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택 "자연이 하는 말을 받아쓰니, 시인이 됐다"

[인터뷰] 섬진강 시인 김용택 "교육은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

등록 2019.02.19 20:20수정 2019.02.20 15:38
2
원고료로 응원
콩, 너는 죽었다

-김용택-


콩 타작을 하였다
콩들이 마당으로 콩콩 뛰어나와
또르르또르르 굴러간다
콩 잡아라 콩 잡아라
굴러가는 저 콩 잡아라
콩 잡으러 가는데
어, 어, 저 콩 좀 봐라
쥐구멍으로 쏙 들어가네
콩, 너는 죽었다


운이 좋았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시인을 또 만났다.

'섬진강 시인'으로 불리는 김용택 시인이다. 김 시인은 전북 임실군 작은 시골 마을에서 태어나 시골에서 자랐고 지금도 시골에 살면서 글을 쓰는 보기 드문 작가다.
 

김용택 시인 지난 9일(토) 강연을 위해 아산중앙도서관에 방문한 김용택 시인과 따로 진행한 인터뷰 자리에서 찍은 사진. 72세의 나이가 무색할 정도로 동안의 표정이 가득하다. ⓒ 노준희

 
그는 1982년 <창작과 비평 21 신인 작가상 - 꺼지지 않는 횃불>에 섬진강 외 8편을 발표하며 등단했다. 섬진강의 아름다움과 섬진강에 기댄 우리 삶의 모습을 켜켜이 보여준 섬진강 연작은 30편이 넘으며, 그에게 '섬진강 시인'이라는 수식어를 선사했다.

교과서에 실린 시만도 4편이다. 그뿐만 아니라 그는 김수영문학상, 소월시문학상, 윤동주문학대상 등 명예로운 문학상을 다수 수상했으며 170편이 넘는 저서가 보여주듯 왕성하게 활동하는 '국민작가'다.

자연의 숭고함과 소박한 농촌의 삶, 아이들의 순수한 시선이 담긴 시로 꾸준한 사랑을 받는 김용택 시인이 지난 9일(토) 오후 2시 충남 아산시 아산중앙도서관에서 특별강연을 진행했다. 그의 시를 사랑하는 시민 100여 명이 이날 김 시인의 말을 경청했다.


"미래사회엔 감성을 공감하는 인간이 필요해"

김용택 시인은 자신이 사는 마을을 보여주며 이야기를 전했다. 강연의 관록만큼, 구수한 사투리로 대중을 웃겼고, 또 고민하게 하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넉넉한 뒷산에 기댄 마을, 마을 앞을 지키는 500년 된 느티나무, 고요히 흐르는 섬진강까지. 마을이 잘 유지되는 비결로 그는 '도둑질과 막말, 거짓말 안 하기'라고 말했다. 정치인의 부적절한 행태를 예로 들며 지금의 세상은 이것을 지키지 않아 혼란스러운 것이라고.
 

느티나무의 겨울 김용택 시인이 직접 찍은 마을 앞 500년 된 느티나무의 겨울 풍경 ⓒ 김용택

 
그러면서 얼마 전 있었던 교사 아버지가 자녀 성적 조작을 위해 시험지를 유출해 큰 충격을 준 사건을 꺼냈다.

"아버지로서, 교사로서, 어른으로서 그런 일을 하지 말라고 가르쳐야 할 사람이 오히려 해서는 안 될 일을 했어요. 이 얼마나 무서운 일입니까. 근데 시간이 좀 지나자 사람들이 별 관심 없어요. 다 그러고 싶은가 봐요."

김 시인은 우리 교육의 병폐를 신랄하게 비판했다.

"2035~2045년 사이에 로봇이 인간 지능 넘어선대요. 그러면 지금 직업의 70% 정도가 사라지는데 아이들에게 현재 교육하는 내용이 10년 뒤에도 필요할까 생각해봐야 하지 않아요? 인공지능이 인간지능을 넘어서면 똑똑하고 시험 잘 보는 로봇이 우리 일을 대신할 거예요. 이때 필요한 것은 시험 잘 보는 인간이 아니라 대체 불가능한 감성을 공감하는 인간이에요."

미래사회를 지향하는 교육이라면 다시 감성으로 이끄는, 인공지능이 절대 대신할 수 없는 교육이 필요하다는 것을 설명한 것이다. 시민들은 그가 전하는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자연이 하는 말을 들으며 그가 사는 법 

따로 인터뷰한 자리에서 김용택 시인은 자신의 시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이유에 대해 "쉬워서, 자연 속에 있어서, 초등학교 교사로서 아이들과 항상 놀아서"라고 유추했다.

감성을 중시하는 그의 견해엔 이렇듯 늘 자연이 함께했다. 고향에서 덕치초등학교를 졸업했고 덕치초등학교에서 교사로 지내며 퇴임하기까지 37년 넘게 덕치초등학교와 인연은 결코 시골을 떠나지 않겠다는 그의 정서였다. 자연이 내어주는 품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기에 하나도 거스를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자연이 하는 말을 받아쓰면 시가 돼요."

