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갑지 않은 손님 '디스크'가 왔다면

[잡식성 책사냥꾼] 정선근 교수의 '백년 허리', '백년 목'

등록 2019.03.06 15:35수정 2019.03.06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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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어느 날 갑자기, 목 디스크 진단을 받았다. MRI를 찍어볼 필요도 없이 X-ray에서도 보이는 목 디스크. 5-6번 경추 사이가 좁은 것이 비전문가의 눈에도 잘 보였다. 그런데 디스크가 얇아진 것인지, 노화한 것인지, 탈출증인지 정도는 설명을 해줘야 하는 것 아닌가? 이러니 푸코의 책을 읽지 않아도 지식 권력이라는 것에 대해 사람들이 혐오감을 갖는 것이다.

월요일에 진단을 받고 나서 물리치료를 받았다. 하루에 열 세알이나 되는 약을 먹어도 차도가 보이지 않아 수요일에 반차를 내고 다시 아침 일찍부터 병원을 찾았다. 그래서 도수치료라는 게 있지 않냐, 그거라도 받고 싶다고 사정을 했다. 근육이 많이 뭉친 것 같으니 근육 이완제를 맞는 게 좋겠다고 해서 주사도 다섯 방이나 맞았다. 그리고 도수치료도 한 시간 정도 받았다.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도수치료가 얼마나 비싼지 설명해 주는 '치료 상담사'가 운동은 해봤자 소용이 없다고 하는 말을 듣고, 내가 뭐 하는 짓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도 바이러스성 피부 감염으로 병원에 갔다가 '비타민 주사'를 맞은 적이 있다. 그게 도움이 된다나. 결국, 병을 키워서 대학병원으로 가게 되었다. 내 몸, 내가 직접 돌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배워야, 의사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라도 듣지 않겠나.

2.
 

<백년 허리>에 나오는 허리에 좋은 습관 ⓒ 사이언스북스

 
<백년 허리>는 스스로 허리 건강을 지키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책이다. 전 인구의 80퍼센트는 일생에 한 번 이상 요통을 경험한다고 한다. 어떤 시점에서 인구의 30%가 요통을 겪고 있으며, 직장인 병가의 가장 흔한 이유 역시 요통이라고, 저자 정선근 교수는 머리말에서 밝힌다.

정선근 교수의 책을 찾아보게 된 계기는 구글 검색이었다. 목 디스크에 좋은 운동을 찾다보니 정선근 교수의 신문 칼럼을 보게 되었다. 수술 대신, 운동으로 디스크 건강을 지킬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경제 논리로 돌아가는 세상에서 아직도 사람을 바라보는 참의사가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디스크는 척추뼈 사이에서 완충 역할을 하는 조직으로, 마치 앙금이 든 찹쌀떡과 같은 모습이다. 바르지 못한 자세는 이 찹쌀떡에 비정상적인 힘을 가하게 만든다. 앙금에 해당하는 수핵이 디스크 내부로부터 흘러나와 신경절에 묻어 염증을 일으키는 것이 디스크 탈출증의 기전이다.


맹장이 문제를 일으키면 맹장을 제거하고, 편도선이 자꾸 부으면 편도선을 제거하듯이, 디스크 탈출증에 디스크 제거술로 대응하던 때가 있었다. 그렇게 오래 전 이야기도 아니다. 손상된 디스크에 대한 보존적 치료법이 임상실험의 대상이 된 것은 1990년대 이후의 일이다.

A와 B 사이에 상관관계가 있다고 해서 인과관계가 성립하는 것은 아니다. 불이 난 현장에 소방수가 많이 있다고 해서, 소방수가 불을 지른 범인이라고 생각한다면 얼마나 우스운가? 케톤체나 콜레스테롤이 그렇게 오해받았듯이, 근육 뭉침 역시 범인으로 몰린 구조자다. 디스크가 위험에 빠졌기 때문에, 근육은 서로 뭉쳐서라도 디스크를 지탱하려 한 것이다. 이 상태에서 근육을 이완시키는 것은 문제 해결을 외면하고 당장의 고통만을 피하겠다는 발상에 불과하다.

마사지, 카이로프랙틱, 온열치료는 치료 받는 동안에만 환부의 고통을 줄여줄 뿐이다. 반복적 치료와 수술을 통해 현금흐름을 창조하는 대신 운동을 처방하는 의사는 마치 드라마 속 허준과 같이 비현실적이지만, 정선근 교수와 같이 실제로 존재한다. 다만, 운동 처방 역시 다른 처방과 마찬가지로 틀릴 확률이 있다는 사실은 기억해야 한다.

맥켄지 운동법은 1981년 뉴질랜드의 물리치료사 로빈 맥켄지가 제시한 운동법이다. 1950년대부터 그는 운동이 환자들의 상태에 도움이 되는 것을 관찰해 왔다. 그런데 운동법을 체계화하는 과정에서 당시에 알려져 있던 여러 가지 동작을 별다른 근거 없이 포함시킨 것이 문제다. 1981년이라면, <백년 허리>에 소개된 수많은 실험 결과가 아직 세상에 나오기 전이다. 따라서 맥켄지 운동법에 포함된 동작이라고 해서 허리나 목에 무조건 좋다고 판단하는 것은 위험하다.

