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려고 로스쿨 했나 하는 자괴감이

매년 낮아지는 변호사시험 합격률... '사시낭인'으로 전락한 로스쿨생

등록 2019.02.18 14:21수정 2019.02.18 14:27
11
원고료로 응원
 
a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학생협의회 소속 학생들이정부과천청사 앞에서 총회를 갖고 정부에 변호사시험의 자격시험화를 요구하고 있다. 2014.3.31 ⓒ 연합뉴스

 
법학전문대학원 학생협의회는 18일 오후 3시에 청와대에서 변호사 시험 합격률 정상화를 위한 시위를 벌이기로 했다. 이들은 법무부에 대해 변호사시험 합격률을 응시자 대비 75% 이상으로 유지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들은 현행 로스쿨 제도가 국민들이 다양하고 편리한 법률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도록 서비스의 접근성을 저해하고, 로스쿨을 변호사시험 점수를 따기 위한 학원으로 전락시켰다고 보고 있다. 이 때문에 변호사시험 합격률을 응시자 대비 75% 이상으로 정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들의 시위는 그동안 계속 나온 로스쿨생들의 요구가 행동으로 옮겨진 것이다. 

늦게 태어나면 불리? 비정상적인 구조가 피해자 양산

그동안 법무부 산하 변호사시험관리위원회는 입학 정원(2000명)의 75%를 합격시키기로 정했고, 이후 1500명 안팎의 학생들이 변호사시험에 합격해왔다. 초기에는 응시자 수가 적어서 별다른 문제가 되지 않았다. 문제는 매해 재수생이 쌓이면서 합격률이 계속 줄어들었다는 점이다. 응시자 수가 아닌 입학 정원을 기준으로 제도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제1회 변호사시험의 응시자는 1665명이었으나 제8회 변호사시험의 응시자는 3330명이었다. 응시자 수는 늘어나는데 합격 기준은 입학 정원이니 응시자 수가 늘수록 합격에 불리하다. 변호사시험 합격률은 1회 87%, 2회 75%, 3회 67%, 4회 61%, 5회 55%, 6회 51%, 7회 49%로 떨어졌다. 당분간은 40%대를 유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시험 자체가 일찍 태어나서 먼저 시험 친 사람은 쉽게 합격하고, 늦게 태어나서 나중에 시험 친 사람은 힘든 경쟁을 해야 하는 비정상적인 구조로 설계된 것이다.

제1회 시험의 합격점수는 1660점 만점 기준으로 720점가량이었지만, 제8회 시험의 합격점수는 900점은 거뜬히 넘을 것이라는 예측이 로스쿨 커뮤니티에서 나도는 실정이다. 변호사시험 합격이 점점 힘들어지니 몇몇 로스쿨에선 이미 1학년 때부터 객관식 문제를 풀면서 시험에 대비한다. 3학년이 되면 모든 로스쿨이 변호사시험 준비에만 매진하고 있다.


법조인에게 필요한 자질을 키우려고 로스쿨에 입학했지만 객관식 시험이나 지문 풀이에만 매달려야 하는 상황이다. 일부 로스쿨은 이미 응시자 대비 합격자 수로 산출한 합격률이 30%가 되지 못한다. 학생들이 법조인에게 필요한 자질을 키우는 데 신경쓸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오탈자'와 '졸시 마사지'

 

변호사시험 5년 5회응시제한으로 인해 더 이상 변호사시험을 볼 수 없게 된 로스쿨 졸업생의 모임 평생응시금지자 대책모임의 회원들이 헌법재판소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18.7.23 ⓒ 김동영

 
변호사시험법 제7조에 따르면, 변호사시험은 로스쿨 졸업 후 5년간 5번 응시할 수 있다. 예외사유는 병역뿐이다. 거꾸로 말하면 5년이 지나는 동안 합격하지 못한 사람에게는 로스쿨 졸업장 이외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는 셈이다. 이를 속칭 '오탈자'라고 하는데, 로스쿨 3년에 다시 5년, 도합 8년을 소모하고도 얻은 것이 없기 때문이다.  로스쿨 졸업생들은 과거 '사시 낭인'과 마찬가지로 취업이나 인생 진로 설계에 큰 어려움을 겪게 된다. 변호사시험도 벌써 8번이나 치러진 만큼 로스쿨마다 '오탈자'에 대한 이야기가 심심찮게 들려온다.

