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할린을 걷다. 코르사코프 망향의 언덕(1)

굶어죽고 얼어죽고 미쳐 죽어도 배는 오지 않아, 코르사코프 '망향의언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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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영숙(marinbyon)등록 2019.03.07 16:29
사할린을 걷다. (1)  


코르사코프 망향의 언덕 
 
  

사할린 코르사코프시 전경 사할린 최남단 코르시코프 시 ⓒ 변영숙

     

너무 덥고 습했다. 명색이 국제공항인데 에어컨 하나 없는 것 같았다. 등골을 타고 계속 땀이 흘러내렸다. 입국심사는 왜 이렇게 더딘 것인지. 마치 시간이 멈춰 선 것만 같았다. 

국방색제복 차림의 공항직원들 표정은 왜 이리 험악해 보이는지. 무전기에서 나는 지지직거리는 소리까지도 귀에 거슬리고 신경을 자극했다. 

나와 같은 비행기를 타고 와서 입국심사를 기다리는 분들 중에는 유달리 70세를 넘긴 노인분들이 많았다. 이분들은 영주귀국으로 한국으로 귀환한 분들로 1년에 한번씩 제공되는 '사할린방문' 프로그램에 따라 사할린에 오신 분들이다. 그분들의 손에는 사할린에 남아 있는 자식들과 친지들에게 나눠 줄 선물들이 잔뜩 들려 있었다.  
 

안산 고향마을 풍경 경기도 안산고향마을에는 사할린으로 강제이주당했다가 영주귀국한 한인들이 살고 있다. ⓒ 변영숙

 

경기도 안산 상록구에 '고향마을'이라는 아파트단지가 있다. 외관상으로는 일반 아파트 단지와 다를 것이 없지만 막상 단지 안으로 들어서면 분위기가 일반적이지 않다. 주민의 대부분은 70세가 넘은 노인들이고, 어쩌다 마주치는 젊은 사람들도 어딘지 우리와는 분위기가 달라보인다. 그들은 가끔 한국어가 아닌 러시아말을 사용한다.

그렇다. '안산고향마을'은 일제강점기 강제징용이나 기타 이유로 사할린섬으로 강제이주당하여 일제 패망 이후에도 귀환하지 못하다가 90년 후반 한국으로 영주귀국한 사할린 한인들이 사는 곳이다.

우연한 기회에 안산의 고향마을을 알게 되었고, 이곳을 드나들면서 사할린 한인들을 직접 만나고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안산 고향마을 풍경 대부분 고령인 사할린 영주귀국 한인들은 자식들은 사할린에 남겨둔 채 자신들만 한국에 나와서 산다. 그들은 또 다시 자식들과 '생이별'의 고통을 감수해야만 한다. ⓒ 변영숙

 

고향마을에서 만난 어르신들은 이제 강제노동에 시달리지도 않으며, 조센진이라는 놀림도 차별도 받지 않으며, 일본과 러시아의 스파이라는 누명을 쓰지 않아서 좋다고 했다. 한국말을 한다고 아무도 뭐라 하지 않으니 얼마나 좋냐고 한다. 그들은 한결같이 이곳 한국에서의 생활이 사할린보다 훨씬 안락하고 풍족하다고들 좋아하신다. 

하지만 돌아서는 어르신들의 얼굴에서 쓸쓸함이 묻어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아마 사할린에 두고 온 자식들이 생각나서일 것이다. 그 긴 세월을 부모자식과 헤어져 살아온 것도 부족해 이번에는 '자식들과의 생이별'을 감내해야 하니 기가 막힐 노릇일 것이다. 

영주귀국의 조건이 1945년 이전 출생자나 이주자들로만 제한되었기 때문에 한국에 오려면 어쩔 수 없이 자식들과의 생이별을 택할 수 밖에 없었다. 참으로 모진 생이지 싶다.
 
굶어죽고, 얼어죽고, 미쳐 죽은 이들이 언덕을 메워... 
 
고향마을 어르신들의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사할린의 여러 도시들. 그들이 처음 당도했던 '코르사코프항, 대규모 탄광이 있었다는 브이코프, 시네고르스크, 고르노자보드스크… 그곳은 과연 어떤 곳일까. 

 

사할린국제공항 사할린의 주도 유즈노사할린스크의 국제공항 ⓒ 변영숙

 

말로만 듣던 그 도시들을 찾아 무작정 사할린으로 왔다. 사할린은 비행기로 3시간이면 닿는 곳이었다. 겨우 세 시간. 겨우 세 시간이면 닿을 수 있는 곳에 고향땅을 두고도 수십 년이 넘는 세월을 가족 간 생사도 모른 체 지내야 했다니. 
 
