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완 자전거 일주 첫 단계, 자전거 '분해'

[서른살 여자, 혼자 떠난 타이완 자전거 일주 5] 이제 가는 일만 남았다

등록 2019.02.13 17:47수정 2019.02.13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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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 온 데는 두 가지 용무가 있었다. 하나는 인천공항으로 가 비행기를 타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그전에 자전거 여행 수업을 받는 것이었다.

나는 자전거를 탈 줄만 알지 다룰 줄은 몰랐다. 빠진 체인을 제자리에 거는 것도 자전거 탄 지 2년이 지나서야 겨우 할 줄 알았다. 펑크 난 튜브를 새 것으로 갈아 끼우는 데는 5분이면 될 것을 세 시간이 걸렸다.


이런 상태로 자전거 여행을 떠날 수는 없었다. 자전거를 분리해서 박스에 포장한 것을 비행기에 싣는 것부터 도착 후 그 포장을 다시 풀어 조립하기까지의 과정. 도중에 발생할 수 있는 펑크나 다른 각종 문제들에 관한 지식 습득과 대비와 연습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바이클리'에서 이틀 과정으로 앞에 열거한 사항들을 포함한 자전거 여행 전반에 관한 수업을 받을 수 있었다. 유튜브나 서적을 참고하여 혼자 공부해도 되지만, 다른 자전거 여행자들은 어떻게 준비를 하는지 궁금하기도 해서 수업을 신청했다.

수업에 모인 사람들은 알래스카, 파미르 고원, 유라시아 횡단, 미국 횡단, 세계일주 등 갖가지 무시무시한 루트들을 자전거로 달리려는 사람들이었다. 이론 수업을 시작으로 핸들과 페달과 바퀴를 분해해보는 수업이 이어졌다. 어떻게 하면 자전거를 최대한 다치지 않게 포장하는지, 체인이 끊어졌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다양한 실습 시간도 있었다. 모르는 걸 서로 묻고 살피느라 사람들과도 금세 말문이 트였다.

"왜 꼭 자전거 여행인가요?"

수업에서 강조한 것이 하나 있었다. 왜 꼭 자전거 여행이어야 하는가. 그에 대한 자기만의 대답을 가지고 있으라고 했다. 자전거 여행을 하다 보면 힘들고 지치고 슬럼프에 빠질 때가 오기 마련인데, 그때 그 대답이 슬럼프를 지나 보내는 데 큰 힘이 될 수 있을 거라 했다.


나는 퍼뜩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자전거 타는 것을 좋아하고, 직장을 나오는 바람에 시간이 많아서. 이게 다였다. 단순했다. 자전거가 없다면 계단을 만날 때마다 짐과 자전거를 어깨에 메고 낑낑거리지 않아도 된다. 펑크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 혹시나 버스나 기차라도 타게 되면 자전거 몫까지 표를 두 장 사지 않아도 된다.

자전거가 없으면 이렇게 편리한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왜 자전거 여행을 가려고 하는 것일까. 되물어보아도 뾰족한 것이 떠오르지 않았다. 분명한 건, 자전거가 아니었다면 나는 여전히 방 안에 누워 뒹굴거리고 있었을 거라는 점이다.

걸어 다니는 것도 귀찮고 여행도 별로 해본 적이 없어 그다지 재미를 느끼지 못하는 나였다. 방 안에 있는 것이 최고의 휴식인 줄로만 알았다. 방에서 쉬는 게 최고의 휴식인 것이 맞긴 하지만, 그래도 어딘가 나가고 싶을 때 자전거가 그 갈증을 풀어주었다. 나를 밖으로 향하게 하는 발이 되어주었다. 자전거에 오르면 걷는 것보다 조금 빠르고, 조금 덜 피곤했다. 머리 위로 드리우는 햇살 혹은 그림자, 길에서 풍겨오는 내음을 시시각각 맡을 수 있었다. 집 밖에서의 즐거움을 일깨워준 것. 그것이 자전거였다.

마지막 수업에는 자전거를 가지고 한강으로 나갔다. 일종의 교정 라이딩이었다. 장기간 자전거를 타는 여행자들에게, 잘못된 피팅이나 페달링은 피로 누적과 부상의 원인이 될 수도 있었다. 이를 미연에 방지하고자 자세와 안장 높이 같은 것을 체크하는 시간이었다.

마지막 라이딩까지 마치고 나니 이제 정말 가는 일만 남았다는 게 실감이 났다. 국내 여행과 사전 수업까지, 어디로 떠나기 위해 이토록 공들여 준비한 적이 없었다. 그만큼 자전거 여행이라는 걸 무서워하고 어려워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가고 싶었다. 쉽지 않은 것에 도전하는 것. 자전거 여행은 두려움과 설렘이 공존하는 일이라는 점에서, 오랫동안 직장 안에 머물러 있던 나를 자극해온 걸지도 모르겠다.

차곡차곡 준비과정을 거치는 동안 자전거에 대해서, 자전거를 타는 나에 대해서, 한 번쯤 깊이 생각해볼 수 있었다. 정리된 건 하나도 없지만, 어서 떠나고 싶다는 마음 만큼은 최고조로 달하고 있었다.
 

자전거 여행자 수업 중 ⓒ 이보미

#타이완일주 #자전거여행 #대만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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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을 쓰고 글을 쓴다. 자전거를 타고 춤을 추고 여행을 하는 사람. 글을 쓰고 있을 때 비로소 사람이 된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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