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여자근로정신대를 위해 싸운 일본의 '바보들'

진실 규명을 위해 싸운 일본인들의 모습 담은 <나고야의 바보들> 임용철 감독 인터뷰

등록 2019.02.12 15:00수정 2019.02.12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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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대한독립만세운동의 100주년을 맞이한 올해, 역사적으로 의미가 깊은 다큐멘터리 <나고야의 바보들>이 유튜브와 뉴스타파를 통해 상영되고 있다. 이 다큐멘터리는 조선여자근로정신대의 한 맺힌 투쟁을 10년 넘게 기록한 영상으로, 임용철 감독이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만든 작품이다. 

다큐멘터리의 내용을 토대로 조선여자근로정신대에 관련한 역사를 시대순으로 요약, 재구성해 되짚어봤다. 또, 지난 11일 이메일을 통해 임용철 감독과 다큐멘터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일본 제국주의가 수세에 몰리기 시작하던 1940년대 일본은 기울어지는 전세를 만회하기 위해 조선 수탈을 더욱 강화하기 시작했다. 1938년 국가총동원법을 제정해 조선 남성들을 강제 동원한 것으로도 부족하자 1944년 '여자정신 근로령`을 제정해 당시 국민학교 6학년 및 졸업생을 대상으로 대규모 인력 동원에 나섰다.

일제는 "정신대로 일본에 가서 일하면 돈도 많이 벌 수 있고, 여학교도 다닐 수 있다"는 거짓말로 어린 소녀들을 속였다. 양금덕 할머니(1929년생)는 증언에 따르면, 부모님들이 딸의 일본행을 반대하자 교장은 "네가 안 가면 경찰이 너의 아버지를 잡아갈 것"이라고 협박했다고 한다. 
 

양금덕 할머니양금덕 할머니 ⓒ 임용철

당시 징집당한 12~40세의 조선 여성들은 일본 군수공장으로 끌려가 무기를 제조하는 '근로정신대'로 일했고, 중국 타이 버마 인도네시아 등 전쟁 발발 지역으로 끌려가 탄약운반 취사 간호 노역 등으로 혹사당했다.

1944년 충청도와 전라도의 조선 소녀(여성)들은 일본 나고야의 미쓰비시중공업 나고야 항공제작소로 보내졌다. 또, 도야마현 후지코시 공장에도 수많은 여성들이 배치되어 무임금으로 강제 노역을 당했다. 당시 근로정신대로 동원된 조선과 일본 여성은 20만 명이며, 그 중 조선 여성은 5~7만 명에 달했다.

1944년 12월 도난카이 대지진이 발생했을 당시, 미쓰비시 중공업에서 일하던 조선 여성들도 사망했다. 1945년 일본 패전 후 한국으로 돌아온 근로정신대의 생존자들은 그 후 수십 년 동안 아픈 경험을 가슴에 묻고 살아왔다. 1965년 박정희 정부는 한일 간에 국교 정상화와 전후 보상문제에 관한 한일협약을 통해 식민지하 피해자들의 개인청구권은 종지부됐다는 반역사적인 내용을 서둘러 포함시켰다. 
 

다카하시 마코토진실규명에 앞장선 다카하시 마코토(76)씨 ⓒ 임용철

그러던 중 1985년 일본인 역사교사인 다카하시 마코토(올해 76세)씨가 나고야의 한 학교로 부임했다. 그가 나고야 대지진 희생자들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면서 조선인 여자근로정신대의 감춰져왔던 슬픈 역사가 서서히 밝혀지기 시작했다.

1988년 한국과 일본의 시민들이 참여해 나고야 미쓰비시중공업 자리에 희생자들을 기리는 추모비가 세워졌다. 1999년 드디어 조선 여자근로정신대 생존자들과 일본인 변호사 40여 명, 900명 시민들까지 합심해 '나고야 소송지원회'를 결성하고 미쓰비시를 상대로 일본 나고야법원에 소송을 제기했지만 패소했다.

2007년 일본 고등재판소에서도 "한일청구권협정(1965년)에 따라 개인의 청구권은 요구할 수 없다"는 이유로 청구가 기각됐고, 2008년 일본 최고재판소에서 원고 패소가 확정됐다. 일본 정부는 2009년 근로정신대 피해자들에게 후생연금 탈퇴수당금 99엔(1300원)씩을 지급하라는 치욕적인 결정을 내렸다. 
 

금요행동일본 미쓰비시 본사와 근처 전철역에서 금요일마다 진행되는 금요행동(시위)로 조선여성근로정신대 사죄와 배상을 촉구하는 행동이다 ⓒ 임용철

2007년 매주 금요일 도쿄 미쓰비시 중공업 본사 앞에서 미쓰비시중공업의 사죄와 배상을 촉구하는 금요행동이 시작되었고 2019년 현재까지 450회 넘게 계속되고 있다. 2012년 한국의 대법원은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도 개인의 (피해)청구권은 소멸되지 않는다"는 전향적인 판결을 내놓았다.

2018년 11월 한국 대법원은 양금덕(90), 김성주(90), 이동련(88), 박혜옥(88) 할머니 등의 여자근로정신대 피해자 4명과 유족 김중곤씨가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미쓰비시중공업은 원고 측에 5억6208만 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2019년 1월말 서울고법은 근로정신대 피해자 5명(김옥순(90), 오경애(89), 이석우(89), 박순덕(87))이 일본 후지코시(NACHI-후치코시 기업)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후지코시가 피해자 1인당 1억 원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근로정신대 대법원 판결시 거리 행진근로정신대 한국의 대법원 판결시 거리 행진 ⓒ 임용철

2월 12일 현재 <나고야의 바보들>은 관람 조회수 4만8천 회를 기록하며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관람객들의 감동어린 댓글들도 아래처럼 줄을 잇고 있다. 