사할린은 이렇게 가까운 곳인데도 왜 그렇게 멀게만 느껴졌던 것일까. 나의 의식속에는 사할린, 사할린한인, 사할린 강제징용 같은 것은 남의 일로만 여겼었던 것이 분명하다. '때'만 되면 습관처럼, 관용어처럼, 앵무새의 입버릇처럼 뇌까리는 말들처럼 말이다. 
 
겨우 입국심사를 마치고 공항밖으로 나왔다. 공항 안과는 달리 일요일 오후의 달작지근하면서도 평화로운 공기가 도시를 감싸고 있었다. 
          
사할린은 이 섬의 원주민인 아이누족의 말로 '자작나무의 섬'이라는 뜻이다. 몽고어로는 '검은 강으로 들어가는 바위'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러시아 시베리아 남동부에서 발원한 아무르강(헤이룽강, 흑룡강)이 중국과 러시아의 국경지대를 흘러 타타르해협으로 흘러가는데, 이 타타르해협과 사할린섬이 거의 맞닿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사할린섬의 북서쪽은 네벨스크해협(타타르해협)을 사이에 두고 러시아 본토와 맞닿아 있으며, 섬의 남단은 라페루즈 해협(소야해협)을 사이에 두고 일본의 훗카이도섬과 근접해 있다. 타타르 해협은 최단거리가 약 7km밖에 안되어 마치 본토와는 하나의 땅덩어리로 보이기도 한다.
    

사할린 코르사코프항 일본의 훗카이도 항과 불과 40킬로 거리에 있는 사할린 최남단의 코르사코프항. 수시로 페리호와 화물선들이 오고간다. ⓒ 변영숙

       

공항에서 곧바로 코르사코프로 향했다. 주도인 유즈노사할린스크에서 약 36킬로 떨어져 있는 코르사코프는 조선인들이 처음 발을 들여놓은 사할린의 최남단 항구로 일본의 훗카이도항과는 불과 40킬로 거리다. 

차 안에서 내다보는 도시 풍경은 평화로웠다. 도로를 따라 목초지와 자작나무 숲이 그림처럼 흘러갔다. 작은 마을들이 지나갔고, 가끔 고층 아파트들도 지나쳤다. 별장촌인 듯 번듯하게 지어진 고급주택들도 보였다. 초지와 숲 그리고 마을이 번갈아 가며 나타나는, 목가적이고 고요한 풍경이 이어졌다. 
 
코르사코프에 도착해서 제일 먼저 일몰을 볼 수 있는 언덕으로 향했다. 주변에 고층건물이 없어서인지 높지 않은 얕으막한 야산이었음에도 시야를 가리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바다 너머로 서서히 해가 떨어지고 있었다. 주변도 바다도 붉게 물들어가고 있었다. 

    

아름다운 코르사코프 해안가 사할린 코르사코프 해안의 해지는 풍경 ⓒ 변영숙

   

항구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전형적인 물류항의 모습이었다. 컨테이너들과 화물선들이 항구에 가득했다. 언덕의 한쪽은 공사 중인지, 폭우에 산사태라도 난 것인지 허물어진 채로 방치되어 있었다. 금방이라도 허물어질 듯 아슬아슬해 보였다. 
 
또 잠시 상념에 젖는다. '저곳이었을까. 저곳에 배 한척이 도착한다. 굶주리고 피로에 지친 조선인들은 엉거주춤 배에서 하나 둘씩 내린다. 그들은 하나같이 불안감과 공포심으로 떨고 있다. 여기가 어딜까. 어디로 가는 것일까하면서 두리번거린다. 주변엔  일본군들이 삼엄한 감시의 눈초리를 번뜩이고 있다.'  
 
가까스로 붉은 빛을 내며 스러져 가는 여름날의 태양을 보고 있자니 울적한 마음은 더욱 무겁게 가라앉는다. 

    

코르사코프 해안가 일제는 사할린에 자원 수탈의 목적으로 철도를 건설하였고, 철도를 통해 석탄을 본국으로 실어날랐다. ⓒ 변영숙

   

야산에서 내려와 이번에는 '망향의 언덕'으로 갔다. 고향에 돌아가지 못한 조선인들은 이곳에 서서 하염없이 바다를 바라보면서 애타게 고향을 그리워했다고 한다. 자신을 실어날라 줄 배를 기다리면서. 하루에도 몇 번씩 오가는 배를 얼마나 애타는 마음으로 바라보았을까. 뻔히 눈 앞에 두고도 갈 수 없는 그 원망스러운 마음을 어떻게 달랬을까. 
 
어둠에 잠기기 시작한 검푸른 바다와 잡풀이 어울려 바람에 덩실거린다. 그 많은 사람들의 한 많은 사연들을 아는지, 모르는지 풍경은 무심하기만 했다. 
 
