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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상 받은 남편... 그의 아내가 찾아낸 끔찍한 진실

[리뷰] 영화 <더 와이프>

19.02.21 16:46최종업데이트19.02.22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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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와이프> 포스터 ⓒ (주)팝엔터테인먼트

 
한 노부부가 침대 위에서 사랑을 나눈다. 개구진 남편과 부드럽게 받아주는 아내의 모습은 노년의 깊은 사랑을 느끼게 만든다. 다음 날 아침, 남편 조셉 캐슬먼은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되었다는 전화를 받는다. 침대 위를 뛰며 노래를 부르는 순수한 조셉의 반응과 달리 아내 조안의 표정은 어딘가 복잡하고 미묘해 보인다.

노벨상 수상을 위해 스웨덴으로 향한 캐슬먼 부부와 아들 데이빗. 스톡홀름에 도착한 순간부터 데이빗은 저기압이며 조안은 조셉의 자서전 사진을 찍는 젊은 여기자를 탐탁지 않은 눈으로 바라본다. 가족이 가장 행복해야 될 날, 조안은 알게 된다. 여태껏 그녀는 '거짓 행복' 속에서 살았다는 걸.
 
캐슬먼 부부는 겉으로만 보면 완벽한 삶을 사는 것만 같다. 재치 넘치는 유머감각을 지닌 유명 작가 남편과 온화하고 인자하게 남편과 가정을 돌보는 아내, 출산을 앞둔 딸과 유망한 작가지망생 아들은 화목해만 보인다. 특히 서로를 끔찍이 사랑하고 챙기는 부부의 모습은 사랑이 흘러넘친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충격적인 비밀이 숨겨져 있다. 바람둥이 남편에 아버지의 재능에 미치지 못한다는 열등감에 빠진 아들, 남편을 대신해 글을 써 왔지만 모든 영광을 빼앗긴 아내까지. 조안은 조셉의 노벨상 수상이 가족 모두의 행복이라 여겼다. 조셉이 최고의 영광을 맞이한 순간, 조안은 알게 된다. 자신은 '킹메이커'가 아닌 '아무것도 이룬 게 없는' 삶을 살아왔다는 것을.

너무 늦게 진실을 알게 된 조안
  

<더 와이프> 스틸컷 ⓒ (주)팝엔터테인먼트

 
과거 촉망받는 문학도였던 조안은 젊은 대학교수 조셉과 사랑에 빠진다. 조셉은 자신의 바람기를 주체하지 못해 아내와 자식도 버린 무책임한 남자였지만 사랑에 눈이 먼 조안은 그와 가정을 꾸리게 된다.

1960년대 당시는 여성 문학인이 드물었다. 남성 편집자들의 입맛에 맞는 글을 써야 했고 정해진 틀을 따르지 않으면 외면 받았다. 심지어 이 역시 너무나 좁은 문이었다. 이런 시대 상황을 보여주는 장면이 결혼 전 조안이 조셉의 초청으로 문학회에 참석하는 장면이다.

그 자리에서 조안은 자비로 책을 출판한 한 여류작가를 만나게 된다. 여류 작가는 자신을 존경한다는 조안에게 작가가 되지 말라 말한다. 조안은 학부 시절 조셉의 가르침대로 작가는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글을 계속 써나가야 되는 직업이라 말하지만 그녀는 아무도 봐 주지 않는 글은 가치가 없다고 반박한다. 그녀와의 만남후 조안은 작가라는 꿈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지니게 된다.
 
조안은 진취적이지 않은, 수줍고 겁 많은 소녀였다. 꿈을 향한 거친 흙길보다는 포근하고 따뜻한 사랑이란 눈앞의 꽃길을 걷길 바랐다. 그리고 자신의 희생이 가족 모두를 위한 행복이라 여겼다. 조셉은 사회적인 직위가 있었으나 재능이 없었고 조안에겐 재능이 있었지만 용기가 없었다.

조안은 남편 뒤에 숨어 글을 쓰는 게 가족 모두를 위한 일이라 여겼다. 하지만 인생 그래프의 꼭대기에서 그녀는 알게 된다. 그림자는 결국 그림자일 수밖에 없다. 빛이 비치면 뒤로 모습을 감추고 어둠이 오면 사라지는 어떠한 존재도 성취도 없는 역할을 자신이 해왔다는 걸 너무나 늦게 알게 되었다.
 

<더 와이프> 스틸컷 ⓒ (주)팝엔터테인먼트

 
조안의 입장에서 바라본 <더 와이프>는 스릴러 영화라 할 수 있다. 조안에게는 하루하루가 긴장의 연속이었을 것이다. 조셉이 바람을 피진 않는지, 자신의 사랑을 받고 자라지 못한 데이빗이 엇나가진 않을지, 혹여 자신이 대필 작가라는 게 드러나지는 않을지. 그녀에겐 행복이라 믿은 그 순간과 감정을 지키기 위한 하루하루가 숨을 조여 오는 고통이었다는 걸 영화는 보여준다.
 
명배우 글렌 클로즈는 표정 하나하나에 조안의 복잡한 심리를 잘 표현한다. 그녀가 겪는 불안, 고통, 행복, 슬픔 등 다양하고 미묘한 감정의 흐름을 얼굴에 담아낸다. <더 와이프>로 골든글로브 시상식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그녀는 수상소감을 통해 '아내'가 아닌 '여성'의 삶을 살아갈 것을 강조하였다.
  

<더 와이프> 스틸컷 ⓒ (주)팝엔터테인먼트

 
"<더 와이프>의 '아내'를 연기하면서 저희 어머니를 떠올렸습니다. 아버지를 위해 평생을 헌신하셨는데, 여든이 넘어서 이렇게 말씀하셨죠. '얘야, 난 아무 것도 이룬 게 없는 거 같구나...
 
이런 경험들을 통해 제가 배운 건 우리 여성들이 '양육자' 역할을 요구 당하며 살아왔다는 겁니다. 그건 옳지 못해요. 이제는 우리 자신이 성취를 위해서 노력해야 합니다. 우리의 꿈을 좇아야 합니다. 그리고 말해야 합니다. '나는 할 수 있어! 그리고 당연히 해도 된다고!'"

 
<더 와이프>는 제목 그대로 '아내'의 삶을 살아온 조안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녀는 아내로서, 엄마로서, 킹메이커로서 행복한 삶을 살아온 것처럼 비쳐진다. 하지만 한 명의 여자로서 그리고 인간으로서 그녀의 삶은 수치와 모욕의 연속이었다. 헌신이 아닌 꿈을, 인내가 아닌 용기를 말하는 이 영화는 그 어떤 작품보다 진취적인 '여성'을 담아냈다 할 수 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준모 기자의 개인 블로그와 브런치, 키노라이츠, 루나글로벌스타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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