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엄마를 왜 쓰냐'는 회사... 그래서 직접 창업했다

[페미니스트도 결혼하나요? ⑫] 경단녀 엄마의 스타트업 도전기

등록 2019.02.17 12:13수정 2019.02.21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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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은 우리 사회 곳곳에서 여성들의 목소리를 끌어냈지만, 어쩐지 결혼한 여성들의 목소리는 여전히 잘 들리지 않습니다. 엄마 페미니즘 탐구모임 '부너미'에서 결혼한 여성들을 위한 새로운 고민과 질문을 나눕니다.[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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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서적 폭력을 견디지 못하고 퇴사를 하니 나는 '경력단절여성'이 됐다. 견디면 '독한 년'이고 견디지 못하면 '못난 년'이 되는 세상, 나는 '못난 년'을 선택했다. (사진은 tvN 드라마 <로맨스는 별책부록> 스틸컷) ⓒ tvN


인턴을 다섯 번이나 하고서야 겨우 정규직이 됐다. '정규직'이라는 이름 앞에서 나는 겨우 숨을 돌렸다. 그렇게 안전한 세상이 오는가 싶더니, 아차! 임신을 했다. 
  
너무 뻔한 이야기다. 힘들게 스펙 쌓아 회사에 입사했건만, 임신을 했다는 이유로 회사에서 눈총을 받았다. '네 인생은 이제 끝이야. 애엄마를 회사가 왜 쓰냐'라는 말을 축하 인사보다 먼저 마주해야 했다. 여자가 다니기 좋은 회사와 직업을 선택하지 않은 나의 잘못이었을까? 임신이 죄인 걸까? 여자인 게 죄인 걸까? 

정서적 폭력을 견디지 못하고 퇴사를 하니 나는 '경력단절여성'이 됐다. 견디면 '독한 년'이고 견디지 못하면 '못난 년'이 되는 세상, 나는 '못난 년'을 선택했다.


회사에 간 남편을 기다리며 집에서 아이를 돌보고 있으면 사회와 동떨어진 삶을 사는 듯했다. 하루 종일 하는 말이 정해져 있고, 부르는 이름도 하나밖에 없는 삶. '이러려고 대학 나오고 열심히 산 게 아닌데'라는 생각이 머리를 서늘하게 스치곤 했다.

상승곡선처럼 자라나는 아이에 비해, 내 인생은 하향곡선으로 계속 떨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재취업, 재교육을 찾아 인터넷을 뒤져봤지만, 경력단절여성을 위한 자리를 찾기란, 이전 경력에 맞는 일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다시 꿈꿀 수 있을까?

나는 자라오면서 '전업주부'를 본 적이 없다. 엄마부터 이모까지, 나의 주변에 있는 여자들은 모두 밖에 나가 돈을 벌었다. 그걸로 집을 사고 가정을 이끌었다. 남편과 비슷한 수준 혹은 그 이상의 수입이 저마다 있었다. 그들을 보며 자라난 나에게 일이란 꿈의 발전적인 형태 그 이상, 곧 삶의 근간이 되는 행위였다. 그 근간을 잃어 버리니 나의 존재가 무가치하게 느껴져서 견딜 수 없었다.

아이가 생후 6개월이 됐을 때, 나는 창업교육을 듣기로 했다. 기존 회사 시스템에선 언제나 뒤처지는 존재니, 아예 나에게 맞는 회사를 만들어 보자는 생각이었다.


마침 '아이돌보미'가 상주하는 창업교육을 찾았다. 기저귀와 노트북을 챙기고, 아기띠를 두르고 교육을 받으러 갔다. 같은 공간에서 아이와 함께 교육을 들으니 나도, 아이도 어렵지 않게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물론 잠투정을 하거나 떨어지기 싫어하면 안아가며, 업어가며 수업을 들었다.

