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치로 체벌에 성추행까지... 믿기 어렵지만 실화였다

[김승일 시인의 학교詩끌 4] 과거의 폭력을 기억하다

등록 2019.02.22 14:45수정 2019.02.22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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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일 시인의 학교詩끌'은, 학교가 폭력으로 시끌시끌하다는 뜻, 시(詩)로 학교를 끌어당기거나 끌어준다는 뜻, 결국에는 좋은 의미에서 학교가 시끌시끌했으면 좋겠다는 의미입니다. 이 글이 학교폭력 예방 문화를 만들어 나아가려는 모든 분께 진심으로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 기자 말

학교는 사회의 반도체다. 학교라는 집적회로가 사회라는 기판 위에 납땜 되어 있다. 학교가 잘못되면 사회는 전반적인 문제들을 일으킨다. 학교에서 일어나는 일상의 폭력이 무서운 이유다. 병을 고치러 간 병원에서 병을 얻어올 수 있다는 말이 실감 난다. 좋은 것을 배우러 간 학교에서 이상한 것들만 얻어온다면 그것이 얼마나 큰 문제인가. 청소년기 또는 사춘기에 경험한 충격적인 일들은 한 사람의 기억 속에서 오랫동안 지워지지 않는다. 최근 유명 유튜버가 학창시절 때 담임 선생님으로부터 폭력적인 일들을 당했다고 고백하자, 영상을 본 독자들이 비슷한 일을 겪었다며 댓글을 달았다. 우리가 학창시절에 얼마나 많은 폭력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우리에겐 기억을 애써 더듬지 않아도 선명하게 떠오르는 일들이 있다.

중학교 때 있었던 일이다. 당시 남자 선생은 친구의 교복 상의를 벗긴 다음 체벌이라는 명목 아래 말도 안 되는 행동을 했다. 선생은 친구의 젖꼭지를 펜치로 잡았다. 체벌 도구로 펜치를 가지고 다니던 선생은 마치 그것이 정당하다는 듯 행동했다. 우리의 사고 속에 폭력을 욱여넣었다. 믿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 그때 선생의 입에서 당황스러운 말이 나왔다.

"남학생인데 유두를 잡으니까 우유가 나오네." 

몇몇은 황당해 웃음을 터트리기까지 했다. '남학생' '유두' '우유'라는 단어가 한 문장 안에서 연결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어떻게 교사가 펜치로 학생의 가슴을 잡으며 우유가 나온다고 말할 수 있을까. 나는 지금도 당시의 상황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러나 이러한 일은 내가 학생이었을 때 공공연하게 벌어졌다. 

선생은 시험 범위에 속한 문제들을 풀이하는 것으로 수업을 대신했다. 단순 문답식으로 이루어진 수업에서 우리는 늘 정답을 말해야 했고, 오답을 고른 학생에게는 체벌이 이루어졌다. 체벌의 종류는 무수했다. 학생의 검지와 중지 사이에 펜을 끼운 뒤 손가락을 압박하기도 하고, 학생들의 성기를 교복 위로 움켜쥐기도 했다. 

체벌은 개인에 한정된 것이 아니었다. '연대책임'이라는 가정 하에 한 명이 틀리면 어깨동무를 하고 앉았다가 일어났다를 수없이 반복했다. 가끔 체력이 약한 학생들이 울음을 터뜨리면 선생은 '연대책임'이라는 말을 붙여 다시 체벌을 시작했다. 당시 사건이 준 충격은 지금도 내 마음속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아마 다른 친구들의 기억 속에서도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사월'이라는 제목의 시 4월, 꽃잎이 떨어지는 장면에서 퍽! 퍽! 맞는 소리가 들릴 수도 있다. 학교폭력에 노출된 어떤 학생에게는 말이다. 마찬가지로 어떤 훈육이나 체벌은 '교육'으로 볼 수도 있는 반면에, 다른 각도에서는 '폭력'이 되기도 한다. ⓒ 김승일

   
1990년대 비디오 대여점에서 영화를 빌려오면 초반에 익숙한 성우의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한 편의 영화가 당신의 평생을 바꿀 수도 있습니다"라는 성우의 말처럼, '학교생활을 어떻게 했느냐'에 따라 학생의 인생은 달라질 수 있다. 


