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이는 겨울에 오는 '진객'일까

냉이를 찾아서

등록 2019.02.13 13:30수정 2019.02.13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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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이 들에서 캐온 냉이를 깨끗이 씻었더니굵은 뿌리를 자랑한다. ⓒ 김은경

 초등학교였 때였을 것이다. 개학 후 얼마 되지 않아 음악시간에 "달래, 냉이, 씀바귀나물 캐오자 종달새도 높이 떠 노래 부른다"라는 가사의 노래를 배웠던 기억이 난다. 그 노래뿐인가. 봄을 알리는 수많은 시와 노래에서 냉이를 말했을 것이다.


새벽꿈에 냉이를 먹고 싶었고, '몸이 냉이를 부르는 구나'라고 여겨 밖에 나가 먹을 만큼 냉이를 캤다.

초무침을 했고 혼자 먹으려니 썰렁하다. 이럴 때는 마을 형님들을 부르면 된다. 막걸리가 자동으로 생기고 오히려 고맙다는 인사를 받는다.

시골 사람들은 목소리가 크다. 침도 잘 튀긴다.

한겨울에 냉이를 세 번은 먹어야 한다는 둥, 겨울철에 아주 좋은 비타민 공급원이라는 둥, 누구네 밭은 제초제 사용을 하지 않으니 그곳에 가면 냉이가 많다는 둥, 누구나 다 알고 작년에 하던 이야기들을 쳇바퀴 굴리듯 되풀이하며 짧은 겨울날 오후를 보낸다.

형님들이 돌아가고 나니 불현듯 냉이가 노래에도 시에도 나온 대로 봄나물 인가 라는 물음이 생겼다.


우선 이름부터 냉이는 '冷伊'라는 한자말 아닌가. 굳이 해석을 하자면 '차가움을 좋아하는 풀' 정도의 의미가 아닌가. 이 녀석은 봄 보다는 겨울의 진객 아닐까? 라는 생각으로 이어지고 한껏 냉이의 뿌리를 캐고 싶어진다.

제대로 기억나는 냉이와의 첫 만남은 냉이와 꽃다지가 어울려 피어난 봄날이었다. 하얀 꽃은 냉이이고 노란 꽃은 꽃다지라고 배웠다.

그 후로 시간이 훌쩍 지난다. 스물일곱 살이 되어 강원도 산골에서 직장생활을 하며 마을 분들과 상당히 친할 수 있었다. 어느 날 마을을 지나다 잘 아는 할머니들에게 부름을 받고 집으로 들어가니 냉이 무침을 해놓고 한 다리 끼어 먹자라는 고마운 말씀을 하신다.

거기에 덥석 주저앉으면 보통 아는 사람으로 끝난다. '그럼 어찌 해야 할까? 어찌하긴 뭘 어찌하나 이분들이 가장 원하는 게 뭔가를 알면 되지..' 눈치 빠르게 잠시 후 오겠다며 막걸리 서너 병을 사서 돌아갔고 그분들께 빈객대접을 받았다.
거기서 들은 이야기가 기억난다.

"가을 냉이는 문 닫아 놓고 먹는다." "가을 냉이는 샛서방에게만 준다." 오늘은 자네에게만 주는 것이니 자네가 우리의 샛서방이다. 주인 할멈은 어서 문을 닫아라. 등등의 이야기를 나누며 늦가을 토요일오후를 보낸 기억이 여전히 강렬하다.

늦가을에 냉이가 있느냐 묻는다면 그분은 주로 도시에서 살았던 분이고 시골 사람들 대부분은 가을 냉이를 잘 안다. 사실 냉이는 가을 냉이로 부터 겨울까지가 참 맛있다. 가을날 샛서방에게만 먹인다던 냉이는 한겨울을 맞이하면서 녹색 이파리를 보라색으로 바꾼다. 옅은 보라색이 점점 짙어진다. 사실 붉은색이지만 언뜻 보면 그리 보이는 것이다. 봄날 높은 산에 오르면 이파리가 녹색 아니고 불그스름하게 보이는데 같은 이치다. 몸 안에 있는 탄수화물이 지방질로 바뀌어 추위를 막으려는 생리작용이다. 맛이 최고조에 이른다.
 

냉이 꽃 자세히 보아야 보이는 냉이꽃 ⓒ 김은경

  

붉은 색의 겨울냉이 겨울냉이는 붉은 빛을띤다 ⓒ 김은경

 
이때 추운지역에서 자라는 녀석들은 이파리가 꾀죄죄한데 막상 캐보면 풍성하고 듬직한 뿌리를 자랑한다.