창업교육의 하이라이트는 사업계획 및 구상 발표다. 오랜만에 식탁에 노트북을 올려두고 발표 준비를 시작했다. 아이를 아기띠로 안고 재우며 자료를 찾고 문서를 작성했다. 아이가 깨면 행여 말썽을 일으킬까 봐 저장 버튼을 누르고 잽싸게 노트북을 닫았다. '다시 일할 수 있을까?'라는 의심과 다르게, 머리는 잘만 돌아갔다. 아이를 돌보면서도 발표 생각이 멈추지 않았다. 그렇게 일주일 내내, 식탁에 노트북을 올려두고 시간 나는 대로 발표 자료를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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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발표 당일, 발표 직전까지 아이를 안고 있다가 도우미에게 아이를 넘기고 단상으로 올랐다. ⓒ unsplash

 
드디어 발표 당일, 발표 직전까지 아이를 안고 있다가 도우미에게 아이를 넘기고 단상으로 올랐다. 어깨는 펴고, 허리는 곧게. 아이를 키우느라 굽어진 몸을 더 늘여본다. 발표가 시작됐다. 아이는 스피커를 통해 울려 퍼지는 엄마의 목소리가 의아한지, 도우미에게 안겨 나를 멀뚱히 바라보고 있다. 제발 울지 않기를, 5분만 기다려주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발표를 마쳤다. 내 인생은 애를 낳았단 이유로 끝나지 않았다. 이렇게, 하면 된다.

일은 일류, 육아는 이류, 가사는 삼류

다시 일을 하게 됐다. 그런데 그만큼 아이를 돌보는 일에도 소홀해선 안 됐다. 집안 살림도 잘 챙겨야 했다. 그게 '워킹맘'의 자격조건인 양 나를 압박했다. 스타트업을 차려 회사를 운영해도 나는 엄마를 둘러싼 압박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나는 최선을 다해 일-육아-가사를 챙기기 시작했다. 새벽 5시에 일어나 일을 하고 아침을 차렸다. 점심은 김밥 한 줄을 사서 걸어다니며 때웠고, 아낀 시간을 집안일에 투자했다. 오후 4시가 되면 하원 하는 아이를 데리고 공원에 가서 놀아줬다. 그렇게 1년을 사니 툭하면 병원에 가서 링거를 맞을 정도로 몸이 상했다. 급한 마음에 아이를 업고 뛰는 일이 잦아졌더니 무릎 인대가 망가져 물리치료를 받아야 했다.

이대로는 오래 갈 수 없었다. 세 가지 모두 '보통'의 성적 이상을 받기 위해 애쓰지 말자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못함'이라는 평가를 받아도 괜찮은 영역과 '매우 잘함'이라는 평가를 받아야만 하는 영역을 나누기로 했다. 한정된 시간과 예산이라는 현실 앞에서, 이 사회가 원하는 엄마의 삶이 아닌 내가 원하는 삶을 기준으로 순위를 결정했다.

'일'은 일류로 해내고 싶었다. 일에 있어서는 물러서지 않기로 했다. 물론 아이를 키우며 일도 잘하는 건 어려운 일이다. 새벽에 일어나 일을 하거나 글을 쓰는 식으로 삶의 패턴을 바꿨다. 저녁에 좋은 강의가 있으면 남편에게 부탁해 들으러 갔다. 아니면 아예 시간제 베이비시터의 도움을 받아서 아이와 함께 가기도 했다. 목적에 맞춰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네트워킹 행사에도 정기적으로 참석했다. '매우 잘함'이라는 평가를 받기 위해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했다.

그다음은 '아이를 키우는 일'. 육아를 잘한다는 건 무슨 뜻일지부터 고민해야 했다. 이를테면 아이의 교육 수준을 높이는 것인지, 아니면 아이와 좋은 관계를 맺는 것인지. 우리 부부는 후자를 육아의 목표와 평가의 대상으로 삼았다. 일이 끝나면 최대한 스마트폰을 멀리 두고 아이에게 집중하며 함께 놀았다. 주말엔 가족끼리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우리 부부만 양육자로 애쓰기보다, 어린이집, 시간제 베이비시터, 주변 어른들과 함께 아이를 돌보려 했다.

