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 일본의 민주주의는 말라 죽어버렸다"

[현장] 나고야에서 3.1운동 100주년 기념 집회 열려

등록 2019.03.04 11:39수정 2019.03.04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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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 백주년 기념 집회 아리랑 등의 노래를 부르며 행진하는 참가자들 ⓒ 이두희

 
"3∙1독립운동 100년의 정신을 되새기자"
"조선침략의 역사를 잊지 말자"
 
지난  2일 오후, 일본 나고야의 중심가인 사카에 일대에 손에 손에 피켓을 든 이들이 한국의 3∙1운동 정신을 배우고 조선침략의 역사를 잊지 말자는 구호를 외치며 행진했다. 이들은 나고야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한국합병 100년 도카이(東海)행동' 회원들이다. 이 단체는 한국의 3∙1운동 100년을 맞아 과거 일본의 침략의 역사를 올바로 기억하고 그 위에서 반성과 사죄를 통해 한반도와 올바른 관계를 만들자는 목적으로 이날 집회를 계획했다.

3부 거리행진에 앞서 사카에의 가스빌딩에서 열린 이날 집회는 '나의 서양미술 순례', '디아스포라 기행' 등의 작품으로 알려진 재일동포 2세 서경식 도쿄 경제대학교수의 강연과 2부의 '마당'으로 진행되었다.
  

3. 1운동 100주년 기념 행사 강연자로 참석한 서경식 교수 ⓒ 이두희

 
서 교수는 자신의 저서인 '일본 리버럴의 퇴락'을 열쇳말로 삼아 일본의 전후 민주주의를 지탱해왔던 일본의 진보 세력이 어떻게 현실과 타협하며 퇴락해왔는지에 대해 지적했다.
 
"전후의 일본 민주주의는 대량소비주의 그 자체입니다. 민주주의를 소비만 하려고 하지, 스스로의 민주주의를 생산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민주주의를 스스로 만들어 내지 않고 주어진 사회 체제에 안주하려 하기 때문에 한국에서의 정권 퇴진 시위가 일본 사회에서는 이해가 되지 않는 것입니다."
 
새로운 민주주의를 만들어내지 못하는 일본의 사회적 풍토는 진보세력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현 자민당 아베정권에 반대하는 많은 지식인들도 '천황제'에 대해 문제제기도 하지 않고, 오히려 현실로써 '천황제'를 받아들이자는 주장들이 공공연하고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서 교수는 주체성을 상실한 사회에서 마땅히 나침반 역할을 했어야 할 일본의 진보세력이 1990년대 중반 이후 급격하게 진행되는 일본의 우경화 흐름 속에서 오히려 그 흐름에 편승하고 타협하고 말았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도 자신이 일본의 진보세력을 비판하는 이유는, 이들을 적대시하는 것이 아니라  동아시아의 미래가 또다시 전쟁이라는 참화를 겪지 않기 위해서라도 이들에 대한 각성을 촉구하는 '비판적 연대'가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서 교수의 강연 뒤에는 2부 '마당'을 통해 여러 그룹들이 3∙1운동 100년을 맞는 자신들의 느낌과 각오를 표현했다.
 
모든 차별을 넘어선 수평선에서
모든 국경을 넘어선 지평선에서
우리들 바람 그날을 위해 불어라
 
40년 이상 재일조선인 작가를 연구해 온 작가 이소가이 지로 선생은 자신의 자작시를 통해서 차별과 국경을 넘어선 한일간의 새로운 차원의 화해를 노래했다.

한국 드라마, 노래를 좋아하는 것만으로 SNS에서 공격
    
"초등학교 때 우연한 기회로 한국 드라마와 노래에 빠져 SNS에 그런 내용을 올리기 시작했는데, 한국을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우익들한테 엄청난 공격을 받았어요."
 
 

3.1운동 100주년 기념 집회 평화를 상징하는 상징물을 들고 행진하는 미국인 참가자 ⓒ 이두희

올해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생이 된다는 한 참가자는 자유 발언을 통해 인터넷에서 겪은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하면서 "왜 이런 사람들이 이렇게 많을까?"라는 의문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서 일본이 과거에 저지른 역사를 공부하고, 거기서 배운 내용을 통해 일본 사회가 올바른 역사 인식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데 도움이 되는 역할을 하고 싶다고 말해 참석자들의 큰 박수를 받았다.

이 밖에도 이날 2부 순서에는 3∙1독립선언문 낭독, 노래, 촌극 등을 통해 점차 우경화되고 일본 사회의 현실 속에서 3∙1운동의 의미를 되새기고 시민이 앞장서서 한반도와 올바른 관계를 정립할 것을 다짐하는 시간을 가졌다.

참가자들은 옥내 집회가 끝난 후 '한국전쟁을 끝내라', '북일 국교 정상화 실현', '조선학교 아이들에게도 (교육) 무상화를' 등의 구호가 적힌 피켓을 들고 사카에 일대를 행진하며 거리의 시민들에게 일본 사회의 각성과 동북아시아의 평화를 위해 함께 행동에 나서 줄 것을 호소했다.


일본 외무성 홈페이지에는 지난 2월 28일부터 한국의 3∙1운동 행사와 관련해 한국을 여행 중인 자국인들에게 주의를 알리는 안내를 내보내고 있다. 3∙1운동 기념행사마저도 과격한 시위처럼 취급하고 그런 색깔을 덧씌우려는 일본 정부의 인식과 이날 집회 참가자들이 기억하는 3∙1운동에 대한 인식의 차이가 지금의 일본 사회가 안고 있는 과제와 문제점을 쉽게 보여준다.

행사의 관계자는 "오늘의 행사는 시작일 뿐이다. 앞으로 해결해 나가야 할 과제가 많다. 더욱 이 운동에 힘을 내어 확대해 나갈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나고야의 3∙1운동 101주년 집회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한국 여행 중인 자국민에게 주의를 알리는 일본 외무성 홈페이지(인터넷 화면 캡쳐) ⓒ 일본외무성

 

3.1운동 백주년 기념 행사 독립선언문 낭독 ⓒ 이두희

 

3.1운동 100주년 기념 행사 작은 '평화의 소녀상'. 이날 집회에서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더욱 널리 알리자는 취지로 작은 '평화의 소녀상'도 판매했다. ⓒ 이두희

 

3.1운동 100주년 기념 행사 재일동포 1세의 이야기를 담은 1인극 ⓒ 이두희

   

3.1운동 100주년 기념 행사 시를 낭독하는 이소가이 지로 선생 ⓒ 이두희

   

3.1운동 100주년 기념 행사 자신이 SNS에서 겪은 이야기를 하는 참가자 ⓒ 이두희

   

3.1운동 100주년 기념 행사 평화의 소녀상을 담은 노래 '서울의 소녀'를 부르는 아이치 교직원 합창단 '희망' ⓒ 이두희

   

3.1운동 100주년 기념 행사 행사장에 전시된 서경식 교수의 저작물. ⓒ 이두희

   

3.1운동 100주년 기념 집회 행사장에 들어서는 참가자들 ⓒ 이두희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에큐메니안(http://www.ecumenian.com)에도 게재됩니다.
#3.1운동 100주년 #나고야 #서경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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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나고야의 장애인 인형극단 '종이풍선(紙風船)'에서 일하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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