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사람들이 더 좋아하는 달동네 거리

옛 추억의 보물창고, 순천 드라마 촬영장

등록 2019.02.16 14:48수정 2019.02.16 14:48
0
원고료로 응원

순천에 있는 드라마 촬영장. 개발의 광풍이 몰아치면서 현대화의 물결이 일기 시작하던 격동의 시대 풍경을 재현해 놓았다. ⓒ 이돈삼

 
얼마 전, 영화 '말모이'를 봤다. 일제강점기에 조선어 사전을 만들기 위해 비밀리에 조선말을 수집하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였다. 영화에서 일본인 순사들과 조선어 사전 편찬 작업을 하던 사람들이 쫓고 쫓기는 장면을 순천 드라마 촬영장에서 찍었단다. 80년대 서울 변두리의 번화가인 순양극장 앞길에서다.

영화의 배경무대로 쓰인 전남 순천 드라마촬영장으로 간다. 순천 드라마촬영장은 시쳇말로 '잘 나가는' 세트장이다. 드라마 '사랑과 야망', '에덴의 동쪽', '제빵왕 김탁구', 영화 '늑대소년' 등 그동안 수많은 드라마와 영화를 여기서 찍었다.
  

영화 '말모이' 촬영 모습. 일본인 순사들과 조선어 사전 편찬 작업을 하던 사람들이 쫓고 쫓기는 장면을 여기서 찍었다. ⓒ 전남영상위원회

   

드라마 '에덴의 동쪽' 촬영 모습. 순천 드라마촬영장에서는 개장 직후 지금까지 수많은 드라마, 영화를 찍고 있다. ⓒ 순천시

 
요즘에도 많이 찍고 있다. 영화 '말모이'뿐 아니다. 작년 말에 개봉한 영화 '마약왕'을 여기서 찍었다. MBC가 올해 3·1운동과 임시정부수립 100주년을 기념해 준비하고 있는 특별드라마 '이몽'도 매한가지다. 일본인에게서 양육된 조선인 외과의사가 상해임시정부의 첩보요원이 돼서 활동하는, 유지태·이요원 주연의 시대극이다. 드라마는 오는 5월 방영 예정이다.


순천 드라마 촬영장은 예전의 군부대 자리를 활용해 만들었다. 면적이 4만㎡ 남짓 된다. 여기에 1960년대 서울의 달동네와 70년대 순천읍내 거리, 80년대 서울 변두리의 집과 상가, 거리, 동네를 재현해 놓았다. 지금 중장년층이 된 사람들의 애환이 서려있는 공간이다. 개발의 광풍이 몰아치면서 현대화의 물결이 일기 시작하던 격동의 시대 풍경 그대로다.
  

순천 드라마 촬영장의 순양극장 풍경. 당대 최고의 육체파 여배우가 나오는 영화포스터가 덕지덕지 붙어있다. ⓒ 이돈삼

   

순천 드라마촬영장의 70년대 순천읍내 거리 풍경. 냇가를 사이에 둔 풍경이 그때 그 시절 만큼이나 을씨년스럽다. ⓒ 이돈삼

 
드라마 촬영장으로 들어서면, 시계바늘이 40∼50년 전으로 돌아간다. 매표소를 지나서 만나는 풍경이 80년대 서울 변두리의 번화가다. 디스코를 추며 신나게 놀 수 있는 음악으로 시끌벅적한 고고장이 먼저 발길을 이끈다.

영화 '말모이'의 촬영배경으로, 당대 최고의 육체파 여배우가 나오는 영화 포스터가 붙어있는 순양극장도 있다. 전당포와 중국집, 포목점, 사진관, 신발가게가 줄지어 있다. 추억의 양은도시락이 놓여있는 옛 학교 교실도 만난다.

빨랫줄에 하얀 옷이 널려 있는 냇가를 사이에 두고 나뉘는 70년대 순천읍내 거리에는 장터와 우체국, 식당, 오락실이 보인다. 진짜 그때 그 시절 풍경처럼 을씨년스런 분위기를 풍긴다.
  

