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냄새나"... '깔창 생리대' 논란 2년 "수치심에 울었다"

'생리대 바우처 제도' 무색하게 만드는 고가의 생리대 시장... OECD 국가 중 최고

등록 2019.03.05 17:36수정 2019.03.05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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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이 많은 날엔 학교에 가지 않을 때가 많아요."

13살 박은영(가명)양은 한 달에 한 번, 학교를 결석했다. 생리 때 옆 친구가 '어디선가 이상한 냄새가 난다'고 말한 게 원인이 됐다. 그 자리에서는 아무렇지 않은 척 고개를 돌렸지만, 그날 밤 은영양은 수치심에 밤새 울었다.

은영양의 가정은 매일 저녁을 먹을 돈도, 학교 준비물을 살 돈도 충분치 않았다. 복지기관에서 생리대를 지원받지만 턱없이 부족했다. 당장 1천 원조차 부족한 상황에서 몇천 원 이상 하는 생리대는 당연히 구매하기 어려웠다. 그는 생리대를 자주 갈지 못해 생기는 가려움, 피부 짓무름보다 친구들에게 놀림 받지 않을지, 생리혈이 교복 밖으로 새지 않을지에 대한 걱정에 더 괴로웠다. 결국 그는 양이 많은 날이면 학교 가는 것을 포기했다.

지난해 초 저소득층 청소년 후원재단인 '지파운데이션'에 접수된 사례다. 전재현 지파운데이션 주임은 "2016년 깔창 생리대 논란 이후 정부와 시민단체 차원의 후원은 늘었지만, 여전히 제대로 된 지원을 받지 못해 힘들어하는 저소득층 여성 청소년들이 많은 상태"라고 말했다. 생리대를 구매하지 못해 신발 깔창으로 대신했던 여학생의 사연이 보도된 후 2년이 지났지만, 생리대 문제를 둘러싼 논란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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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8월 24일 서울의 한 대형마트 생리대 판매대의 모습. ⓒ 연합뉴스

 
여성가족부(이하 여가부)는 저소득층 여성청소년들의 생리대 구입비 부담을 덜어주고자 올해 초부터 '생리대 바우처(이용권)'제도를 도입했다. 현물로 주던 기존 방식에서 벗어나, 선호제품을 직접 선택해 구입할 수 있도록 이용권을 지원하는 방식이다. 지원 금액은 월 1만 500원으로, 연간 최대 12만 6000원이 지원된다.

하지만 치솟는 생리대 가격에 비하면 지원 금액이 여전히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생리대 바우처' 제도의 취지는 저소득층 여성청소년들이 '원하는 제품을 선택'하는 데에 있지만, 위 금액만으로는 시중에 유통되는 제품을 구매하는 데 제한이 따른다는 것이다. 한 통 당 약 7000원 하는 유기농 생리대는 둘째 치고 일반 생리대를 구매하는 것조차 자유롭지 못하다.

매월 저소득층 여학생들에게 월경용품을 지원하는 여성용품 사회적 기업 이지앤모어의 안지혜 대표는 여가부의 제도에 대해 "말도 안 되는 금액이다. 오버나이트 크기의 생리대 한 통을 사면 끝나는 금액이다. 정부가 금액 책정을 할 때 논의가 부족했던 것 같다"며 "한정적인 예산 탓에 책정된 금액이라면, 정부는 일부 기업과의 협의를 통해 수혜 학생들에게만큼은 좀 더 저렴한 가격에 질 좋은 생리대를 제공할 수 있도록 했어야 했다"고 말했다.

그는 "생리대는 사치품이 아닌 필수품인데도, 금액으로 인해 안전의 양극화 현상이 나타나는 상황이다"라며 "금액에 따라 여성 필수품에도 진입 장벽이 생기는 것은 사회적 문제다"는 말도 덧붙였다.


생리대, 안전성 입증 안 됐어도 OECD 회원국 중 가장 비싸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국내 생리대 시장 점유율 1위인 유한킴벌리의 경우 2010년 1월부터 2017년 8월까지 신제품과 리뉴얼제품을 출시하면서 102차례에 걸쳐 제품 가격을 평균 8.4%, 최대 77.9% 인상한 것으로 밝혀졌다. 통계청의 조사 결과, 같은 기간 동안 국내 생리대(18개)의 평균 물가는 전체 소비자물가 상승률의 두 배 가까이 올랐다. 2010년 7월 대비 2017년 7월 전체 소비자물가는 13.2% 올랐지만, 생리대값은 26.3% 상승했다.
 

