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때문에 버티는 회사 후배에게 해주고 싶은 말

[워킹맘이 워킹맘에게] 일은 나에게 어떤 의미일까

등록 2019.03.03 11:50수정 2019.03.03 11:50
3
원고료주기
직장인 17년차, 엄마경력 8년차. 워킹맘 K에게 쓰는 편지는 아이와 일을 사랑하며, 삶을 치열하게 살아내는 엄마의 이야기입니다. 완생을 꿈꾸는 미생 워킹맘의 이야기를 밝고 긍정적인 모습으로 그려내려 합니다.[편집자말]
a

인생의 고비마다 나는 왜 일을 그만두지 않았을까? ⓒ unsplash

 
오늘 후배와 이야기하다가, 내가 올해 19년 차가 된다고 하니 깜짝 놀라더라. 생각해 보니 오래 다니긴 했더라고. 나도 이렇게 오래 직장생활을 할 줄 몰랐어. 참 정신없이 살았던 것 같은데, 어느새 강산이 두 번 변하는 시간을 지났네. 

입사 후 10년은 일을 익히느라 정신 없었고, 이후 9년은 워킹맘으로 사느라 정신 없었어. 그 정신 없는 중에도 질문 하나는 늘 마음 속에 있었지.

'일은 나에게 어떤 의미일까?'

일을 중간에 그만두지 못할 만큼 미치도록 좋아했던 것도 아니었어. 그렇다고 아주 싫은 것도 아니었지. 지난 시간을 돌이켜보면 죽도록 출근하기 싫은 날도 있었고, 짜릿할 만큼 성취감을 느낀 적도 있었어. 우는 아이 때문에 나도 울면서 출근한 적도 많았지. 인생이 어느 한 방향으로만 흐르지는 않잖아. 즐거웠던 기억, 힘들었던 기억, 그 모든 기억이 일과 함께였어. 인생의 고비마다 나는 왜 일을 그만두지 않았을까?

일의 첫 의미, 생계

왜 지금까지 일을 했냐고 물어보면 딱 떠오르는 답은 '생계'야. 일에 어떤 큰 의미를 부여하기보다 그냥 일상이었지. 내가 살아내야만 하는 일상. 

남편과 나는 젊었을 때부터 사업을 생각했어. 근로소득 이외에 다른 소득을 만들고 싶었지. 소비자로서가 아니라 생산자의 삶을 살고 싶었어. 그래서 둘 중 한 명은 사업을, 다른 한 명은 직장을 다니면서 지원해주자고 약속을 했지.

남편은 사업을 시작했어. 그런데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 없이 사업을 한다는 것, 아이디어 하나로 승부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그때는 몰랐던 것 같아. 본인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직장생활처럼 처음부터 배워야 할 것이 많다는 걸, 직장과 달리 가르쳐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걸 알았지.

처음부터 끝까지 좌충우돌이었어. 그러는 동안 우리 부부는 인생의 많은 파도를 넘어야 했지. 난 회사를 그만둘 수 없었어. 육아냐 회사냐 고민할 틈이 없었어. 내가 회사에 다니지 않으면 아이들 기저귓값도 마련할 수 없었으니까. 힘들어도 그 시기를 견뎌낼 수 있었던 건 '생계'라는 의미 때문이었어.

자아 발견도 좋고,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도 좋은데, 절대적 빈곤이 눈앞에 있다면 선택의 여지가 없어. 특히 아이들까지 있는 경우는 절박하지. 일단 살고 봐야 하니까. 살아남아야 열정도 찾고, 좋아하는 일도 찾는 거잖아. 전업맘이냐 워킹맘이냐를 고민하는 사람들을 보면 부럽기도 했어. 선택의 여지가 있다는 것, 그건 축복이었어.

어쨌든 나는 선택할 수 없는 시간을 폭풍처럼 지나왔어. 아이들도 폭풍처럼 크더라. 9년이라는 세월이 어떻게 흘렀는지 잘 모르겠어. 매 순간, 그냥 버티기 위해서 살았으니까. 

