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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겐 다낭도 최적지가 아니었다

[역사로 보는 오늘의 이슈] 2차 북미회담 개최지 후보로 올랐던 다낭... 이곳에 얽힌 역사

등록 2019.02.12 10:06수정 2019.02.12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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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트위터로 제2차 북미정상회담 개최지를 발표하기 전까지는, 하노이보다 다낭이 더 유력한 장소로 꼽혔다. 트럼프는 다낭에서 회담을 하면서 이 장소의 상징성을 향유하려 했다.
 
베트남 북부에 하노이가 있고, 남부에 호치민(호찌민)이 있다. 호치민은 베트남전쟁 때까지는 사이공으로 불렸다. 미국의 동맹국인 남베트남(베트남공화국)이 멸망한 뒤, 북베트남(베트남민주공화국) 초대 주석이자 혁명가인 호치민의 이름을 따라 개칭했다. 혁명가 호치민은 그곳보다 위쪽인 중부 지방에서 출생했다.
 
한편, 다낭은 베트남 중부에 있다. 전쟁 당시에는 남베트남 영역이었다. 오늘날 상업이나 인구 면에서 다섯 손가락 내에 꼽히는 대도시다.
 

기사에 나오는 지명들의 위치. ⓒ 김종성


만약 호치민에서 회담하자고 했다면, 미국은 처음부터 단호하게 거절했을 것이다. 1975년 '사이공 함락'은 미국의 패전을 상징하는 사건 중 하나다. 거기에 지금은 반미 혁명가 호치민의 이름으로 불리는 이 도시에서, 김정은과 마주하는 것은 트럼프한테 마음 편치 않은 일이 될 수밖에 없다.
 
다른 나라 지도자라면 몰라도, 김정은이기에 더욱 더 그렇다. 베트남처럼 미국을 꺾지는 못했어도, 북한 역시 중국의 지원을 빌려 미국과 무승부를 거둔 전력이 있다. 그런 이유로 미국에 자신감을 갖고 있는 북한 지도자를 호치민에서 만나는 것은 유쾌한 일이 아닐 수밖에 없다.

왜 하노이였을까
 
1945년부터 북베트남 수도가 된 하노이는 1964년 통킹만 사건을 계기로 미국이 베트남전에 참전한 뒤 대미 항전의 거점 역할을 수행했다. 그래서 미국 입장에서는 이곳도 김정은과 유쾌하게 대화할 만한 장소가 아니다.
 
참고로, 통킹만 사건은 북베트남이 하노이 인근 통킹만에서 미국 구축함을 공격한 것처럼 미국이 조작한 사건이다. 전쟁에 본격 개입할 명분을 얻고자 벌인 사건이다.
 
하지만, 트럼프가 하노이 개최에 위안을 느낄 만한 요소들도 없지 않다. 이곳은 미국 상공회의소가 진출해 있어, 미국의 경제적 영향력을 느낄 수 있게 해줄 만한 곳이다. 또 중국과의 국경이 가까워서, 여기서 북한과 회담하게 되면 중국 정부에 대한 심리적 영향을 조금은 더 높일 수도 있다. 동남아 국가들이 중국을 견제하고자 미국과 제휴하는 경향을 보이는 지금 상황에서 북한이 동남아에서 미국과 대화한다면, 그것도 중국과 인접한 하노이에서 대화한다면, 중국으로서는 더욱 더 신경을 쓸 수밖에 없을 것이다.
 
트럼프가 함흥을 방문하고 돌아가는 것과 평양을 방문하고 돌아가는 것과 개성을 방문하고 돌아가는 것이 남한 사람들에게 미치는 심리적 효과가 각각 다를 수밖에 없듯이, 트럼프가 하필이면 하노이에서 김정은을 만나는 것은 중국 입장에서 신경 쓰일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미국은 하노이에서 회담하는 사실에 위안을 느낄 수도 있지만, 이곳이 갖는 반미 이미지가 적지 않다 어느 정도는 불편을 감수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트럼프는 트위터에서 하노이를 언급하기 전에, "매우 생산적인 만남"이었다는 점을 미리 강조했다. 스티븐 비건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가 북한에서 생산적인 결과를 얻었다고 강조하고 나서 하노이 개최 사실을 언급했다. 본 회담이 열리기도 전에, 그 전의 회담 성과부터 운운한 것이다.

