로 기대됐다. 오는 9일은 평창 동계올림픽이 열린 지 정확히 1년이 되는 날이다. 올림픽을 치른 후 1년, 한국의 동계스포츠는 현재 어디쯤 와 있는지 '평창 그 후 1년'을 통해 되짚어 보고자 한다.
 
모두가 웃었던 평창 동계올림픽
 

▲ 빙속 여제 이상화 은메달 이상화 선수가 지난 2018년 2월 18일 오후 강원도 강릉스피드스케이팅 경기장에서 열린 평창동계올림픽 여자 스피드스케이팅 500미터에서 37초33을 기록하며 은메달을 획득한 뒤 태극기를 들고 트렉을 돌고 있다. ⓒ 이희훈

 
1년 전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한국 동계스포츠는 역대 올림픽 가운데 가장 많은 메달을 따내며 많은 사람들의 박수를 받았다. 전통 효자종목인 쇼트트랙은 물론이고, 스피드스케이팅에서는 밴쿠버 삼총사였던 모태범, 이상화, 이승훈의 뒤를 이어 차민규, 김태윤, 정재원, 김민석 등 새로운 얼굴들이 모두 시상대에 서며 새로운 전환점을 맞았다.
 
여기에 비인기 종목이었던 썰매도 훨훨 날았다. 스켈레톤의 윤성빈(25·강원도청)은 한국 썰매 사상 처음으로 올림픽 금메달을 따내며 황제로 등극했다. 봅슬레이에서는 팀 원윤종(33·강원도청)이 아시아 최초의 올림픽 4인승 경기 메달을 따내며 환호했다.
 
여자 컬링은 '영미' 열풍을 일으킨 '팀 킴'이 눈부신 선전을 펼치며 아시아 최초로 올림픽 은메달을 목에 걸고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 만화 같은 기적에 대한민국이 들썩였고 모두가 이들을 축하했다. 이외에도 스노보드 종목에서 이상호가 첫 은메달을 따냈고, 여자 아이스하키 팀은 사상 처음으로 남북 단일팀을 구성해 결과에 상관없이 진한 감동을 불러 일으켰다.
  

▲ 은메달 목에 건 여자 컬링 선수들 평창동계올림픽에서 은메달을 획득한 한국 여자 컬링팀 선수들이 지난 2018년 2월 25일 강원도 강릉컬링센터에서 열린 시상식에서 메달을 걸고 관중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은정, 김경애, 김선영, 김영미, 김초희. ⓒ 이희훈

 
비록 메달은 없었어도 값진 결과를 낸 종목도 많았다. 피겨스케이팅이 그러했다. 김연아(29)가 은퇴한 후 '연아 키즈'로 불리던 선수들이 계속해서 선전을 펼쳤다. 최다빈(19·고려대)이 김연아를 제외하고 첫 올림픽 톱7에 오르면서 최고 성적을 냈으며 피겨는 단체전까지 전 종목 출전이라는 쾌거를 이뤘다.
  

지난 2018년 2월 23일 강릉아이스아레나에서 열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 피겨스케이팅 여자 싱글 프리스케이팅에서 한국의 최다빈이 연기를 펼치고 있다. ⓒ 연합뉴스

 
이렇게 평창은 단순히 금메달에서만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동안 가려져 왔던 동계스포츠에 대한 인식을 바꿔놓은 계기가 됐다. 특히 더 이상 메달과는 상관없이 모두가 주인공이 돼 환희하는 대회였기에 더욱 의미가 컸다.
 
폭행, 파벌 문제에 성폭력 혐의 폭로까지... 평창 후 빙상계

이렇게 평창에서 눈부신 활약을 펼치며 한국의 동계스포츠가 더 이상 비인기종목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나 앞으로 더욱 밝은 미래가 펼쳐질 것이라는 기대가 가득했다. 그러나 평창 이후 곧바로 다시 한파가 불어닥쳤고 끝모를 추락이 이어졌다.
  

▲ 법원 나오는 조재범 전 코치 상습상해 등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징역 10월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된 조재범 전 국가대표 코치가 지난 1월 23일 오전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수원지방법원에서 열린 항소심 공판을 마치고 나오고 있다. ⓒ 연합뉴스

 
효자종목인 쇼트트랙에서는 이번에도 사건이 발생했다. 평창 동계올림픽 개막 직전 조재범 전 대표팀 코치가 심석희 선수(22·한국체대)를 폭행한 사실이 밝혀진 것. 심 선수가 올림픽 개막을 한 달 앞두고 진천 선수촌을 무단이탈하는 일이 발생한 가운데 뒤늦게 조 전 코치가 폭력을 행사한 사실이 드러나 전 국민에 충격을 줬다. 결국 조 전 코치는 이 일로 1심에서 징역형을 선고받아 수감 중이고, 항소심에서 형량이 1년 6개월(1심 10개월)로 늘어난 상황이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지난해 12월 조 전 코치의 항소심 재판에 출석한 심 선수가 2014년 여름부터 평창 올림픽 개막 직전까지 성폭행을 당했다며 추가로 고소장을 제출한 게 알려진 것이다. 그동안 파벌과 짬짜미 등 숱한 논란을 일으켜 온 빙상계에서 결국 최악의 사건까지 터진 셈이었다. 특히 심 선수가 폭행 후유증으로 인해 일시적인 뇌진탕 증세를 겪으면서 평창 동계올림픽 1500m 예선 경기에서 갑작스럽게 넘어진 것으로 뒤늦게 알려져 안타까움은 더했다.
 
이 사건은 빙상계뿐만 아니라 한국의 엘리트 스포츠 근간을 뒤흔들었다. 합숙훈련과 성적만을 고집해온 강압적인 훈련 방식에 문제가 있었던 것이 아니냐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결국 문화체육관광부를 비롯한 정부는 합숙 훈련을 장기적으로 폐지하겠다는 결론을 내놓았다.
 
