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마흔이 된다… 그게 나일 줄이야

[마흔 소회 1] 이 삶이 다시 소중해지다

등록 2019.02.25 16:21수정 2019.02.25 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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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마흔이 된다. 하지만 그 '누구나'가 내가 되기 전까지 그 '누구나'에 나도 속해 있음을 깨닫지 못했다. 20대 한날, 술에 취해 필름이 끊긴 뒤 정신 차리고 보니 신발도 없이 도무지 어딘지 모르는 낯선 가게 앞에 앉아 있던 나. 그때의 당혹감, 어지러움, 민망함이 새삼 되살아났다. 

마흔이 됐다. 이 사실을 사실로서만 받아들이는 데 거의 한 해가 다 갔다. 하지만 여전히 입 밖으로 소리 내 말하려면 낯설고 망설여진다. 그래서 택한 방법이 "몇 살이세요?" 물으면 "78년생입니다" 하고 답하는 것인데 "78년생이면 몇 살이지?" 되물으면 그 상대가 괜히 밉다.

나이로 알 수 있는 건 딱 그 나이에 해당하는 숫자 하나밖에 없다. 생각해보라. 나이와 비례해 인성이나 능력이 자라지 않지 않나. 사회적 역할도 마찬가지. 그러니 나이는 말 그대로 숫자일 뿐인데 나이가 이토록 신경 쓰이는 건 왜일까.

그 이유는 남이 아닌 내가 인식하고 바라는 나와 내 삶 때문인 것 같다. 마흔이 된 생일 아침, 누군가 깜짝 선물을 놓아둔 듯 검은 머리카락들 사이로 삐져나온 흰 머리카락을 발견했다. 찾고 보니 전체가 하얀 머리카락이 한 가닥도 아닌 여러 가닥이라 더 놀랐다.

흰 머리카락과 곧 펴질 줄 알았으나 사라지지 않는 주름들이 내가 마흔임을 알려주듯, 사회에서는 '생애전환 건강검진'이란 소식과 함께 내 나이를 다시 한 번 강조해주었다. 혼자 긴가민가 우왕좌왕 하는데 '맞아, 너 마흔이야' 확인시켜주는 것처럼. 

'생애전환'. 그래, 맞다. 계속 앞으로만 갈 줄 알았는데 인생에 전환점이 있음을 처음 체감했다. 그리고는 내가 이제껏 살아온 길을 돌아보게 된 것. 그런데 그 길이 생각처럼 길지도, 전혀 근사해보이지도 않아 자괴감과 조급함, 의아함까지 더해지는.
 

이 글을 써놓고 외출을 했는데 마침 이런 사진을 봤다. 파도 치는 바다와 그 안에 사람들이 마치 세월 속에 나이 먹어가는 우리의 모습 같았다. ⓒ 들꽃이야기 도서관

 
그런데 이 혼란스럽고 부정적인 감정들 속으로 일면 차분하고 긍정적인 생각도 섞여들기 시작했다. 마흔이, 또 그 이상의 나이가 나만 될 리 없으니 지금의 심정을 누군가로부터 이해받고 또 앞으로 나아갈 길에 조언을 구할 수 있겠다 하는. 그 첫 번째가 내 어머니였고, 두 번째는 좋아하는 작가의 책이었다.

어머니는 60대 후반이다. 요즘 60대를 노인이라 일반화하기에 상당 무리가 있음에 동의하는데, 내 어머니도 그렇다. 아직 건강하고 예쁜 신체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정신과 그 활동. 어머니는 늘 새로운 것에 도전하며 배운다. 그런 어머니를 보면 막막하고 두렵기만 한 앞날에 빛이 들어 길이 보이는 것 같다. 

그리고 때마침 읽고 싶어진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제목에 끌려 집어 들었는데 그 속에 하루키가 40대와 50대를 살며 경험하고 느낀 바가 지금 나의 심경과 무척 비슷하고 그때의 다짐과 이제 70살이 된 그의 현실의 삶을 통해 위안과 해답 또한 얻을 수 있었다.
 
'나이를 먹어간다는 것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체험하는 것이고, 거기에서 느끼는 감정 역시 처음으로 맛보는 감정인 것이다. (…)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것과 함께 우선 살아갈 수밖에 없다. 마치 하늘이나 강을 대하는 것처럼.'

'중요한 것은 시간과의 경쟁을 하는 것이 아니다. (…) 얼마만큼 자기 자신을 즐길 수 있는가, 아마도 그것이 이제부터 앞으로의 큰 의미를 가져오게 되는 것이 아닐까. 수치로 나타나지 않는 것을 나는 즐기며 평가해가게 될 것이다.'
 
좋으나 싫으나 우리 모두는 한 순간, 한 순간을 살 수밖에 없다. 그 순간의 결정권은 나에게 반, 그리고 운명에 나머지 반이 달려 있다. 후자는 모른다. 그러니 허락된 모든 순간을 내 의지와 바람으로 채워 이어가는 것.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

이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조금 편안해졌다. (완전히는 아니고, 때때로 평온이 다시 깨지기도 하지만) 그리고 집 앞에 바닷길을 산책하는데 이런 결심이 섰다. 

"예쁘게, 멋있게 살자. 여자로서도, 한 사람으로서도. 매 순간 최고로."

내가, 삶이, 다시 평범해지는 것 같았다. 내가 말하는 평범은 늘 우주적이란 의미와 연결돼 있다. 나는 더없이 미소한 동시에 우주를 품고 우주와 연결된 한 존재. 그렇게 내가, 이 삶이 다시 좋아지고 소중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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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보니 삶은 정말 여행과 같네요. 신비롭고 멋진 고양이 친구와 세 계절에 걸쳐 여행을 하고 지금은 다시 일상에서 여정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바닷가 작은 집을 얻어 게스트하우스를 열고 이따금씩 찾아오는 멋진 '영감'과 여행자들을 반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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