사춘기 학생들의 몸과 마음은 일종의 기록관이다. 그들의 감각 위로 지나가는 모든 것들이 자국처럼 남게 된다. 그렇게 지나간 일 속에는 '상처'와 같은 단어들도 들어가 있다. 

초등학교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 본다. 그때는 과연 이해할 수 없는 체벌이 없었을까. 하루는 두 친구 사이에 싸움이 일어났다. 남학생들 사이에서 벌어질 수 있는 작은 다툼이었지만, 선생의 잘못된 체벌로 더 큰 싸움이 되어버렸다. 선생은 반 학생들을 동그랗게 둘러 세운 뒤, 싸움을 한 두 학생을 그 안에 넣었다. 그리고 선생은 학생들 앞에서 이렇게 말했다. 

"너희들은 싸움을 좋아하니, 친구들이 보는 앞에서 어디 원 없이 싸워봐." 

그것은 마치 '야만의 시대'에 살던 족장이 말도 안 되는 규칙을 내세워 '두 사람 중 누가 더 약자인지 가려보자'고 주장하는 것과 같아 보였다. 정말로 큰 문제는 다음에 일어났다. 두 친구가 진짜로 싸우기 시작했다. 선생은 우리들의 절대 권력자였다. 누구 하나 그 이상한 싸움을 저지하지 못했다. 그는 그것이 올바른 교육법으로 여기는 것 같았다. '폭력'을 또 다른 '폭력'으로 다스리는 선생의 잘못된 교육관과 훈육방법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 어른이 된 나는 여전히 해답을 찾지 못했다. 

김의석 감독은 영화 <죄 많은 소녀>를 만들기 전에 "폭력으로 인한 한 소녀의 죽음이 영화의 소재로는 부족하지 않을까요?"라는 질문을 받았다고 한다. <죄 많은 소녀>는 이러한 의문에 반기를 든다. '한 명의 죽음이, 견고해 보이는 학교를 조금씩 무너뜨릴 수 있다'고 말한다. 

성추행과 폭행을 일삼았던 선생의 만행은 앞으로도 기억될 것 같다. 우리는 잊을 수 없는 과거를 나누어 가졌다. 잘못된 체벌과 훈육으로 사고가 일어나면 "학생들이 그렇게 느끼는지 전혀 몰랐어요!"라고 말하지 말고 그 전에 과정과 결과에 대해 선생님들이 깊은 고민을 했으면 좋겠다. 
수치로 가득한 공기를 들이마실 때
나에겐 무엇이 들어오고 있나
흡입하면 무엇을 뱉어 내야 하나

(중략)

수치를 모르던 애가 어떻게 울지
슬플 때 웃음이 나오는 이상한 버릇처럼 입이 귀까지 걸려 있는 애가 한두 명이 아니다

- 「성기의 기술」 부분, 시집 『프로메테우스』
"저희 같았으면 핸드폰으로 영상을 찍어 고발하지 않았을까요? 바로 우리 학교 담당 경찰관에게 신고했을 거예요." 시를 읽은 학생들은 내게 질문을 던진다. 사회가 많이 바뀌었다. 학교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과연 잘 바뀌고 있는 걸까?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월간 <세상사는 아름다운 이야기> 2019년 2월호에도 실은 글을 다듬은 것입니다.
#학교폭력 #성추행 #선생님 #학생 #체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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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이 없는 학교를 소망합니다. 제 첫 시집 『프로메테우스』를 학교에서 낭독합니다. 학교폭력을 예방하고, 피해학생들을 치유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강의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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