끝나지 않을 것 같던 긴 어둠의 터널도 끝이 나더라. 남편 사업이 대박 났냐고? 아직 아니야. 지금도 그는 여전히 달리는 중이야. 나는 아직도 생계를 위해 일을 해.

그럼 달라진 게 뭐냐고? 아이들이 컸어. 이전보다 육아가 훨씬 수월해. 엄마가 회사를 가야 하는 것을 알고, 스스로 챙기는 법도 늘었어. 남편은 열심히 사업을 키우고 있지. 실패하지 않았으니 성공을 위한 중간쯤이라고, 우리는 그렇게 생각해. 크게 성공하진 않았지만, 목표가 있으니 언젠간 되겠지.

남편의 사업이 자리를 잡으면 나는 일을 그만두어야 할까?

엄마가 되고 나서 진짜 프로가 된다
     
a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할 줄도 알게 됐어. 배려도 하게 됐지. 한마디로 사람 된 거지. 성숙한 사람. ⓒ unsplash

 
나는 9년이라는 시간 동안 많이 달라졌어. 아이들이 크는 동안 나도 컸더라. 아이를 낳기 전에 일을 대하는 태도는 불도저였지. 옆을 돌아보지 않고 앞으로만 직진하는 스타일이었거든. 그러면서 주위 동료들과 불협화음도 많았어. 다른 사람을 이해할 틈이 없었어. 앞만 보고 달렸으니까. 그때 내 별명이 싸움닭이었어. 회의만 하러 가면 싸우는 소리가 난다고 해서 붙여진 별명이야.

엄마가 되고 나서는 앞만 보면서 달릴 수가 없었어. 복직한 후 몇 년간은 한없이 초라하고, 자존감이 바닥을 치는 시기였지. 그런데 그 시기가 나쁘지만은 않았어. 엄마가 되기 이전엔 세상을 머리로만 살았는데, 엄마가 되고 나서는 세상을 가슴으로 살게 됐다고나 할까.

아이들을 키우니까 자꾸 옆을 보게 되더라. 엄마가 되고 나서 옆의 동료도 보이더라고. 아이와 공감을 하려고 노력하니까 다른 사람과도 소통이 되더라. 아이의 말을 들으려고 하니까, 다른 사람의 말도 듣게 되더라고. 조율이라는 것도 알게 되고, 협력이라는 것도 알게 됐어.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할 줄도 알게 됐어. 배려도 하게 됐지. 한마디로 사람 된 거지. 성숙한 사람.

이야기 하나 들려줄까? 예전에 같이 일하던 유능한 프리랜서가 있었어. 남자였는데, 그의 첫아이가 백일을 맞이했어. 그래서 백일 선물로 내복을 선물했지. 첫아이의 의미가 뭔지 아니까. 백일을 맞이하는 부모 마음이 어떤지 아니까 축하해주고 싶었어.

나중에 그가 고백하더라. 사실 우리와 하던 일을 그만두고 다른 곳으로 이직하려고 했대. 그런데 내복을 선물받고 감동받았다 하더라. 프리랜서라는 특성상 회사 사람에게 선물을 받아 본 적이 없었다는 거야.

그래서 이직을 취소했고, 프로젝트 마무리할 때까지 열심히 해야겠다고 결심했대. 물론 프로젝트가 끝날 때까지 내가 많은 도움을 받았지. 그때 알았어. 사람에게 신뢰를 받게 되면 그 이후의 일은 수월하다는 것을. 시너지 효과도 무궁무진하다는 것을.

만일 엄마가 되지 않았더라면, 나는 많은 것을 놓치고 살았을 거야. 아이들이 아니었다면, 그 시기에 이를 악물고 버텨낼 동력을 얻지 못했을 거야. 그런 면에서 어쩌면 육아는 아이를 키우는 것이 아니라 엄마를 키우는 것인지도 몰라.