실제로 생산적인 결과를 얻었기 때문에 그렇게 말했을 수도 있지만, 하노이가 미국인들에게 풍길 심리적 영향을 미리 차단하고자 '생산적 만남'을 사전에 운운했을 수도 있다.
 

제2차 북미정상회담 장소로 하노이를 발표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트위터. '하노이'를 언급하기 전에 '매우 생산적인 만남'이라는 말을 먼저 언급하고 있다. ⓒ 도널드 트럼프

미국이 그처럼 장소의 상징성에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는 것은, 1945년 세계 최강에 등극한 후에 미국이 당한 첫 번째 패전이 베트남에서 일어났기 때문이다. 한국전쟁에서 북·중 연합군과 무승부를 기록한 것도 유쾌하지 않지만 베트남전쟁에서는 명확히 패배했으므로, 이곳의 상징성에 예민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지뢰를 의식하며 걷는 것처럼, 장소의 상징성에 유난히 주의를 기울이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당초 미국이 다낭에 호감을 보인 건, 이곳이 하노이나 호치민과 달리 심리적 안정감을 주는 장소이기 때문인 듯하다. 다낭은 베트남전쟁 때 미군 기지가 있었던 곳이고, 그 전에는 상륙작전도 성공시켰던 곳이다.
 
하노이 국립대에서 공부한 송정남 한국외대 교수의 <베트남 역사 읽기>에 아래와 같은 대목이 있다. 베트남전이 1960년부터 남베트남민족해방전선(NFL)과 그 전위 부대인 베트콩이 북베트남 지원 하에 남베트남 정부군과 전쟁을 하던 제1단계에서, 1964년부터 북베트남과 미국이 맞붙는 제2단계로 발전하는 과도기를 설명하는 부분이다.
 
"참전의 구실을 찾을 목적으로 미국은 1964년 8월 통킹만 사건을 일으켰다. 제1기 말에 이르러 남부해방군(베트콩)의 전력은 게릴라전의 단계에서 기동전(진지 이동 전투)을 전개할 수 있는 단계에 있었다. 미국은 이때에 응오 딩 지엠 정부군을 이용한 특수전쟁이 더 이상 불가능하다고 판단하여, 1965년 3월 미 지상군 해병대의 다낭 상륙을 시작으로 제2차 인도차이나전쟁의 제2기를 열었다."

다낭에 '향수'를 느끼는 미국?
 

다낭에 상륙하는 미국 해병대원. ⓒ 위키백과(퍼블릭 도메인)

미국은 성공적인 다낭 상륙을 계기로 베트남전에 본격 개입했다. 그 뒤 이곳에 미군 기지를 두고 전쟁을 수행했다. 비록 패하기는 했지만, 향수를 느낄 만한 이유가 있는 장소다. 여기서 북미정상회담을 연다면, 심리적 여유를 가질 수도 있었을 것이다.
 
참고로, 제2차 인도차이나 전쟁은 베트남전쟁을 말하고, 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1946~1954)은 프랑스에 맞선 베트남의 독립전쟁을 말한다.
 
다낭이 미국인들에게 주는 심적 안정은 황석영 소설 <무기의 그늘>에서도 느낄 수 있다. 1989년에 나온 이 작품은 다낭을 중심으로 베트남전쟁을 해석하고 있다. 정글에서 전투하던 해병대 안영규 상병이 합동수사대로 차출된 뒤 다낭을 무대로 전개하는 활동을 다루고 있다. 그의 임무는 다낭 시내로 빠져나간 PX(부대매점) 물건이 암시장에서 어떻게 유통되는지 감시하는 것이었다. 그 임무를 받고 다낭에 도착했을 때 그가 본 풍경은 이랬다.
 