마지막은 '가사노동'. 육아에는 '그래도 잘해야지'라는 태도를 취했다면, 가사에는 잘하겠다는 의지 자체를 갖지 않기로 했다. 아이의 건강을 위해 애쓸 부분을 제외하고는 '현상 유지'를 목표로 삼았다. 건조기, 식기세척기, 무선청소기를 사서 최대한 가사노동을 빠르게 처리했다. 또한 주 1~2회 정도 가사도우미가 오셔서 어지러운 집을 치워주셨다. 차라리 다른 부분에서 비용을 아끼고 집안일에는 신경 쓰지 않는 방향으로 정했다. 많이 바라지 않는다. 적당히 깨끗하면 된다.

이렇게 우선순위와 목표를 설정하고서야, 나는 일에 제대로 집중할 수 있게 됐다.

'엄마'라서가 아니라 '나'라서 꾸는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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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터에서 애가 노는 걸 보면서 간간이 메일을 확인하는 게 그다지 서글프지 않다. 굳이 재즈나 클래식을 틀어놓지 않고 동요가 흘러나오는 장소에서도 일은 된다. 이렇게 해서라도 나를 잃지 않는다면 그렇게 하겠다. 내가 '선택한' 불행은 가족, 사회, 국가가 '쥐여준' 행복보다 중요하다. ⓒ unsplash

 
엄마가 일할 수 있는 시스템을 회사와 가정 내에서 만들어나가고자 애쓰지만, 늘 빈틈은 존재한다. 그 틈은 '죄송하다'는 말로 메우고 있다. 아이를 늦게 찾으러 가서 죄송합니다. 아이가 아파 미팅 시간을 변경해야 해서, 또는 일정을 취소해야 해서 죄송합니다. 아이가 어린이집 방학이라 저는 먼저 가 봐야 합니다, 죄송합니다. 아이를 데리고 참석해도 되나요? 아이를 맡아줄 사람이 없어서요, 죄송합니다. 

가끔 '내가 일하는 게 죄인 건가?'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누구에게 짓는 죄인가? 상대방? 아이? 우리 가족? 아님 나?

아이의 성적과 남편의 성취를 위해 '내조'하며 사는 삶이야말로 한국 사회가 엄마에게 바라는 과업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엄마에게 '보조자' 역할을 바라는 세상에서 '나'를 찾으면 찾을수록 길이 더 복잡해지는 기분이다. 

그럴 때마다, 엄마가 아닌 나를 중심으로 상상해 보곤 한다. 며느리, 딸, 더 나아가 여자도 아닌 나는 어떤 선택을 내릴까? 이 상상이 어려울 때는 간단히 '내가 남자라면, 혹은 남편이라면'이라고 가정해 본다.

현실은 녹록지 않다. 과감하게 지른 목표는 어느 순간 대폭 수정된다. '애가 중학생 정도는 돼야 한다'며 미루기도 하고, 올해는 여기까지만 해도 충분하다고 꼬리를 내린다.

그래도 끝까지 나를 지키기 위해 방법을 찾고, 대안을 마련하고, 틈을 메우기 위해 애쓰고 싶다. 엄마라는 굴레에서 벗어나 조금이나마 주도적인 삶을 느껴보니 이전의 삶으로는 돌아가고 싶지 않다. 인생의 주인인 기분. 두렵고 무섭지만, 그래도 죽지는 않고 살아 있으니 계속 가볼까 하는 그런 기분.

놀이터에서 애가 노는 걸 보면서 간간이 메일을 확인하는 게 그다지 서글프지 않다. 굳이 재즈나 클래식을 틀어놓지 않고 동요가 흘러나오는 장소에서도 일은 된다. 이렇게 해서라도 나를 잃지 않는다면 그렇게 하겠다. 내가 '선택한' 불행은 가족, 사회, 국가가 '쥐여준' 행복보다 중요하다.
덧붙이는 글 책 <페미니스트도 결혼하나요?> 펀딩이 2월 18일까지 텀블벅에서 진행됩니다. 많은 관심과 응원 부탁드립니다.
#경력단절여성 #엄마들의글쓰기 #엄마페미니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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