허리와 목을 앞쪽으로 구부러지게 하는 동작은 논리적으로는 분명 말이 된다. 하지만 과연 이것이 효과가 있을까? 정선근 교수는 서울대 공대생 세 명과 함께 실험을 통해 요추 전만, 경추 전만 운동의 효과를 입증했다. 경추, 요추의 전만 상태는 자연스러운 몸의 형태이기도 하므로, 이런 자세를 취해주는 운동이 허리와 목을 교정한다는 주장은 논리적으로도 자연스럽다.

3.
 

앉아서 하는 맥켄지 신전 운동법 ⓒ 사이언스북스


<백년 허리>의 속편, <백년 목>은 경추 이상으로 인한 다양한 증상을 설명하고, 그 해결 방법으로서 다시금 맥켄지 신전 운동을 제시한다. 이 책에서 가장 주목하여 볼 개념이라면 연관통(referred pain)과 방사통(radiating pain)이라고 하겠다.

연관통은 신경 다발이 연관되어 있음으로써 발생하는 통증이다. 예컨대 내장에서 발생하는 자극은 신경다발을 통해 피부로 전달되는데, 내장과 피부의 신경이 일대일 대응이 아니므로 피부에서 느껴지는 통증은 무루뭉술하다. 따라서 다른 위치에서 발생한 자극이라도 같은 신경 다발을 통과하면서 통증은 애매하게 섞여서 표현된다. 이것이 연관통이다.
상관없는 부위의 통증 전달 경로가 척수에서 서로 합쳐지면서 뇌가 아픈 부위를 구분하지 못해서 생기는 것이다. (169쪽)
 

반면, 방사통은 하나의 신경 체계가 느끼는 통증이다. 예컨대 경추에 문제가 있어 신경이 눌린다면, 어깨나 손에서 통증이 나타날 수 있다. 문제가 발생한 부분과는 다른 위치에서 통증을 느끼는 것은 연관통과 같지만, 방사통은 같은 신경 분절에 속해 있는 다른 부분들이 함께 통증을 느끼는 상태인 것이다. 신경의 연결을 따라 가면서 방사적으로 통증이 나타나므로 방사통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목 디스크가 있을 경우, 연관통은 다양하게 나타난다. 책에 나온 사례만 보더라도, 승모근, 어금니, 귓속, 머릿속, 눈, 가슴 등 일반화시킬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하다. 반면, 방사통은 배측신경절에 디스크 수핵이 묻어서 염증이 생기면서 시작된다. 이것이 신경절을 따라 어깨, 팔, 손가락까지 방사형으로 내려온다. 목 디스크에 문제가 있을 경우, 어깨에는 연관통도 방사통도 나타날 수 있다.

4.

갑작스럽게 찾아온 '목 디스크'라는 손님 덕에 연휴 기간 동안 비슷한 책을 여러 권 읽게 됐다. 디스크 MRI 사진도 하도 많이 보다 보니 이제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 그러나 배운 것을 실행하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어떻게 해야 할까?

정선근 교수의 해법은 단순하고 명쾌하다. 맥켄지 신전 운동을 하면 된다. 방법도 어렵지 않다. 매 시간 알림을 설정해서, 1시간에 1~2분 정도 요추와 경추를 뒤로 젖혀주면 그만이다.

허리에 안 좋은 운동도 그만둬야겠다. 요가에서 아주 흔하게 나오는 '전굴' 자세들이다. 이중에 얼마나 많은 동작을 그동안 해왔던가. 정선근 교수 왈, 아직 몸이 튼튼한 20, 30대라면 허리 근육 강화 차원에서 할 만한 동작이지만, 40대 이상이라면 허리 근육 강화보다는 허리 디스크 보호가 더 급한 숙제다.

운전할 때나, 업무에 몰두할 때도 가끔씩은 목과 허리를 뒤로 젖혀줄 필요가 있다. 비행기나 기차에서 잘 때도, 고개를 앞으로 숙이지 말고 뒤로 젖혀서 자는 습관을 들이자. 책에 나오는 아래 사진처럼 잘 수 있다면 참 좋을 것 같다. 내가 갑작스레 목 디스크라는 진단을 받게 된 것도 자는 자세가 나빠서인 것 같다.

오랫동안 혹사시켜 왔던 내 몸. 지금이라도 정신 차리고 보살펴줘야겠다. 백년을 함께할 동반자니까.
덧붙이는 글 브런치와 블로그에 올린 글을 조금 수정하였습니다.

https://brunch.co.kr/@junatul
https://blog.naver.com/junatul/221479084660

백년 목 - 100년 가는 목 만드는 단 하나의 방법

정선근 지음,
사이언스북스, 2017


백년 허리 - 허리 보증 기간을 100년으로 늘리는 방법

정선근 지음,
사이언스북스, 2015


#잡식성 책사냥꾼 #정선근 #백년 허리 #백년 목 #맥켄지 신전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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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용이 강물처럼 흐르는 소통사회를 희망하는 시민입니다. 책 읽는 브런치 운영중입니다. 감사합니다. https://brunch.co.kr/@junat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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