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 시대의 살인 사건

[서평] 디렉터스컷

등록 2019.02.16 12:24수정 2019.02.16 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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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1인 콘텐츠 제작이 가능한 시대가 왔다. SNS의 발달과 유튜브의 번성으로 이제 누구나 자기가 말하고 싶은 바를 남에게 공개할 수 있다. 인기 유튜버들은 십억 원이 넘는 돈을 벌기도 한다. SNS와 유튜브는 공식적인 기관과 기관이 아닌, 일반 대중과 대중 사이에서 정보가 급속도로 퍼져나가도록 만들었다.

워낙 입소문이 전달되는 속도가 빠르다 보니 트위터, 페이스북, 인스타그램을 활용한 영업 홍보, 상품 광고까지 등장하는 판이다. 사람들은 이제 자신이 관심을 가진 것에 대해 빠르게 정보를 얻고 그 정보를 다시 남에게 가공해서 넘겨줄 수 있다. 이런 환경에서는 자극적인 사건에 대한 정보를 SNS를 통해 알려서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게 하는 것도 가능하다. 그렇다면 그 이후에 자극적인 정보를 방송함으로써 사욕을 챙기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그래서 SNS를 활용해서 살인 사건의 정보를 남에게 알리고,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면 살인범을 생중계해서 방송한다는 내용의 소설이 등장했다. 저자는 '벚꽃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 '밀실살인게임'으로 유명한 일본 소설가 우타노 쇼고다.
 

디렉터스컷 ⓒ 최종인

트위터에 글을 쓰면 팔로워들이 글을 볼 수 있다. 그런데 팔로워가 한 명도 없는데도 계속해서 트위터에 글을 쓰는 사람은 어떤 기분으로 쓰는 것일까? 미용실 '프사리스'에서 일하는 2년차 직원 가와시마 모토키는 직장에서는 직장 괴롭힘을 당하고 있고, 인간관계는 단절된 사람이다. 그의 하나뿐인 어머니는 인생을 포기하고 빠찡꼬를 할 뿐이다. 박봉에 장시간 노동으로 여가조차 없다.

그는 자신의 스마트폰으로 팔로워 없는 트위터를 켜고 글을 작성한다. 자기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저주하는 글을 쓰면서 인생의 낙을 느낀다. 자신의 가위를 빌려가고 돌려주지 않는 직장 동료에게도 트위터로 저주를 한다. 물론 팔로워는 사실상 없다. 타인에게 트위터 계정을 알려주지도 않는다.

그런데 이런 폐쇄적인, 어두운 가와시마 모토키가 실수로 사람을 살해하고 만다. 첫 살인 사건은 우발적인 성격이 있었지만 어쨌든 사람을 죽이고 만다. 자신의 범행이 들키지 않자 가와시마 모토키는 머릿속의 자신과 실제 행동하는 자신을 통합시켜 연쇄살인을 실행한다.

이런 살인범 가와시마 모토키를 뒤쫓는 사람은 방송사 하청업체 직원 하세미 준야다. 그는 우연히 가와시마 모토키에 대한 정보를 얻게 되고, 이를 SNS와 유튜브를 활용해서 사람들에게 조금씩 알려 관심을 끈다. 그리고 자신만이 아는 정보를 통해서 살인범을 만나 생중계해서 대박을 치고자 한다.

주인공 하세미가 자신을 홀대한 방송국 사람들에게 한방 먹여주고 싶다는 마음을 갖는 것이 이야기 전개의 중요한 동기로 작용한다. 살인마를 쫓는 하세미는 하청업체에서 일하지만, 하세미와 같은 학창시절을 지낸 친구는 방송국 정사원으로 일한다. 하세미는 자신보다 능력도 열등하고, 방송 제작에는 재능이 없다는 평가를 듣는다는 친구가 자신보다 잘나가는 것에 속이 뒤틀린다.


친구는 페이스북에 미녀와 함께 와인을 마시는 모습을 올리는 동안 하청 제작사 직원인 하세미는 최전선에서 발로 뛰면서 계속 하청일만 할 뿐이다. 처음에 하청에 취업했기 때문에 앞으로도 계속 방송국을 밑에서 떠받쳐야 한다. 정직원과 하청 제작사 직원의 차이는 엄청나다.
 
그러나 아무리 일을 잘해봐야 하청 회사의 말단 직원이다. 대기실 세팅도 잘 못하는 같은 해에 입사한 방송국 사원이 갈팡질팡하면서도 프로듀서의 직함을 얻고 수입 격차는 두 배, 세 배, 그리고 해가 지날수록 더욱 벌어져 갔다. 입사 6년 차에 하세미는 디렉터가 되었다. 주변에서는 꽤 일찍 출세했다며 축하해줬지만 어차피 하청 회사의 디렉터일 뿐, 뱀의 꼬리에서 뱀의 허리가 된 정도다. -113P 

하세미는 자신이 친구를 대신할 일도, 역전할 일도 전혀 없는 냉혹한 현실을 저주하며, 미친듯이 폭주한다. 그래서 방송인으로서 성공하고 싶다는 야망을 채우기 위해 살인범을 생중계하겠다는 엽기적인 계획을 세우게 되고 만다.

가와시마와 하세미를 포함한 등장인물들은 열등감이나 뒤틀린 질투심, 타인에 대한 증오와 허영기로 가득차 있다. 때문에 이 소설은 처음부터 끝까지 어두운 감정이 폭발한다. 뒤틀린 감정을 적절하게 보조해주는 수단이 바로 SNS다. 이들은 타인의 SNS를 보고 남이 잘나가는 모습을 보고 열등감과 질투에 불타고, 타인에 대한 증오를 몰래 SNS에 남기고, 허영기를 만족시키고 타인의 관심을 끌기 위해 SNS에 영상을 올린다.

소설에 등장하는 SNS는 트위터, 페이스북, 인스타그램인데, 각각 사용하는 사람도, 사용하는 목적도 다른 점이 재밌다. 자신이 생각하는 것을 말하고는 싶지만 자신의 정체를 알리기는 싫은 사람, 타인의 잘 나가는 모습을 보고 열등감을 폭발시키는 사람, 관심을 끌고 싶은 사람이 각자 다른 SNS를 쓴다.

SNS는 소설의 열등감섞인 분위기를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쉽게 해준다. 또한 현대인의 SNS 생활을 부정적인 감정과 살인에 접목한 덕분에 살인에 대한 정보도 대중 사이에 빠르게 퍼져서 속도감있는 전개가 이루어진다. 이 소설의 인물들은 사건의 전개를 천천히 기다리는 대신 바로바로 SNS를 활용하고, 이는 살인에 대해 알고 싶은 수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진다.

이 책은 한국어판 서문에서 저자가 말하는 바와 같이, 수수께끼 풀이보다는 현란한 이야기 흐름에 집중한 책이다. 작가에 따르면 전개와 결말도 확실히 정하지 않은 채 쓰기 시작해서 이야기를 진행했다고 하는데, 과연 지루한 부분 없이 속도감있는 전개로 결말까지 달려간다. 이야기의 흐름에 몸을 맡긴 채 살인범을 쫓는 주인공의 뒤를 따라가면 된다. 뒤틀린 인간들의 폭주가 향하는 곳을 함께 달려가서 감상하는 작품이다.

디렉터스 컷 - 살인을 생중계합니다

우타노 쇼고 지음, 이연승 옮김,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2018


#SNS #유튜브 #방송 #살인 #우타노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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