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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투, 이래도 치시렵니까?

['진보 오타쿠'의 일본이야기] 화투에 점령된 우리의 놀이문화

등록 2019.02.08 21:45수정 2019.02.08 2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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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투 ⓒ wiki commons


 
플라스틱 재질의 패를 능수능란하게 '탁탁' 뒤섞고 바닥에 '촥촥' 내리치는 소리가 귓가에 또렷하다. 빨갛고 거무죽죽한 바탕에 온갖 식물과 동물이 수놓는 화투판. 명절마다 일가친척들이 둘러앉아 벌이는 이 '국민놀이'를 보며 떠나지 않았던 의문, 이야기보따리를 설 명절이 끝난 지금 여러분께 한바탕 풀어내보려 한다.

요즘 화투의 모습. 너나 할 것 없이 스마트폰을 손에 쥐면서 '화투 열광이 옛날만 못하다' '주로 나이든 사람들이 한다'라는 지적도 나온다. 하지만 전통놀이인 윷놀이와 비교해 볼 때 화투의 인기는 엄청난 수준이다. 윷은 없어도 손님이 올 날을 기다리며 화투를 서랍 구석에 넣어두는 집이 많다. (글쓴이도 다른 물건을 찾으려 서랍을 뒤져보다 보관해둔 화투를 발견했다)

<무한도전> 등 국민적 인기를 끈 예능방송에서도 화투판은 어김없이 등장한다. 유재석, 박명수 등 희극인들이 어르신들과 10원을 판돈으로 내건 화투판을 즐기는 모습이 생생하다. 화투판 위를 오가는 손놀림에 남녀노소가 따로 없다는 상징적인 장면이다. 유튜브에서도 젊은 세대를 대상으로 '화투 치는 법' 등을 다룬 영상이 꾸준한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허영만 만화가가 화투 도박판을 소재로 다룬 만화 <타짜>는, 영화 두 편과 장편드라마로 제작되어 큰 흥행몰이를 했다. 한국이 '세계최강'인 바둑을 소재로 한 드라마가 고작 단편특집드라마 2편(1994년 MBC에서 3.1절특집으로 방영된 <맞수>)으로 제작된 여건과 비교해 봐도 화투의 성공은 남다르다. 이렇듯 화투가 한국에서 전 국민적 관심을 받는 유일무이한 놀이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인터넷에 소개된 한국민족문화대백과에 따르면 화투는 "열두 달을 상징하는 화초그림딱지를 가지고 노는 민속놀이" 또는 "노름"이다. 일본에서 건너온 화투가 민속놀이라고? 어처구니없겠지만 현실이 그렇다. 앞서 여러 사례를 들었듯이 한국에서 화투와 비교할 만한 대중놀이는 없다. 화투는 누구나 받아들이는 익숙한 민속놀이로 자리 잡게 된 것이다.

화투, 너 어디서 왔니?

그런데 어쩌다 화투가 우리네 놀이문화가 됐을까. 널리 알려진 대로 화투는 일본에서 건너온 놀이문화다. 100원, 500원, 1000원, 5000원, 1만원, 5만원 등 아무리 우리 돈(한국 지폐)을 판돈으로 내걸어봤자 이 역사는 바뀔 리 없다. 화투가 전통적 도박놀이인 투전(鬪牋· 우리말로 뜻을 풀이하면 '종이싸움', 비슷한 그림이 그려진 종이를 맞춰 점수를 내는 놀이방식)을 완전히 대체해 우리 일상에 뿌리내렸다는 불편한 사실만이 부각될 뿐이다.

화투의 한자를 풀이하자면 '꽃의 싸움(花鬪)'이다. 일본어로는 하나후다(花札·화찰)라고 하므로 화투란 용어 자체는 한국식이다. 그밖에 화투 패로 벌이는 '고스톱' '섯(섰)다' 등 다양한 놀이방식에도 일본과는 다른 규칙이 추가됐다. 일본과는 다른 나름의 규칙도 만들고 자리도 잡았으니 '자세한 역사는 신경 쓰지 말자'는 주장도 나올 수 있겠다.

하지만 화투는 하나후다의 '아류'에 불과하다. 위키피디아 일본어판에 하나후다를 검색하면 "화투는 조선 말기에 전래된 (일본의) 하나후다" "일본에서 (조선으로) 처음 전해진 제품은 (게임기로 유명한) 닌텐도의 하나후다라고 한다"는 설명이 나온다. 1950년대 들어 일본에서 인기를 잃은 하나후다, 이제 본고장에서 하나후다를 즐기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얄궂게도 일본에서는 쇠퇴한 하나후다가 옛 식민지인 한국 땅에서 기세를 떨치고 있는 것이다.

화투 패의 그림은 포르투갈에서 일본에 전래된 트럼프 카드놀이 '카루타'를 일본식으로 바꾼 것이다. 그래서 48장에 달하는 화투 패마다 일본의 정서가 가득 담겨있다. 에도(江戶) 막부는 1780~1790년대 카루타를 금지한 정책을 폈는데, 카루타를 즐기던 사람들은 트럼프 카드의 '왕' '여왕' '숫자' '스페이드' 등을 없애고 일본식 그림을 그려 넣어 하나후다로 만들었다. 1월부터 12월까지 각 계절에 맞는 그림을 맞춰 점수를 내는 방식으로 변화시킨 것이다.

