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태·지만원 망언이 낳은 '2019년판 국시 논쟁'

[역사로 보는 오늘의 이슈] 헌법 제1조의 가치를 건드린 극우 인사들

등록 2019.02.19 09:45수정 2019.02.19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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찢겨지는 전두환, 김진태, 이종명, 김순례, 지만원 사진 16일 오후 광주광역시 옛 전남도청앞 금남로에서 '자유한국당 망언의원 퇴출, 5.18역사 왜곡 처벌을 위한 광주시민궐기대회'에서 시민들이 전두환, 이종명, 김진태, 김순례, 지만원 사진이 담긴 대형 현수막을 찢고 있다. ⓒ 권우성

  김진태·지만원 등이 건드린 건 5.18 민주화운동뿐만 아니다. '헌법 제1조'의 가치까지 건드렸다. 현행 헌법 제1조 제1항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제2항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에까지 도전한 것이다.

1980년 5월 당시의 헌법 제1조도 현행 제1조와 비슷했다. 그때의 제1항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제2항은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국민은 그 대표자나 국민투표에 의하여 주권을 행사한다'였다.

5.18은 헌법 제1조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투쟁이었다. 김진태·지만원 등은 그런 사실을 부정하고, 이를 종북 프레임으로 몰고 가려 했다. 이들이 5.18 광주를 폄하해서이기도 하지만, 헌법 제1조가 나라의 최고 가치라는 사실을 무시해서 그런 것일 수도 있다. 나라의 주인이 5000만 민중이란 사실을 마음 속에서부터 승복하지 못하기 때문에, 민주주의를 위한 '민중 투쟁'을 어떻게든 부정하려는 것 아닐까. 

 

왼쪽은 전두환 당시 대통령의 서명이 들어간 1987년 헌법 공포문서. 오른쪽은 공포문서에 포함된 헌법 본문. ⓒ 국가기록원

 
"우리가 추구하는 영원한 화해는 통일입니다"라던 의원

지금으로부터 33년 전, 나라의 최고 가치가 무엇인가를 놓고 이른바 '국시'(國是) 논쟁이 벌어졌다. 6월항쟁 8개월 전인 1986년 10월 14일 정기국회 대정부 질문 때였다. 야당인 신민주공화당(신민당)의 초선 의원이 이 파란을 일으켰다.

대구시 중구·서구를 지역구로 둔 유성환 의원(당시 55세)이 그 주인공이었다. 그는 '나라의 최고 가치가 무엇이냐'는 근본적 물음을 제기했다. 1988년 서울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개최하자면 반공의 틀에서 벗어나 통일을 국시로 인정하는 새로운 마음가짐을 가져야 하지 않겠느냐는 문제제기였다.
 

유성환 의원(오른쪽). 사진 속은 1985년 모습. ⓒ 동아일보

   
2014년 1월 7일자 <시사온>에 기고한 '유성환의 최후진술 10: 이 나라의 국시는 반공이 아니라 통일이어야 합니다'에서 유성환은 노신영 국무총리를 상대로 한 그날 대정부 질문을 아래와 같이 소개했다. 자신의 대정부 질문 원고에다가 여당 의석 쪽의 '잡음'까지 포함해 재구성한 내용이다.
 
"총리! 우리나라의 국시가 반공입니까? 반공을 국시로 해두고, 올림픽 때 동구 공산권이 참가하겠습니까? ('무슨 소리야' 하는 이 있음) 나는 반공 정책은 오히려 더 발전시켜야 된다고 보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이 나라의 국시는 반공이 아니라 통일이어야 합니다.

오늘의 강대국들의 한반도 현상고착 정책에 많은 국민들이 우려를 하고 있습니다. 적어도 분단국에 있어서의 통일 또는 민족이라는 용어는 이데올로기로까지 승화되어야 합니다.


먹고 자고 걷는 것, 국군이 존재하는 것 모두가 통일을 위한 수단이어야 합니다. 통일이나 민족이라는 용어는 공산주의나 자본주의보다 그 위에 있어야 합니다. ('적화통일이야?' 하는 이 있음) ('확실히 얘기해' 하는 이 있음)

통일원의 예산이 아세안게임 선수 후원비보다 적은 것은 사실상 통일을 기피하는 것 아닙니까? 국가의 모든 정책, 사회 기풍, 모든 역량을 통일에 집중할 때가 왔습니다. 우리가 추구하는 가장 위대하고 영원한 화해는 통일입니다."
 
발언은 여기서 강제로 중단됐다. 다음 날인 15일 서울지방검찰청은 국가보안법 제7조 제1항 위반(반국가단체 찬양·고무·동조)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북한 이야기를 한 게 아닌데도, 통일을 국시로 거론했다는 이유로 보안법 위반 혐의를 씌웠다.

정권과 민주정의당(민정당)이 비난을 퍼붓고 700여 명의 보수단체 회원들이 집을 포위하는 가운데, 그는 집중 포화를 받았다. 결국 17일 새벽 구속됐다. 
 

유성환 의원 집을 포위한 7백여 명의 보수단체 회원들. ⓒ 동아일보

  
유성환에 대한 재판은 전 국민적인 대통령 직선제 개헌 투쟁 속에 진행됐다. 거기다가 국회의원 신분 등이 고려됐기 때문인지 무거운 처벌을 받진 않았다. 이듬해인 1987년 4월 1심 재판에서 징역 1년에 자격정지 1년을 선고받은 뒤, 7월 13일 보석(보증석방)으로 풀려났다.

