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거침없이 말하고 행동해도 돼!

<숙덕커플 페미니즘 연대기5> 여성인권운동가 고 김복동 할머니를 기억하는 법

검토 완료

김화숙(dream40)등록 2019.02.23 01:22
 
사랑하는 내 친구 Y에게
 
"가장 거침없던 불굴의 활동가 중 한 명이 떠났다."
 
김복동 할머니 장례 주간에 TV뉴스에서 들은 말이야. 미국에서도 뉴스 접했겠지? 뉴욕타임스가 할머니 부고에 쓴 말이라는데, 내 귀에 콕 꽂혔어. 거침없다는 말 때문이었어. '일이나 행동 따위가 중간에 걸리거나 막힘이 없다'니 여성인권활동가 김복동 할머니를 세계가 인정한 말이구나 싶었어.
 
그날 나도 상록수역 평화의 소녀상에 갔었어. "평화와 정의를 외치며 걸어온 여성인권운동가 고 김복동 할머니를 기억하겠습니다." 추모공간에 게시된 그 글을 큰 소리로 읽으며 포스트잇을 써 붙였지. 할머니가 남긴 마지막 말씀을 읽는데 내 목소리가 더 커지더라.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해결을 위해 끝까지 싸워 달라. 재일조선학교 아이들을 지원하는 문제를 나를 대신해 끝까지 해 달라."
  

김복동 할머니 장례식 주간의 안산 상록수역 상록수역 앞 평화의 소녀상 옆 김복동 할머니 추모공간. 할머니의 약력과 사진과 말씀 아래 시민들이 붙인 추모 포스트잇이 있다. 나는 큰 소리로 거기 있는 모든 글을 읽는 것으로 할머니를 추모했다. 그리고 내 식으로 해석했다. 화숙, 더 거침없이 말하고 행동해도 돼! ⓒ 김화숙

   
끝까지 싸워달라는 유언이 내겐 이렇게 들렸어. "화숙, 더 거침없이 말하고 행동해도 돼!" 아마도 안 싸우는 여자로 살아온 내가 부끄러워서였을 거야. 한 때 난 안 싸우는 게 자랑인 줄 알았잖아. 교회에서, 친구들 사이에서, 직장에서, 그리고 가정에서. 아~~ 안 싸우는 잉꼬부부는 무슨 얼어죽을. 안 싸우면 결국 망하더라고. 장례식 주간 자꾸 생각나는 거야. 싸워야 산다고.
 
"여러분! 느껴지시나요? 우리 김복동 할머니께서 전쟁도 이겨내고 한국사회의 가부장제적인 편견도 이겨내고 한국사회의 폭력적인 문화도 이겨내고 드디어는 그것도 딛고 일어서서 전국 곳곳에 세계 각지에 다시 희망의 나비로 살아나고 있음이 느껴지시나요?"
 
정의기억연대 윤미향 대표가 할머니 장례식에서 한 호상인사야. '가부장제적인 편견을 이겨내고', 이 대목 좀 봐. 일본군 성노예에서 생존하신 것만도 위대한데, 가부장제적 편견을 딛고 일어나셨대. 가부장제적 편견에 매인 여자는 어찌 살더라? 권리 따위 없잖아? 거침없이 말할 리도 싸울 리도 없지. 김복동 할머닌 딛고 일어나 거침없이 싸우다 나비로 날아가셨대. 세계의 전쟁 성폭력 여성들과 일본의 조선학교까지 사랑하고, 다 주고 떠나셨지. 정말 거침없던 불굴의 활동가였어. 
 


그건 다 개소리였다!
 
 지난 1월 마지막 일요일에 특별한 일이 있었어. 내 짝꿍 덕이 청빙 제안을 받아 서울에서 몇 주 설교를 했더랬어. 최종 결정 전에 우리가족도 초대받아 갔지. 가족은 어떤 사람들인지, 서로 맞는지 궁금하겠지? 과연 우리가 추구하는 열린공동체를 실현할 수 있을지, 우리도 판단해야잖아? 그날 처음 만난 교회 식구들 앞에서 사모라는 내가 무슨 말했는지 들어볼래?

