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안대교 충돌 직전 러시아 배에선 무슨 일이?

욕설 난무... 음주 부인하던 선장 술 마신 정황도 드러나

등록 2019.03.05 17:09수정 2019.03.05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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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해양경찰서는 지난 28일 오후 요트와 광안대교를 충돌한 러시아 화물선 씨그랜드호의 조타실 음성이 담긴 운항 CCTV 영상을 5일 공개했다. 사고 당일 오후 오후 4시 20분께 선박이 광안대교를 충돌하던 모습. ⓒ 부산해양경찰서


지난달 28일 오후, 부산 광안대교를 충돌한 러시아 화물선이 요트와 다리 교각을 잇달아 충돌하던 상황이 담긴 영상과 음성 파일이 공개됐다.

사고 당시 사고를 낸 배의 조타실에서는 욕설이 난무하고 사실상 배를 제대로 운항할 수 없었던 것으로 비치는 모습이 드러났다. 음주 운항 혐의를 벗기 위해 사고 후 술을 마셨다고 말한 선장 S(43)씨의 진술과는 달리 이미 만취해있었던 상황임을 보여주는 정황까지 드러났다.

부산해경은 5일 사고 선박인 씨그랜드호의 항해기록저장장치(VDR)과 선박에서 찍은 외부 항해 상황이 담긴 CCTV를 공개했다. 음성기록은 러시아어를 해경이 통역 3명을 통해 한국어로 번역했다.

영상에서 배는 부산 남구 용호부두를 28일 오후 3시 30분쯤 출발했다. 하지만 10분쯤 뒤 계류장에 멈춰서 있던 요트와 1차로 충돌한다.

충돌 직전 조타실 안에서는 "XX 받치겠다"라는 러시아어가 욕설과 함께 들려온다. 사고를 의심한 해상교통관제센터(VTS)가 사고 여부를 묻자 예인선을 요청한다. VTS가 "계속해서 사고가 났냐"고 물어오자 이번에는 선장으로 의심되는 목소리가 "아무 말도 하지 마라"라고 선원에게 지시한 후, VTS에는 "문제없다 (No problem)"라고 영어로 답한다.

사고 이후 "이게 술의 결과다" 자조 섞인 푸념

배는 방향을 급속히 틀어 이번에는 광안대교 쪽으로 향한다. 오후 4시 17분에는 일등항해사가 욕설과 함께 "못 돌린다"라며 외친다. 배가 제대로 운항할 수 없음을 경고하는 외침에도 선장은 "간다"는 말을 반복하며 운항을 이어간다.


결국 광안대교의 교각이 가까워져 오고 조타실 안에서는 "못 멈춘다 XX"라는 말과 "끝났다. X됐다"라는 말이 이어서 들린다. 그대로 배는 광안대교의 10~11번 교각 사이를 들이받았고 배는 "빵"하고 기적 소리를 울린다.

다리 위를 달리던 차들이 놀라서 주춤하고, 해경의 작은 연안 경비정이 주위를 돌고 있지만 돌진하는 배를 막아내기에는 역부족이었던 상황이다.
 

부산해양경찰서는 지난 28일 오후 요트와 광안대교를 충돌한 러시아 화물선 씨그랜드호 조타실 음성이 담긴 운항 CCTV 영상을 5일 공개했다. 사고 당일 오후 3시 40분께 씨그랜드호가 인근에 계류중이던 요트를 들이받던 모습. ⓒ 부산해양경찰서

광안대교를 충돌한 배는 후진을 해 바깥쪽 바다로 향한다. 이때 사고 뒤 술을 마셨다고 경찰에 진술한 선장의 말과는 다른 상황이 선내에서 펼쳐지고 있었음을 의심할 만한 대화가 녹음된다.

조타실에 있는 누군가가 "이게 술의 결과다. 들어갈 뿐만 아니라 절대로 안 돼. 아예 배에서는 안 되지 들어갈 때뿐만 아니라"라면서 자조 섞인 말을 한다. 해경은 여기서 "들어갈 때"라는 말은 입항을 의미한다고 보고 있다.

해경, 선장 음주 혐의로 기소 송치 예정

경찰은 당시 상황을 바탕으로 선장의 음주가 이번 사고의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고 판단하고 있다. 업무상과실선박파괴, 업무상과실치상 등의 혐의를 받고 있는 선장은 이러한 혐의는 인정하고 있다. 하지만 음주 운항이 쟁점인 해사안전법 위반은 인정하려 들지 않고 있다.

사고 이후 해경이 한 검사에서 선장의 혈중알코올농도는 0.086%. 배에서는 1/3쯤 남은 500mL 코냑 한 병과 다 마신 300mL 크기 맥주가 발견됐다. 3명의 조타실 근무자 중 선장만 음주 반응을 보였던 점에 비춰본다면 선장이 혼자 술을 마셨다는 게 해경의 설명이다.

출항 직전 선장을 봤던 목격자도 이미 그때부터 선장의 얼굴이 붉었고, 흥분해있었던 상태였던 걸로 해경이 증언했다.

배의 운항 상태도 정상적인 항해와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사고 당일 배는 요트를 충돌한 뒤 배를 오른쪽으로 급속히 모는 '고속 우현전타'로 사고 지점을 벗어나려 했다. 광안대교와 충돌하지 않으려면 마치 좁은 공간에서 주차된 차를 빼듯 천천히 전·후진을 반복해야 하는데 급속히 키를 돌리면서 회전 반경이 커졌다.

해경은 선장의 음주가 이번 사고를 키웠다고 보고 "위드마크 산식(사고 당시 혈중알코올농도를 추정하는 방식)과 VDR 녹음, 목격자의 증언을 종합해서 기소 송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광안대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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