일이라 쓰고 모든 의미라 읽는다
     
SBS <생활의 달인>이라는 프로그램 알지? 그 방송에는 같은 조건에서 남들보다 2~3배의 성과를 내는 사람들이 나오잖아. 내게 인상 깊었던 건, 그 단순한 일에서조차 달인들은 일을 즐기고 있더라는 거야. 즐기다 보니 어떻게 하면 더 빨리, 더 잘할 수 있을까를 연구하는 거지.

그중에서 어떤 여자 달인의 인터뷰가 생각나. 이걸로 아이들 학비도 내고, 먹을 것도 사줄 수 있으니 고맙고, 그래서 더 열심히 일한다고. 숙련된 기술을 익히는 동안 그가 감당했을 시간이 경건해지는 순간이었어. 그때 깨달은 것은 달인이 되느냐 마느냐는 일의 종류가 아니었어. 삶을 대하는 태도였지. 그녀는 어디서 일하든, 무엇을 하든 달인이 됐을 거야.

남편 사업이 자리를 잡아도 나는 일을 그만둘 생각이 없어. 자의든 타의든 회사를 그만둘 수는 있겠지. 하지만, 일은 그만두지 않을 거야. 나는 일을 좋아하거든. 근면함과 일을 대하는 태도, 어려움을 이겨내는 힘이 내 안에 있다는 것을 알았으니까. 아마도 또 일을 찾아서 계속하게 되겠지. 나 자신을 믿어.
 

일의 의미는 밖에서 찾아지지 않는다. 일 안에서만 찾을 수 있다. ⓒ Pixabay

 
가끔 사람들이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찾겠다면서 고민하고 방황하지? 하지만, 그 전에 알아두어야 할 것이 있어. 고민하고 방황할 시간에 한 가지 분야라도 깊이 파보는 것이 좋다는 거야. 한 가지 분야를 깊이 파본 사람은 다른 분야에서도 깊이 팔 수 있는 법이거든. 깊이 팔 때 필요한 것들이 몸에 새겨졌기 때문에 어디서든 해낼 수 있어. 그건 바로 노력, 그리고 태도라고 생각해.

나는 생계 때문에 내가 서 있는 분야에서 깊숙이 파본 거였어. 생각해보니 그때는 족쇄였다고 생각했는데, 돌이켜보니 나를 키우는 성장 도구였어. 지금 꾸준히 글을 쓸 수 있는 동력도 어쩌면 어두운 시기에 기본기를 다졌기 때문 아닐까? 그 시기가 없었더라면 너에게 해줄 말도 없었을 테니까.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찾을 시간에 일단 해야만 하는 일에 푹 젖어보는 건 어떨까? 그리고 그 일이 나와 내 가족의 삶을 풍성하게 해주면 더욱 좋고. 어쩌면 그 이상의 의미를 품고 있는 일일지도 몰라. 생계뿐만 아니라 그대의 성장도 함께 가고 있는 것이니까. 

기억해. 일의 의미는 일 안에서 찾을 수 있다는 것을. 일을 하고 있을 때만 찾을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나만이 그 의미에 정의를 내릴 수 있다는 것을.

오늘도 그대의 출근길을 응원할게. 파이팅!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이혜선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 (http://blog.naver.com/longmami) 및 브런치(https://brunch.co.kr/@longmami)에도 실립니다.
댓글3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주기
네이버 채널에서 오마이뉴스를 구독하세요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라이프+ 여행·문화 담당 기자.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기 위해선 이야기의 힘이 필요하다."

AD

AD

인기기사

  1. 1 주옥순 'Kill Moon' 팻말, 김문수는 "뻘건 문재인"
  2. 2 '저유소 화재' 풍등 날린 외국인 노동자 "한국은 내게 좋은 나라"
  3. 3 "나 같으면 당장 뺀다" 성형외과 의사가 분개한 이유
  4. 4 일본 역사교과서 속 위안부... 한국인들 이상한 사람 됐다
  5. 5 "동생 안 내놓으면 니가 죽는다" 공포의 서북청년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