"해변을 따라서 미군의 기지들이 연이어 계속되고 있었다. 아무도 그에게 주의를 돌리지 않았다. 가끔씩 군용 차량들이 지나갔고 그중에는 친절한 사람이 있어서 차를 탈 거냐고 묻기도 했다. 주위에는 가끔 뜨고 내려앉는 헬리콥터의 엔진 소리만이 들렸다."
 
소설 속 묘사이긴 하지만, 전쟁 중에 군복 차림으로 길거리를 걷는 데도 조금도 불안감을 느낄 필요가 없었다. 그를 보고 두려워하는 민간인도 없었다. 제 차에 타시겠느냐며 접근하는 사람이 있었을 정도다. 이 평온이 가능했던 건 미군 기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정글에서 매순간 불안감에 떨었던 안 상병은 이곳 호텔에서 편한 삶을 누리며 임무를 수행했다.
 
안 상병이 느낀 것 이상의 안락감을 당시 미군들은 누렸을 것이다. 안 상병은 어느 정도는 객(客)이지만, 미군들은 어느 정도 주인이었기 때문이다. 미군들의 여유는 상륙 후 이곳 지명을 미국식으로 고친 것에서도 발생했다. 권은의 논문 '물화(物化)된 전쟁과 제국의 시선-황석영의 <무기의 그늘>론'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다낭 시대에서 스목스택 다리를 건너면 바이방이라는 만(灣)이 나온다. 이곳을 미군들은 자신들의 편의대로 '몽키 마운틴'이라 부른다. 마찬가지로, 미 해병 제1사단이 자리잡은 곳의 본래 지명은 동대오였지만, 미군들은 '핑크 마운틴'이라고 부른다. 또한 동대오 근처의 삼거리는 '휴맨 웨이스트 크로스'라 명명된다. 제국주의자들이 낯선 식민지에 도착해서 제일 먼저 수행한 것은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새로운 이름을 붙이는 것이었다." -한국현대소설학회가 2014년 발행한 <현대소설연구> 제57호에 수록.
 
이렇게 다낭은 미국인들한테 편한 곳이었다. 그때의 정서를 기억하고 있기에 미국 정부가 회담 장소로 다낭을 고집했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렇게 영광스러울 것도 없는 도시다. 이곳에 기지를 두고 전쟁을 벌였지만, 결국에는 패배하고 떠났다. 이와 별도로, 다낭에서 벌어진 또 다른 의미의 전쟁에서도 미국은 패했다.
 
미국은 베트남에서 무기를 통한 전쟁뿐 아니라 경제를 통한 전쟁도 벌였다. 남베트남에 대한 영향력을 활용해 미국 상품을 남베트남에 뿌리는 방법으로 베트남 부유층을 고객으로 끌어들였다. 한편, 정식으로 미국 상품을 살 여유가 없는 서민층을 끌어들이고자 PX 물건을 암시장에 흘려보내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런 시도가 다낭에서부터 허물어졌다는 점을 보여주고자 황석영이 <무기의 그늘>에 투입한 등장인물이 의과대 출신의 베트콩 전사인 팜 민이다. 그의 형은 PX 물건으로 거액을 착복하는 남베트남군 소령 팜 꾸엔이다. 팜 꾸엔은 동생이 베트콩을 배신하고 나왔다는 말을 믿고, 자기의 밀거래를 맡긴다. 그렇게 해서 팜 민 수중에 들어간 물건은 베트콩으로 흘러 들어간다.
 
미군 물건이 남베트남군 장교를 통해 베트콩에 흘러들어가는 장면은 미국이 수행하는 암시장 경제전쟁이 근저에서부터 허약했음을 보여주는 설정이다. 이런 부패상도 베트남전 패배로 연결되는 한 가지 원인이었다고 해석할 수 있다. 따지고 보면 다낭도 그리 자랑스러울 게 없는 장소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미국은 지난 2018년 7월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베트남 방문을 계기로 '베트남 모델'을 북한에 권유했다. 베트남처럼 살게 도와주겠다며 비핵화를 요구했다. 그로 인해 북미관계에서 베트남이 자주 거론되더니, 하노이에서 김정은과 트럼프가 만나는 지금 상황에까지 이르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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