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갱이' 소리 듣는 김병준... '잔치' 앞둔 한국당의 암울한 미래?

[주장] 다가온 전당대회에 부쳐... '5.18 망언' 등 민주주의 부정 움직임, 단호하게 대처해야

등록 2019.02.20 09:55수정 2019.02.20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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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동연설회 참석한 김병준 자유한국당 김병준 비상대책위원장이 14일 오후 대전 한밭체육관에서 열린 2.27 전당대회 충청·호남권 합동연설회에서 연단에 올라, 김진태 후보 지지자들의 야유가 쏟아지는 동안 잠시 말을 잇지 못하고 있다. ⓒ 남소연

한국당 전당대회가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새 지도부 선거가 코앞에 닥치면서 김병준 혁신비상대책위원회 체제(아래 김병준 비대위)는 마무리 작업에 들어갔다. 탄핵과 대선 패배, 지방선거 참패까지 3연타로 빈사 상태에 빠진 당을 바로세우겠다고 야심차게 등장한 지도부였다. 김병준 비대위는 역사에 무엇을 남길 것인가.

뭔가를 하기는 했다. 비대위 산하에 네 개 소위원회를 두고 당의 새로운 미래를 기획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그중 핵심은 '좌표와 가치 재정립 소위원회'(아래 재정립 소위)였다. 지난 2018년 8월 31일 출범해 10월 8일 활동을 마무리한 재정립 소위는 "보수주의의 본질은 높은 도덕성과 개혁성"이라며 자유한국당의 새로운 4대 가치를 자유와 민주, 공정, 포용으로 제시했다.

그러나 '5.18 망언'과 '욕설‧야유 전대'로 얼룩진 오늘의 자유한국당 모습에서, 재정립 소위를 통해 정립된 김병준 비대위의 비전은 찾아보기 어렵다. 특히 김병준 비대위원장 본인의 초기 발언 역시 같은 맥락의 문제다. 김 위원장은 이종명 의원 등이 주최한 '5.18 공청회' 사흘 뒤인 지난 11일 "다양한 의견이 존재하는 자체가 보수 정당의 생명력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이른바 '광주폭동론'을 보수 정당의 건강한 다원주의로 해석한 것이다. 물론 위 발언이 비대위 공식석상 발언은 아니었고, 5.18 북한군 개입설에 관해선 따로이 "개인적으로 믿지 않고, 당의 입장도 믿지 않는 쪽이 훨씬 강하다"고 덧붙이기는 했다.

그러나 19일 <신동아>에 실린 인터뷰에서 김 위원장은 "(김진태 의원에 대한) 징계는 해야 하지만, 출당은 말이 안 된다"라며 "5.18 유공자들께서 굉장히 불쾌하고 화가 나실 거다, 하지만 그분들의 요구와 우리의 처리가 일치하지 않을 수 있다"는 확고한 입장을 재확인했다.

하지만 광주를 둘러싼 이번 논쟁에서, 건강한 다원주의는 실체 없는 헛꿈이다. 보수정치 바깥의 분노한 여론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광주폭동론'을 외치는 사람들은 본질적으로 다원주의를 거부하고 있다. 태풍의 중심에 서 있는 지만원씨는 자신이 운영하는 홈페이지 <지만원의 시스템클럽>에 18일 올린 글을 통해 "문재인의 숨은 지지자 김병준" "한국당 당수를 대리하는 자가 당원들을 이토록 적대시할 수 있는 것인가?"라고 김 위원장을 강하게 성토했다. 18일 대구에서 열린 전당대회 합동연설회에서는 김 위원장에게 "빨갱이" "탄핵 부역자"라는 비난이 쏟아졌다.

'광주폭동론' 제대로 끊어내지 못한 한국당

김 위원장이 생각하는 보수 제일의 가치는 '자유'인 것으로 보인다. 지난 2018년 지방선거에서 초유의 궤멸적 패배를 경험한 자유한국당은 구원투수로 김 위원장을 불렀다. 그는 그해 7월 18일 취임 첫 기자간담회에서 "(자유한국당의) 새 가치는 자율"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재정립 소위를 통해 '자유'를 4대 가치의 첫 순위로 꼽았고, 실제로 현 정부를 '국가주의'라고 비판하며 자유주의 보수정치의 깃발을 세우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광주폭동론'에 당내 독립적 담론의 지위를 부여한 것까지 자유주의라고 보기는 어렵다. 자유한국당을 위시한 한국의 전통적 보수정치는 '방어적 민주주의'라는 개념을 강조해왔다. 표현의 자유를 넓게 보장하되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시도까지 보호하지는 않는다는 이념이다. 이것이 가장 극적으로 드러난 최근 사례가 2014년의 통합진보당 해산이다. 당시 새누리당과 황교안 법무부 장관(현 자유한국당 당대표 후보)은 이를 적극 활용해 통합진보당을 제도권에서 축출했다.

