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취재, 이런 일이 있었다니

[서평] 이진동 '이렇게 시작되었다'

등록 2019.02.15 17:20수정 2019.02.15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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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총선에서 야권이 대승하고, 그동안 절대적인 권력 앞에서 감춰져 있던 진실들이 수면 위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 진실들은 매우 충격적인 일들이었고, 결국 촛불 시위와 탄핵으로 이어졌다. 국정 농단 사건 보도와 탄핵에 있어서 주목할 만한 몇몇 기사들이 있었다.

그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아마 JTBC의 태블릿 PC 보도일 것이다. 그러나 이를 제외하고도 국정 농단 사건에 사람들이 관심을 갖게 한 영상과 자료가 있었다. 바로 의상실 CCTV 영상과 김영한 수석의 업무일지였다. 업무일지에 등장한, 아마도 업무지침으로 추정되는 "야간의 주간화" "휴일의 평일화" "가정의 초토화"라는 문구가 인터넷에서 유명세를 타기도 했다.


이 두 가지 자료와 JTBC의 보도가 국정 농단 사건의 전말을 끄집어냈다. 다만 이 자료들이 어떻게 언론에 퍼져 나갔고, 기사로 정리되게 되었는지는 사람들이 미처 다 알지 못한다. 국정 농단 사건의 시작점은 한참을 거슬러 올라가야 할 것이다. 다만 이와 관련한 언론 보도의 시작점은 조금 더 가깝다. 그 시작을 찾기 위해 읽어볼 만한 책이 있다. 바로 <이렇게 시작되었다>라는 이름의 책이다.
 

이렇게시작되었다 ⓒ 이진동

 
이 책의 표지에는 국정 농단 사건의 핵심인 최순실, 안종범 전 수석, 박근혜 전 대통령, 우병우, 김기춘의 얼굴 사진이 있다. <이렇게 시작되었다> 라는 책 제목도 책의 제목이라기보다는 영화 제목같은 느낌이다. 책에서 살펴본 국정 농단의 구체적인 언어는 말도 안 되게 위압적이었고, 책의 내용은 현실보다도 더 영화같았다.

책은 생각보다 과거로 거슬러 올라간다. 2014년 10월, 저자는 지인의 소개로 제보할 것이 있다는 고영태를 만난다. 고영태는 최태민 목사의 딸 최순실, 차은택, 김종에 대해 얘기했다. 고영태는 고영태는 박근혜 대통령의 의상실 CCTV 영상을 손에 넣어 저자에게 건넸다. 저자가 본 CCTV의 내용은 충격적이었다.
 
 대통령 부속실의 행정관들이 '일반인' 최순실을 대하는 영상을 보면서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의 관계가 짐작됐다. 최순실이야말로 대통령 측근 중의 최측근이자 '비선실세'일 거라는 걸. 그렇지 않고서야 대통령 주변을 누구보다 잘 아는 부속실 행정관들의 태도가 저렇게 극진할 리가 없었다. 최태민의 딸이자 정윤회의 부인 정도로만 알려져 있고, 행적이 베일에 싸여 있던 '비선실세' 최순실의 '꼬리'를 잡은 것이다. -32P
 
저자는 이후 최순실의 정체를 사람들에게 공개하기 위해 천천히 접근하기 시작한다. 기자들에게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에 대한 취재를 명령했다. 취재 과정에서 미르재단의 운영 구조에 대한 의혹들이 드러났다. 저자는 미르재단의 목적은 대통령의 퇴임 후를 염두에 둔 것으로 파악했다. K스포츠재단 역시 수상한 곳이었다. K스포츠재단의 회의록에 창립총회에 참석해 발언을 한 것으로 기록된 기업인은 K스포츠재단이 뭔지도 몰랐다.

저자는 이 두 재단의 문제를 중점으로 자료를 수집했고, 이 모든 일의 배후에 있는 최순실과 박근혜의 관계를 알리기 위해 빈틈없이 촘촘한 기사가 나가도록 기자들을 관리했다. 기자들은 철통같은 보안 속에서 국정 농단 관련 인물들을 관찰했다. 그리고 마침내 우리가 아는 바와 같이 최순실 게이트의 전말이 드러났고 탄핵됐다.

국정 농단 사건의 전말과 탄핵의 인용에 대해서는 이미 꽤 많은 자료가 나와 있다. 이 책이 다른 자료와 다른 점은 책에 저자가 직접 현장 속에서 파악한 구체적인 자료와 대화, 인물에 대한 평가가 담겨있다는 것이다. 저자가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두 명의 국정농단 수훈자는 박관천과 여명숙이다.

