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 때도 이렇진 않았다" 금타 주변 상가들은 지금

[현장기획 - 한국 제조업 위기의 축소판, 곡성 ③] 덩달아 쪼그라든 주민들의 삶

등록 2019.03.06 07:57수정 2019.03.06 17:24
17
원고료로 응원
전라남도 곡성은 고용위기를 겪는 여러 지방도시 가운데 대기업에 대한 지역 경제 의존도가 매우 높다. 민간연구단체인 랩2050은 최근 곡성을 전국 지방자치단체 가운데 고용위기가 가장 취약한 곳으로 지목하기도 했다. 금호타이어가 중국 기업에 매각된 후, 곡성 공장은 가동률이 크게 떨어졌고 고용불안과 지역경제 공동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오마이뉴스>는 곡성을 통해 한국 제조업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진단하고 지역경제가 살아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해 본다.[편집자말]
 
a

31일 전라남도 곡성군 기차마을시장 식당에서 종업원이 주문 받은 음식을 서빙하고 있다. 기차마을시장에서 뼈해장국 식당을 운영 중인 선종채(63)씨는 "경제가 갈수록 형편없어지고 있다"며 "곡성군에 주류도매업체가 3군데 있는데, 많이 힘들어한다"고 말했다. ⓒ 유성호

 
"(노동자 월급이) 200만 원이 안 되는데 어떻게 치킨을 먹겠어?" (곡성군 입면 치킨집 사장)
"IMF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어요." (전남 곡성군 입면 인근 순대국밥집 사장)


금호타이어 곡성공장 노동자들의 주머니가 쪼그라들자 주변 상점들도 '보릿고개'를 나고 있다. 수십 년간 공장 노동자를 상대로 치킨, 국밥을 팔던 사장들은 "공장 창설 이후 가장 힘겨운 시기"라고 입을 모았다.

<오마이뉴스> 취재진이 곡성군 입면 금호타이어 사원아파트 상가 거리를 찾은 것은 지난 1월 31일 오후였다. 창정삼거리부터 금호타이어 공장 방면으로 100m가량 되는 거리에는 식당과 미용실 등 9개 상점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사람들이 한창 활동할 시간이었지만, 오가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입면 상권에서 규모가 제법 큰 '한아름마트'는 '상가임대'라는 현수막만 내건 채 굳게 잠겨 있었다. 좀 더 자세한 상점들의 사정을 알기 위해, 문 열린 상점들을 모두 찾았다.

 
  
  

[순댓국밥집] "저녁에 나와서 술도 한잔 했는데... 없어, 일체 없어"


지난 1998년 IMF 시절 이곳 입면에 순댓국밥집을 냈다는 김아무개씨는 최근 상황을 "IMF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는 말로 정리했다. 20년 넘게 이곳에 장사해오면서 IMF와 서브프라임 모기지 등 경제 위기 상황을 여러 번 겪었지만 지금이 가장 어렵다는 것이다.

취재진이 찾을 당시 국밥집 테이블에는 사람 1명 없었다. 예전에는 설 명절 전이면 보너스를 탄 직원들로 테이블이 빼곡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명절 특수는 기대조차 힘들다.
 
"옛날에는 금호 직원이 많이 왔었죠. 지금은 없어요. 십분의 일은 줄었을까. 옛날에 어렵지 않을 때는 동호회 활동도 많이 했어요. 야구니 축구니 해서 끝나고 단체로 먹고, 점심 때는 직원들 와서 먹기도 하고. 금호 사원아파트서 배달시켜 먹기도 하고. 저녁에 나와서 술도 한잔 했는데... 없어요. 일체 없어졌어요 "


김씨는 금호타이어가 아닌 외지에서 찾아오는 손님들로 버티고 있다. 처음에는 금호타이어를 바라보고 장사를 시작했지만, 이제는 금호타이어만 보고 장사를 이어가긴 불가능한 상황이 됐다고 한다. "금호가 좀 더 나아지면…"이라고 말하는 김씨의 목소리에는 확신이 없어보였다.

