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19주년 기획/ 국공립의 배신] 이순자씨는 왜 그때 거기서 삽질 했을까

① 그 출발... 전두환 시대가 만든 '무늬만 국공립'

등록 2019.02.18 07:47수정 2019.02.18 0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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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2대 1. 2016년 서울시 국공립 어린이집 평균 경쟁률입니다. 국공립 어린이집 입소가 바늘구멍 통과하기에 비유되니 '로또 보육'이란 말까지 나옵니다. 국공립 어린이집이 더 나은 보육을 제공할 거란 기대가 반영된 현상입니다. 그런데 또 한 편에서는 "일부 국공립은 원장의 소왕국"이라고, "무조건 믿고 아이를 맡기지 말라"는 말도 나옵니다. 이 간극은 어디에서 비롯된 걸까요? 왜 일부 국공립은 학부모들의 믿음을 배신하는 걸까요? <오마이뉴스>가 그 이면을 추적했습니다. 앞으로 매일 12회에 걸쳐 여러분을 찾아갑니다.[편집자말]
"한유총 해체하고 어린이집·유치원 통합 국공립 설립하라."

사립 유치원 비리로 한참 뜨거웠던 지난 가을, 청와대 게시판에는 국민 청원이 줄을 이었다. "전국 어린이집·유치원 모두 없애고, 국공립 어린이집을 확대하자"거나 "전국 어린이집 모두 없애고 국공립으로 통합하자" 등의 제안이 쏟아졌다. 민간이 운영하는 사립 유치원이 학부모 지원금으로 명품백과 성인용품 등을 샀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그 대안으로 '국공립 어린이집'이 더욱 주목받은 것이다.

청원대로, 국공립 어린이집으로 전환된다면 비리는 사라질까? 국공립 어린이집이 주요 대안이 될 수 있을까?

그 답의 단초를 찾기 위해서는 1980년대로 돌아가야 한다. '국공립 통합'과 비슷한 일이 1980년대 초반 전두환 시대에 실제 있었기 때문이다. 전국의 어린이집, 농번기 탁아소, 민간 유아원 등이 하나의 기관으로 통합됐다. 이름하여 '새마을 유아원'이었다. 이 일에 앞장섰던 이가 바로 대통령 부인, 이순자씨다. 그 시작을 1980년 11월 15일자 <경향신문>은 이런 제목으로 전하고 있다.

"이순자 여사, 어린이집 기공 삽질"

지금도 남아 있는 전두환 시대의 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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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11월 14일이었다. 전두환 전 대통령 부인 이순자씨가 강원도 춘천시 소재 ○○어린이집 기공식에 참석했던 당시 모습. ⓒ 국가기록원

 
1980년 11월 14일, 그의 남편이 11대 대통령에 취임한 지 두 달하고도 보름이 된 날이었다. 이순자씨는 춘천을 찾아 ○○어린이집 기공식에 참석했다. 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를 통해 확인한 바에 따르면, 이씨가 1980년 11월부터 약 1년 동안 어린이집 기공식 또는 개원식에 모습을 드러낸 횟수는 18차례에 이른다.

'삽질'의 의미는 1982년 12월에 드러났다. 전두환 정부는 유아교육진흥법을 제정·공포했다. 이에 근거하여 내무부는 총 1374개소에 이르는 탁아 시설들을 새마을유아원으로 모두 합쳤다. 그 규모는 크게 불어났다. 유아교육진흥법 공포 2년여 후인 1984년 9월 <중앙일보> 보도를 보면, 새세대육영회 주관 '새마을유아원 세미나'에서 발표된 숫자는 2328개소에 이르렀다.


그 숫자 중에는 세금으로 새로 건물을 지은 경우도 적지 않았다. 이씨가 기공식 등 행사에 모습을 나타낸 경우가 그런 사례다. 40년 전 새로 지은 그 어린이집이 지금의 국공립 어린이집인 경우도 다수 확인됐다. 당시 보도에 나온 새마을유아원 주소와 '유치원 알리미'에 있는 어린이집 등록 정보를 비교해 봤다. 서울 강북·관악·금천·노원·동대문·동작·마포·성동·성북·송파·종로 등에 위치한 국공립 어린이집 25개소의 뿌리가 새마을유아원'이었다.

서울 지역에만 국한된 현상은 물론 아니었다. 앞서 이순자씨가 삽질한 춘천 ○○어린이집이 그 예다. 전두환·이순자 부부가 1983년 4월 개원식에 참석했던 경북 문경의 대성새마을유아원 역시 현재 시가 관리하는 국공립이다.

이런 식으로 전두환 시대(1980년 9월 취임~1988년 2월 퇴임, 11대·12대 대통령)에 만들어진 국공립 어린이집은 지금도 적지 않은 것으로 추정된다. 2012년 517개소 국공립 원장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1990년 이전에 개원한 어린이집은 23.6%(육아정책연구소 '국공립 어린이집 설치·운영 현황 분석 및 개선방안 연구보고') 로 가장 많았다.