2심 재판은 4년 뒤인 1991년 열렸다. 2심에서는 국회의원 면책특권을 인정해 공소기각 판결이 내려졌다. 검찰의 공소를 무효화하는 이 판결은 1992년 대법원 선고에서도 동일하게 인정됐다.

2심과 3심이 공소를 기각한 것은 유성환의 발언이 헌법상 면책특권에 해당하므로 형사처벌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법원이 그런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었던 것은 6월항쟁 이후의 사회 분위기 때문임을 부정할 수 없다. 그의 문제제기는 통일이 국시임을 명확히 하는 데는 실패했어도, 통일의 가치를 함부로 폄하하지 못하게 하는 데는 어느 정도 기여했다고 볼 수 있다.

'망언 3인방'을 기억하는 민중들

김진태·지만원 등이 일으킨 이번 파문도 대한민국의 '국시'가 무엇인가를 명확히 하는 데 어느 정도 기여하는 측면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유성환처럼 '무엇이 국시다'라는 식으로 국시 논쟁을 적극적으로 일으킨 것은 아니지만, 나라의 최고 가치가 무엇인지를 다시금 일깨우는 계기를 제공하고 있다.

자신들처럼 함부로 말하고 행동하면 나라의 국시인 민주주의를 거스르는 죄인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우리에게 일깨워주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유성환과 정반대 방법으로 국시 논쟁을 일으킨 셈이다.

이런 판단이 가능한 것은 그들에 대한 작금의 사회적 반응 때문이다.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가 <오마이뉴스> 의뢰로 조사하고 지난 13일 발표한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 64.3%가 파문 일으킨 국회의원들을 제명해야 한다고 답한 반면, 28.1%만이 제명을 반대한다고 답했다(전 19세 이상 남여 8085명 접촉, 501명 응답, 응답률 6.2%, 오차범위 95% 신뢰수준에 ±4.4%p, 자세한 내용은 리얼미터나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고).

대구·경북을 포함한 전 지역에서 찬성이 대다수거나 우세한 것으로 나타났다는 점이 눈에 띈다. 또 60대 이상을 포함한 전 연령층에서 비슷한 반응이 나타났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보수층에서도 30% 이상이 '망언 3인방'의 제명을 찬성했다. 5.18 민주화운동과 민주주의 가치에 대해 우리 국민들이 얼마나 공감하고 있는지 보여주는 증거다.

또 5석 이상의 국회 의석을 보유한 다섯 정당 중에서 민주당·바른미래당·민주평화당·정의당(의석 합계 176석)이 그들의 망언을 명백히 비토하고 있다. 그 넷에 포함되지 않는 자유한국당(113석)도 그들이 발언이 잘못됐다는 점은 인정하고 있다. 정치권의 반응도 국민 여론과 크게 다르지 않는 것이다. 비록 이들에 대한 국회 윤리특위 징계 회부는 불발에 그쳤지만.

한편, 16일과 17일에는 권영진 대구광역시장이 이용섭 광주광역시장에게 사과 및 위로의 문자 메시지를 보낸 뒤 이를 페이스북에 올렸다. 페이스북에서 권 시장은 "저희 당 소속 국회의원들이 저지른 상식 이하의 망언으로 인해 5.18 정신을 훼손"했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대구 시민들 다수도 저와 같은 마음일 것입니다. 한 언론사 여론조사에서도 대구·경북 시도민의 57.6%가 해당 국회의원들의 제명에 찬성하고 있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권영진 대구광역시장의 사과문. ⓒ 권영진

   
역사는 이들을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

'5.18 망언'을 내뱉은 국회의원 중에는 오히려 유명세를 즐기는 이가 있는 듯하다. 하지만, 국민들과 정치권의 반응을 보면, 이름이 자주 회자된다고 해서 기뻐할 일이 절대 아니다. 나라의 국시가 헌법 제1조 민주주의이며, 5.18이 그것을 위한 항쟁이었다는 점에 국민 다수가 공감하고 있음을 간과할 수 없다. 이는 망언의 주역들이 앞으로 오랫동안 이 나라에서 어떻게 기억될 것인지를 예고하는 전조다.

헌법 제1조는 촛불혁명 이전엔 다분히 형식에 불과했던 측면이 컸다. 하지만, 촛불혁명을 계기로 실질적 규범력을 발휘하면서 국민들의 일상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여성과 노동자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고, 평범한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억울한 죽음이 여론과 정치를 움직이고 있다. 민주주의가 나라의 국시라는 사실이 점점 명확해지고 있는 것이다.

그런 흐름이 김진태·지만원 등의 망언에 의해 한층 더 견고해지고 있다. 이번 사건은 우리 국민들이 민주주의 가치를 보다 소중히 인식하는 계기로 작용하고 있다. 2019년판 국시 논쟁을 촉발시킨 망언 주역들이 그들의 바람대로 앞으로 영원히 '역사 속 유명인'으로 기억될 가능성이 농후해지고 있다.
#5.18 망언 #김진태 #지만원 #국시 논쟁 #유성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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