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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학교 학생들이 김복동 할머니께 한 부탁, 감동이다

[하성태의 사이드뷰] <뉴스룸>의 조선학교 탐사 보도와 김복동 할머니의 유지

19.02.12 19:26최종업데이트19.02.12 1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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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오전 서울시청을 출발해 수요시위가 열리는 옛 일본 대사관 앞을 향해 위안부 피해자 고 김복동 할머니 운구차와 시민장 참여자들이 행진하고 있다. ⓒ 이희훈


"내가 한창 공부할 나이에, 15살에 끌려갔거든요. 그래서 공부를 못 했잖아요. 그래서 만약에 내가 살아서 돌아가면 나는 때가 늦어서 공부를 못했지만, 애들이 돈 없어 학교 못 가고 하는 애들을 갖다가 어떠한 일이 있어도 학자금을 모아서 애들 공부를 시키겠다는 결심을 갖고 있었어요.
 
그랬는데 나이가 93살이나 먹도록 아직까지 일본에서는 해결이 안 나고 그래서 내 힘으로 재단을 만들었습니다. 이래서 돕고 있는데 내 힘으로 혼자서는 할 수 없잖아요. 이러니까 국민들이 전부 마음을 합쳐서 커가는 애들이 훌륭하게 자라나도록 뒷받침을 해줘야 되는데 그러한 것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으니까 부모들 마음에도 안타깝고 보기에도 안타깝고 그러잖아요."
 

작년 9월, KBS라디오 <정준희의 최강시사>와 인터뷰한 생전 김복동 할머니의 목소리에는 안타까움이 절절히 묻어났다. 이렇게 김복동 할머니의 조선학교 사랑은 본인이 어린 나이 일본군에게 끌려가 공부를 하지 못한 한과 전국 고교가 포함된 고교무상화 정책에 조선학교만 유일하게 배제시킨 일본 정부를 향한 울분, 동포 아이들에 대한 애정이 뭉뚱그려진 감정의 발로였던 것 같다.
 
그해 9월, 제21호 태풍 '제비'로 피해를 본 재일 조선학교를 돕기 위해 길원옥 할머니와 함께 직접 오사카 조선학교를 방문하기도 했던 김복동 할머니. 같은 달 27일 열린 오사카 고등법원은 '오사카 조선학원 고교무상화 재판' 항소심에서 1년 2개월 전인 2017년 7월 28일 열린 1심의 전면 승소 판결을 뒤집은 패소 판결로 동포 사회를 발칵 뒤집어놨다. 이에 대해서 김복동 할머니는 같은 방송에서 위와 같이 목소리를 냈다.
 
"태풍에 쓰러져 있는 걸 갖다 그냥 보고 있을 수가 없어서 와보니까 일본이 진짜 해도 너무 한다 싶어요. 어떻게 그 학교를 갖다가 이번에 재판 해서 우리 민족이 졌다하거든요. 그런 일이 있을 수가 있습니까? 어떻게 세상에 인간으로서 다 같이 자식을 키우고 사는 사람들이 커가는 애들 공부하는 걸 그것을 못하게 하는 것은 인간의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 인간의 도리를 지키고 싶었던 걸까. 생전 김복동 할머니는 작년 9월 오사카 조선학교 방문 당시 길옥윤 할머니와 약 2700만 원의 후원금을 전한 것 외에도 2014년 5천만 원을 후원했다. 또 지난 2016년부터 조선학교 학생들에게 '김복동 장학금'을 지원하고, 이어 2017년부터는 '김복동의 희망'이라는 단체를 만들어 조선학교 학생들을 도왔다. 별세 직전까지 김 할머니는 조선학교 학생들을 잊지 않았다.

정의기억연대 윤미향 이사장은 김 할머니 별세 후 "마지막 유언에서도 재일조선학교 학생들에게 장학금으로 써달라며 올해 초 수상한 바른의인상의 수상금을 내놓으셨다"라고 전하기도 했다. 11일 JTBC <뉴스룸>은 탐사 플러스를 통해 이러한 김 할머니의 유지를 돌아보는 한편 오사카 조선학교를 직접 찾아 우리와 다를 바 없는 아이들의 모습과 고교 무상화 교육 배제의 현재와 의의도 카메라에 담았다. 손석희 앵커는 "통일부 허가 취재"를 강조하기도 했다.
 
조선학교의 오늘 
 

지난 11일 방송된 JTBC <뉴스룸> 한 장면 ⓒ JTBC


"역시 조선 사람이니까 조선 사람답게 우리말도 배우고 해야 하니까." (김보녕 학생)
 
한국말은 기본이었다. 조선학교에서 만난 아이들은 한국의 학생들과 다를 바 없다고 했다. 인터뷰에 나선 학생들도 치즈 닭갈비를 좋아하고, 아이돌 아이콘과 한국 드라마를 좋아한다고 말하는 평범한 10대였다. 하지만 이들은 고향이 어디냐는 질문에 제주도를 비롯해 대부분이 한국이라 답했다.
 