[치킨집] "월급이 200만원이 안되는데 어떻게 통닭을 먹겠나"
 
a

31일 전라남도 곡성군 임면 한 건물에 지역경제 침체로 인해 새 주인을 찾는 임대문의 안내가 붙어 있다. ⓒ 유성호

 
치킨집을 하는 강아무개씨는 바빴다. 치킨 주문을 받는 것부터 조리, 배달까지 혼자서 다 소화하고 있었다. 일을 돕던 부인이 다른 직업을 찾기 위해 학원을 다니면서 강씨 혼자 모든 걸 감당하고 있었다. 매출이 급감한 것도 한몫을 했다.

"너무 힘들어요. (예전엔) 전체적으로 사원아파트에서 70~80% 매출 나왔어요. 지금은 바뀌었어. 30%도 안돼. 못먹어요, 통닭을."

그는 금호타이어 직원들의 월급이 급감한 것이 매출 감소의 영향이라고 분석했다. 금호타이어가 더블스타에 매각된 뒤, 기본급이 줄고 잔업 특근마저 없어지면서 월급이 줄었다는 게 그가 파악한 내용이다.

"(아는 금호 직원은) 30년 일했는데 월급이 189만 원이래. 내 친구도 정직원이, 전에는 500정도 됐거든요. 연봉이 6000~7000만 원 됐던 사람들인데... 왜 이렇게 통닥 안먹나 했더니, 월급이 200이 안 되는데 어떻게 통닭을 먹겠어?"
 

이야기를 하던 내내 치킨을 만들던 강씨는 "이제 배달을 가봐야겠다"며 오토바이 헬멧을 쓰고 문을 나섰다.

[미용실] "이걸 계속 유지해야 할까 고민이다"

류아무개(49)씨가 운영하는 미용실은 금호타이어 지정 미용실이다. 머리를 깎는 비용이 정가로 8000원이면 금호타이어 직원들은 5000원만 받는 특별 할인점이다. 그런데 최근 들어 금호타이어 직원들의 발길이 급속도로 줄기 시작했다.

"경기가 어려우니 여자들은 (머리를 하지 않고) 머리를 묶고 다니죠. 다들 긴 머리고, 단발머리가 없어요. 원래 멋쟁이들은 단발머리가 많잖아요."
 

6년 전 이곳에 터를 잡은 류씨는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고 한숨 쉬었다. 워크아웃 끝나고 조금 나아질까 싶었지만, 줄어드는 매출은 회복할 기미조차 보이지 않고 있다.

"제가 여기서 미용실을 시작했던 6년 전에는 금호타이어가 힘들어질 때였어요. 그래도 지금보단 덜 힘들었죠. 회사가 워크아웃(재무개선작업)하고 회복했잖아요. 이제는 좋은 일만 있겠다 싶었는데 (중국기업에 매각돼) 다시 힘들어졌어요."

"일단은 지켜보고 있다"는 류씨는 아직까진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었다.

[식당] 공장 시작부터 장사 시작했지만... 매출은 5분의 1 토막
 
a

전라남도 곡성군 입면에 위치한 금호타이어 사원아파트. 사원아파트에 입주한 공장 노동자들이 줄어들면서 빈집이 늘어나고 있다. ⓒ 유성호

 
창정삼거리에서 금호타이어 사원아파트로 올라갔다. 사원아파트에서 걸어서 3분 거리에 있는 오래된 식당이 눈에 들어왔다. 이 식당 주인인 박선미(53)씨는 곡성공장 기계가 처음 돌아가던 80년대 말부터 장사를 시작한 '순토박이'다.

입면의 터줏대감 같은 이 식당도 불황을 피해가진 못했다. 금호타이어 공장이 한창 잘 돌아가던 시절과 비교하면 매출은 5분의 1수준으로 줄었다고 한다.