광주민주화운동이 북한군의 폭동이라는 주장은 정확히 방어 대상에 들어간다. 민주적 헌법 질서를 부정하고 군사쿠데타를 옹호하는 맥락이기 때문이다.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이 각각 무기징역형과 징역 17년형을 선고받은 대법원 판결문은 다음과 같다.

"피고인들이 1980. 5. 17 24시를 기하여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하는 등 … 강압을 가하고, 이에 항의하기 위하여 일어난 광주시민들의 시위는 국헌을 문란하게 하는 내란행위가 아니라 헌정질서를 수호하기 위한 정당한 행위였음."

'헌정질서를 수호하기 위한 정당한 행위'였다. 논쟁의 여지가 없다. 지만원씨가 주장하는 '광수 얼굴 비교' 정도가 있을 뿐, 유의미한 실체적 반증도 없으므로 사법적 재심의 대상도 아니다.

무엇보다, 선거를 통한 집권만을 인정하고 군사쿠데타 등 힘을 통한 강제적 집권을 배격하는 민주적 헌정질서의 핵심 본령에 관한 이야기다. 이것을 부정하고 북한군의 폭동이라는 근거 없는 주장을 감싸는 것은 자유주의라고 보기 어렵다. 오히려 방어적 민주주의론의 대상으로써, 보수정당이 앞장서서 강하게 논박해야 할 대상이다.

이제는, 제대로된 보수를 기대한다

"김진태 좀 데리고 나가달라."

지난 14일, 대전 합동연설회에서 나온 조대원 최고위원 후보자의 발언이다. 자유한국당 선거관리위원회는 조 후보자에게 "후보자 비방 및 흑색선전을 할 수 없다"는 규정 위반을 들어 주의 및 시정명령을 내렸다. 이것은 규정을 따른 것이므로 비판 대상이 아니다.

문제는 전당대회 뒤다. 자유한국당이 전대 뒤에도 무책임한 역사 왜곡과 '좌익척결 보수주의'를 당내 다원주의 차원에서 용인한다면, 당의 미래는 암울할 가능성이 높다. 조 후보자 발언이 당내 다수의견으로 자리잡아야 한다.

맺고 끊음을 아는 제대로 된 보수정치를 기대한다. 진보와 보수의 진영담론을 떠나서, '자유민주주의'와 '쿠데타‧학살 정당화'는 양립할 수 있는 주장이 아니다. 자유한국당의 지지율 폭락이 심상치 않은 모양새를 띠고 있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의 14일 발표에 따르면, 2월 2주차 자유한국당 지지율은 25.7%다. 문제는 대구‧경북에서 15.5%p, 부산‧울산‧경남에서 8.3%p, 60대 이상에서 9.7%p 하락하는 등 핵심 지지층 이탈이 강하게 나타났다는 점이다.

전통적 지지자들이 자유한국당에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확실한 입장을 따져묻고 있다(11일부터 13일까지 전국 19세 이상 유권자 1507명(응답률 6.7%)을 대상으로 무선 전화면접(10%) 및 무선(70%)·유선(20%) 자동응답 혼용방식으로 실시.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2.5%p다. 자세한 조사개요와 결과는 리얼미터 홈페이지 또는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개혁 없는 안정은 정체요, 안정 없는 개혁은 혼란"이라고, 김영삼 전 대통령은 말했다. 여당 인기가 바닥을 기던 1996년 초, 총선을 준비하며 나온 말이다. 당시 신한국당은 대수술을 거쳐 개혁보수 정당으로 재탄생했다. 5‧6공화국 출신의 구보수 인사들을 크게 잘라내고 이회창‧김문수‧김무성‧홍준표 등 개혁적 인사(당시로서는)들을 대거 공천함으로써 1당 유지에 성공했다. 비록 10년간 정권을 내줬지만, 거대 보수야당의 몸집을 유지하다가 안정적으로 재집권에도 성공했다.

전당대회가 일주일 앞이다. 내년 총선을 지휘할 새 지도부가 선출된다. 지도부 구성 1년 만에 당세가 반토막나고 다시 비대위가 설지, 아니면 총선에서 자존심을 지켜내 임기를 채울지, 관건은 민주주의를 부정하려는 극우세력에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달렸다. 김병준 비대위 체제는 속 빈 자유를 앞세운 '개혁 없는 안정'을 택한 채 쓸쓸한 퇴장을 앞두고 있는 듯하다. 새 지도부의 판단은 어떨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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