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 당시 정부가 구조 포기시키려 최선 다한 것 같아"

찬호아빠 전명선, 단원고 명예졸업식에서 5년간의 아픈 속내 밝혀

등록 2019.02.12 16:51수정 2019.02.12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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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오전 경기도 안산 단원고등학교에서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단원고 학생들의 명예 졸업식이 유가족이 참석해 열리고 있다. ⓒ 이희훈

 
 
세월호 참사 희생자인 단원고 찬호 학생 아빠 전명선 416 가족협의회 전 위원장이 12일 오전에 열린 '명예 졸업식'에서 지난 5년간의 아픈 속내를 털어 놓았다. 또한 전 위원장은 지난 2014년 4월 16일 세월호가 침몰할 당시의 안타까운 심정도 밝혔다.
 
전 위원장은 졸업식에서 "하늘에 별이 된 우리 아들 딸"로 시작하는 회고사를 낭독했다. 회고사에서 "세월호 참사이후 엄마, 아빠들은 자식을 잃은 것도 모자라, (아이들의 교실이 사라지는 등) 많은 아픔을 감내해야 했다"라고 밝혔다.
 
전 위원장은 또한 세월호가 침몰할 당시 상황을 설명하며 "(국가가) 구조를 포기 시키려고 최선을 다한다고 믿을 지경이었다"라고 비판했다.
 
명예 졸업식에서 희생자 유가족이 아이들 대신 명예졸업장과 졸업앨범을 받았다. 유은혜 사회부 총리 겸 교육부 장관과 이재정 경기도 교육감, 윤화섭 안산 시장 등이 참석해 유가족과 함께 했다.
 
다음은 전명선 전 위원장 회고사 요약문. 
 
"별이 된 우리의 아들딸들을 대신해 엄마, 아빠들이 졸업장을 받기위해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세월호참사가 없었더라면 대학졸업반이 되었을 우리의 아들딸들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아들딸들 없이 엄마, 아빠들이 공허한 마음으로 이 자리에 있습니다.
 
세월호참사 이후 엄마, 아빠들은 자식을 잃은 것도 모자라 많은 아픔을 감내해야 했습니다. 제적처리로 아들딸들의 명예를 잃어야 했고, 주인 잃은 교실 또한 사라져야했습니다. 
 
이후 엄마, 아빠들은 단원고등학교와 교육청에 세 가지 사항을 요청하였습니다. 첫째. 억울하게 희생된 아들딸들의 명예회복과 둘째. 우리 아들딸들이 꿈을 키우며 희망을 만들어가던 교실의 보존과 셋째. 단원고 내 추모조형물과 기억 공간 조성을 통해 세월호 참사의 교훈을 잊지 않고 계승해 나아갈 공간의 마련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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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오전 경기도 안산 단원고등학교에서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단원고 학생들의 명예 졸업식이 유가족이 참석해 열리고 있다. ⓒ 이희훈

 
 
2016년 1월 12일 제적처리 되었던 학적부를 2016년 5월 13일 "4.16세월호 참사로 인한 명예졸업"으로 변경하였고, 교실존치 부분은, 현재 4.16민주시민교육원 건립과 기억교실 복원 및 보존을 위해 실시설계 용역이 진행 중에 있으며, 단원고내 추모조형물과 기억 공간 건립은 2018년 11월 30일 조성을 완료했습니다. 그 결과를 바탕으로 오늘의 명예졸업식이 진행되고 있는 것입니다.
 
2014년 4월15일 세월호에는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가던 단원고등학교 2학년 학생 325명과 인솔교사 14명, 일반승객 104명과 승무원33명이 타고 있었습니다. 다음날인 16일 오전 8시48분경 전남 진도군 병풍도 북방 1.8마일 해상의 맹골수로를 빠져나온 세월호의 선체가 기울어졌고, 선체는 점점 더 기울어져 10시31분경 세월호 선수의 일부분만 남기고 침몰했습니다.
 
먼 바다도 아닌 인근 연안이었고, 헬기와 경비정 인근의 어선들이 출동하여 세월호에 접근해 있었습니다. 하지만 출동한 해경은 맨 먼저 탈출한 승무원들만 구조하고 배안에 있던 승객들에 대한 구조 활동은 하지 않았고, 맨 먼저 탈출한 승무원 23명 외에 단원고학생 75명, 교사3명, 일반승객 71명은 스스로 탈출하여 172명이 생존하였으나 배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304명은 전 국민이 지켜보는 가운데 세월호와 함께 가라앉았습니다.
 
2014년 4월 16일의 바다를 저는 기억합니다. 그날의 바다는 너무도 잔잔하고 평화로웠습니다. 거센 풍랑이 일어 경비정이 근처에도 못 가는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폭풍우가 몰아쳐 헬기가 뜰 수 없는 날도 아니었고... 모두 구할 수 있었습니다. 아무런 방해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구하지 못했습니다.
 
해경은 인명을 구조하기 위한 장비와 인력을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경비정 1척, 헬기 3대가 전부였습니다.
 
세월호 참사에서 과연 정부는 최선을 다하려고 했는가? 저는 그 당시의 상황을 생생히 기억합니다. 배안에 사람이 없는 것처럼 말했고, 구조를 돕겠다는 이들을 돌려보냈습니다. 구조를 포기시키려고 최선을 다했다고 해도 믿어질 지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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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오전 경기도 안산 단원고등학교에서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단원고 학생들의 명예 졸업식이 열리기 전 재학생들이 합창 연습을 하고 있다. ⓒ 이희훈

 
 
세월호참사 후 정부는 우리 피해 가족들을 사찰했습니다. 시민단체와 국민들로부터 고립시키려 했고, 공무원들을 파견하여 배상, 보상 신청을 종용했습니다. 당시 박근혜 정권은 철저하게 세월호 참사를 은폐시키려 했고, 언론을 통해 거짓되고 왜곡된 내용으로 세월호참사의 진실을 철저하게 덮으려고 혈안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 박근혜 정권을 상대로 세월호참사의 진상규명을 위해 특별법을 만들어야 했고, 진상규명을 위해 증거를 모으고 진술을 확보해야했으며, 언론의 오보와 세월호참사의 진실을 국민들에게 제대로 알려야했습니다.
 
세월호 참사 이후 사회변화의 흐름이 있었습니다. 이재정 교육감님의 교육철학과 신념으로 명예졸업이라는 학적부가 신설될 수 있었습니다. 그로 인해 더 이상 학사일정 중에 희생되신 분들의 명예가 실추되는 일이 대한민국에서 없어지게 되었고, 기간제교사의 순직인정을 통해 명예 또한 회복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지난 5년 여간 이렇게 활동해 올 수 있었던 가장 큰 힘은 세월호참사로 지켜주지 못한 가족을 잃은 부모들의 죄스러운 마음으로부터, 세월호참사 진상규명의 염원과 안전한 세상을 바랐던 분들이 계셨기에 가능 하였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와 같은 아픔을 겪는 사람들이 없는 세상을 만들자던 우리의 목소리와 행동이, 노란리본을 만들어 서로의 징표로 삼았으며, 특별법제정 운동에 동참하셨던 천만국민의 힘이 2016년 천만 촛불이 되어 2017년 민주주의 시대를 앞당길 수 있었습니다.
 
세월호참사로 희생된 우리 아들딸들이 현 사회에 남겨준 사안들은 영원한 진행형일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의 이 자리를 통해 별이 된 우리의 아들딸들의 희생을 기억하고 잊지 않기를 부탁드립니다."


2019년 2월 12일
(사) 4.16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을 위한 피해자 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 단원고등학교 2학년 7반 찬호아빠 전명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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