(*한국 기준: 1월 소나무, 2월 매화, 3월 벚꽃, 4월 등(藤)나무, 5월 창포(菖蒲), 6월 모란(牡丹), 7월 싸리(萩), 8월 억새, 9월 국화, 10월 단풍, 11월 오동(桐), 12월 비(雨))

이를테면 흔히 한국에서 '똥'이라고 부르는 패는 오동의 발음이 변화한 것이다. '비광'으로 부르는 12월 패속에 그려진 사람은 일본 3대 서예가 중 한 사람인 귀족 오노 도후(小野道風)다. 김시덕 서울대 규장각 한국학연구소 교수에 따르면 히라가나 흘림체를 모방해 '청단' '홍단'이란 말이 한글로 적혀있는 '천 같은 것'은, 일본 전통 시가인 와카(和歌)를 적는 종이 탄자쿠(단책·短冊)를 의미한다.

9월의 국화는 천황가(일왕가)를 상징한다. 또 9월 화투의 10점짜리 패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목숨 수壽'가 새겨진 술잔이 눈에 띈다. 유독 이 10점짜리 패만 쌍 피(2장의 피)가 될 수도, 10점짜리 패로 남을 수 있는 특권이 있다. 이것은 왕이 백성의 목숨을 좌우하는 상황이 반영된 것이라고 한다. 11월 광(光)에 등장하는 '벼슬 달린 새'도 본래 일본 천황(일왕)을 상징하는 봉황인데 한국에선 그 의미가 닭으로 바뀌었다고.

화투가 유입된 건 조선시대 말엽으로 추정되지만 국민놀이가 된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1956년 10월 29일 경향신문은 "왜색화투는 정부시책에 의하야 말소폐지하고 그 대체로 미장특허 제323호 새화투"란 제목의 기사를 보도했다. 말로만 "왜색화투의 말소폐지"를 내건 이승만 정권이 전국적인 화투 보급에 지대한 역할을 한 것이다.

위 정책으로 화투는 공장에서 대량생산되는 플라스틱 재질로 바뀌었다. 그 결과 제작과정에 품이 많이 들고 종이를 여러 겹 겹쳐 내구성도 약한 일본의 하나후다는 한국의 튼튼한 '새 화투'로 거듭났다. 두견새를 비둘기로 바꾸고 검은 바탕을 빨간 바탕으로 바꾸면 왜색이 빠진다는 기적의 논리(?)에 할 말을 잃게 된다. 아니, 그렇다고 '비광'의 일본인 서예가 오노 도후(小野道風)가 우리민족이 된단 말인가.

이승만 정권은 반민족친일부역자 처벌을 명시한 반민특위를 무력화하고 친일 인사들을 대거 등용했다. '화투가 재밌으니 됐지'라고 그냥 넘기기에는 무척 찝찝하다. 어떤 이들은 일본이 한반도와 비슷한 기후와 문화를 공유하니까 별 문제 없다는 주장도 하는데, 놀이문화에는 그 지역에서 자라난 민족의 얼이 담겨있다. '트럼프를 자기식대로 바꾼 일본인의 창조적 얼'이 담긴 화투를 뜻도 모르고 무작정 즐기는 이 풍토는 단단히 잘못됐다.

놀이문화의 자주성 살려야

우리가 화투 하면 바로 떠올리고 즐기는 '고스톱'마저도 일본 야쿠자 문화에서 비롯됐다. 한국민속대백과사전에 따르면 1950년대 일본에서 개발된 '코이코이(こいこい)'란 놀이방식이 한국에 들어와 1970년대 중반에 일반화한 것으로 짐작된다.

다시 김시덕 교수에 따르면 이승만 정권의 새 화투 정책 이후에도 화투의 인기는 제한적이었다. 서울, 인천. 군산 등 한국 서북부 지역에서는 중국에서 건너온 마작이 인기를 끌고 있었다. 그러던 중 1980년대 들어 일본과 가까운 경상도 남부지역에서 유행하던 화투가 전국으로 퍼져 마작을 끌어내리고 1등 주자가 되었다고 한다.

화투판에서 벗어난 자주적인 공동체놀이문화, 스마트폰 화면에 푹 빠져있는 사람들을 현실로 불러들이기 위한 능동적인 협력의 놀이문화가 간절한 상황이다. 옛날과는 많이 바뀐 시대 상 '비석치기, 자치기, 윷놀이를 되살리자'만으로는 뾰족한 해답이 되지 않을 것이다.

이토록 왜색이 짙고 일왕을 상징하는 11월의 패(속칭 '똥광')를 얻으면 좋아하는 화투판은 그 자체로 일제의 잔재일 수밖에 없다. 일제강점기라는 치욕의 시공간을 공유한 한 민족끼리 '일본의 얼'이 담긴 패로 서로의 돈을 '따먹는' 황당함이라니. 이런 역사를 알게 된 이상 화투를 마냥 마음 편히 손에 쥘 수 없을 것이다.

더구나 당신의 집을 방문한 일본인 친구가 화투를 보고는 "저건 무슨 그림이야?"라고 묻는다면 어떻게 될까. 영락없이 "응. 저건 천황폐하를 상징하는 국화와 봉황이야"라고 대답할 꼴이다. 일본을 연신 비판하는 한국에서 이처럼 웃지 못할 광경이 되풀이되고 있는 현실을 우리 모두 무겁게 돌아봐야 한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주권연구소>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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