'정신대 할머니 피해자분들을 위해 끝까지 싸워주신 타카하시씨 외 도움을 주신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 '눈물 나네요. 나고야 소송지원회 등 일본의 양심적인 분들에게도 정말 감사드립니다. 매국노로 자리잡고 기득권을 가진 자들이, 모두 반성하고 죗값을 받는 날이 반드시 오리라 믿습니다.' / '대한민국 국민의 한사람으로서 부끄럽고 부끄럽습니다. 침략전쟁 후 우리나라 어린 청소년들을 데려다가 근로정신대라는 이름을 붙여 무임금으로 일을 시켜 세운 전범기업 미쓰비시중공업. 내가 겪지 않은 일이기에 눈감고 귀닫았습니다. 외로운 싸움을 이어오고 계신 많은 분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임용철 감독임용철 감독 ⓒ 임용철

<나고야의 바보들>에는 바른 역사와 진실 규명을 위해 일본과 한국 '바보들'의 10년 넘도록 노력해온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한국에서 오랜 시간에 걸쳐 역사 다큐를 제작하는 것은 소재의 부담감, 제작비, 사회적인 무관심 등 여러 측면에서 힘든 일이다. 이렇게 어려운 작업을 뚝심있게 진행 중인 임용철 감독과 이야기 나눴다.

- 조선여자근로정신대 다큐를 제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2006년 '태평양전쟁희생자 광주유족회'를 취재를 갔는데 마침 근로정신대 강제동원 피해자인 김해옥, 양금덕 할머니들을 처음 만났습니다. 김해옥 할머니는 선배의 어머님으로, 어렸을 적부터 알고 지냈던 분입니다. 과거 동네에서 빵집을 하셨는데 갈 때마다 빵을 하나씩 더 챙겨주셨던 분이었습니다.

그분들로부터 1944년 일본 나고야에서 겪었던 고초를 자세히 들으면서 '근로정신대'에 대해서 처음 알게 되었죠. 2008년에는 양금덕 할머니가 나주초등학교 개교 100주년을 맞아 명예졸업장을 받는 것을 기록 차원에서 촬영했습니다. 그후 2009년 '근로정신대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이 발족하면서 본격적으로 촬영하기 시작했습니다."
  

다큐 제작중인 임용철 감독(맨 오른쪽)다큐 제작중인 임용철 감독(맨 오른쪽) ⓒ 임용철

- <나고야의 바보들>에 나오는 일본 나고야 소송위원회의 '바보들'을 어떻게 보셨나요.
"1944년 나고야의 미쓰비시 항공기제작소에 강제 동원되었던 분들은 대부분 전남과 충남 출신입니다. 근로정신대의 사정을 알고 30년 넘게 일본에서 근로정신대 할머니들을 도왔던 '나고야소송지원회' 분들이 아니었다면, 어쩌면 할머니들의 슬픈 역사는 세상에 잘 알려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10년간 일본 분들을 촬영하고 있는데 '정말 대단하다'는 말밖에 안 나옵니다. 나고야에서 도쿄까지가 360km인데 먼 거리도 그렇지만 그 비용이 만만치 않음에도 금요행동을 (포기하지 않고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정작 도쿄 미쓰비시가 위치한 전철역과 본사 앞에서 일반 시민들의 반응은 냉랭하기 그지없습니다. 일본 시민들을 인터뷰해보면 과거사에 아예 관심이 없거나, '1965년에 체결된 한일협정으로 한일 간에 과거사는 완전히 끝났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특히 '조선이 일본의 식민지였는데 왜 이제 와서 따지느냐' 하는 반응을 보인 사람까지 있었습니다. 이런 어려움 속에서도 '금요행동'을 10년 넘게 하고 있는 '나고야 소송지원회'의 양심적인 분들은 정말 (우직한) '바보'같은 사람들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삶의 자세에 대해서) 많이 배우게 됩니다."  
 

금요행동금요행동 시위 ⓒ 임용철

- 미쓰비시는 아직도 정식 사과와 배상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때문에 조선여자근로정신대의 명예회복 운동은 아직 미완성인 것 같기도 합니다. 이와 관련해 임 감독은 이 작품을 어떻게 완결 지을 계획입니까?
"이번에 만든 <나고야의 바보들>은 그동안 헌신적으로 싸워 온 '나고야 소송지원회' 분들게 보내는 내 나름의 헌시(獻詩)와도 같습니다. 또 다른 한편으로 진짜 만들고 싶은 건 근로정신대 할머니들의 구구절절한 삶을 다루는 작품입니다. 10년 넘게 찍고 있는 대부분의 영상 클립도 그런 내용인데요. 양금덕 할머니를 중심으로 할머니들의 서러운 삶을 담고, 이를 깨우치고 나아가는 투쟁 과정을 그렸습니다.

그 다큐의 마지막은 이미 정해놨는데요, 양금덕 할머니가 미쓰비시에서 배상금을 받아 돼지를 잡아서 광주시민들과 잔치를 열고, 흥이 많으신 할머니가 덩실덩실 춤을 추는 장면입니다. 하지만 지난 1월에도 원고의 한 분(고 김중곤)이 일제의 사죄와 배상을 못받고 돌아가셨어요.

아흔이 넘은 원고들에게는 정말 물리적인 시간이 부족합니다. 대부분 요양병원에 머무르고 계시는데 이 분들이 살아계실 때 일본의 사죄와 배상이 있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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