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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나는 한서진 딸' 이 루머는 현실이 됐어야 했다

[리뷰] JTBC 드라마 < SKY캐슬 > 종영 이후 2주가 지났지만

19.02.13 11:23최종업데이트19.02.13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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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결말이라고 생각했었다. 어떤 사람들은 결말이 비현실적이라며 비판했지만 나는 그것이 최선의 결말이라고 생각했었다. 지난 1일 종영한 JTBC 금토 드라마 < SKY캐슬 > 이야기다.

< SKY캐슬 >이 종영한 지 이미 2주가 지났다. 그랬기에 지금 시점에 다시 < SKY캐슬 > 결말 이야기를 꺼내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오히려 2주가 지났기에 이제야 < SKY캐슬 > 결말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완벽한 결말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느꼈던 가슴 속 한 구석 답답함의 정체를 이제야 찾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JTBC 드라마 < SKY 캐슬 > 마지막 회의 한 장면. ⓒ JTBC

 
사실 < SKY캐슬 > 마지막 회를 보는 내내 내 얼굴에는 잔잔한 미소가 퍼져 있었다. 일부의 비판대로 < SKY캐슬 > 마지막 회는 이전까지의 전개에 비해 지나치게 교훈적이고 억지로 만든 행복한 결말처럼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랬기 때문에 그것이 완벽한 결말이라고 생각했다. 드라마도 결국은 크게 보면 문학이고, 문학이라는 것은 결국 사람들에게 어떻게 살아가야 할 지 전망을 제시해주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명문대에 들어가야만 성공한 인생이 시작되고 행복한 삶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라는 < SKY캐슬 > 결말은 너무나 완벽했다. 사람들에게 남들 위에 올라서기 위해 노력하는 삶보다는 자신들 스스로 만족하고 행복한 삶을 사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아주 잘 보여주었으니 말이다.
 

JTBC 드라마 < SKY 캐슬 > 마지막 회의 한 장면. ⓒ JTBC

 
그런데 이 생각은 < SKY캐슬 > 종영 다음날, 설 연휴가 시작되면서 조금씩 금이 가기 시작했다. 우리나라 입시 현실을 다룬 < SKY캐슬 >을 보고 난 직후 맞이한 설 연휴에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 하나가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20년 전 입시를 치른 직후 한 친척이 내게 던졌던 말이었다.

"야, 그 대학교 들어가서 뭐하려고? '딴따라'하려고?"

그 말을 들은 나는 모욕감을 느꼈지만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뭐라고 반박하고 싶었지만 내 입에서는 아무런 말도 나가지 않았다. 그저 주먹을 쥐고 부들부들 떨 뿐이었다. 그리고 그 기억이 떠오르면서 <돈꽃>, <내 ID는 강남미인>이라는 드라마도 연이어 떠올랐다.
 

JTBC 드라마 < SKY 캐슬 > 마지막 회의 한 장면. ⓒ JTBC

 
우리 사회에서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것은 물론 돈이다. MBC 드라마 <돈꽃>은 돈에 미친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여주면서 돈에 지배당하지 않는 삶을 살아야겠다는 교훈을 주며 끝을 맺었다. 돈만큼이나 우리 사회에서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또 다른 것은 바로 '외모'다. JTBC 드라마 <내 ID는 강남 미인>은 외모지상주의 사회에 사는 사람들에게 스스로를 성찰할 기회를 주며 끝을 맺었다. 그리고 '돈'과 '외모' 만큼이나 우리 사회에서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또 하나의 요소가 바로 '학벌'이다. 잘 모르는 사람이라도 '저 사람 서울대 나왔어'라는 말을 들으면 일단 다시 보게 되는 것이 우리 사회다. 그랬기에 < SKY캐슬 >에 나오는 부모들도 그토록 자식들을 명문대에 보내려고 노력한 것 아니겠는가.

