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훈 상록수의 집필지인 당진 필경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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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경수(ccourt)등록 2019.02.26 21:10
지난 주말(23일) 한국방송통신대학교 법학과 강경선 명예교수의 문하생들과 충청남도 당진시에 있는 필경사와 심훈기념관을 들렀다. 필경사는 대일항쟁기 시절인 1930년대 심훈(1901~1936)이 살았던 집이다. '그날이 오면'으로 유명한 시인인 심훈은 그의 집 이름을 붓 필(筆), 경작할 경(耕)자를 붙여서 필경사로 지었다. 그는 계몽소설인 상록수를 필경사에서 집필했다. 장편소설 상록수는 1934년 동아일보에 당선된다.
  

필경사 ⓒ 여경수

 
 
필경(筆耕) - 심훈
 
우리의 붓끝은 날마다 흰 종이 위에 갈(耕)며 나간다.
한 자루의 붓, 그것은 우리 쟁기(犁)요, 유일한 연장이다.
 
……

민중의 맥박을 이어주는 우리의 혈압이다.
오오 붓을 잡은 자여 위대한 심장의 파수병이여!
 
1930. 7.
 
심훈은 1919년 18살의 나이로 3.1운동에 주도적으로 참여하다, 경성고등보통학교(현 경기고등학교)에서 퇴학당한다. 당시 그가 교도소에서 어머니에게 쓴 편지가 남아 있다.
 
감옥에서 어머니께 올린 글월 - 심훈
 
어머님!
 
오늘 아침에 고의적삼 차입해 주신 것을 받고서야 제가 이곳에 와 있는 것을 집에서도 아신 줄 알았습니다. 잠시도 엄마의 곁을 떠나지 않던 막내둥이의 생사를 한 달 동안이나 아득히 아실 길 없으셨으니, 그동안에 오죽이나 애를 태우셨겠습니까?
 
그러하오나 저는 이곳까지 굴러 오는 동안에 꿈에도 생각지 못하던 고생을 겪었건만 그래도 몸 성히 배포 유하게 큰집에 와서 지냅니다. 고랑을 차고 용수는 썼을망정 난생처음으로 자동차에다가 보호 순사를 앉히고 거들먹거리며 남산 밑에서 무학재 밑까지 내려 긁는 맛이란 바로 개선문으로나 들어가는 듯하였습니다.
 
……
 
어머님!
 
며칠 동안이나 비밀히 적은 이 글월을 들키지 않고 내보낼 궁리를 하는 동안에 비는 어느듯 멈추고 날은 오늘도 저물어 갑니다. 구름 걷힌 하늘을 우러러 어머님의 건강을 비올 때, 비 뒤의 신록은 담 밖에 더욱 아름답사온 듯 촌의 개구리 소리만 철창에 들리나이다.
 
1919. 8. 29.
 
심훈은 1920년대에 중국에서 단재 신채호와 우당 이회영, 석오 이동녕과 교류한다. 심훈은 박헌영으로 추정되는 박군에 대한 애틋한 감점을 담은 '박군(朴君)의 얼굴'을 발표한다.
 
박군(朴君)의 얼굴        - 심훈
 
이게 자네의 얼굴인가?
여보게 박군, 이게 정말 자네의 얼굴인가?
 
알콜병에 담가 논 죽은 사람의 얼굴처럼
마르다 못해 해면(海綿)같이 부풀어오른 두 뺨
두개골이 드러나도록 바싹 말라버린 머리털
아아 이것이 과연 자네의 얼굴이던가?
 
1927. 12. 2.
 
심훈의 글 중에는 당진과 관련된 글이 남아있다. 당진 향교의 향례에서 심훈이 쓴 글이 남아있다. 
 
머리말
 
나는 쓰기를 위해서 시를 써본 적이 없습니다. 더구나 시인이 되려는 생각도 해보지 아니하였습니다. 다만 닫다가 미칠 듯이 파도치는 정열에 마음이 부대끼면, 죄수가 손톱 끝으로 감방의 벽을 긁어 낙서하듯 한 것이, 그럭저럭 근 백수나 되기에, 한 곳에 묶어보다가 이 보잘 것 없는 시가집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
 
삼십이면 선(立)다는데 나는 아직 배밀이도 하지 못 합니다. 부질없는 번뇌로, 마음의 방황으로, 머리 둘 곳을 모르다가 고개를 쳐드니, 어느덧 내 몸이 삼십의 마루터기 위에 섰습니다. 걸어온 길바닥에 발자국 하나도 남기지 못한 채 나이만 들었으니, 하염없게 생명이 좀 쏠린 생각을 할 때마다, 몸서리를 치는 자아를 발견합니다. 그러나 앞으로 제법 걸음발을 타게 되는 날까지의, 내 정감의 파동은, 이따위 변변치 못한 기록으로 나타나지는 않으리라고, 스스로 믿고 기다립니다.
 
1932년 9월 가배절 이튿날
당진 향제에서 심훈
 
 

철로 형상화한 상록수 ⓒ 여경수

 
심훈은 시인, 소설가, 기자, 영화감독과 같은 다양한 문화 활동을 하였으며, 민족저항의식을 항상 성찰하며 살아온 문화인이다. 비록 심훈은 무장 독립운동에는 참여하지 못했지만, 심훈은 글로써 일본제국주의와 평생을 싸웠다. 심훈의 마지막 시였던, '오오, 조선의 남아여!' 역시 민족저항시로 평가된다.
 
오오, 조선의 남아여!
― 백림마라톤에 우승한 손, 남 양군(兩君)에게 - 심훈
 
 
그대들의 첩보를 전하는 호외 뒷등에
붓을 달리는 이 손은 형용 못할 감격에 떨린다!
이역의 하늘 아래서 그대들의 심장 속에 용솟음치던 피가
이천삼백만의 한 사람인 내 혈관 속을 달리기 때문이다.
 
……
 
오오, 나는 외치고 싶다! 마이크를 쥐고
전세계의 인류를 향해서 외치고 싶다!
"인제도 인제도 너희들은 우리를
약한 족속이라고 부를터이냐!"
 
1936. 8. 10.
 
우리는 필경사를 들린 후, 당진 시내에 있는 당진향교를 방문하였다. 심훈의 발자취가 남겨있는 당진에서의 여정은, 다가오는 3.1.운동 100주년이자 민주공화국 성립 100주년을 위한 환영식으로 여겨졌다.
 

심훈 기념관 ⓒ 여경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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