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오스 댐 붕괴사고 후 6개월... 병에 담긴 유골들

세피안-세남노이 댐 사고 대응 한국시민사회TF 조사 보고회

등록 2019.02.25 20:05수정 2019.02.25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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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7월 23일 SK건설이 라오스에서 시공 중인 대형 수력발전댐의 보조댐이 붕괴해 주민 다수가 숨지고 수백 명이 실종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 연합뉴스 = 라오스통신 제공

 
지난해 7월 23일, 한국의 공적개발원조사업(ODA)으로 라오스에 건설 중이었던 세피안-세남노이 댐의 보조댐이 무너졌다. 19개 마을에 살고 있던 수십명의 주민들이 사망하거나 실종되고, 약 1만여 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댐은 SK건설이 시공을, 한국서부발전이 관리와 운영을 맡았다. 한국 정부는 '원조'와 '수출'을 결합한 새로운 복합금융 모델이라며 최초의 민관협력사업(PPP)인 이 사업을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그런 수력발전댐 건설 사업에서 비극적인 참사가 발생한 것이다.

사고 후 6개월이 흐른 지난 1월, 라오스 세피안-세남노이 댐 사고 대응 한국시민사회TF(이하 시민사회TF)의 윤지영 팀장과 김세진 변호사는 사고가 발생한 라오스의 위앙짠(Vientian City)과 아타푸(Attapeu Province)의 5개 마을과 댐 사고로 피해를 입은 캄보디아 지역을 직접 찾아 현지조사를 진행했다. 현지의 피해상황을 확인하고, 주민들의 목소리를 직접 듣기 위해서였다. 현지주민과 관계자들을 면담하면서 언론을 통해 제한적으로 전달되었던 사실 관계를 파악했다.

지난 20일, 참여연대 느티나무홀에서 열린 현지조사 보고회는 이번 사고와 관련해서 그동안 시민사회TF가 진행한 활동 경과와 라오스, 캄보디아에서 마주한 피해상황을 담은 짧은 영상으로 시작했다. 현지조사단은 사고 당시 상황을 주민들의 목소리를 대신해 전달했다.

"사고가 있었던 7월 23일은 비가 그치고 바람이 불던 여름날의 저녁이었다고 합니다. 텔레비전을 보거나 휴대폰을 보며 하루를 정리하던 저녁 8~9시경. 6~7미터의 물벼락이 굉음과 함께 순식간에 마을을 덮쳤고, 도망갈 틈도 없이 지붕에 매달려 꼬박 하루를 버텨 주민들은 구조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손을 쓸 수도 없이 고스란히 사고를 당한 수십명의 주민들은 사망하거나 실종 되었습니다."

장례 치르지 못하고 화장된 유골... 플라스틱병에 담아 절에 보관

현지조사단이 보여준 피해 마을의 상황은 예상보다 심각했다. 마을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나무로 만든 집은 고꾸라져 있었다. 주민들은 살고 있던 마을을 떠나 임시대피소에서 석달 가량을 머물다, 라오스 정부의 요청에 따라 SK건설이 지은 캠프로 이동해 생활하고 있다. 

처음 만들어진 캠프 시설은 나무가 아닌 양철벽과 지붕으로 되어 있어 매우 더웠다. 주민들은 공동의 화장실과 샤워장, 부실한 주방시설 등 열악한 환경에서 지내고 있다. 방들은 다닥다닥 붙어 있어, 사생활 보호는 언감생심. 주민들은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라오스 정부는 1인당 한 달에 쌀 20kg과 10만 킵(약 1만3000원)을 지원하고 있었는데 이는 라오스 물가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라고 한다. 


현지조사단에 따르면 사고 직후 세계 각지에서 몰려든 구호 물품도 이제는 끊겼다. 주민들이 기부받은 의복은 구멍나고 해졌다. 밤에는 기온이 떨어져 이불이 필요했지만 제공받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캠프가 외진 곳에 위치해 있기도 하거니와 교통수단이 없어 주민들은 물건을 사거나 일자리를 얻기 위해 군 소재지로 이동하는 데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초등학교는 캠프내 위치해 있지만 중고등학교의 경우 매우 먼 거리에 있어 통학이 어렵다.

현지조사단이 캠프에서 만난 주민들은 생활의 터전을 잃고 하루하루를 무료하게 보내고 있었다. 라오스 정부는 질병 발생 위험이나 추가적인 사고 발생 가능성을 이유로 주민들이 원래 살던 마을로 접근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현지조사단이 마을에 머물렀던 시기, 장례도 치르지 못하고 화장된 유골이 빨갛고 파란 뚜껑의 플라스틱병에 담겨 사남사이 군 절에 보관되어 있기도 했다.
  

사남사이 군 절 내에 화장된 유골이 플라스틱 병에 담겨 있다. ⓒ 현지조사단


캄보디아 주민들, 라오스와 달리 관심과 지원 없는 상황에 서운

"집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물고기를 잡으며 평화롭게 지냈던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어요. 4년을 이곳 캠프에서 지내야 한다는 것은 상상조차 하기 싫습니다."

