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도 학생식당도 포기했는데... 이제 '함께' 채식한다

새터 식단·시험기간 간식에도 채식 메뉴 포함... 대학에 '다양성'바람이 분다

등록 2019.03.05 16:13수정 2019.03.05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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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식당 '소리함'에 채식메뉴를 만들어달라고, 그것도 안 되면 성분표시라도 해달라고 코멘트를 할 때마다 아무런 응답이 없던 지난 몇 년이 스쳐지나간다. 소비자로서의 요구를 해도 무시를 당한 경험은 다시 한 번 단단한 포기와 침묵을 낳았다. 그런데 이제는 무언가 달라지고 있다. ⓒ unsplash

 
학교에서 강의를 듣다 배가 고프면 일단 학생식당 메뉴를 확인한다. 오늘의 메뉴. 치킨데리야키볶음밥, 돈육김치볶음, 돈불고기두부전골. 전부 고기가 들어간다.

시계를 본다. 오후 다섯 시다. 나물반찬과 밥만 받아서 마음 놓고 먹을 수 있는 한식(백반)코너는 이미 품절되었을 시간이다. 가장 저렴하기 때문이다. 밥은 집에 가서 먹어야겠다. 

나는 채식을 한다.

동아리MT, 과 행사... 그냥 안 갔다

2월 중순이다. 대학마다 신입생 환영에 열심이다. 어느어느 대학교에서 새내기 배움터에 비건(고기는 물론 우유, 달걀도 먹지 않는 채식의 단계) 음식을 준비했다는 기사가 눈에 띈다.

문득 1학년 시절의 숱한 MT들이 떠오른다. 가장 먼저 그려지는 것은 학생회 선배들이 목장갑을 끼고 번개탄에 불을 붙여가며 고기 바비큐를 준비하는 풍경이다.

공장식축산에 보이콧한다는 의미로 채식을 한 지 3년 정도 되었다. 동아리 MT나 학과 행사에 가지 않은 지도 딱 그만큼 되었다. 바쁘게 일하는 친구들, 선배들에게 차마 "나를 위한 음식을 따로 준비해줄 수 있느냐"고 묻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그냥 안 갔다.

섭섭함, 굴욕감, 외로움 같은 감정은 개인을 침묵하고 포기하게 만든다. 학생식당 '소리함'에 채식메뉴를 만들어 달라고, 그것도 안 되면 성분표시라도 해 달라고 코멘트를 할 때마다 아무런 응답이 없던 지난 몇 년이 스쳐 지나간다.

누가 그랬다. 악플보다 무플이 무섭다고. 소비자로서의 요구를 해도 무시를 당한 경험은 다시 한번 단단한 포기와 침묵을 낳았다.

그런데 이제는 무언가 달라지고 있다. 여러 대학공동체에서 채식인을 식이소수자라고 호명하며 이들을 위한 가이드라인을 세운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총학생회가 학내 식이소수자 실태조사를 하고, 시험기간 간식에 비건 옵션을 도입한다. 학생식당 채식 메뉴 추가를 추진하고, 업체에 식재료 성분표시를 요구한다.

개인의 힘으로는 상상도 못 할 것들이다. 하지만 공동체가 함께 나서준다면 이렇듯 기존의 문화에 균열을 낼 수 있다. 

'함께' 균열 냈더니... 달라진 대학가
 

숙명여자대학교 제51대 총학생회 '오늘'의 선거운동 당시 공약집숙명여자대학교 제51대 총학생회 '오늘'의 선거운동 당시 공약집 내용 일부 ⓒ 김소라

 
내가 다니는 숙명여자대학교 제51대 총학생회 '오늘'의 공약 중 하나는 시험기간 간식배부를 할 때 식이소수자를 위한 간식을 준비하겠다는 것이었다.

총학생회장 황지수씨는 "'그깟 간식 안 받으면 되지'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간식준비가 '어떤 사람을 학교 구성원으로 인정하는지'의 문제와 이어져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누구나 즐길 수 있는 간식을 준비하는 것은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학교를 만들어가는 방법"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학내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채식을 하는 학생들을 위한 게시판이 새로 생겼다. 각자 그날 먹은 채식 음식을 자랑하기도 하고, 학교 주변에 채식 옵션이 가능한 식당을 서로에게 소개하기도 한다.

동물성식품이 아니더라도 동물을 착취해서 얻는 식재료(팜유, 코코넛, 꿀 등), 환경파괴에 일조하는 식재료(아보카도)를 알리는 글도 간간이 보인다. 채식을 하는 학우들은 이 게시판에서 어떻게 하면 더 윤리적이고 건강한 식생활을 할 수 있을지 고민을 나눈다.

얼마 전 단골 샌드위치집에 비건 메뉴가 생겼기에 채식 게시판에 알렸더니, 난생처음 '핫게(핫게시물, 공감수가 높으면 자동으로 핫게시물이 된다)'가 되었다. 그만큼 많은 학생들이 채식에 관심을 갖고 동참을 하고 있다.

대학 사회에 다양성의 바람이 불고 있다. 채식을 하는 것은 비밀도 아니고 부끄러운 것도 아니었다. 섭섭해도 참고, 부당해도 숨던 날은 끝났다. 채식인을 포함한 소수자들의 다양성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힘이 학교를 넘어 한국 사회로 널리 번져나가기를 바란다. '함께'의 힘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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