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세상을 떠났지만 '김용균법'은 남았다

[어느 죽음이 남긴 것] 산업현장서 원청 안전 책임 강화, 김씨 동료들은 정규직화 길 열려

등록 2019.02.09 20:30수정 2019.02.09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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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오후 성울 종로구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빈소에 충남 태안화력에서 나홀로 근무하다가 숨진 고 김용균씨의 장례가 사고 58일 만에 민주시민장으로 치러지고 있다. ⓒ 유성호

 
좀 더 일찍 바뀌었어야 했다. 24살 하청노동자 김용균씨의 사망을 계기로, 철옹성 같았던 죽음의 외주화 구조가 개선됐고, 비정규직이던 김씨 동료들은 정규직 노동자가 될 수 있는 길이 열리고 있다.

정부는 지난달 2일 산업안전보건법(아래 산안법) 전부 개정안을 발표했다. 30여 년 만에야 개정된 산업안전보건법(아래 산안법) 전부 개정안의 핵심은 원청업체의 안전 관리 책임을 강화한 것이다.

김씨가 사망한 서부발전 저탄장(석탄 하역 후 거치는 시설)은 종전까진 원청의 안전 보건 조치 의무가 없었던 작업장이었다. 기존 산안법은 원청업체가 안전 보건 조치를 취해야 할 장소를 22개 위험 장소로만 제한했는데, 저탄장은 여기에 포함되지 않는다.

숨진 김씨의 경우 겨우 3일 가량의 안전 교육만 받은 채 바로 현장에 투입된 것으로 알려졌다. 김씨의 사망사고가 발생하자, 현장 하청 노동자를 중심으로 "원청인 서부발전이 책임지고 설비를 개선한다면 위험을 훨씬 줄일 수 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3일 안전교육으로 끝? 제대로 안하면 '엄벌'

이번 개정안에 따라 원청업체는 원청사업장 모든 지역에서 안전보건 조치를 취해야 한다. 아울러 원청이 지정한 장소 중 원청이 관리 가능한 장소도 원청의 안전보건 조치가 의무화됐다.

원청이 안전조치를 소홀히 할 경우 처벌 수준도 한층 세졌다. 안전조치 미이행시 원청은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의 벌금(기존에는 1년 이하 징역, 1000만 원 이하 벌금)을 물게 된다.


안전 의무 소홀로 사망 사고가 발생하면 원청도 해당 사업주(하청)와 같이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 원 이하의 벌금을 물게 된다.

법의 보호를 받는 대상자도 확대했다. 산업안전법의 목적 중 '근로자'를 '노무를 제공하는 자'로 개정했다. 이렇게 되면, 배달원과 특수형태근로종사자 등 근로자 범위에 포함되지 않던 노동자들도 산업안전보건법의 보호를 받는 대상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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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김용균 노제 운구행렬 태안화력발전소에서 나홀로 근무하다가 사고로 숨진 고 김용균씨의 운구행렬이 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광장을 지나 영결식이 거행되는 광화문광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 유성호

 
원청업체가 위험한 작업을 하청업체에 떠넘기는 '위험의 외주화'도 일정 부분 제한한다. 실제로 지난 5년간 한전의 전체 재해자 중 하청업체노동자는 95.7%, 서부발전 역시 95.5%가 하청업체 소속 노동자로 조사되기도 했다.

특히 지난 2011년부터 2018년까지 서부발전에서 사망한 노동자 13명은 전부 하청업체 소속노동자였다.

'위험의 외주화'에 선을 긋다

개정안은 위험한 작업의 경우, 사내 도급을 금지하거나, 정부의 허가를 받도록 했다.

우선 도금작업과 수은·납·카드뮴의 제련, 주입 등을 하는 작업은 사내 도급을 금지한다. 급성 독성, 피부 부식성 등이 있는 물질을 취급하는 작업은 원청이 고용노동부 장관의 승인을 받아야 도급을 줄 수 있다.

비정규직이었던 김용균씨의 동료들은 '정규직 전환'의 길이 열렸다.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5일 '김용균씨 사망 사고 관련 후속대책' 당정회의에서 위험 작업을 수행하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정규직 고용에 합의했다.

합의안에 따라 한국전력 산하 남동·남부·동서·서부·중부 등 5개 화력발전사는 공동으로 위험업무인 연료·환경설비 운전 분야를 전담하는 공공기관을 설립하기로 한다.

새롭게 설립되는 이 공공기관은 해당업무를 해 온 민간 용역업체 소속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정규직으로 고용하게 된다.

김씨의 동료들도 정규직 고용 대상에 포함된다. 위험의 외주화가 없어지고, 하청 비정규직 노동자가 정규직의 꿈을 이루는 세상. 김씨가 생전에 간절히 바랐던 세상의 변화는 너무 늦게 이뤄졌다.
#김용균 #하청업체 #비정규직 #외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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