대한빙상경기연맹은 이번에도 직격탄을 맞았다. 지난 십수 년간 빙상계 사건사고의 중심에 항상 빙상연맹이 거론된 가운데 이번에도 어김없이 비판의 화살이 날아왔고, 결국 지난해 9월 대한체육회 관리지정단체가 되며 망신살을 뻗쳤다.
  

▲ 각종 의혹에 대해 입장 밝히는 전명규 교수 대한빙상경기연맹 부회장을 지낸 전명규 한체대 교수가 지난 1월 21일 오후 서울 송파구 올림픽파크텔에서 젊은빙상인연대, 손혜원 의원 등이 제기한 빙상계 성폭력 은폐 의혹 등 각종 의혹에 대한 입장을 밝히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 권우성

 
또한 그동안 파벌을 비롯한 숱한 문제들에 핵심 세력으로 꼽혀왔던 전명규 전 대한빙상경기연맹 부회장은 이미 과거 연맹 부회장직을 내놓은 바 있다. 그는 지난해에도 문화체육관광부 국정감사에 출석해 빙상계 일선에서 물러나겠다고 밝혔다. 아울러 녹취록 공개를 통해 조 전 코치의 폭행·성폭행 혐의 등을 덮으려고 한 의혹까지 제기되자 지난달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사과하기도 했다.
 
2000년대 초중반부터 있어왔던 빙상계의 여러 문제는 결국 15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제대로 수습되지 못하고 있다. 그러면서 불거진 사건들로 한국 빙상의 이미지를 갉아먹는 상황이 됐다.
 
컬링 대표팀 폭로 부른 '갑질 논란'... 썰매 선수들은 훈련할 곳도 없어

컬링에서는 지도자 갑질 논란이 일어나 큰 파문을 일으켰다. 평창 동계올림픽 은메달리스트인 팀 킴(김은정, 김영미, 김경애, 김선영, 김초희) 선수들은 지난해 11월 김민정 여자컬링 대표팀 감독과 김경두 전 대한컬링연맹 회장 대행으로부터 수차례 폭언과 갑질 행위를 당했다고 폭로했다.
  

평창동계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딴 전 한국여자컬링팀 대표선수들이 지난 2018년 11월 15일 오전 서울 송파구 한 호텔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최근 화제가 된 김경두 감독 등 지도자들의 부당한 대우에 대한 호소문을 발표하고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 이희훈

 
김민정 감독은 훈련 스케줄을 무시하고 제대로 지도하지 않으면서 선수로 뛰려 한 정황까지 팀 킴의 주장에서 드러났다. 김 전 대행은 선수들에게 언어폭력을 행사하는 등 지위를 이용해 물의를 일으킨 당사자로 지목됐다. 결국 문화체육관광부 감사가 이어졌고, 이에 김 전 대행을 비롯한 그의 가족들은 모두 일선에서 물러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아울러 경북체육회는 지난 1월 중순 김민정 감독을 면직 처리했다.
 
자국에 훈련장을 두고도 훈련을 할 수 없어 떠돌이 신세가 된 선수들도 있다. 바로 한국 썰매 선수들의 사례다. 평창 올림픽이 끝난 직후 평창 슬라이딩 센터는 지금까지 정부와 지자체간 분담금 문제를 놓고 합의가 이뤄지지 않아 문도 열지 못하는 상태다. 불과 1년 전 그 곳에서 올림픽 금메달을 따내고 환호했는데, 1년이 지난 지금 제대로 된 훈련도 하지 못하고 있다. 아직 사후활용 방안도 제대로 찾지 못해, 언제 다시 문을 열 수 있을지도 장담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 봅슬레이·스켈레톤 대표팀 미디어데이 지난 2018년 10월 23일 오전 서울 송파구 올림픽파크텔에서 열린 봅슬레이·스켈레톤 국가대표팀 미디어데이에서 이용 감독이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연합뉴스

 
이에 이용 봅슬레이-스켈레톤 대표팀 감독을 비롯해, 윤성빈, 원윤종 등 주요 선수들은 기자회견 때마다 현실을 토로하며 도움을 요청하고 있지만 마땅한 대안책도 나오지 않은 상태다.
 
한국의 동계스포츠는 이미 오래 전부터 열악한 훈련 환경으로 선수들이 많은 어려움을 겪어온 분야로 잘 알려져 있다. 역사상 유례 없는 '피겨여왕'이 탄생했음에도 지금껏 피겨 전용링크 하나 건립되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그나마 갖춰진 국가대표 선수들의 훈련 링크도 궂은 날씨만 되면 천장에서 물이 새는 등의 문제가 지적되기도 한다.
   

지난 2018년 2월 19일 오후 강원도 평창 슬라이딩센터에서 평창동계올림픽 봅슬레이 2인조 원윤종, 서영우 선수가 3차 주행을 하고 있다. ⓒ 이희훈


 
일부 시설은 세계 최고의 수준이라는 찬사를 받았음에도 비용 문제과 관계자들의 책임 떠넘기기 속에 결국 또다시 선수들이 피해를 보고 있다. 올림픽 때 '반짝' 밀려들었던 지원과 관심도 대부분 끊긴 지 오래다.

평창 동계올림픽을 통해 설움을 씻고 장밋빛 미래가 될 것이라는 기대를 품었지만 결국 빙상계 선수들에게 돌아온 것은 냉혹한 현실뿐이었다. 평창 그 후 1년, 선수들의 박탈감만 더욱 커진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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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동계올림픽 쇼트트랙 조재범 컬링 폭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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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계스포츠와 스포츠외교 분야를 취재하는 박영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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