 

일본군 위안소 지도 <조선인 군위안부와 일본군 위안소제도> 책에 수록된 일본군 위안소 지도. 일본이, 그리고 가부장제는 이토록 조직적으로 여성을 일본군 성노예로 끌어가 폭력으로 짓밟았다. 김복동 할머니는 이런 폭력의 피해자에서 생존자로, 그리고 가부장제적 편견을 딛고 일어나 가장 거침없는 활동가로 살다 희망의 나비가 되어 날아가셨다. ⓒ 김화숙

   
"……나는 이혼하고 싶더라. 예수도 찬성할 거라 가슴이 뛰더라. 순종적인 아내 안 한다. 목숨처럼 지켜온 가정이고 남편이었지만, 내가 잘못 살았더라. 교회에서 배운 부부 질서란 다 개소리였다! 예수 정신이 아닌 가부장제였다. 스스로 사유하고 독서하고 연구하다 보니 페미니즘은 자연스런 수순이었다. 토론하고 글쓰고 산다. 내조하는 사모님? 잘되면 남편영광 못되면 사모 탓 아닌가? 나는 글 쓰느라 바쁠지 모른다. 좋은 사모 기대하지 마라. 냉정히 고민하고 결정하시라……."

 
내 입에서 튀어나오는 '개소리'에 나도 놀랐어. 다 기억도 안 나. 당연히 질의응답도 이어졌지. 애들도 상상 초월의 한마디씩 했어. 아~ 욕먹기로 작정한 사모에, 아무 거리낌없이 아빠를 평하는 아이들까지. 사람들이 놀랐겠지? 그런데 친구야, 뜻밖에도 말이야, 나는 그들에게서 환대의 눈빛을 보았어. 살짝 놀랐어. 돌아오는 전철에서 숙덕커플은 희비가 엇갈리는 묘한 대화를 나누었어.
 
숙(나): 아, 나를 좀 더 쎄게 어필하지 못했나 봐. 청빙 결정되면 나 어쩌나 싶어.
덕(남편): 교인들이 좀 충격은 받았지만, 저런 사모구나, 이해하는 거 같던데?
숙: 내가 개소리를 해도 그분들 속엔 '헌신적인 사모' 기대가 있을 거 같아서.
덕: 보아온 게 그거니 그럴 순 있지. 그만하면 넌 솔직하게 잘 보여줬어. 나도 살짝 당황되더라. 근데 생각할수록 니가 옳았어. 그분들도 다 느끼고 생각할 거야. 아하, 틀에 박힌 사모가 아닌, '나'로 살고 싶은 사람이란 말이구나. 그럼 됐잖아.
 
숙: 그래도 가슴이 답답해. 나 자신을 끊임없이 부정해야 하고, 실체도 없는 순종, 헌신, 겸손을 요구받는다? 생각만 해도 싫어. 너 혼자 거기 가야할지도 몰라.
덕: 니 맘 알아. 너는 너로, 너답게, 자유롭게 살아야 해. 니가 행복하고 건강한 게 우선이고, 그게 내가 사는 길인 거 알아. 우리가 계속 할지 말지도 니가 기준이야. 니가 거기서 너답고 자유롭게 느낀다면,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다면, 우리가 계속 갈 수 있는 거고…….

 
며칠 후 청빙은 결정됐어. 숙덕커플은 2월부터 주말엔 서울사람이네. 단, 1년 해보고 다시 결정하기로 했어. 덕인 여전히 주중엔 노동하고, 안산엔 일요일 오후에 모이고. 더 바빠지겠지? 페미니즘 공부하는 목사 덕이 앞날이 궁금해지지 않아? 뿐 아니야. 그곳 사람들은 나를 기다렸다는 듯 반겼어. 내 거침없는 언행에 놀라면서도 자유와 해방으로 느꼈대. 날 보는 것만으로도 치유라니 내가 더 신나버렸어. 말 통하는 공간과 새 친구들을 한꺼번에 얻었으니, 나야말로 치유요 감사야.
 
    

'사모선서'라고 들어 봤을까?
 
친구야, 20년도 더 지난 일이 떠올라. 내가 '사모선서'했던 이야기야. 새로 부임한 안산에 적응하랴, 당면 문제들에, 새로운 학생들과 두 아이, 거기다 셋째 임신까지, '나'가 없던 시절이었지. 셋째 낳은 몇 달 후, 서울에서 '담임 목사 사모' 선서를 했더랬어. 내 나이 만 36세였어. 그날의 억눌리고 심란한 기분이 아직도 생생해. 주체할 수 없는 작가 본능으로 다이어리에 깨알같이 기록해 뒀더라. 
 