"3교대로 근무하는 금호타이어 직원들이 8시간 일하고 3시에 퇴근하면 술 한잔 하러 왔었는데, 지금은 그런 손님이 전혀 없어요. 술값이 부담돼 서로 안 내려 그런 것 같기도 하고."

박씨는 사원아파트에 살던 사람들도 최근 들어 맞벌이가 많이 늘었다고 전했다. 공장 가동률이 줄고, 월급도 덩달아 줄어들면서 생긴 현상이다. 박씨는 "옛날에는 맞벌이 부부가 없었는데, 애들 가르치고 하려니 지금은 거의 다 맞벌이"라며 "혼자서는 힘드니까 무슨 일이든 일을 하더라"고 말했다.

식당에 있는 40개 테이블은 사람 1명 없이 텅 비어 있었다. 담담하게 말을 이어나가던 박씨에게 경제사정을 묻자 "힘들다"고 깊은 한숨을 쉬었다.
 
[택시, 꽃집, 해장국집...] "택시 손님? 요즘엔 금호타이어 공장 거의 안가"
 
a

31일 전라남도 곡성군 기차마을시장 상인이 상가 앞에 쌓인 눈을 치우고 있다. 상인은 “설 대목을 앞두고도 2~3년 전보다 곡성군 경기가 좋지 않다”고 하소연 했다. ⓒ 유성호

 
금호타이어의 불황은 택시업계에도 영향을 미쳤다. 택시기사 이아무개(57)씨는 "20년 전만해도 택시벌이가 잘 됐었다"며 "예전에는 금호타이어 공장에도 하루에 2~3번씩 들어갔었는데, 지금은 거의 갈 일이 없다"고 말했다. 이씨는 "2~3년 전만 해도 설 대목에는 사람들이 택시를 못 잡을 정도여서 예약을 받고 움직였는데 올해는 평상시하고 똑같았다, 아니 더 못했다"고 덧붙였다.

그는 이어 "택시수가 많이 줄진 않았는데 인구는 1만 명 가까이 어마어마하게 줄어버렸다"며 "10년 전 금호타이어가 워크아웃 해버리는 바람에 젊은 사람들이 다 외지로 나갔다"고 했다.

곡성역 앞 기차마을시장 인근에서 뼈해장국 식당을 운영 중인 선종채(63)씨도 시간이 지날수록 곡성군 경기가 어려워지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선씨는 "경제가 갈수록 형편없어지고 있다"며 "곡성군에 주류도매업체가 3군데 있는데, 많이 힘들어한다"고 말했다.

그는 "30년 전에는 꽃집을 했었는데 금호타이어 공장에도 배달을 엄청 갔었다"며 "꽃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니 경기와 밀접한데, 그때는 장사가 정말 잘됐다"고 했다.

"화환 하나가 10만원 정도 했는데 잘 될 때는 하루에 100개 나갈 때도 있었어요. 곡성에 꽃집이 3~4군데 있었는데 지금은 다 망하고 1군데만 남았어. 시장이 옆에 있다 보니 분위기가 해마다 죽는 게 눈에 보여요."
댓글17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네이버 채널에서 오마이뉴스를 구독하세요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오마이뉴스 사회경제부 소속입니다. 주로 땅을 보러 다니고, 세종에도 종종 내려갑니다.

오마이뉴스 사진기자. 진심의 무게처럼 묵직한 카메라로 담는 한 컷 한 컷이 외로운 섬처럼 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징검다리가 되길 바라며 오늘도 묵묵히 셔터를 누릅니다.

AD

AD

인기기사

  1. 1 조국 잡으려다 사면초가... 독이 된 윤석열의 입
  2. 2 '윤석열 저거 죽여야겠다' 방향 잃은 김경진의 해석
  3. 3 케이팝 팬들 왜 이러는 거지? 세계 언론이 바빠졌다
  4. 4 [단독입수] 뺨 때리고 경찰 부른 유치원장, 영상에 다 찍혔다
  5. 5 '한국은 빼고 가자' - '내가 결정'... 세계 두 정상의 속내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