<돈꽃>이나 <내 ID는 강남미인>은 각각 '금전 만능주의 사회'와 '외모 지상주의 사회'에 사람들에게 스스로를 돌아볼 기회를 갖게 해주었다. 그렇다면 < SKY캐슬 >의 결말은 '학벌'을 중시하는 지금 이 사회에 제대로 된 울림을 주었을까? 분명 < SKY캐슬 > 결말은 사람들에게 어떤 삶을 살아가는 것이 바람직한 것인지 보여주면서 끝을 맺었다. 그런데도 2주가 지나도록 사라지지 않는 이 답답함의 정체는 무엇이었을까?

그때 대학교 때 단편 소설 <운수 좋은 날>과 관련한 강의를 들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때 그 강의를 하셨던 교수님은 이런 말을 하셨다.

"꼭 아내를 죽이는 비극적 결말을 택해야 했을까요? 소설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 전망을 보여주어야 한다고 전에 얘기했었는데, 이 소설을 읽어보면 아무런 전망도 없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 당시는 전망을 보려고 해도 쉽게 볼 수 없는 암담한 시대였기 때문은 아니었을까요? 그렇게 전망이 보이지 않는 시대라면 작가는 독자들에게 어떻게 메시지를 전달해야 할까요? 전망이 보이지 않을 때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현실을 처절할 정도로 사실적으로 그려내는 것입니다. 그렇게 현실을 직시하게 해서 문제점을 느끼게 하고 어떻게든 바꾸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것이죠."

교수님의 말을 떠올리고 나서야 답답함이 어느 정도 가시기 시작했다. 그랬다. 드라마가 종영한 뒤에도 나를 답답하게 만든 것은 바로 그것이었다. < SKY캐슬 >은 사실 이렇게 사는 것이 옳다는 전망을 보여주어서는 안 됐다. 그저 입시에 매달리다가 철저하게 망가지는 등장인물들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보여주며 끝을 맺어야 했다. 왜냐고?

< SKY캐슬 >에 나오는 강준상(정준호 분)은 학력고사 세대이다. 그때 역시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라는 영화가 나올 만큼 입시로 인한 학생들의 스트레스가 심각했고 이는 사회적 문제이기도 했다. 그리고 20년 전 친척에게 모욕적인 말을 들은 나는 수능 세대였다. 그때도 아이들의 스트레스는 그대로였고, 여전히 심각한 사회적 문제였다. 그리고 또 다시 20년이 흘러 < SKY캐슬 > 강예서(김혜윤 분)는 학종(학생부종합전형) 세대다. 그렇다면 예서의 시대는 달라졌을까? < SKY캐슬 >이라는 드라마에 사람들이 열광했다는 것은 여전히 과거의 문제가 반복되고 있다는 방증이다. 즉, 입시 제도는 계속 변했지만 근본적으로 '학벌'에 매달리는 사람들의 모습은 그대로였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 SKY캐슬 >이 보여준 교과서적 행복한 결말만으로는 사람들 마음 속에 강한 울림을 남기기에 역부족이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사회의 변화를 이끌어내고 사람들의 인식 변화를 이끌어내기에는 너무 점잖은 결말이었으니 말이다. 우리 사회에서 입시 제도가 끊임없이 바뀌었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 교육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그렇게 무언가를 바꾸려고 계속해서 노력하고 있는데도 대체 왜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에서부터 < SKY캐슬 >에 이르기까지 근본적으로는 같은 문제가 반복되고 있는 것일까? 우리나라에서 교육은 행복한 삶을 살 수 있게 가르쳐주는 것이 아니라 신분상승을 위한 도구로 쓰이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JTBC 드라마 < SKY 캐슬 > 마지막 회의 한 장면. ⓒ JTBC

 
차민혁(김병철 분)이 했던 이 말을 기억하는가?

"청춘은 눈 깜짝할 새 지나가. 너희들도 나이 들면 뼈저리게 느낄 거야. 피라미드 밑바닥에 있으면 짓눌리는 거고 정상에 있으면 누리는 거야."