2018년 기준, OECD 국가별 생리대 가격 비교 ⓒ 강연주

 
해외로 눈을 돌리면 문제는 더욱 두드러진다. 지난해 한국소비자원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OECD 36개국 중 한국의 생리대 가격이 가장 높은 것으로 분석됐다. 덴마크 156원, 일본 181원, 미국 181원, 프랑스 218원에 비해 한국의 생리대는 개당 평균 331원 정도다. 평균 물가가 높기로 유명한 덴마크와 비교해도 2배 이상 비싸다. 생리대 파동 및 라돈 검출 논란 이후 수요가 높아진 프리미엄 생리대(유기농 및 해외 수입 생리대)의 경우 개당 500~800원 정도로 책정돼 부담을 더욱 가중한다.

일반 생리대 평균 가격(331원)을 기준으로 여성 1인이 하루 6개씩 일주일간 사용한다고 가정할 경우, 1인당 한 달 평균 생리대 구입비(7일X6개X1개당 가격)는 약 1만4000원이다. 여성 한 명이 평균 35년간 (14~50세까지) 생리대에 지출하는 비용이 약 590만 원인 셈이다.

여성이 2명 이상인 가구의 경우 부담은 배가된다. 우혜진(27)씨는 "우리 집은 여자가 셋이라 생리대 구입 비용이 상당하다. 매달 4만 원 정도 지출한다"고 말했다. 백현정(28)씨도 "생리통으로 진통제까지 사먹는 비용을 생각하면, 생리 대외적인 비용도 결코 무시할 수 없다"고 호소한다. 여성들이 한 달간 생리에 사용하는 실질적인 금액은 앞서 계산된 금액(1만 4000원)보다 훨씬 웃돈다는 주장이다.
 

'우리는 안전한 생리대를 원합니다' - 생리대 파동 당시 안전한 생리대를 요구하는 서명 현장 ⓒ 오마이뉴스



'깔창 생리대' 논란 2년... 왜 바뀌지 못하나

세계적으로는 생리대를 공공재로 여기는 인식이 확대되고 있다. 2013년, UN에서는 '월경의 위생 문제는 공공 보건 사안이자 인권 문제'라고 명시한 바 있다. 생리대에 면세 혜택을 제공하는 나라도 늘고 있다. 지난해 10월 3일, 호주 정부는 여성 생리대에 부과됐던 세금 10%를 완전 폐지하기로 결정했다. 같은 해 7월, 인도는 생리대에 부과하던 세금을 전면 폐지했다. 아일랜드, 케냐, 캐나다 역시 생리대에 세금을 부과하지 않고 있다.

한국의 경우 여성단체들의 지속적인 요구로 2004년에 생리대에 붙는 부가가치세가 면제됐다. 하지만 판매 중 발생하는 부가세만 면제될 뿐 생산과 유통 과정에는 여전히 세금이 부과되고 있다. 생리대 가격 인상과 관련해 일부 정당과 시민단체에서 꾸준히 문제를 제기했지만 바뀐 것은 없었다. '깔창 생리대' 논란이 불거졌을 때에도 생리대 업체들은 원재료 값 상승으로 인해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보인 바 있다. 현재까지도 시중의 생리대 가격에 대한 법적 규제 수단이 부재한 상태다.

이안소영 여성환경연대 사무처장은 "가격 개선을 위해 공정거래위원회만 언급할 것이 아니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안전한 생리대를 위한 구체적인 규제책을 마련했더라면 여성들이 굳이 비싼 돈을 내지 않아도 '안전'은 기본 선택지가 됐을 것이다"라며 "높은 값을 내면서도 안전을 찾는다는 것은 아직도 여성들이 생리대에 위험성이 있다고 인식한다는 의미"라 꼬집었다. 그는 현재의 생리대 시장에 대해 "건강이라는 당연한 권리를 위해 더 비싼 값을 지불해야 하는 상황이다. 안전할 권리가 돈과 연관되어 있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여성 #생리대 #건강 #안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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