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형문자, 상형문자 그리고 그리스어

[다시 찾는 박물관과 미술관 15] 아나톨리아 문명사박물관 ②

등록 2019.02.22 14:50수정 2019.02.22 14:50
0
원고료로 응원
 

퀼테페에서 발굴된 설형문자 점토판(높이 19.2㎝) ⓒ 이상기

 
앗시리아 식민시기의 유물들  

기원전 1950년경 앗시리아 상인들이 아나톨리아 지방으로 들어와 앗시리아와 아나톨리아의 교역이 시작되었다. 그들은 퀼테페(Kültepe) 지역에 살며 앗시리아로부터 양모, 의류, 장신구 등을 수입하고, 금과 은으로 만든 장식품을 수출했다. 그들은 쐐기문자를 사용했고, 이를 통해 역사를 기록했다. 이들은 홍도와 흑도로 불리는 도자기를 사용했다. 도자기에 부조를 만들어 예술성을 높이기도 하고, 그림을 그려넣기도 했다.


앗시리아 식민시기는 청동기와 히타이트제국 사이 200년 정도 기간이다. 그러므로 청동기와 히타이트시대 문화의 특징들이 공존한다. 도시계획, 건축, 문화유산 등에서도 공통점이 많다고 한다. 이곳 박물관에는 기원전 19세기에 만들어진 쐐기문자 점토판이 무수히 많다, 이들은 세금, 식량, 주택, 노예 거래 등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 점토판의 크기는 10㎝에서 20㎝ 정도 된다.
 

암사자 얼굴 모양의 홍도 ⓒ 이상기

 
홍도와 흑도는 생활용기와 의식용 제기, 부장품 등으로 분류할 수 있다. 그 중 의식용 제기의 예술성이 두드러진다. 그것은 실용성보다는 장식성을 중시하기 때문이다. 제기 상단부에 부조를 새기거나 만들어 붙인 경우가 많다. 암사자의 얼굴을 한 홍도의 예술성이 뛰어나다. 물을 따르는 주둥이를 동물모양으로 만든 것도 있다.

부장품으로 들어가는 것들을 멧돼지, 사자. 사슴, 개, 토끼, 독수리 같은 동물형상으로 만들기도 한다. 청동으로 만든 유물로는 단도, 실패 등이 있다. 크리스탈이나 상아로 만든 신상이나 장식품도 여럿 있다. 전시실에는 퀼테페 시장의 모습을 재현해 놓은 그림이 있다. 그림 왼쪽 상단에는 성이 있고, 오른쪽에는 에르키예스 다쥐(Erciyes Daǧi)로 불리는 화산이 있다.

히타이트 다음에 나타나는 프리기아
 

설형문자 청동판 ⓒ 이상기

 
히타이트제국은 기원전 1700년부터 700년까지 천년 동안 지속된다. 고왕국으로 불리는 1200년까지는 여전히 설형문자가 사용된다. 그 증거가 기원전 13세기 만들어진 설형문자 점토판이다. 그 중에는 이집트 파라오 람세스 2세의 부인이 히타이트왕 하투실리(Hattushili) 3세의 부인에게 우정의 표시로 보낸 편지문도 있다. 또 설형문자가 새겨진 청동판도 있다. 히타이트왕 투탈리야 (Tathaliya) 4세가 이웃나라와 맺은 국경선 협정문이다.
 

히타이트 신왕국시대 상형문자 부조 ⓒ 이상기

 
그런데 기원전 1200년부터 700년까지 신왕국시대 유물에는 설형문자가 아닌 상형문자가 나타난다. 카르헤미쉬 또는 안다발(Andaval)에서 출토된 석조부조에 상형문자가 새겨져 있다. 대표적인 유물이 기원전 9세기 카투바스(Katuvas)왕 부조와 8세기 후반 아라라스왕 부조다. 이들은 대개 기원전 8세기 작품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히타이트시대 말기로 오면서 설형문자가 상형문자로 바뀌었음을 알 수 있다.
 

양머리 청동 두레박 ⓒ 이상기

 
히타이트 다음 시대는 프리기아(Phrygia)왕국이다. 에게해 지역에서 온 그리스 계열의 민족으로 인도유럽어를 사용했다. 그들은 고르디온(Gordion)에 수도를 정하고 기원전 7-8세기 전성기를 맞이한다. 이들은 기원전 550년 페르시아의 지배를 받으며 그 세력을 잃는다. 그러나 그들이 이룩한 문화와 예술은 페르시아에까지 영향을 끼친다. 청동기와 토기, 석조부조 등에서 그것이 확인된다.

청동기로는 양머리와 사자머리를 한 두레박이 있다. 기원전 8세기 작품으로 조각과 장식이 뛰어나다. 청동으로 만든 냄비와 접시, 주전자 등이 있다. 이들은 모두 생활용품으로 실용성과 예술성을 겸비하고 있다. 사방에 손잡이 형태로 사이렌 여신을 붙인 솥형 냄비가 예술적으로 가장 우수해 보인다. 주전자들은 손잡이가 달리고 주둥이가 넓어 실용성이 돋보인다.
 