"루트(뿌리)는 한국 남조선에 있어요. 우리 학교를 북조선 학교같이 생각하는 분들이 계시지만. 북조선 학교가 아니라, 우리가 조선 사람으로서 일본 땅에서도 떳떳이 살아남을 수 있는 학교. (중략) 나에게 있어서는 우리 학교에서 배우는 역사가 진짜 역사라고 생각하기 때문에…"(곽신주 학생)
 

다른 게 있다면 식민지 역사는 물론 위안부 문제까지 민족과 역사를 강조하는 교육에 있을 것이다. 고교 2학년인 곽신주 학생은 "일본군 성노예도 일본 학교에서는 안 배우고, 우리도 사실 일본 학교에 다녔더라면 그런 역사도 몰랐을 것"이라고 답하기도 했다. 모두 다 일본 학교에서는 배울 수 없는 내용 들이다.
 
조선학교 학부모인 고기련씨는 "기미가요 부르고... 그런 곳에 아이를 보내고 싶지 않아요. 일본 사람들이 왜 헤이트 스피치(혐오 발언)를 많이 하냐면 역사를 정말 몰라서"라고 말했다. 이러한 민족 교육의 토대가 된 조선학교를 <뉴스룸>은 이렇게 소개했다.
 
"조선학교는 일제강점기 일본에 끌려갔던 동포들이 세운 학교입니다. 우리말을 가르치기 위해 세워진 '국어 강습소'가 그 시작입니다. 현재 일본 내 조선학교는 61개. 대부분 재일조선인총연합회, 북한 측 지원을 받습니다. 하지만 국적은 한국과 북한, 모두 있습니다."
 
그런 조선학교를 일본정부가 무상교육 대상에서 제외한 것은 동포 사회는 물론 일본의 일부 시민단체와 지식사회에서도 명백한 차별로 여겨지며 반발을 사고 있다. 일본은 지난 2010년부터 고교 무상화 정책을 폈지만 일본 내 외국인 학교 중 유일하게 조선학교만 제외했다. 조선학교 출신 학생들이 2013년 5월부터 집회를 여는 등 여론전을 벌이고 소송도 진행 중이지만 일본 정부의 이러한 차별적 방침은 굳건하다.
 
"조선학교는 일본이 지구상에서 조선이라는 나라를 지워버리겠다던 역사를 어떻게 마주하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뉴스룸>과 인터뷰한 다나카 히로시 히토쓰바시대 명예교수와 같은 일본 지식인 사회의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일본 정부는 조선학교의 무상화 배제 방침을 철회하지 않고 있다. 김복동 할머니가 조선학교에 애정을 쏟고 수차례 후원을 했던 것 역시 이러한 일본 정부의 차별을 더 깊게 공감했기 때문이리라. 조선학교를 방문했던 김복동 할머니의 일성은 이랬다.
 
"언젠가 해가 뜰 날이 오겠지요. 우리 조선학교도 여러분의 힘으로 그까짓거 정부에서 안 봐주면 어때. 하루라도 빨리 통일이 될 것 같아. 남북통일만 돼서 평화의 길만 핀다면 일본서 설움 받을 필요가 뭐가 있노."
 
조선학교의 역사가 바로 재일동포의 역사 그 자체    
 

지난 11일 방송된 JTBC <뉴스룸> 한 장면 ⓒ JTBC

  "우리 한국사회에서는 (재일 동포들이) 잊혀진 존재들이지 않습니까? 조선학교라는 존재를 알아주는 일. 그리고 그들이 70년 넘게 일본 땅에서 말과 글을 지켜왔던 그 역사에 대해서 인정해 주고 존중해 주는 일부터 시작해야 되지 않을까. (중략) 일단 남측 사회는 그동안 우리가 백안시했던, 혹은 일본 조총련계 학교에 대한 공포감들을 좀 버리고, 있는 그대로 학생의 모습을 봐주는 일부터 시작해야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11일 <뉴스룸>에 출연한 배우 권해효의 말이다. 조선학교를 돕는 비영리 시민단체 '몽당연필'의 대표를 맡고 있는 권해효는 이들의 이름이, 존재가 "일단은 불리는 일이 중요하다"고 강조하며 위와 같이 말했다. 지난 2004년 드라마 <겨울연가>에 출연하면서 우연한 기회에 재일동포 사회와 조선학교를 만나게 됐다는 그는 "조선학교와 학생들을 있는 그대로 봐줄 것"을 역설하기도 했다. 이 조선학교의 역사가 바로 재일동포의 역사 그 자체이기 때문이리라.
 