청와대에서 근무했으나 정윤회 게이트 사건 이후 고초를 겪었던 박관천은 저자의 팩트 체크를 도왔다. 여명숙은 본인이 목도하고 황당해할 수밖에 없었던 문화계의 황태자 차은택의 힘과 권력에 대해 고발했다. 이 둘은 저자와 의기투합하면서 호쾌하게 문제의 핵심으로 나아갔다고 한다.
  
결과적으로는 성공적인 취재였지만, 저자는 취재 기간 내내 아쉬운 점이 있었던 것을 숨기지 않는다. JTBC가 태블릿 PX 보도로 치고 나가기 전에, 이미 TV조선 측에서는 최순실이 등장하는 영상을 확보해둔 상태였다. 그러나 이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고, JTBC가 국정 농단 보도의 에이스로 치고 올라가는 것을 맥없이 바라봐야 했다.


당시 청와대에서 '조선일보 vs. 청와대' 프레임을 씌웠기 때문이다. 저자는 세간의 추측과 달리 TV조선과 <조선일보>는 당시 국정 농단 사건 보도를 공유하고 있지 않았다고 말한다. 이런 상황에서 TV조선과 상관없이 <조선일보>에서 우병우 수석에 대한 비판에 나서자 청와대는 극단적인 반발로 <조선일보>를 공격하며 이에 대응했다. <조선일보>가 정치적인 목적으로 청와대를 친다는 프레임이 생겼다.

저자에 따르면 이는 사실이 아니지만, 이 때문에 <조선일보>와 TV조선 모두 운신의 폭이 크게 좁아졌다고 한다.

저자가 준비한 자료들이 기사로 나가기 어려운 상황이 이어졌다. 다행히 JTBC를 비롯한 다른 언론사들도 치고 나오자 그제서야 김영한 전 수석의 비망록을 비롯한 자료를 기사로 내보낼 수 있었다.

TV조선이 국정 농단 보도에 뛰어드는 것을 보고 많은 의혹이 있었다. 앞서 말한 <조선일보> vs. 청와대 프레임은 물론이고, 조선일보의 새로운 정국 구상을 위한 움직임이 아니냐는 의견도 있었다. 저자 본인도 보도 때문에 여러 곤경에 처했다. 친박 매체의 타겟이 되어서 엄청난 폭언을 들은 것은 기본이다.

다른 기자들에게 자신에 대한 음해성 루머가 퍼뜨려지고 있다는 경고를 듣기도 했고, 인사 조치 요구도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TV조선 기자들은 끝까지 보도를 끌고 나가서 마침내 국정 농단의 전말이 밝혀지는데 일조했다.

TV조선을 비롯한 종합편성채널 매체들이 보수 우위의 언론 지형을 형성하는 데 많은 기여를 한 것은 사실이다. 또한 이들은 보수정권 집권기에 정부를 비판하기 보다는 정부의 안정적인 지지율 유지에 힘을 쏟았다는 의혹을 받았다. TV조선의 경우 저자가 지적하듯이 일정한 시점에서 역풍을 걱정하는 분위기에 휩쓸려 적극적인 보도를 이어나가지 못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가 이끈 TV조선 보도가 최순실과 박근혜의 정체를 사람들에게 알려서 민주주의를 지키는 데 공을 세웠다는 점은 부정하기 어렵다고 본다. 특히 고영태가 제공한 최순실 영상과 김영한 수석의 가족에게서 받은 업무일지를 바탕으로 기사를 쓴 점은 고평가할 부분이다.

사건의 바깥에서 언론 보도를 통해 파악한 국정 농단의 전말과, 직접 언론 보도의 지휘를 이끌었던 사람의 눈으로 바라본 사건의 내용에 차이가 있을 수 있다. 특히 언론과 정부 간의 신경전이나 언론 간 보도 경쟁같은 경우에는 외부에서 파악하기 어렵다. 이 책은 그런 일반 시민이 알기 어려운 점까지 모두 묶어서 국정 농단의 퍼즐을 맞춰준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는 책이다. 

이렇게 시작되었다 - 박근혜-최순실, 스캔들에서 게이트까지

이진동 지음,
개마고원, 2018


#박근혜 #최순실 #이진동 #TV조선 #탄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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