강원도 사람들은 냉이를 뿌리채소로 여기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통통하다. 작은 이파리에 커다란 뿌리를 가진 녀석에 콩가루를 묻혀 끓여 한겨울 별미라며 먹던 기억이 눈에 선하다. 농작물을 제대로 키우면 단맛이 난다. 무도 달고 배추도 달다. 호박도 달다 시금치도 달다. 역시 한겨울 콩가루 묻혀 끓인 냉이국은 유난히 달고 구수했다. 서울 청과물시장에서 강원도 북부지역에서 생산되는 냉이가 가장 비싼 값에 팔린다는데 충분히 그럴 수 있다 여겨진다.

남쪽에서는 강원도에 비해 아무래도 뿌리 보다는 지상부가 많다. 한포기 덩치도 크다. 그러다 보니 냉이 요리는 주로 초무침이었다. 물론 국도 먹지만 많은 양을 채취 했을 땐 노인들을 위한 국거리 일부를 남기고 나머지는 초무침을 해먹곤 했다.

단맛을 그득 품고 있으니 당연히 설탕은 필요 없다. 파와 마늘 소금 고춧가루 깨소금에 식초만 넣음 그만이다 그래도 유독 단맛을 즐기는 사람이라면 자기 입맛대로 하면 된다. 조선시대 에는 밥을 지을 때 넣기도 했다한다.

지금이야 겨울에도 푸른 채소가 그득 하지만 비닐이 나오기 전까지 참으로 고마운 비타민 공급원이었고 맛도 훌륭하고 요리법도 많아 칭송받아 마땅한 나물이었음은 두말할 필요 없었을 것이다.

길고 긴 겨울을 지나 온도가 제법 오르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냉이는 조직이 질겨지고 초무침을 해먹지 못한다. 국이나 끓이고 만다.

어머니 말씀은 어린 쑥이 나오면 냉이를 먹지 않는다 하셨다. 이제 사람들 관심에서 멀어진 냉이는 공포로부터 해방이다. 마음껏 자라 꽃을 피운다.

종달새는 냉이 꽃이 한창 피어날 때 어디선가 불쑥 나타나 공중을 수직으로 오르내리곤 했었다. 그 많던 녀석들이 어디로 갔는지 지금은 어쩌다 한두 마리씩만 보여 안타깝다. 

냉이 꽃을 자세히 살피면 열십자 모양으로 생겼는데 배추 무 유채 등등과 친척을 이루며 식물학상 십자화과로 분류된다. 십자화과 식물 대부분은 호 냉성 식물이고 자연계에서는 가을에 싹이 터 겨울을 지내고, 봄에 꽃이 피어 결실하는 과정으로 일생이 진행되는 겨울 풀이다.

우리가 8월에 가을배추를 심어 키우기 시작하는데 냉이도 빠른 녀석들은 그때부터 발아한다. 다만 사람들이 키우는 가을배추가 일률적으로 싹트고 자란다면 자연계에서 크는 냉이들은 그때부터 아주 늦으면 이듬해 봄까지 아주 넓은 시간대에서 싹을 틔운다. 당연히 천태만상으로 자란다.

8월에 발아한 냉이는 어느만큼 자라 11월에 꽃을 피운다. 그 후로 이듬해 3ㅡ4월까지 늦게 발아한 녀석들 순서대로 꽃을 피우고 한겨울에 꽃을 피웠던 녀석들은 다른 꽃대를 내밀어 다시 봄맞이를 한다. 어찌 보면 겨우 내내 꽃을 피우니 이건 빠른지 늦은지 모를 일이다.

다만 너무 작아 눈에 잘 뜨이지도 않으니 꽃이라 인정받지 못하는 거고 벌, 나비 없는 계절이라 수분 수정되지 않으니 꽃이라 부르기 민망 하지만 암술과 수술 꽃잎을 제대로 갖춘 꽃 모양은 정확하다.

제대로 된 냉이 꽃은 3ㅡ4월에 피고 5월이면 씨가 익는다. 그때 꼬투리 째 한주먹 훑어 밭 귀퉁이에 뿌려 놓으면 언제 싹 텄는지 모르지만 여하튼 겨우 내내 냉이를 먹을 수 있다. 세상에서 가장 쉬운 농사법이다.

이제 냉이의 계절이 점점 지난다. 늦기 전에 한번쯤 밖에 나가보자. 조금만 신경 써 관찰하면 저녁밥상에 별미가 오르리라.
 

냉이 된장국 강원도 냉이국 처럼 콩가루를 묻히지는 않았지만 아주 향긋하고 맛있는 냉이 된장국 ⓒ 김은경

 
#냉이 #십자화과 #봄나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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