'망향의 언덕'에는 사할린한인 위령탑이 하늘 위로 높게 서 있었다. 귀국선의 모형을 본따서 만든 탑이라고 한다. 2007년도에 한인사회와 뜻있는 단체와 시민들의 모금으로 건립되었다. 

  

망향의언덕 위령탑 사할린 코르사코프항 '망향의 언덕'에 2007년 시민들의 힘으로 건립된 위령탑이 서 있다. ⓒ 변영숙

 

저무는 해가 탑을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붉은 색을 띠는 차가운 금속성 느낌의 탑은 어쩐지 스산해 보였다. 탑 아래 바닥에 위령비가 보였다. 어둠 속 수풀을 걷어내고 비문을 찾아 읽었다. 
 
"짧은 여름이 지나 몰아치는 추위속에서
이 분들은 굶주림을 견디며
고국으로 갈 배를 기다리고 또 기다렸습니다.
이윽고
혹은 굶어죽고
혹은 얼어죽고
혹은 미쳐 죽는 이들이 언덕을 메우건만
배는 오지 않아
하릴없이 빈손 들고
민들레 꽃씨마냥 흩날려
그 후손들은 오늘까지 이 땅에서
삶을 가꾸고 있습니다. 

 
<코르사코프 위령탑 비문 (김 문환 씀)>
  

코르사코프 '망향의 언덕' 위령탑비 위령탑비 ⓒ 변영숙

 


혹은 미쳐 죽었다는 글귀가 가슴을 후빈다. 그저 과장된 말이겠거니, 비유겠거니 했다. 그런데 나중에 한인들을 통해 과장도 비유도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실제로 미쳐 죽은 사람도 많았으며, 심지어 자살한 사람들도 있었다고 한다. 그 참혹함을 모라 설명할 수 없을 지경이다. 얼마나 고향이 그립고 돌아가고 싶으면 미쳐버리고 심지어 목숨까지 끊는단 말인가. 
 
"돌아가셨어요?"
 
"살았는지 죽었는지도 몰라. 나는 사할린에서 종전 전 해에 태어났어. 사할린 남부는 일본 영토가 되어서 당시 가라후토라고 불렸지만, 1945년 여름에 소비에트 군이 점령하면서 아버지와 어머니는 포로로 잡혔어. 아버지가 항만시설에서 일했던 모양이야. 일본 민간인 포로 대부분은 그 얼마 뒤에 일본으로 송환되었지. 우리 아버지 어머니는 노동자로 그쪽에 송출된 조선인이었기 때문에 일본으로 돌여보내주지 않았어. 일본 정부가 그 거래를 거부했거든. 종전과 함께 한반도 출신자는 더 이상 대일본제국의 신민이 아니라는 이유로. 참 너무한 얘기지. 배려라는 게 전혀 없잖아." 
 

무라카미 하루키 1Q84에 나오는 대목이다. 조선인들을 귀환시키지 않은 일본의 작태는 일본작가의 말대로 참으로 '배려'라는 게 전혀 없는 반인륜적인 행동이었다. 
 
'망향의 언덕'은 코르사코프에서 유명한 관광 코스인 듯 관광버스가 심심찮게 오갔다. 아마 항구의 모습을 가장 잘 조망할 수 있는 곳이기에 관광객들이 찾는 모양이다. 관광객들은 잠깐 내려서 탑 주변을 한바퀴 돌고 기념촬영을 하고 서둘러 버스에 올라 먼지를 날리며 사라져갔다. 

    

코르사코프 망향의언덕 사할린 강제징용자들을 추모하기 위해 망향의 언덕에 세워진 위령탑. 이곳에는 수시로 관광객을 실은 대형버스가 오고간다. ⓒ 변영숙

   

그들에게 참혹했던 역사의 현장은 평온한 바닷가 풍경으로만 기억될 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가이드를 통해 '망향의 언덕'에 서린 '조선인들의 한맺힌 이야기를 들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같은 민족인 우리들도 그들의 아픔을 제대로 모르는데, 그들이라고… 
 
그러나 그들이 이곳을 다녀갔으며 위령탑을 보았다는 것만으로 충분할지도 모르겠다. 그들의 여행담을 통해서 더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이곳에 억류되었던 자들의 이야기를 알게 될 테이니까 말이다. 
  

코르사코프 해안가 --- ⓒ 변영숙

 

'잊지 않는 것', '기억하는 것'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반드시 기억해야 하는 것들이 있다. 아니 기억해주어야 할 것이 있다.
 
항구 주변에 붉은색 해당화가 바람에 이리저리 흔들리는 모습조차도 슬퍼 보인다. 
 
덧붙이는 글 사할린에는 일제강점기 강제이주당한 한인들 1세와 그 후손들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너무 늦었지만 이제라도 사할린에 남아 있는 그들의 흔적을 찾아 떠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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