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쳐갈 때쯤 세븐일레븐이 보일 거야

[서른살 여자, 혼자 떠난 타이완 자전거 일주 7]

등록 2019.02.16 15:19수정 2019.02.16 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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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완을 달리면서 가장 많이 보게 되는 것은 사원이었다. 길 옆으로 붉은 사원이 불쑥불쑥 나타난다. 처음에는 자전거를 멈춰 세우고 볼 정도로 신기했다. 길 옆에 사원이 있다는 것도 신기했고 사원에서 풍기는 이국적인 느낌도 신기했다. 나중에는 하도 많이 보다 보니 아무렇지 않게 지나치게 되었지만. 이들은 대부분이 도교 사원이다. 타이완의 종교는 불교와 도교가 93%를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그 다음으로 많이 보이는 것이 세븐일레븐이다. 타이완에는 세븐일레븐이 정말 많다. 몇 킬로미터마다 하나씩 있어야 한다는 규정이라도 있나 싶을 정도로 많다. 누렁이만 덩그러니 앉아있는 시골길에도 세븐일레븐이 있다. 정말 인적이 없는 동부 한두 구간을 제외하면 목이 마르거나 배가 고플 일은 없었다. 간단한 식사와 중간중간 휴식을 취하는 음료 타임까지 대부분 세븐일레븐에서 해결했다. 


타오위안에서 동쪽을 향해 달렸다. 길은 우회전으로 이어졌다. 골목으로 들어가더니, 어느 동네로 진입했다. 회색 시멘트로 지어진 집들이 모여 있었다. 벽에는 알록달록한 치장을 하고 춤추는 사람들이 그려져 있었다. 소수민족이 사는 동네라는 느낌이 왔다.

누군가 자신을 원주민이라고 소개했다. 1949년 전후로 국민당 정권과 함께 들어온 사람을 외성인, 그전에 이미 타이완에서 살고 있던 사람을 원주민으로 나눈다고 했다. 원주민은 그 안에서 다시 여러 부족으로 나뉘고, 각각의 언어와 문화가 따로 존재한다고 했다. 아무리 들어도 알쏭달쏭했다. 그들이 서로를 어떻게 인식하고 함께 살아가는지 조금 더 알고 싶었다. 그들에게는 숨쉬듯 당연한 것인데 나에게는 뭐가 뭔지 하나도 모르겠는 것. 그런 것들을 마주하는 것이 여행의 묘미다. 

업힐을 할 때마다 코스를 잘 선택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뒷바람이 나를 밀어주었기 때문이다. 타이완 일주 계획을 짜면서 몇 번이고 결정을 뒤바꿨던 것이 바로 코스였다. 서쪽부터. 아니 동쪽부터. 계속 마음이 바뀌었다.

시계 방향으로 돌면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할 수 있으나 대부분 산지이고 바람의 방향도 역풍이다. 반시계 방향으로 돌면 순풍을 받으며 탈 수 있지만 평지여서 지루하다는 의견이 있었다. 사람이 없는 동쪽에 가면 환영받는 반면 서쪽은 대부분 도심이라 여행자에 대한 반응이 심드렁하다는 후기도 보았다.

개인차가 있을 것이다. 내 경우 동쪽에서 잊지 못할 인연을 만나기도 했지만 서쪽에서도 여러 사람들을 만나 함께 놀았다. 동쪽은 대부분 나 같은 관광객이라 내가 모르는 길을 그들도 몰랐고, 삼삼오오 즐겁게 노는 것을 보고 있자니 소외감이 몰려오기도 했다. 초심자인 나에겐 비교적 힘이 덜 드는 평지와 순풍이 있는 반시계 코스가 제격이었던 것이다.  


타이완은 아열대 기후이다. 남부로 갈수록 열대 기후에 가까워진다. 3월이 한국의 5월 정도의 날씨이다. 자전거 타기에 딱 좋은 날씨였다. 나는 나무 그늘 밑으로 달렸다. 자전거 전용도로와 차도 사이에 가로수가 펼쳐져 두 도로를 구분하고 있었다.

모든 구간이 그런 건 아니었지만, 가로수로 가려진 자전거 전용도로를 달리니 좀 더 자전거만의 길을 보장받는 느낌이 들었다. 자전거길 바닥에는 100미터마다 표시가 되어 있었다. 어딘가를 기준으로 남은 킬로미터가 적힌 것이었다. 무슨 용도인지 알 수 없었다. 그런 기록이 자전거 여행자들에게 힘을 북돋아 주는 걸까. 괜히 신경이 쓰였다. 길 위에 적혀 있는 남은 킬로 수를 어서 타서 없애야 할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신경 쓰지 마 신경 쓰지 마. 내 페이스로 가는 거야.

고개를 들어 먼 곳을 둘러보았다. 해안선을 따라 희고 거대한 풍력발전기가 주욱 서 있었다. 끝이 보이지 않았다. 낯선 풍경이 즐거워진 나는 소리를 질렀다. 어차피 길 위에는 아무도 없었다. 노래도 불렀다. 힘이 빠질 때까지 소리 높여 불렀다. 목을 좀 축여야겠는 걸, 하는 생각이 올라올 즈음이면 어김없이 세븐일레븐이 나타났다. 

 

자전거 여행의 쉼터가 되어주었던 세븐일레븐 ⓒ 이보미

 
#타이완일주 #자전거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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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을 쓰고 글을 쓴다. 자전거를 타고 춤을 추고 여행을 하는 사람. 글을 쓰고 있을 때 비로소 사람이 된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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