몇몇 로스쿨들은 극약 처방을 사용하기도 한다. 속칭 '졸업시험 마사지'다. 졸업시험에서 최대한 많은 학생들을 떨어뜨려서 아예 변호사시험 응시를 하지 못하도록 막는 것이다. 이런 마사지 활용을 통해 합격할 가능성이 높지 않은 학생들을 최대한 시험장에 가지 못하게 하면 해당 로스쿨의 변호사시험 합격률이 조금이라도 높아지는 효과가 있다. 졸업시험 마사지를 당한 학생들로선 시험 응시 자체가 1년 뒤로 미뤄지는 불이익을 겪는 셈이다.

많은 학생들이 학교 측의 변호사시험 합격률 관리 탓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합격률이 높은 학교는 졸업시험 제도를 융통성 있게 운영한다. 하지만 졸업시험 마사지는 인위적으로 합격률을 올릴 수 있는 몇 안 되는 방법이라는 점에서 변호사시험 합격률이 낮은 로스쿨에는 악마의 유혹이다.

지방 로스쿨생들은 더욱 서럽다. 취업이 문제가 아니다. 서울 소재 로스쿨의 변호사시험 합격률보다 지방 소재 로스쿨의 변호사시험 합격률이 낮은 편이다. 지방 로스쿨 학생들은 방학을 이용하여 신림동이나 신촌에 방을 잡는다. 인근 변호사시험 학원에 다니기 위해서다. 평소에도 학원의 인터넷 강의를 듣지만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은 탓이다. 이 때문에 등록금과 학원비의 이중고에 시달리게 된다.

변호사시험에 적합하지 않은 수업을 진행하면 학생들이 수업시간에 수업을 듣지 않기도 한다. 자기가 할 변호사시험 공부를 하기 위해서다. 심각한 경우에는 학생들이 교수에게 변호사시험에 부적합한 수업을 한다며 대놓고 따지는 경우도 있다. 변호사시험만 붙으면 된다는 생각에 로스쿨과 학생 모두 극단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애초에 로스쿨이 목적으로 했던 다양한 경험을 가진 법조인의 양성은 언감생심이다.

입학 정원의 75%가 합격하는 것으로 기준을 정한 시점에서 이미 이후에 변호사시험 합격률이 폭락할 것이 예정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에 대한 개선은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고, '폭탄 돌리기'가 이루어져 이후에 입학하는 학생들이 그 책임을 떠맡게 된 실정이다.

박근혜 정부에서는 사법시험 존치 여부에 대한 논쟁만 일어났을 뿐 실질적인 로스쿨 제도 개선은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 '사법시험 대 로스쿨'이라는 프레임 하에서 허송세월만 하다가 시간이 흘러 지금에 이르렀다. 대한변호사협회는 변호사 수를 1000명으로 감축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을 뿐이고 제도 개선에는 관심이 없다. 오히려 변호사 숫자의 증가가 법조시장을 왜곡하고 공멸을 부를 것이라며 합격 인원 증대에 반대한다.

참여정부에서 로스쿨 제도를 도입했을 때 3년 내내 시험 준비만 하는 학생을 상정하고 제도를 도입했을 거라고는 생각할 수 없다. 로스쿨은 전문성 있는 다양한 법조인을 배출하기 위한 제도다. 현행 로스쿨 제도로는 이런 목적에 부합하는 수업을 진행하는 것 자체가 어렵다. 일찍 태어나는 사람이 유리한 비정상적인 제도를 개선하지 않고서는 로스쿨 제도는 계속 파행을 겪을 것이다.
#로스쿨 #변호사시험 #변호사 #변협 #합격
댓글1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전화해주실 일 있으신경우에 쪽지로 보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61세, 평생 일만 한 그가 퇴직 후 곧바로 가입한 곳
  2. 2 천연영양제 벌꿀, 이렇게 먹으면 아무 소용 없어요
  3. 3 버스 앞자리 할머니가 뒤돌아 나에게 건넨 말
  4. 4 "김건희 여사 라인, '박영선·양정철' 검토"...특정 비서관은 누구?
  5. 5 죽어라 택시 운전해서 월 780만원... 엄청난 반전이 있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