일부 새마을유아원 "선거 때 열심히 했던 분들에게 한 자리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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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남편이 대통령에 취임하고 이순자씨는 보육 분야에 가장 먼저 손을 댔다. 상단 왼쪽 사진부터 시계 방향으로 ▲1981년 11월 24일 인천 새마을협동유아원 개원식 모습 ▲1982년 3월 4일 춘천 쌍용 새마을유아원 개원식 모습 ▲1985년 11월 5일 구로공단 새마을유아원 개원식 모습 그리고 ▲1983년 4월 14일 열린 대성 새마을유아원 개원식에 참석한 전두환 당시 대통령 모습. ⓒ 경향·매경 네이버뉴스라이브러리

 
"한국의 국공립 보육시설은 무늬만 국공립이다. 지자체가 보육시설을 건립(또는 매입)하고, 이를 민간단체에 위탁하는 아웃소싱 방식이다. 이런 방식은 북유럽 복지국가 등 서구 복지국가에서는 '민영화'라고 불리는 방식이다. (중략) 아이러니하게도 한국에서는 서구의 민영화 방식을 공공성을 강화하는 공영화 방식으로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윤홍식 인하대학교 행정학과 교수, 2014년 보육 공공성 강화 토론회에서)

민간에 운영을 위탁하는 현재의 국공립 어린이집 모델 역시 이 때 국가적으로 도입됐다.

1983년 3월 10일자 <경향신문>은 서울시의 새마을유아원 건립 계획을 전하면서 "운영은 각종 사회단체나 기업체, 법인 등이 맡게 된다"고 보도했다. 일부의 경우는 새마을운동 조직에도 맡겼다. 앞서 <경향신문>은 1981년 2월 보도에서 시범새마을협동유아원 설치 소식과 함께 "구·동 새마을부녀회가 운영을 맡는다"고 했으며, 1982년 11월에는 "홍제동에 7400만 원을 들여 건립된 이 유아원은 새마을지도자협의회에서 운영하게 된다"고도 전했다.

새마을 운동 조직에 운영을 맡겼을 뿐 아니라 '시혜성'으로 원장 자리를 나눠줬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1981년 2월 5일자 <매일경제>는 "내무부는 전국 새마을 조직을 활용, 새마을 유아원을 설치하고 중졸 이상의 학력을 가진 무자격자들에게 유아 교육을 맡기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1980년대 빈민 지역에서 탁아 운동을 활발히 펼쳤던 이명숙 전 지역탁아소연합회 부회장은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새마을부녀회 등에서 선거 때 열심히 한 분들에게 (새마을유아원 원장) 자리를 하나씩 주는 경우가 있었다"고 전했다. 보육 철학이나 전문 지식이 부족한 사람들에게 '보육 사업권'을 보상 차원에서 내줬다는 설명이다.

세금으로 시설을 짓고 운영은 민간에게 위탁하는 이런 모델은 지금까지 고스란히 이어지고 있다. 전체 국공립 어린이집의 97% 이상이 '위탁'이다. 남인순 의원(더불어민주당, 송파구병) 자료에 따르면, 2016년 12월 기준 전국 3034개 국공립 중 시군구가 직접 운영하는 경우는 84개소(2.8%)뿐이다. 학교법인(4.6%), 종교법인(14.1%), 사회복지법인(14.6%) 그리고 개인 위탁이 55.7%에 이른다.

이순자가 첫 삽을 떴던 그 도시에서는 지금 왜? 

1980년 11월, 이순자씨가 기공식에 참석했던 ○○어린이집 역시 현재 개인 위탁이다. 현재 춘천 국공립 어린이집 13개소는 모두 위탁이다. 이 중 12개소가 원장 개인에 맡겨져 있다.

그런데 최근 2년 새 12곳 가운데 4곳에서 각종 문제가 우후죽순처럼 불거졌다. 개원 1년도 되지 않아 보육교사 9명이 이탈한 어린이집이 있다. 시간 외 근로수당 미지급과 부당 노동행위 등으로 원장이 노동청에 고발 당한 곳도 있다. 부당 수납 때문에 부당이득 환수 조치를 받은 원장이 재위탁을 받은 경우도 있었고, 부실급식 논란으로 학부모들이 원장 해임을 요구하는 일도 발생했다. '무늬만 국공립'의 부작용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원장 개인의 사유재산처럼 운영되는 어린이집, 전두환 시대에 싹튼 이 부작용에서 왜 여전히 자유롭지 못할까. 이순자씨가 국공립 어린이집의 첫 삽을 떴던 '교육의 도시' 춘천을 통해 자세히 들여다봤다.
#이순자 #전두환 #새마을유아원 #어린이집 #국공립어린이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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