순천 드라마 촬영장의 달동네 모습. 야트막한 산등성이를 슬레이트 지붕으로 다 덮고 있다. ⓒ 이돈삼

   

달동네의 집안 모습. 산비탈 외진 곳에 지어진 판잣집이 눈길을 끈다. 집에서 달이 잘 보이게 생겼다. ⓒ 이돈삼

 
60년대 서울 봉천동 일대 달동네도 매한가지다. 광복과 남북분단 이후 난민들이 산비탈 외진 곳에 판잣집을 짓고 살면서 형성된 마을이다. 높은 곳에 자리하고 있어서, 달이 잘 보인다고 이름 붙은 '달동네'다. 서울 변두리 거리를 따라, 버스정류장 입간판이 세워져 있는 한적한 시골길을 지나 언덕배기에 자리하고 있다. 야트막한 산등성이를 슬레이트 지붕으로 다 덮고 있다.

나무 전봇대 아래에는 연탄재가 수북하게 쌓여있다. 담 너머 집안 벽엔 '똥장군'이 걸려 있다. 가위 그림과 함께 소변금지 낙서도 웃음을 자아낸다. 가장 높은 곳에는 교회 예배당이 자리하고 있다. 앞서 만난 서울 변두리와 순천읍내 거리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곳이다. 
 

순천 드라마 촬영장 풍경. 거리 풍경이 70년대와 80년대를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 이돈삼

   

그때 그 시절의 거리와 학생들. 교복을 빌려 입은 학생들이 옛 거리를 거닐며 사진을 찍고 있다. ⓒ 이돈삼

골목을 따라 슬렁슬렁 걷다 보니 옛 생각이 절로 난다. 골목에서 엿장수의 가위질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트럭이라도 한 대 지나가면, 신기해서 먼지 날리며 달리던 트럭의 뒷모습을 한참동안 바라봤던 추억도 떠오른다.

아이스깨끼를 파는 아저씨 앞에서 텅 빈 주머니만 만지작거렸던 기억도 난다. 텔레비전을 보려고 이집 저집 돌아다녔던 기억도 소환한다. 연탄을 실어 나르던 리어카, 연탄가스에 중독돼 정신을 잃고 구토를 했던 기억까지... 추억의 화로를 뜨겁게 달궈주는 풍경들이다.


중장년층의 애틋한 향수를 불러일으켜주는 건 당연하다. 이 풍경을 더 좋아하고 즐기는 층은 학생과 젊은 연인들이다. 순양극장 앞 추억여행관에서 빌려주는 교복과 교련복을 입고 거리를 누빈다. 다양한 배경과 갖가지 소품을 이용해 사진도 찍는다. 그 모습을 보면서, 학창시절 필름카메라를 들고 사진을 찍었던 추억이 떠오른다.
  

순천 드라마촬영장 풍경. 교복을 빌려 입은 학생들이 거리를 활보하며 인증 사진을 찍고 있다. ⓒ 이돈삼

   

순천 드라마촬영장의 달동네 풍경. 교복을 빌려 입은 젊은이들이 갖가지 소품을 활용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 이돈삼

 
젊은 연인들은 '언약의집'에서 사랑의 맹세도 한다. 가족이나 친구, 연인들이 서로에게 마음을 전하며 영원을 약속하는 공간이다. 관람객들이 나무판자에 서로의 사랑을 약속하는 글귀를 직접 써서 걸 수 있는 전시공간도 있다. 밖에는 꽃으로 장식된 포토존도 있다. 드라마촬영장의 새로운 명소가 됐다.

한쪽에 느린 우체통도 보인다. 학창시절 좋아하는 여학생한테 편지를 쓰고, 보낼까 말까 한참을 망설였던 기억을 끄집어내 준다. 드라마촬영장은 옛 추억을 만나는 '추억의 보물창고'다. 
 

옛 추억의 놀이. 부모와 함께 순천 드라마촬영장을 찾은 어린이들이 달동네를 배경으로 옛 놀이를 즐기고 있다. ⓒ 이돈삼

#말모이 #드라마촬영장 #순천 드라마촬영장 #달동네 #순양극장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

AD

AD

AD

인기기사

  1. 1 61세, 평생 일만 한 그가 퇴직 후 곧바로 가입한 곳
  2. 2 천연영양제 벌꿀, 이렇게 먹으면 아무 소용 없어요
  3. 3 버스 앞자리 할머니가 뒤돌아 나에게 건넨 말
  4. 4 "김건희 여사 라인, '박영선·양정철' 검토"...특정 비서관은 누구?
  5. 5 죽어라 택시 운전해서 월 780만원... 엄청난 반전이 있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