< SKY캐슬 > 결말을 곰곰이 생각해보면 차민혁의 말처럼 피라미드 밑바닥에 있던 김혜나(김보라 분)만 결국 불행한 결말을 맞았다. 그리고 이 장면도 기억하는가? 차민혁에게 집안에 있는 피라미드 집안 얘기를 듣고 나서 진진희(오나라 분)는 아들에게 공부할 동기를 심어주기 위해 이렇게 질문을 한다. 

"아들 피라미드 꼭대기에 있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그때 아들의 대답이 걸작이었다.

"부모를 잘 만나야지."

부모를 잘 만난  < SKY캐슬 > 속 스카이캐슬에 사는 아이들은 마음 속 상처가 생기기는 했지만 어찌 되었든 일상으로 돌아가는 데 성공했다. 그렇지만 그러지 못했던 혜나에게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죽음이었다. 혜나의 죽음으로 등장 인물들 생각에 변화가 생기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그들의 일상이 파괴된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그들이 그런 충격적인 일을 겪고도 어느 정도 안정적인 삶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결국 안정적인 직업을 갖고 있었고, 그 발판을 마련해준 것은 명문대였다.

물론 지방대 출신인 황치영(최원영 분)도 있다. 그렇지만 그 역시 의대 출신이다. 대학교 입시에 성공했던 부모들 밑에서 성장한 아이들만이 행복해진 이야기. 이런 결말을 보면서 사람들이 과연 < SKY캐슬 > 결말에 나온 메시지처럼 살려고 노력할 수 있을까?
 

JTBC 드라마 < SKY 캐슬 > 마지막 회의 한 장면. ⓒ JTBC

 
그랬기에 사람들 마음속에 보다 강한 울림을 남기려면 한서진(염정아 분)의 파멸과 같은 보다 불행한 결말이 필요했다. 그랬기에 나는 일각에서 떠돌았던 스포일러의 내용처럼 혜나가 한서진의 친딸이기를 바랐다. 그렇게 되는 순간 4살 때부터 노력했다던 예서, 그리고 그 예서를 성공시키기 위해 10년을 넘게 옆에서 노심초사하며 노력을 기울였던 한서진의 삶이 통째로 부정당할 수 있었을 것이니까.

한서진은 자식을 위해서라면 뭐든지 다 할 수 있는 캐릭터였다. 그런데 그런 인물이 그토록 가혹하게 내쳤던 혜나가 사실은 자신의 친딸이었다는 것을 아는 순간 어떤 생각을 하게 되었을까? 그동안 살아온 삶에 대해 원하든 원하지 않든 뒤돌아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다시 말해 아이의 입시를 위해 달려온 삶이 과연 제대로 된 삶이었는지 뒤돌아보게 하고 그 모습을 보는 시청자들에게도 어떻게 사는 것이 바람직한 것인지 다시 생각해볼 기회를 줄 수 있었을 것이다.
 

JTBC 드라마 < SKY 캐슬 > 마지막 회의 한 장면. ⓒ JTBC

 
그러나 한서진은 그간 이룩한 경제적 부도, 가족도 그대로 유지한 채 평온한 일상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그 난리를 겪고도 예서는 또 다시 입시를 준비하기 시작한다. 그런데 피라미드 밑바닥에 있던 혜나는 그럴 기회조차 갖지 못한 채 죽음을 맞이했다. 이런 결말이 정말로 < SKY캐슬 >을 시청했던 이들에게 강한 울림을 줄 수 있었을까?

오히려 < SKY캐슬 > 속 한서진, 차민혁, 강준상 등 스카이캐슬 안에 사는 이들이 모두 다 파멸을 맞이했을 때 그제야 비로소 시청자들도 차민혁의 장녀 차세리(박유나 분)가 했던 이 말을 더 가슴속에 기억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리고 결말은 조금 아쉬웠지만 < SKY캐슬 >을 본 사람들이 정말로 꼭 기억해야 할 말이기도 하다.

"남들이 알아주는 게 뭐가 중요해? 내가 행복하면 그만이지!"
스카이캐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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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넓게 보고 싶어 시민기자 활동 하고 있습니다. 영화와 여행 책 등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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