김복동 할머니의 그림 <끌려가던 날> <봉선화가 필 무렵> 속에 실린 김복동 할머니의 그림이다. 소설 속 순이의 이야기는 어린 김복동이 일본군에게 끌려가 겪은 이야기가 많이 담겨 있다. 14세 소녀를 끌고가서 일본군 성노예로 짓밟은 그들에게 인간이란 무엇이었을까? 여자란 무엇이었단 말인가? 가부장제는 여자를 남자의 도구로 보고 폭력적으로 짓밟도록 모든 근거를 제공하지 않았던가. ⓒ 김화숙

    
    선 서
본인은 00교회 담임 목사 사모로 부르심을 받은 것을 무한한 영광으로 생각하는 바입니다. (중략) 주님만을 사랑하며 000 목사님을 기도로 동역하며 겸손히 순종하여 00사역에 충성할 것을 선서합니다. 아울러 선배 사모님들로부터 겸손히 배우며, 성령의 그릇을 이루기에 힘쓸 것을 하나님과 동료 사모님들 앞에 선서하는 바입니다. 0000년 0월 0일  사모 000


결혼식에서 남편에게 순종하겠다 '서약'한 내가 결혼 8년 만에 '사모선서'도 했더라. 겸손히 순종하고 또 겸손히 배우겠대. 누가 만들었을까? '겸손'이 뭘까? 나보다 권력 우위에 있는 사람들 앞에 겸손 선서라니! 복음서 어디에 예수가 약자에게 '순종'과 '겸손'을 요구하디? 결단코 없고말고! 겸손은 예수가 강자에게 요구한 덕목이거든. 교회가 어떻게 가부장제적 편견에 편승했나 보이지 않니? 

 믿음인 줄 알고 한 일인데, 돌아보니 하나님의 탈을 쓴 가부장제에 주눅들어 있었더라. 생각해 봐. 그런 서약은 과연 누구를 위한 걸까? 결코 자유로울 수 없고, 최선을 다하려 하면 더 매이는 사슬이잖아. 도리어 남편을 '불순종'하니까 진짜 사랑과 신뢰를 얻는 역설을 어떻게 설명할까. 위계적 부부가 인간 대 인간 관계로 바뀌었거든. 아무리 포장해도, 한 인간의 정체성이 '사모'나 '아내'일 순 없더라구.
 
기독교 결혼식에서 하는 <신부 혼인서약서> 예(순종의 변천)
1.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범사에 남편에게 순종하겠습니다.
다윗에게 주님의 아름다움을 회복시켜 준 아비가일과 같은 지혜로 남편을 섬기며,
주님에의 믿음으로 시어머니에게 순종한 룻과 같은 사랑으로 어머님을 모시겠습니다.
평생을 함께할 우리 부부. 어제보다 나은 사랑을 키워 가겠습니다.
더불어 이웃을 돌아보는 마음도 잊지 않겠습니다.....

2. 나 000는 000군을 남편으로 맞이하여 한 평생을 길이 사랑하며, 귀중히 여기고, 도와주고 위로하며, 순종하고 고락간에 변치 않고, 생전에 일정한 부부의 대의를 따라 아내된 본분을 다할 것을 하나님과 여러 증인들 앞에서 맹세합니다.
3. 하나님과 이 모든 증인 앞에서 나 000는 그대 000을 남편으로 맞아 우리가 사는 날 동안 기쁠 때나 슬플 때나 건강할 때나 병들 때나 부유할 때나 가난할 때나 항상 그대를 사랑하고 성실한 아내가 될 것을 지금 서약합니다.   출처: <기독교 표준 예식서>

친구야, 10년 전 네 결혼식에선 순종서약 없었던 거 알지? 숙덕이 꺼림칙해서 과감히 뺐었거든. 지금은 많이 달라졌다지만 여전히 건재하는 순종서약이 있어. 하나님 이름으로 더 깨알같이 가부장제가 작동하는 거야. 예수라면 그런 불평등 서약 결코 시키지 않았을 거야. 인간과 인간 간에 안 되는 건 남편과 아내 사이에도 안 되는 거잖아. 한 사람에게만 겸손과 순종 서약이라니, 불평등 맞지?
 
그래서 김복동 할머니를 나는 기억하며 살고 싶어. 그 질긴 가부장제적 편견을 딛고, 거침없이 싸우다 가신 활동가로 말이야. 일본의 공식사과도 법적 배상도 못 보고 돌아가신 게 너무 가슴 아파. 스물세 분 친구들을 남기고 할머닌 어떻게 눈을 감으셨을까. 친구야, 알겠지? 우리 주눅들면 안 돼. 더 거침없이 말하고 행동해도 돼! 가부장제적 편견과 끝까지 싸우자꾸나. 건강하게! 친구야 사랑해!
 
 
  • 이 기사는 생나무글입니다
  • 생나무글이란 시민기자가 송고한 글 중에서 정식기사로 채택되지 않은 글입니다.
  • 생나무글에 대한 모든 책임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