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호처분 7호' 받은 14세 소녀의 변신

[보호처분 이야기 2] 7호 처분(의료처우), 특수한 치료가 필요한 아이들

등록 2019.03.07 16:38수정 2019.03.07 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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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청와대에 올라온 수십만 건의 국민 청원 중 가장 뜨겁고 지속적으로 제기된 쟁점은 소년법 폐지를 요구하는 청원이었다. 청와대와 사회부총리, 법무부 장관이 네 차례나 답변했지만, 소년법 개정 및 폐지 여론은 여전히 거세다.

법무부는 지난해 12월, 법무부 장관을 의장으로 하고 관계부처(10개 부처) 차관급이 위원으로 참여한 소년비행 예방협의회를 개최하여 제1차 소년비행 예방 기본계획(2019~2023)을 발표했다. 청소년 강력사건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고 실효성 있는 소년범죄예방 대책을 마련하라는 국민적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서다.

필자는 보호처분의 내실화를 통해 범죄 예방과 재범 방지를 강화하는 정책이 소년범죄에 대한 바람직한 해결책인 이유를 비행청소년 교육의 최일선에서 얻은 경험과 사례를 통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기자 말]

  

대전소년원 의료생활관에서 치유의 숲으로 가는 길 ⓒ 최원훈

 
소년부 법정 대기실에 앉아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는 은지(가명), 매우 마른 체형에 짧게 자른 머리, 퀭해 보이는 눈, 핏기없는 입술로 손톱을 깨물며 집에 보내 달라는 말만 반복하고 있습니다. 은지는 우범소년이고 비행명은 '소년법 위반'입니다. 

우범소년은 정당한 이유 없이 가출하거나 술을 마시고 소란을 피우며 유해환경에 접하는 성벽이 있는 소년, 즉 성격이나 환경에 비추어 앞으로 형벌 법령에 저촉되는 행위를 할 우려가 있는 10세 이상인 소년을 말합니다. 소년법 제4조에 따라 죄를 범한 소년과 촉법소년뿐만 아니라 우범소년도 소년부의 보호사건으로 심리할 수 있고, 소년원 처분까지 할 수 있습니다.

은지는 '지적장애 3급',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 '품행장애'라는 심신 특징을 가진 만 14세 소녀입니다. 영아기 때 보육원에 위탁되어 부모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습니다. 은지를 법원에 통고한 보육원에서 제출한 비행사실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있었습니다.

'소녀의 문제행동(자해행위, 원 아동들에게 폭언, 폭행, 거짓말, 협박, 공공장소에서 소란 및 영업방해로 인한 민원, 도벽행위 등)이 지속, 반복됨'

은지가 치료를 받았던 병원에서 제출한 진료소견서의 치료내용입니다.


'난폭하고 공격적인 언행이 자주 있고 증상 악화시에는 입원치료가 필요함. 향후 1년 이상의 꾸준한 외래 통원치료의 유지가 필요함.'

은지는 소년분류심사원 위탁기간 동안에도 보육원에서와 같은 비행을 반복했습니다. 자신보다 나이가 어리거나 약한 위탁생들을 괴롭히고, 끊임없이 나태하고 산만한 태도를 보이며 이를 지도하는 교사에게 욕설과 폭언을 했습니다.

위기청소년들도 행복하게 성장할 권리가 있습니다
 

디딤돌 심신수련장 뒤로 '치유의 숲'이 보인다. ⓒ 최원훈


분류심사관은 은지를 일정기간 정신병원에 격리하여 수준에 맞는 전문 치료와 학업을 지속할 수 있도록 병원 위탁 처분의견을 법원에 제출했습니다. 그러나 과거에 은지가 입원했던 병원들은 은지의 문제행동으로 이미 퇴원을 요구했던 적이 있었음을 이유로 들어 입원이 어렵다고 통보해왔습니다. 결국 판사는 은지에게 소년원 7호 처분(의료처우)을 결정했습니다.

현재 국내에 정신질환 소년원생을 위한 전문 의료소년원은 없습니다. 묻지마 범죄와 같은 정신질환이 원인이 된 미래의 성인강력범죄를 예방하기 위한 전문 의료소년원 설립이 예산부족과 지역주민의 반대에 부딪혀 사업 추진에 난항을 겪고 있기 때문입니다. 대신 대전소년원이 부족한 시설과 인력에도 불구하고 소년의료보호시설의 기능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현재 은지는 담임교사, 정신보건 임상심리사, 생활지도 교사, 인성교육 강사 등 전문가들의 상담과 치료를 받으며 7호 소년원(의료처우)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법무행정의 비전은 '공정하고 정의로운 사회', '인권이 존중받는 사회'입니다.

은지는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출생 직후 보육원에 맡겨졌고 적절한 치료와 상담, 교육을 받지 못한 채 소년원까지 왔습니다. 정상적인 가정에서 자라 학교에 다니며 자신의 꿈을 키워가는 청소년들과 마찬가지로, 가정과 학교에서 내던져진 채 거리를 헤매는 위기청소년들도 행복하게 성장할 권리가 있습니다. 물론 이들을 포기하지 않고 보호하는 것은 국가의 책임입니다.

대전소년원은 은지와 같은 정신질환 소년원생들이 폐쇄적인 수용환경에서 벗어나 정서적으로 안정된 심리상태를 유지할 수 있도록 원내 심신수련장 내에 '치유의 숲'을 조성, 힐링산책, 원예치료 활동 등 자연친화적 인성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생활관 호실에선 투정만 부리던 은지가 치유의 숲을 다람쥐처럼 신나게 뛰어다닙니다. 그루터기에 앉아 파란 하늘에 떠가는 뭉게구름을 바라보고, 개울물이 졸졸 흐르는 소리에 귀를 기울입니다. 긴 겨울잠에서 깨어난 흙을 한 움큼 손에 담아 예쁜 꽃으로 자라라며 작은 씨앗 위에 덮어줍니다.

은지의 장래희망은 '요양보호사'입니다. 할머니들을 도와드리면 기분이 좋아서입니다. 정말로 어렵고 힘든 일이겠지만, 은지를 포기하지 않고 따뜻한 관심과 지원을 아끼지 않는 '치유의 사회'를 꿈꾸면서, 봄을 기다리는 화단에 희망의 씨앗을 뿌려봅니다.
 
[보호처분]
1호. 보호자 또는 보호자를 대신하여 소년을 보호할 수 있는 자에게 감호 위탁
2호. 수강명령
3호. 사회봉사명령
4호. 단기 보호관찰
5호. 장기 보호관찰
6호. <아동복지법>에 따른 아동복지시설이나 그 밖의 소년보호시설에 위탁(6개월)
7호. 병원, 요양소 또는 소년의료보호시설에 위탁
8호. 1개월 이내의 소년원 송치
9호. 단기 소년원 송치(6개월)
10호. 장기 소년원 송치(2년
덧붙이는 글 최원훈 시민기자는 현재 법무부 대전소년원에서 담임 업무를 맡고 있습니다.
#소년법 #소년원 #청소년 범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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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부 보호직 공무원입니다. 20년 동안 소년원, 소년분류심사원, 보호관찰소, 청소년꿈키움센터에서 위기청소년을 선도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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