현지조사단이 만난 라오스 주민의 이야기다. 주민들은 댐 사고로 삶을 송두리째 빼앗겼다. 댐 건설 사업은 과연 누구를 위한 개발이었을까. 현지조사단이 만난 피해지역 주민들은 사고 이전에 댐이 건설되고 있다는 사실도, SK건설이 댐을 짓고 있다는 사실도 대부분 알지 못했다고 한다. 강 상류에 댐이 건설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일부의 주민들도 이 댐이 자신들의 마을과 연결된 지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사실을 정확히 알지 못했다.

댐 사고로 피해를 입은 캄보디아 시암팡(Siempang Distric), 스떵뜨렝(Stung Treng Province) 마을도 마찬가지였다. 캄보디아의 경우 사고 직후 5천여 명이 임시대피소로 이동해 1~2주를 머물렀는데 지역정부의 책임 있는 활동으로 인명 피해는 없었다. 그러나 농경지 침수 피해로 식량 공급에 차질이 빚어지고 있고, 피해구제를 위한 지원이 전무해 무너진 다리는 가구당 5불씩을 모아 복구를 진행하고 있다.

현지조사단에 따르면 주민들은 토사물의 양이 엄청나고 수질이 안 좋아 다시 농사를 지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부정적 의견을 밝혔다고 한다. 실제로 현지조사단이 만난 주민은 "논밭이 다 침수되는 바람에 쌀농사를 다 망쳤어. 보통 연간 60kg짜리 포대자루로 27자루는 수확했는데 작년에는 하나도 못했어. 유일한 수입원인데…"라고 증언했다. 캄보디아 주민들은 한국정부와 기업이 피해를 입은 캄보디아에 대해서는 라오스와 달리 관심과 지원이 없는 상황에 대해 서운함을 전했다고 밝혔다.

한편, 현지조사단은 댐 사고의 원인을 '폭우로 인한 자연재해'라고 밝힌 SK건설의 주장에 의문을 제기했다. 현지조사단은 "사고가 있기 전인 21일과 22일에는 비가 많이 오기는 했지만 예상치 못할 수준의 양은 아니었다" "23일 물이 닥치기 직전에는 비가 그치고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는 힌랏 마을 주민들의 증언을 전했다.

이는 22일 아타푸 지역의 실제 강수량이 438mm가 아니라 122mm이고, 사고 전 일주일간의 강수량도 SK건설의 주장과 달리 200mm 정도라는 세계기상기구(WMO)의 자료를 뒷받침하는 증언이기도 하다.

현지조사단 "무거운 마음으로 돌아왔습니다"
 

지난 2월 20일, 참여연대 느티나무홀에서 라오스 세피안-세남노이 댐 사고 현지조사 보고회가 열렸다. ⓒ 참여연대

 
현지조사 결과, 사고 직후 라오스 정부는 주민들에게 사고 원인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은 채 지난해 9월 설명회를 통해 본래 마을로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과 새로운 곳으로 이주해야 한다는 것만 알려준 것으로 드러났다. 실제로 라오스 정부는 피해주민들을 위한 영구적인 새로운 거처를 마련하고 있으며 새로운 거주지로의 이주까지는 4년 정도가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또 최근 라오스 정부는 사망·실종자들에게 1인당 1만 달러를 지급하고 주택과 부동산, 동산 피해에 대한 보상액에 대해서도 협상을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주민들은 기부금액에 비해 보상 금액이 턱없이 적고, 사망자의 나이, 직업 등을 고려하지 않은 일률적 보상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고 한다.

실제로 라오스 정부는 피해를 입은 주민들에게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은 채 마을별로 협상을 진행하고 있어 보상액에 대한 마을별 갈등이 발생하고, 개발업자에게 이익이 돌아가는 형식으로 이뤄질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는 상태다.

현지조사단은 사력댐으로 인한 파이핑 현상 가능성, 공기 단축 및 조기 담수, 설계변경으로 인한 댐 붕괴 가능성 등 그동안 제기된 사고원인에 대해서도 설명하고 라오스 정부가 공정하고 투명하게 조사결과를 발표할 것을 촉구했다. 또 한국 정부와 기업이 이번 사고와 관련해 책임 있는 조치를 취할 것을 강조했다.

현지조사단은 "무거운 마음으로 돌아왔습니다. 피해 주민분들은 4년 정도를 임시거주 캠프에서 살아야 될 텐데 고통의 일상이 될 것 같아요. 계속해서 관심을 가지고 한국 정부에 목소리를 내야 될 것 같습니다"며 보고회를 마무리했다. 

30여명의 청중이 참여한 이번 보고회는 라오스댐 사고로 인한 비극은 여전히 현재 진행중이며, 한국 정부와 기업의 책임뿐만 아니라 현지 주민들의 목소리에 더 많이 귀를 기울이고 이 같은 참사가 다시는 반복되지 않도록 제도개선 운동을 벌여야 하는 시민사회의 역할과 과제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하는 자리였다.
덧붙이는 글 전은경 기자는 참여연대 국제연대위원회 간사입니다. 이 글은 참여연대 웹사이트에도 실립니다.
#라오스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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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연대는 정부, 특정 정치세력, 기업에 정치적 재정적으로 종속되지 않고 독립적으로 활동합니다. 2004년부터 유엔경제사회이사회(ECOSOC) 특별협의지위를 부여받아 유엔의 공식적인 시민사회 파트너로 활동하는 비영리민간단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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