조선학교는 지난 2006년 다큐 영화로서는 놀라운 성적인 3만 관객을 동원한 김명준 감독의 <우리학교>를 통해 널리 알려졌다. 이후 극장 개봉한 <바보 권투부>, <60만번의 트라이>, <그라운드의 이방인> 등 다큐멘터리 영화를 통해 직간접적으로 소개돼 왔다. '몽당연필'의 사무총장이자 <우리학교>를 연출한 김명준 감독은 11일 <뉴스룸> 보도 직후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러한 소감을 전했다.
 
"좀 더 좋은 취재를 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마련해주지 못했는데도 동포들의 힘으로 짧은 시간 동안 많은 곳을 찾아가고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많은 경험을 했다고 한다. 먼저 돌아와야 했던 나에게 '여태껏 취재를 많이 해왔지만 이렇게 즐거운 시간이 없었다' 고 위로의 말까지 해주었다.
 
그런데 조선학교 아이들을 만나면 그게 누가 되었든 어떻게 살아왔던 백이면 백이 주체할 수 없는 감동을 받고 마음이 깨끗해 진다는 것. 이미 알고 있었다. 손석희 앵커의 말대로 이제 '인식을 시작'했으니 그 힘으로 아이들, 부모님들, 선생님들이 스스로를 지켜가는 투쟁에서 힘을 더 얻을 거라고 생각한다. 조금 더 힘을 내시길."

 
고 김복동 할머니가 말한 인간의 도리
 

지난 11일 방송된 JTBC <뉴스룸> 한 장면 ⓒ JTBC


일본 정부를 향한 조선학교와 동포 사회의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작년 10월 30일 도쿄 고등법원은 오사카에 이어 조선학교 졸업생들이 제기한 '조선학교 무상화 제외 위법' 소송에서 1심에 이어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이에 반해 UN 아동권리위원회는 지난 7일 조선학교를 고교 무상교육 대상에 포함할 것을 일본 정부에 권고했다. 오는 3월에는 오사카, 도쿄에 이어 같은 소송을 두고 후쿠오카 지방법원의 1심 재판이 진행될 예정이다.
 
"김복동 할머니는 우선 자기가 청춘시절에 고생하셨는데 설마 오늘에도 일본 정부한테 조선 사람이 차별받고 있는 줄 생각지 못한다, 가슴 아프다고 하셨습니다(중략). 내가 비보를 들은 건 화요 행동에 나가기 직전이었어요. 그야말로 김복동 할머니가 섭섭해 할 시간 있으면 싸워라 아이들 위해서 싸워라 이렇게 말하시는 것 같았어요."
 
<뉴스룸>와 인터뷰한 고창우 오사카 조선초교 교장 역시 김복동 할머니의 유지를 되새기듯 위와 같은 말을 전하기도 했다. 김복동 할머니는 세상을 떠나기 직전까지도 병상에서 이 조선학교와 재일학교를 걱정하고 응원했다.
 
"재일동포들 힘내세요. 내 전 재산을 털어서 후원할 테니. 열심히 공부해서 열심히 공부해서 훌륭한 사람이 돼서 이 나라가 남북통일이 돼서 평화의 길이 탁 열릴 때까지 내가 이것은 놓을 수가 없어. 여러분의 협조가 필요해. 나만이 잘 살 수는 없어."
 

그 협조는 비단 재일동포들과 몽당연필과 같은 단체의 활동만으로 채워질 순 없을 것이다. 비록 김복동 할머니가 세상을 떠나면서 더 많은 관심을 받게 됐지만, 특히 한반도 평화체제가 급물살을 타는 지금 이 조선학교와 재일조선인에 대한 관심과 일본 정부의 차별에 대한 경각심의 강조는 부족함이 없을 듯하다.
 
그들이야말로 현대사 속에서 한일 정부의 외면과 차별을 딛고 꿋꿋하게 자생한 '한국인', '조선인'의 일원이자 동반자이기 때문이다. 또 그러한 관심과 김복동 할머니가 말한 인간의 도리이기도 하고. 그렇기에 더더욱 오사카 조선학교 학생들이 김복동 할머니에게 전했다는 추모의 목소리가 감동적으로 다가온다.
 
"우리는 김복동 할머니를 잊지 않겠어요. 우리말 우리글 앞으로도 잘 배워 나갈래요. 김복동 할머니 하늘에서 우리를 지켜봐 주십시오. 우리는 앞으로도 우리말 우리글 열심히 배워 민족의 넋을 지켜가겠습니다. 김복동 할머니는 조국의 영원한 할머니입니다."
김복동 조선학교 뉴스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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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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