그랬다. 김용택 시인의 시에는 자연이 자연스럽게 앉아 있다. 그리고 아이들의 순수한 시선이 들어 있다. 마치 그가 아이인 것처럼. 기사 전문에 '올린 콩 너는 죽었다'는 시만 봐도 알 수 있다. 어려운 말 하나 없이 유쾌하고 짧게 콩의 생애를 묘사했다.

또 그는 어머니의 삶에서 많은 깨달음을 얻었다고 했다. 거지가 와도 같은 밥상에서 밥을 먹게 하는 어머니 밑에서 자란 그는 강연 안에서도 어머니 이야기를 많이 했다.

"글을 배우지 못한 어머니는 사는 데 아무 지장이 없었어요. 자연이 하는 말을 다 알아들었으니까. 어머니가 일 속에서 하는 말은 살아 있었고 이걸 받아쓰면 또 시가 돼요."

김 시인은 "세상 모든 어머니가 삶 속에서 하는 말은 시가 된다"며 감탄했다.

"글을 쓰면 생각하게 되고 생각이 차오르면 바뀐다" 
 

아산중앙도서관에서 강연 모습 이날 아산 시민들은 김용택 시인과 같이 웃으며 생각하며 그의 강연을 경청했다. 강연이 끝난 후 사람들은 사인을 받기 위해 상당히 긴 줄을 서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다. ⓒ 노준희

 
그가 고백하듯 말했다.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 교과서 말고는 책을 안 읽었어요. 교사가 되고부터 읽은 거예요. 읽다 보니까 재밌어서 계속 읽었어요. 그러다 생각이 나서 생각을 썼어요, 그랬더니 내가 시인이 돼 있더라고요."

그가 시인이 된 연유다. 시인이 된 과정이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소위 성인이 돼서 책을 읽었는데 책의 재미를 느낀 것이다.

김 시인은 또 "시골에 살아서 심심하니까 자세히 봤던 거"라며 "무조건 쓰다 보면 처음엔 나도 무슨 말인지 모르다가 어느 순간 나는 알 수 있는 시를 쓰게 되고 그러다 보면 내가 쓴 글을 남도 이해하더라"라는 것. 그는 이때 "비로소 시인이 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글은 절대 타고난 재능으로 쓰는 것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그는 귀농 귀촌한 사람들이 글을 가르쳐 달라며 왔기에 1년 반 가량 가르친 일화를 이야기했다. 전혀 글을 안 써본 50~70대 사람들에게 김 시인이 한 일은 그들이 올 때마다 글을 써보라고 권해준 게 전부라고 했다.

넉 달이 지나자 그들이 글을 쓰기 시작했고 1년쯤 지나자 책을 내기에 이르렀다. 김 시인은 "글을 쓰는 것은 삶의 소소한 가치가 눈에 들어오는 작업"이라며 "책이 중요한 게 아니라 삶을 자세히 보는 눈을 갖게 되더라"는 것을 강조했다.

어떤 공부를 해야 할까 

김용택 시인은 교사로 살아온 경험에서 우러난 듯 교육에 대해 강조하고 싶은 것이 많았다.

"좋아하는 것을 찾게 하는 것이 공부고, 좋아하는 것을 찾게 도와주는 것이 교육이에요. 사람이 그러면 안 되는 것이 무엇인지 가르치고 배우는 것이 공부예요. 부모들이 내 자식 귀하면 남의 자식 귀한 줄 알아야 하고 설령 싸우더라도 나쁜 점이 드러나면 이것을 고치고 바꾸고 맞춰서 사는 거예요. 세상과 관계를 맺으면서."

그러면서 "5차 혁명은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이라며 "인간은 물질문명이 발달할수록 늘 자연을 찾는다. 사람들이 각자 가진 우물만 중요하게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고여만 있는 우물물은 썩는다. 우물을 서로 터서 순환되게 하는 것이 중요하며 이게 바로 공동체적인 삶"이라고 설명했다.

시를 지으며 평생을 시골에서 삶의 진미를 음미하며 사는 김용택 시인. 그는 시를 통해 우리가 사는 세계를 이해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 세상을 자세히 보는 눈을 갖게 되고 생각이 많아져서 그 생각을 쓰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게 세상을 받아들일 힘이 생긴다고.

겨울이 느릿느릿 서성이던 그 날, 김용택 시인에게서 세상을 받아들이는 가장 큰 감성의 힘, '시'에 대해 듣는 시간을 선물 받았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천안아산신문에도 실립니다.
#김용택 시인 #섬진강 시인 #임실 김용택 문학관 #시골에서 오래 사는 작가 #교과서 시인
댓글2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충남과 천안 아산을 중심으로 한 지역소식 교육 문화 생활 소식 등을 전합니다. 지금은 출판 분야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아니, 소파가 왜 강가에... 섬진강 갔다 놀랐습니다
  2. 2 "일본정치가 큰 위험에 빠질 것 우려해..." 역대급 내부고발
  3. 3 시속 370km, 한국형 고속철도... '전국 2시간 생활권' 곧 온다
  4. 4 두 번의 기회 날린 윤 대통령, 독일 총리는 정반대로 했다
  5. 5 '김건희 비선' 의혹, 왜 자꾸 나오나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