프리기아시대 토기 ⓒ 이상기

 
토기로는 청동기보다 훨씬 다양한 모양의 생활용품이 만들어졌다. 문양이나 채색도 훨씬 자유롭고 다양한 편이다. 이들 토기는 동물모양으로 만들어지기도 하고, 동물문양이 들어가기도 한다. 동물모양으로 만들어진 것은 대개 제기로 사용되었다. 거위, 오리, 양, 비둘기 같은 동물모양을 하고 있다. 동물문양의 경우는 사자, 염소, 사슴, 황소, 말 등이 보인다.

석조부조: 말(높이 110㎝) ⓒ 이상기

 
석조부조는 히타이트시대와 상당히 유사하다. 그러나 부조에 인물은 거의 없고 동물만 나타난다. 그것은 인물상이나 신상은 조소상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부조로 나타나는 대표적인 동물은 사자, 말, 황소다. 그리고 사자 몸뚱이에 날개를 달고 머리는 맹금류인 그리핀(Griffin) 부조도 있다. 이들 석조부조는 대개 앙카라에서 발굴되었고, 높이는 1m 내외다.

그리스-페르시아, 그리스-로마 양식으로 변하는
 

기원전 6세기 리디아의 은제 접시 ⓒ 이상기

 
 리디아(Lydia)는 프리기아 서쪽에서 약 140년간(기원전 685-547)까지 번성한 나라다. 이 시기 건축과 조각 등의 분야에서 우수한 문화유산을 남겼다. 리디아는 기원전 546년 페르시아제국의 침략을 받아 멸망한다. 그렇지만 서쪽 그리스와 동쪽 페르시아에 문화적인 영향을 끼친다. 그 결과 그리스-페르시아, 그리스-로마 양식이 형성될 수 있었다.


아나톨리아 지역에 대한 페르시아 지배는 그 후 약 200년 동안 계속되었다. 그리고 그리스 지역에서 번창한 알렉산더 대왕이 동방원정에 나서면서 아나톨리아는 헬레니즘 문화권으로 들어간다. 대개 기원전 330년부터 헬레니즘시대라 부른다. 알렉산대왕이 세상을 떠난 기원전 323년부터는 아나톨리아 지역이 그의 부하 장군들에 의해 다스려졌다. 대표적인 왕국이 페르가몬(Pergamon) 왕조다.

 

기원 전후 금동제 거울 ⓒ 이상기

 

아나톨리아 지역이 로마의 영향 받기 시작한 것은 로마 공화정시대인 기원전 1세기 중반이다. 이때부터 아나톨리아는 동쪽의 파르티아와 서쪽의 로마 사이의 각축에서 로마의 지배하에 놓이게 된다. 그 후 언어와 종교에서 큰 변화가 일어난다. 언어는 그리스어가, 종교는 기독교가 주류를 이루게 된다. 남쪽의 안티오키아에서는 최초로 기독교 공동체가 만들어지게 되었다. 아나톨리아 지역의 기독교화는 10세기까지 계속된다.

아나톨리아 지역의 그리스-로마화는 로마황제 콘스탄티누스가 수도를 로마에서 콘스탄티노플로 옮기면서 절정에 이른다. 이때의 문화를 우리는 비잔틴 문화라 부르는데, 그 중심에 콘스탄티노플이 있다. 이스탄불에 있는 고고학박물관에서 우리는 그리스와 로마시대 터키지역 문화유산을 자세히 살펴볼 수 있다. 이곳 아나톨리아 문명사박물관에는 상대적으로 그리스 로마시대 문화유산은 적은 편이다.

 

야외전시장의 로마시대 조각 ⓒ 이상기

 

이곳에는 그리스-로마시대 금제 장신구들이 있다. 그리스양식의 도자기도 보인다. 로마시대 유리기도 보인다. 그리스양식을 따라 로마시대 만든 청동조각들도 보인다. 또 페르시아, 시리아, 그리스, 로마지역에서 사용하던 동전들도 있다. 그리고 아나톨리아 지역이 이슬람화되기 시작한 10세기 이후 문화유산도 있다. 이들 중에는 식물문양이 들어간 아라베스크 타일들이 눈에 띈다. 아나톨리아 문명사박물관에서 우리는 고대부터 현대까지 터키 문화유산을 살펴볼 수 있다.0
#앗시리아 #히타이트 #프리기아 #그리스어 #로마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관심분야는 문화입니다. 유럽의 문화와 예술, 국내외 여행기, 우리의 전통문화 등 기사를 올리겠습니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61세, 평생 일만 한 그가 퇴직 후 곧바로 가입한 곳
  2. 2 천연영양제 벌꿀, 이렇게 먹으면 아무 소용 없어요
  3. 3 버스 앞자리 할머니가 뒤돌아 나에게 건넨 말
  4. 4 "김건희 여사 라인, '박영선·양정철' 검토"...특정 비서관은 누구?
  5. 5 죽어라 택시 운전해서 월 780만원... 엄청난 반전이 있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